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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적 타자에서 신앙주체로 거듭나는 이등시민

[마대성 바오로, 30대, 의류업, 1991년 이주, 재이주경험자, 1992년 카톨릭 입문]

- 마대성: 예전에는 이렇게 안했어요. 계속 원주민 신부님들이 오시고 그런 것도 아니 고, 필요할 때 상황 따라 어쩌다 가끔. 그냥 되는대로 우리끼리. 근데 뭐 이젠 좀 제 대로 해보자는 거죠. '우리 이렇게 잘하고 있다'라고 보여주는. 사실 앞으로는 또 어 떻게 될지 몰라요. 이런 식으로 좀 변해갈 수 있으면 좋은데 그게 어디 쉽겠어요? 젊 은 사람들도 자꾸 줄어들고... 쉽게 변하지 않을 거예요.

마대성은 본당의날 의례 이후 ISC 성원들의 태도가 보다 원주민 친화적으로, 또는 시대 변화에 맞춰 변해갈 것이란 기대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다. 20여년 간 ISC에서 생활해 온 그는 최근의 특별미사가 ISC의 실제 변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보여주기'를 위해 기획된 연행의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한다. 주교의 미사집전이 형식 적인 차원에서 ISC가 원주민 카톨릭 세계와 하나됨을 확인하는 상징적 의미가 강하다 면, 한인 카톨릭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이들의 독자성에 대한 인정이라는 상징성이 강하다. 사실 이 날도 대주교와 10여명의 소수 원주민들의 입장만이 허용되었고, 행 사내용은 외부로 공표되지 않았으며 교회 대문도 평소와 다름없이 여전히 닫혀있었 다. 전후 상황을 보면, 마대성의 말처럼 본당의날 미사의 주된 목적은 카톨릭으로서 하나됨의 확인뿐만 아니라, ISC의 독자성을 인정받는 것으로 좀 더 무게가 실리는 측 면이 없지 않다. 결국 본 의례에는 후자를 위한 기획을 통해 사회적 연행으로서의 역 할 또한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앙인으로서 자기반성의 차원으로도 인용된다. 그런 의미에서 본 의례는 평소 ISC 성원들이 문화적・계층적으로 원주민 사회와 거리를 두려는 세속적 욕구를 초월하여 신앙을 통해 성찰하며 신성한 종교주체로 거듭나고 인정받는 기회이기도 하다. 방향 을 바꾸어보면, 이 같은 종교적 거듭남을 통해 아르헨티나 사회 성원으로 인정받고, 온전한 성원으로서 스스로의 자신감을 회복하려는 기대 또한 엿보인다.

사진18) 특별미사 중 참회의 시간: 제대 오른 편에 놓인 태극기, 교황청기, 아르헨티 나 국기, 이 세 개의 깃발은 성원들의 신앙 안에 통합된 성속의 경계들을 상징한다.

본당의날 행사를 준비하면서 성원들 사이에는 특히 외부 세계(원주민 사회)와 한인 및 ISC의 관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신들의 위치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가 오고간 다. 특별미사뿐만 아니라 한맘잔치를 준비하는 성원들 사이에서도 '우리'의 잔치를 통 해 한인 카톨릭의 성취와 자부심을 이야기하면서, 이 특별한 날마저 외부 원주민 사 회와의 나눔없는 자신들의 위치에 대한 반성과 아쉬움이 표출된다.

[박영도 바오로, 50대, 의류업, 1988년 이주, 1980년 카톨릭입문]

- 박영도: 벌써 30년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우리끼리, 몇 년 전에 한 번 성당 문 열고 골 목에서 음식도 팔고 했는데, 그 이후로는 없어. 안전문제도 있고, 평소에 여기 한인성 당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홍보도 안된 상황에서 그러니까 원주민들이 잘 모르기도 했 고, 시끄럽다고 항의도 들어오고. 맨날 한인끼리만 뭉쳐 사는데, 이럴 때일수록 원주 민들이랑 어울리고 대접도 하면서 함께 해야 하는데 이래저래 잘 안되지.

(중략)

평소랑 다르게 대주교님도 오시고 원주민들도 오고 하니까 뭔가 특별한 게 있기는 해. 우리끼리만 잘 먹고 잘살겠다고 한 건 아닌지 반성도 하고, 못살고 무시당하던 예전이랑은 이제 다르잖아. 좀 달라져야겠다 다짐도 하고. 기도도 그런 쪽으로 더...

주일미사에 오는 건 중요한데, 주일마다 성체 모시면서 반성하고 회개하고. 미사 빠 지면 뭔가 마음이 불편해. 오래 다니다보면 그냥 그렇게 되고, 그만큼 신앙이 생활화 되다 보면 습관처럼 무뎌지거든. 미사에서 멍하니 딴 생각도 하고, 그냥 앉아만 있다 올 때도 있고. 그래서 뭔가 이런 미사는 다른 주일미사랑 다르게 더 특별하고 의미있

는... 좀 더 경건해지고, 신앙인으로 사는 데도 더 반성하고, 앞으로 잘 살겠다, 도와 주십사 기도도 하고. 뭐 확 달라지진 않지만 이런 게 쌓이다보면 조금씩 나아지겠지.

박영도의 이야기에는 본당의날을 전후로 사제나 주요 성원들로부터 권장되는 신앙 실천의 과정이 잘 나타나있다. 세속적 존재로서 ISC 성원들은 '우리(한인)끼리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이기심을 보이는 것처럼 부족하고 불완전한 존재이다. 따라서 신 앙 안에서 이같은 과오를 뉘우치고 새롭게 변모하는 자세가 중요하며, 본당의날은 외 부의 종교 권위자 및 원주민들과 함께함으로써 타자와의 접촉을 통해 특별히 '우리' 와 '그들'의 관계를 돌아보며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습관처럼 무뎌진 일반미 사와 다른 그 '특별함'은 의례에 신성성을 더함으로써 평소와는 다른 신앙인으로 거 듭날 수 있는 의미있는 날이 된다. 신앙적 거듭남은 미사 직후 펼쳐지는 잔치마당에 서 전 ISC 성원들과 초대된 원주민들의 어우러짐을 통해, ISC 내부(성원 간)와 외부 (한인과 원주민 간)의 갈등을 봉합하고 하나됨을 확인하는 신앙의 실천이자 세속적 경험으로까지 연장된다.

보통 이 같은 이야기에서 한인 카톨릭은 아르헨티나 사회에서 차별받는 타자로서보 다는 나눔을 행하지 않는 자신을 스스로 성찰하고 깨달음을 실천하는 신앙주체로 다 루어진다. 이로써 ISC 성원들은 이등시민으로 위치지워진 일상으로부터 자존감을 회 복하고, 능동적으로 올바른 성원됨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행위자로 구성된다.

결국 본당의날 행사는 원주민 사제가 권위를 갖는 의례와 한인이 주인(호스트)이 되 는 잔치의 결합을 통해, 신앙인으로서 거듭남과 함께 이등시민의 자존감 회복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함께 달성하려는 기획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종교학자 벨 (Bell)은 의례는 일련의 정해진 행동이 아닌 다양한 범위의 행동방식들을 지칭하는 용 어로써, 의례화(ritualization)의 개념으로 의례연구에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 의례화는 어떤 행동을 다른 것들로부터 차별화시키고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 사이의 질적 차 이를 만들어내어 특권을 부여하며, 그 차이를 인간 행위자의 능력을 넘어서는 현실에 서 비롯된 것으로 돌리기 위해서 고안된 문화적 전략들과 관계된다(Bell 1992: 74).

그런 의미에서 본당의날 행사는 ISC 성원들이 신성성을 담지하는 '특별한' 의례의 시 공간을 통해 신앙적으로 거듭남과 동시에, 일상의 타자성을 극복하기 위해 문화적으 로 기획된 공동체적 연행들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는 신앙 의례로서 뿐 만 아니라, 문화적 기획 내지 사회적 연행으로서의 성격 또한 갖게 된다.

ISC 성원들이 신앙생활에서 제일 중시하는 것은 주일마다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고, 미사에서는 자기 반성과 회개의 시간, 성체를 모심40)으로써 새롭게 거듭나는 과정에 집중한다. 의례의 핵심은 성찰과 거듭남의 신성한 연행이며, 의례의 시공간에서 성찰 하는 자아는 세속적 존재인 일상의 자신과는 구별되는, 신성한 시공간의 신앙주체로 서 존재한다. 본당의날 미사는 여기에 아르헨티나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인 카톨릭으 로서의 위상과 나아갈 방향이라는 단일한 특정 주제를 가지며, 전 공동체의 ‘기도(신 앙적 기대와 연행)’가 이에 집중되고 외부자 참여라는 특별함이 더해지는 데 의미가 있다. "평소에 우리가 속세의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건 당연한 거야. 이런 기회에 자 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성숙해가는 게 신앙인으로서 과정, 그리고 속세로 돌아가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그래서 이런 특별한 신앙의 계기가 중요해. 공동체 모두가 뜻 을 모으는 의미도 특별하고. 평소와는 다른 자신으로, 남다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새로 워지는 기회가 되니까." 도성란(50대, 이민 1.5세대)의 이야기에서처럼 특별한 계기로 서의 의례(미사)들은 단일한 주제에 대한 공동체 차원의 뜻과 참여가 모아지는 자리 이니만큼, 성찰의 신성한 연행을 통해 개인뿐만 아니라 ISC 전체가 신앙적으로 거듭 나는 장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그것은 외부자들의 인정과 확인으로부터 정당 성을 갖게 된다. 그 신성한 연행을 주관하는 원주민 사제는 한인 카톨릭의 거듭남을 인도하고 승인하는 성속의 매개자이며, 이 같은 과정에 동참한 사제와 원주민 신자들 은 카톨릭으로 하나된 동지이다. 또한, 동시에 이들은 한인 카톨릭의 거듭남을 목격하 고 증언하게 될 타자로서, 외부사회의 전언자라는 두 가지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사진19) 영성체 의식: 의식을 행하기 위해 대 주교가 성체가 담긴 성배를 들고 제대를 내 려오고, 신자들은 제대 쪽으로 나서고 있다.

사진20) 미사에 참석한 외빈: 이 날 원주민 신자들은 수시로 미사 장면 을 촬영하였다.(보통 ISC에서 미사 중 휴대폰 사용은 제재됨)

40) 영성체: 미사전례 중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밀전병을 받아 먹고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은총을 받게되는 연행으로, 신자들은 영성체를 통해 하느님과 일치하며 신자 상호 간에도 일치를 이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