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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적 관계를 고려한 해석의 설득력 확보

가. 물음-응답을 통한 관계의 재구성

비평적 에세이가 자기 표현적 글쓰기, 혹은 반성적 글쓰기와 변별되기 위해서 는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설득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대 상 이해를 자기이해로 견인해 올 수 있어야 하며, 대상과 학습자가 각각 소통의 주체로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대상 이해에만 머물거나, 대상을 거치지 않은 자기의 재인에만 머물지 않기 위해서 대상과의 관계를 적절하게 설정할 필 요가 있다.

이 책 속에서 주인공인 헬렌은 처음에는 임신을 한 사실을 숨긴다. (…) 드라 마에서 보면 이런 상황이 일어나는 스토리가 있기도 한다. 근데 나는 10대들이

사고를 친 것은 본 적이 없는 것 같고, (…) 그리고 헬렌에게만 실망하시는 게 아니라 만약 자신의 딸의 남자친구도 믿었었다면 실망감은 커지고 다시는 못 만나게 하실 지도 모른다. 그리고 부모님뿐만 아니라 친척들한테도 따가운 시 선을 받을 것이고 졸지에 문제아라고 낙인시키게 될 수도 있다. (…) 다른 친구 들은 놀러 다니는데 나 혼자는 집에서 아이나 돌보고 있고 정말 짜증날 것 같 다. (…) 그리고 부모님에게 상처나 실망감을 안 주려면 애초에 이런 일이 없는 것이 우선인 것 같다. [이름-F-2]

위 인용문에 드러난 ‘근데 나는 10대들이 사고를 친 것은 본 적이 없는 것 같 고’, ‘애초에 이런 일이 없는 것이 우선’이라는 학습자의 말은, 대상 텍스트를 소 통의 주체로서 인정하지 않는 학습자의 태도를 함의하고 있다. 대상 텍스트가 제기한 물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실상 학습자의 삶과는 무관한 것이며, 실재하지 않는 일이기에, 그 응답 또한 ‘애초에 없는 것이 우선’인 무의미한 것 임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대상 이해를 자기이해로 끌어올 수 없 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이 단계의 핵심적인 과제는 학습자로 하여금 자신이 대 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자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교사는 먼저 자기 우 위적 응답, 대상의 모방적 수용, 상호주도적 관계 생성이라는 대상 해석의 세 가 지 구도를 제시하고, 그러한 관계 구도에 따라 구성되는 의미가 달라질 수 있음 을 설명한다.

이때 학습자들이 문자로 고정된 대상 텍스트를, 손쉽게 소통의 주체로서 설정 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사고 과정을 물음과 응답의 형태로 환원하는 활동을 진행 할 수 있다. 대상과의 소통을 물음-응답의 형태로 환원하는 것은, 지금 자신의 사고가 텍스트에서 유래한 것인지 자신에게서 유래한 것인지, 자신이 현재 텍스 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지 자의적 판단을 내리고 있는지를 스스로 판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이계삼 선생님께서는 사회적 인식이란 논리와 도덕, 그리고 욕망이라는 세 층 위로 구성되어있는데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논리와 도덕이 욕망의 꼭두각시가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욕망의 지배 속에서 산다. 나 또한 교육을 통해 남들보다 성공하겠다는 욕망이 있다. 가끔 지쳐서 그만 두고 싶을 때도 있 었지만 경쟁에서 뒤쳐질까봐 마음을 다졌다. 이계삼 선생님께서 권하시는 ‘농 사’를 지어도 되겠지만 한 번도 내가 ‘농부’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농부’는 먹고 살기도 힘들고 남들에게 그리 존경받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

다. (…)

귀농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작년 같은 반 친구였던 이슬이가 떠올랐다. 이슬이 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었고 도시생활을 힘들어 하다가 결국 자퇴를 하 고 시골로 내려갔다.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사가 되고 싶다던 이슬이는 나에게 참 순수한 아이라는 인상을 줬었다. (…) 그런데 지금 보니 이슬이는 자유롭고 편안 한 삶을 살고 있었고 오히려 내가 각박하고 숨 막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닌 것이다. ④ 자연을 선망하면서도 경쟁이 없는 한적함이 두려운 나는 안타깝게도 이미 욕망에 찌들어져 있다. [변방-F-3]

위 인용문을 대화의 형태로 환원하면 다음과 같다.

① 텍스트 : 나는 논리, 도덕, 욕망 중 어떤 층위의 인식에 지배되고 있는가?

학습자 : 나 또한 교육을 통해 남들보다 성공하겠다는 욕망이 있다.

(→ 텍스트 : 욕망이라는 인식의 층위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아야한다.)

② 학습자 : 나는 왜 그런 삶을 그만두지 못하는가?

학습자 : 경쟁에서 뒤처질까봐 마음을 다졌다.

(→ 텍스트 : 인생에서 타인과의 경쟁은 중요하지 않다.)

③ 텍스트 : 나는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농사’를 짓는 것은 어떠한가?

학습자 : 농부는 먹고 살기 힘들고, 남들에게 존경받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부 정적으로 생각해왔다.

(→ 텍스트 :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야한다.)

④ 학습자 : 이슬이는 자유롭고 편안한 삶을 사는데, 나는 각박하고 숨 막히는 시간 을 보내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학습자 : 이미 욕망에 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 텍스트 : 욕망에 이끌리지 않는 삶을 살아야한다.)

물음-응답 형태로 환원된 대화 구조를 통해 위 인용문의 이야기가 누구의 목 소리인지 쉽게 분간해낼 수 있으며, 텍스트와 학습자가 각각 관계의 주체로서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텍스트의 물음에 학습자가 응답하되, 그러한 응답은 결과적으로 괄호 안에 들어있는 텍스트의 응답을 재현한 것으로 텍스트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음을 명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화 구 조를 통해 텍스트의 물음을 단순히 수용만 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의 물음에 서 이끌어낸 반성적 물음을 스스로 던지고, 학습자의 응답과 텍스트의 응답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조금씩 확인해갈 수 있 다.

따라서 교사는 학습자들이 자신의 사고 과정을 물음과 응답의 형태로 환원한 결과가 Ⅲ. 2. 2)에서 제시한 【표2】의 다섯 가지 양상 중 어디쯤에 해당하는지 를 스스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이때 텍스트의 물음에 대한 자신의 응답이 텍스트의 응답과 상이한 학습자의 경우, 그 차이는 어디에 기인하는지 판단할 수 있도록 하고, 텍스트의 물음에 텍스트가 응답한 것에 그친 학습자의 경우, 그 러한 물음과 응답을 정교화 할 수 있는 물음을 추가적으로 던질 수 있도록 유도 하고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는 활동을 통해 주체적으로 텍스트를 타당화할 수 있 도록 돕는다.

또한 단순히 텍스트의 물음과 응답을 수용하는 데서 더 나아가 스스로 능동적 인 물음을 제기하도록 함으로써 주체적인 의미 구성을 촉진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다음 항에서 논하도록 하겠다.

나. 관계 설정에 내재된 전제 파악

텍스트와의 관계 설정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텍스트와 소통적 관계로 나아가 는 것이며, 소통적 관계의 핵심은 텍스트에 대등한 주체로서 물음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설정한 관계 구도를 파악하 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더라도, 학습자 스스로 적절한 질문을 찾 아 텍스트에 던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를 위해, 교사는 텍스트와의 관계 설 정에 내재된 ‘전제’를 파악하는 활동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전제 (presuppsition)’란 일반적으로 ‘어떤 행동, 이론, 표현, 발화 등이 타당한 의미 를 가지기 위하여 배경이 되는 가정’이란 뜻19)으로 쓰이는데, 비평적 에세이 쓰 기 과정에서의 전제 파악이란 자신이 텍스트의 목소리 중 무엇에 귀를 기울였는 지를 이해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공유하고 있는 상호 지식이나 믿음이 무엇인가 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이 되면 술래가 되지 않기 위해 친구를 밀어버리고 내가 앉아 야 하는 그 의자놀이.’ (…)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 해 내가 술래가 되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를 밀어내고 그 의자에 앉기 위해 또 게임을 할 것이다.

19) 임천택, 「‘전제’의 기능과 국어 교육적 의미」, 『새국어교육』 제66호, 한국국어교육학회, 2003, 99면.

얼마 전에도 친구와 이제 앞으로 정말 공부하자 서로서로 도와가면서 열심 히 하자는 각오를 하고 시험 점수가 나왔을 때 낮은 사람이 밥을 사기로 하 는 내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지든 이기든 그냥 서로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만족해 친구끼리 밥도 살 수 있는 건데 뭐’라는 생각을 가지 고 내기를 시작했다. 근데 막상 점수 내기를 시작하고 친구가 옆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봤을 때 내가 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에서 공부를 하 고나서 친구가 했냐고 물어보면 안 했다고 거짓말 친 적도 있었다. (…) 그래 서 저런 점을 보고 입으로는 함께 살자 같이 살자 하면서도 속으로는 술래가 되는 걸 싫어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나 싶다. 의자놀이에 다들 익숙해진 모습 에 가슴 한 구석이 짠했고, 내가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해야 하는 건 아닐 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의자놀이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 만약 내가 의자놀이를 계속 해야 한다면 나는 약자의 연약한 의자를 뺏는 것이 아닌 쓸 데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그들의 의자부터 먼저 없애버리고 싶다. 앞으 로는 내가 살면서 꼭 의자놀이의 의미를 생각하며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다. [의자-F-2]

위 인용문은 의자놀이로 상징된 우리의 사회적 맥락이 부당하다는 텍스트의 의미를 모방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사례이다. 밑줄 친 부분은 학습자가 이를 읽 고 구성한 결론인데, 그러한 결론이 의미하고 있는 바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그들’로 표현되어 있는 ‘기업인이나 기득권층이 부당하다’는 내용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부당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 거는, ‘그들’이 의자놀이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며, 의자놀이가 부당하다 는 판단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의자놀이가 인간이 자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빼앗기 때문’이라는 전제가 대상 텍스트와 학습자 사이에 공유되어 있어 야 한다. 학습자가 이러한 전제를 파악하고 나면, ‘그들의 의자를 뺏는 것이 진 정 나머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안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누군가의 의자를 뺏거나 뺏기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행복해질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 가?’와 같이 다시 텍스트에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즉, 전제를 파악함으로써 단순 히 의자놀이를 부추기는 그들이 나쁘다거나, 혹은 의자를 뺏어서는 안 된다는 정도의 텍스트의 의견을 수용하는 데서 더 나아가, 텍스트에 다시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하는 힘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Ⅲ. 2. 2) 나에서 살펴보았던 [이름 -F-6]의 경우에도 표면적으로는 미혼모의 문제이고, 가치의 차원에서는 ‘책임’의 문제였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전제가 ‘행복’이라는 것을 학습자가 파악했기 때 문에 주체적인 질문을 통해 다양한 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해볼 수 있었던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