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본 연구는 아르헨티나의 한인 카톨릭 사례를 통해 초국가적 이주로부터 형성된 디 아스포라 공동체가 거주국 사회의 여타 성원들과 차별화된 방식으로 성원권을 구성하 고 실천하는 과정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초국가적 이주자들은 흔히 스스로를 ‘이도저 도 아닌’, ‘사이에 끼인(in-between) 중간인’으로 정체화한다(Grewel 1995; Mudimbe and Engle 1999; Ryang 2002). 이는 국가의 경계를 초월한 일상이 다시 특정 국가 와 지역의 경계 안에서 펼쳐지면서 여전히 많은 이주민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고, 초국적 연망이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들이 초국적 주체로서 현재 위치한 사회에서 성원권을 구성하 고 행사하는 방식은 ‘중간인’으로서의 정치적ㆍ문화적 권리 주장과 실천이라는 측면에 서 오히려 위치지워진 타자보다는 능동적 생산자로서 측면도 강하게 나타난다. 연구 는 이처럼 대안적 성원권의 생산주체라는 차원에서 ‘사이에 끼인 중간인’으로서 한인 디아스포라와 이들의 종교적 성원권에 주목하고, 소속됨에 대한 사회적 기대로부터 수용과 배제의 전략이 이들의 신앙생활에 투영되는 방식에 대해 고찰하였다.

본고는 디아스포라와 문화적 시민권의 결합을 통해, 고정된 민족국가의 경계를 넘 어 하나 이상의 문화ㆍ정치 체계에 관계된 이들이 초국적 연망, 거주국과 모국, (실제 또는 상상의)고향, 현재의 디아스포라 공동체 사이에서 점하는 위치와 소속의 방식에 대해 다각도의 분석을 시도하였다. 먼저 연구의 전반부에서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한인 사회에서 종교공동체의 성원권에 수렴된 사회적 기대는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먼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일상에서 크게 '이주지속성'과 '이등시민'이라는 특징으로 대변되 는 한인들의 사회적・심리적 위치를 가늠해보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라틴아메리카 역내 이주와 북미 선진국행의 과정에서 이주의 중간 기착지로 역할해왔고, 이 곳 한 인사회 또한 높은 재이주율을 보인다. 역내 국가 간 이동이 용이하다는 점과 함께 아 르헨티나의 잦은 경기불안과 사회적 동요는 이들의 재이주를 추동하였고, ‘언젠간 떠 날 곳’이라는 인식은 원주민 사회로의 통합의지를 약화하는 데 일조한다. 한편, 유럽 계 백인이 사회 주류를 점해온 아르헨티나에서 한인들은 의류업을 통해 중산층으로 성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화적ㆍ계층적 차이로부터 원주민 사회의 차별과 배제를 경험할 뿐만 아니라, ‘중간상인 소수자’라는 입지는 저소득층 원주민과 인근

국가 이주민들과도 불편한 긴장관계를 만들어왔다. 이주지속성과 이등시민의 경험은 한인들이 모국으로 의식적ㆍ실제적으로 귀환하는 배경이 되지만, 영어권이 아닌 제3 세계 국가 출신인 이들에게는 모국에서 또한 ‘이등교포’의 꼬리표가 붙으며 소외와 차 별을 경험하게 되고, 결국 이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 한인사회에 다시 머무르며 ‘중간 인’, 디아스포라로서 자신의 현재를 긍정하게 된다.

한인사회에서 공유되는 고향의 상실이라는 경험과 감정은 상이한 이주 배경을 가진 이들을 한인 디아스포라라는 일련의 군집으로 귀속시킨다. 이들은 자신에게 배타적인 원주민사회와 거리를 두고 타 지역 한인들과의 연대를 상상하거나 반대로 차별화하여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인이라는 집합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서사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모색한다. 이렇게 많은 한인들이 종교공동체로 편입되고 신앙을 통해 ‘차 별화된 중간인’으로서의 사회적 기대가 수렴된 종교 성원권을 채택한다.

아르헨티나의 국교가 카톨릭이라는 특수한 맥락에서 카톨릭 신분이 심리적ㆍ실제적 으로 대안의 성원권으로 역할하면서, 아르헨티나 사회로의 소속 의지를 가진 많은 한 인들이 ISC로 유입된다. 하지만 거주국 카톨릭 사회로부터 받은 차별은 다시 문화적 차이에 기반한 한인 카톨릭공동체의 독립을 추동하였고, 교회는 아르헨티나 교구에, 사제를 파견하는 인사체계는 한국 교구에 속하는 이중의 소속구조를 통해 교류와 소 통이 부재한 ‘닫힌 교회’를 양산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닫힌 교회’는 한인 카톨릭 이 원주민 사회로 소속되는 동시에 문화적ㆍ사회계층적으로 차별화된 집단으로서 거 리를 두기 위한 전략이 투영된 산물이자 실천양식이기도 하다. 기실 ISC를 다른 카톨 릭공동체와 차별화하는 ‘한인’이라는 범주는 언어와 같은 문화적 자질 이외에, 원주민 사회로의 통합과 비통합에 대한 양가적 기대, ‘먹고 살만한’ 한인이라는 특정 계층, 친족ㆍ사업관계에 기반한 권력구조와 질서 등 다양한 층위의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집 단을 경계짓는 ‘문화적’ 수사와도 같다.

종교와 종족사회가 통합된 ISC에서 ‘한인’이라는 경계에 담긴 성원들의 사회적 기대 는 ‘카톨릭’이라는 종교적 장과 맞물리는 맥락에서 공동체에 대한 성원들의 신앙적 기 대와 어긋나며 신앙공동체로서의 불안정성을 야기한다. 종족종교공동체 ISC가 '신앙으 로서의 종교'로 '사회로서의 교회'를 품기 위해 모색해 온 공존방식은 사회와 신앙의

영역이 무분별하게 혼재된 국면을 초래했고, 신앙주체로서 개별 성원들의 입지는 ‘한 인 카톨릭’으로 통합된 경계 안에 압축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공동체라는 본연의 위치에서 신앙을 심화시키고자 하는 이들은 자기와는 다른 세속적 기대와 성 향을 가진 성원들, 그리고 이들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사회로서 교회와의 사이 에서 여러 차원의 갈등을 겪게 된다. 신실함의 영역인 ‘봉사’ 활동을 둘러싼 평판게임 과 각 단체 내ㆍ외부의 정치적 경합, 사회로서 교회의 질서에 신앙과 개인이 소외되 는 상황, 신앙이자 권력으로서 언어가 내재한 모순이 세대 간 갈등으로 부각되는 국 면들은 ISC가 사실 단일하지 않은 기대들로 끊임없이 경합하는 사회적 장으로서 디아 스포라의 위치임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종교적으로 온전한 성원권을 확보하면서 ‘닫힌 교회’에서 해소될 수 없는 신 앙적 기대들을 실현시키기 위해 ISC와 각 성원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중간인의 위치에 서 ‘우리’와 ‘그들’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식으로 신앙을 실천한다. 이들은 ISC에 교적(敎籍)을 두고 성원으로 역할하면서 필요에 따라 원주민교회를 오가는 방식, 한인 선교사라는 매개자를 통해 외부 카톨릭 사회와 연대하고 기여하는 방식을 통해 부분 적으로 활동영역을 확장하며 범카톨릭 세계시민이자 아르헨티나 카톨릭계의 일원으로 서 의무를 이행한다. 그런가하면 외부 카톨릭사회의 권위자와 전언자를 닫힌 교회 안 으로 초대함으로써 ISC의 종교적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본당의날 의례가 기획되는 데, 여기에서 ISC 성원들은 성찰하는 신앙주체이자 연회의 주인으로 연행함으로써 부 에노스아이레스의 일상에서 부여된 타자성을 극복해간다. 이같은 전략을 통해 한인 카톨릭이 위치한 신앙과 세속의 경계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며, ‘닫힌 교회’

내부에서도 한인 카톨릭 성원권은 지속적으로 재구성됨으로써 이들의 존재와 삶의 방 식을 보다 온전한 것으로 만들어간다.

본 연구는 그간 한인 디아스포라 연구에서 간과되어 온 라틴아메리카 지역 사례를 통해 미국, 중국 등 주요 국가에 편중된 기존 연구패턴의 한계를 벗어나 제 3세계 한 인 디아스포라의 이주맥락과 성원권의 양상을 포착할 수 있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높은 재이주율과 ‘언젠가는 떠날 곳’이라는 거주국에 대한 인식은 아르헨티나를 비롯 하여 지리적으로 북미와 근접한 멕시코, 브라질, 파라과이 등 중남미 지역 국가 한인 및 아시아계 이주민사회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는 특성이다. 이러한 특성은 이들 지

역 아시아계 이주민사회에서 거주국 사회로의 소속의지가 낮은 반면 종족 정체성과 종족집단화가 강하게 나타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서성철 2005; Wilson 2004; Joo 2006; Mera 2011; Ko 2014). 하지만 거주국 사회를 이주의 종착지로 설정한 기존 연구들에서는 여전히 이주를 완료되거나 예정된 단편적 경험으로, 초국가적 삶의 배 경은 거주국과 모국사회의 비교적 고정된 구도로 다루면서 이주의 연속성이 이들의 정체성과 삶의 양상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의 이주가 디아스포라들의 단편적 경험에 국한되지 않고 삶을 관통하는 패턴 내지 속성으로 작용하는 측면에 주목하면서 이주지속성으로 그 특징을 개념화하였다. 삶의 속성으로서 이주지속성은 이 지역 디아스포라들이 지 속되는 이주 과정 속에서 결국 어디에서도 중간인으로 위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구 성하는 한편, 한인 카톨릭과 같이 보다 능동적인 방식으로 그 중간성을 긍정하는 소 속 전략과 성원권을 기획하는 토대가 된다. 그 성원권의 영역 또한 ISC의 경우처럼 가깝게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카톨릭 또는 한인 카톨릭에서, 나아가 자신들의 이주노 선과 겹쳐지는 중남미 지역의 한인 카톨릭, 그리고 향후 이주가능성이 열려있는 한국, 미국의 한인 카톨릭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구획된다. 여기에서 성원권의 경계는 특 정 국가나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중간인으로서 자신들의 위치를 중심으로 이주맥락에 따라 유연하게 재구성된다. 이는 라틴아메리카 지역과 이 곳의 한인 디아스포라 연구 가 탈영역화된 주체성의 생산 과정으로서 디아스포라의 생성과 존재양상을 규명하는 데 있어 기여할 수 있는 바를 시사한다.

또한, 본 연구는 초국적 주체들의 정체성과 성원권이 구성되고 실천되는 제 양상을 유동적인 사회적 장에서 전개되는 과정으로 조명해보고자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종교를 통해 한인 디아스포라의 소속의 정치를 다룬 기존 연구들은 특정 공 동체에서 거주국 사회로의 통합이나 여타 종족ㆍ계층 집단과의 공존 의지가 비교적 단일하며 고정적인 양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조명해온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실 한 공동체 내에서도 성원들 사이에는 다양한 사회적ㆍ신앙적 기대들이 공존ㆍ경합하며, 성원권은 상황에 따라 다른 방식들로 재구성되어 연행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한 인' '카톨릭'이라는 신분과 공동체에 대한 성원들의 사회적ㆍ신앙적 기대가 합치되는 지점과 분기되는 지점을 함께 다루면서, 먼저 ‘한인’이라는 범주를 문화적ㆍ선험적으 로 부여된(것처럼 여겨온) 경계들로부터 분리하려고 시도하였다. 한인 디아스포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