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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적 관계 중심의 대상 해석

지향적 인식을 통해 이해된 대상이 자기이해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대상 이해 를 자기 나름대로 설명하려는 노력을 통해 대상과 거리를 좁힐 수 있어야 한다.

즉, 학습자의 지평과 대상 텍스트의 지평에 가로놓여 있는 거리를 메우는 작 업46)을 ‘대상 해석’이라고 할 때, 대상 해석은 대상 텍스트와 관계를 설정하여 대상 이해를 적극적으로 견인해오는 단계로서 기능한다.

해석학(Hermeneutics)의 어원이 헤르메스(Hermes) 신과 연결되어 있으며, 헤르메스가 인간의 이해 능력을 초월해 있는 것을 인간의 지성이 파악할 수 있 45) 밑줄은 연구자. 이하에 제시된 학습자의 면담, 반응 일지, 비평적 에세이 인용문의 밑줄

은 모두 연구자가 강조를 위해 표시한 것임을 밝힌다.

46) Richard E. Palmer, 앞의 책, 396면.

도록 전환시켜 주는 기능과 관련되어 있다47)는 것은 해석의 관계적이고 매개적 인 성격을 함의한다. 따라서 대상 해석은 인식된 대상을 자신에게로 이끌어 오 는 대상과의 관계 설정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의 대상과 주체의 관계는 물음과 응답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대화의 구도를 지닌다는 점에서 대상 해석의 양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평적 에세이 쓰기는 해석학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해석학적 경험은 나-너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의 대화이고, 해석학적 순 환구조를 지닌 것으로서 질문과 대답의 구조 속에서 가장 잘 반영48)되기 때문이 다. 즉, 학습자는 비평적 에세이 쓰기 과정에서 대상 텍스트와 물음과 응답을 주 고받는 대화적 관계를 기반으로 하여 대상 텍스트를 설명하려는 노력을 통해 자 기이해를 실현할 수 있게 된다.

대상 텍스트와 학습자의 대화적 관계에 있어서의 ‘물음’은 성찰적 사고를 위한 비평적 에세이 쓰기의 핵심 기제라고 할 수 있다. 베르트하이머(Wertheimer)의

“사고의 기능은 단순히 당면한 문제를 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물음 들을 찾아내고 직시하며 파고드는 데 있다. 위대한 발견에서 종종 가장 중요한 것은 특정 물음을 찾아내는 일이다.”49)라는 말은 성찰적 사고에서 물음의 중요 성을 지적해주고 있다.

그러나 물음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을 통해 발견된 물음을 적극적으로 자신에게로 견인해오는 일이다. 성찰적 사고는 자신이 마주한 대상이 무엇이든 지 간에 숙고할 수 있는 태도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같은 대상을 접하고서도 누 군가는 그냥 지나치는 반면, 누군가는 깊이 있는 사고를 통해 의미를 구성해내 는 것은 그러한 물음이 ‘자신의 것’으로서 기능하는가의 차이에 있다. 예를 들어 길을 걷다 누군가 어린 강아지를 학대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 아무런 정서의 움 직임 없이 ‘사람이 죄 없는 강아지를 학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닌가?’라는 물음이 제기될 수도 있겠으나, 이때 요구되는 사고는 논리적 사고로서 비판적, 혹은 추론적인 과정으로도 문제 해결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얻어진 답이 성찰 적 사고의 목적인 자기이해에까지 이어지기는 어렵다. 따라서 ‘사람’이라는 행위 주체의 동질성과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문제의식을 매개로 생명을 다루는 태도

47) 위의 책, 37-41면.

48) 김석수, 「가다머에 있어서 ‘이해’의 문제」, 『철학논집』 제8집, 서강대학교 문과대학 철학 과, 1997, 131면.

49) P. K. Arlin, 최호영 역, 「지혜, 문제 발견의 기술」, Robert J. Sternberg et al.(2010), 앞의 책, 335면.

에 관해 그러한 물음을 자신에게로 이끌어 오는 과정을 거쳐야만, 이때의 물음 이 해결을 요하는 진정한 자신의 ‘문제’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즉, 지향적 인식 을 통해 대상을 이해한 후, 대상과 대화적 관계를 설정하여 물음을 주고받는 과 정을 통해 대상의 해석이 가능해진다.

물음, 즉 문제 제기는 해석학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인지심리학적으로도 성 찰적 사고의 필수 요건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사고란 합리적으로

‘문제’를 규정하고 거기에 대처해 나가는 유목적적이며 의도적인 정신 활동50)으 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성찰적 사고가 주체의 자기이해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 서 보면 자기이해라는 ‘목표 상태’와 자기이해에 이르지 못한 ‘현재 상태’와의 간극의 해결을 위해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것이 바로 ‘문제’이다.51) 성찰적 사고 과정에서 주체가 대상을 인식하고 자신의 의미 지평을 열어보였다면, 그러한 인 식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힘이 바로 ‘문제’에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성찰적 사고의 대상이 되는 세계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왔던 것처럼 정 답이 있는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문제 자체 가 아예 주어져 있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인지심리학자인 킹과 키치너 (King & Kitchener)의 경우,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와 성찰적 사고 (reflective thinking)의 차이를 각각의 사고가 담당하는 문제의 성격 차이로 구 분한다.

우선 비판적 사고는 논리적, 혹은 가설 연역적 방법과 밀접한 것처럼 보인다.

비판적 사고는 권위에 의한 사고로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반적 원리나 논 리학적 지식을 사용한다. 그러나 성찰적 사고의 경우 경험 사태에서 사고를 일 으키는 자극으로서 진정한 문제-사고의 과정을 지속시켜줄 만큼의 의혹, 놀람 을 유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전자는 해답이 항상 결정되어 있지만, 후자의 문제 해결은 해결 가능성이 약속되어 있지 않다. 전자는 논리학적인 기준에 근

50) 성일제, 『사고 교육의 이론과 실제』, 배영사, 1989, 54면.

51) 듀이 또한 성찰적 사고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모든 성찰적 사고(reflective thought)의 근간에는 다음의 두 하위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첫째, 성찰적 사고는 우 리 마음에 어떤 당혹, 주저, 의심의 상태를 형성하는 어떤 문제에서 기원한다. 둘째, 성찰 적 사고는 탐구 행위를 수반하는데 이는 제기된 문제 상황에서 의심, 당혹, 주저를 없애기 위하여 자료 및 증거를 탐색하여 새로운 지식(가정)에 도달하는 것이다. (John, Dewey, 엄 태동 편저, 『존 듀이의 경험과 교육』, 원미사, 2001, 91-97면 참조.)

이 때 듀이가 언급한 ‘성찰적 사고’는 본고의 ‘성찰적 사고’보다는 오히려 과학적 사고에 가깝기 때문에, 듀이가 제시한 ‘문제’ 또한 본고에서 말하는 정답도 없고 문제 자체도 발 견되어야 하는 삶의 제 국면에서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거하여 그 기준과 주장의 차이를 비교하는 과정이기에, 사고 과정을 지속시켜줄 진정한 문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둘째로, 전자의 문제와 후자의 문제는 사고가 초점을 맞추는 문제의 구조가 다르다. 비판적 사고는 잘 구조화된 문제로서 확실한 하나의 정답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제 풀이자에게 주어진 과제는 정답을 결정하는 과정을 찾고 계 산하고, 그러한 해결 방안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찰적 사고는 높은 정도 의 확실성을 가지고 기술될 수 없고, 해결 방안을 확신할 수 없는 문제로서 전 문가들조차 해답에 이견을 보이는 구조화되지 못한 문제들이다. 즉 전자는 하나 의 논리를 갖는 문제이며, 후자는 다-논리를 가지는 문제이다.52)

킹과 키치너의 연구는 성찰적 사고의 중요한 두 가지 지점을 지적하고 있다.

첫 번째는 성찰적 사고는 비판적 사고와는 달리, 외부적 권위나 객관적으로 주 어진 대상에서부터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주체의 의혹, 놀람 등을 동반한 주관 적(主觀的)인 인식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는 앞 항에서 살핀, 정서를 동 반한 지향적 인식을 통한 대상 이해의 측면을 함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비판적 사고는 구조화된 문제가 주어지는 반면, 성찰적 사고는 구 조화되지 못한 문제들을 다루기 때문에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설정하는 과정 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자신에게 다리가 있음을 전혀 자각 하며 지내지 못하다가 다리가 아프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문제를 발견 했을 때에야 멈춰 서서 다리를 살펴보게 되듯, 문제 발견은 삶의 여러 국면을 멈춰 서서 살피게 만드는 중요한 기제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접하는 삶의 맥락 에서 구조화된 문제는 찾아보기 어려우며53), 따라서 성찰적 사고에서 중요한 것 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 발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돌 이전의 아이 들이 아프거나, 배고프거나, 졸린 기본적 욕구가 결핍되지 않는 이상 울거나 괴

52) P. M. King & K. S. Kitchener, 앞의 책, 8-11면.

53) 이와 관련하여 게젤스(Getzeles)의 논의를 참고해 볼 수 있다.

“게젤스는 문제를 제1유형, 제2유형, 그리고 제3유형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 제1유형 문 제는 정답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그 해결 방식이 본인뿐만 아니라 이미 다른 사람들 에게도 알려져 있는 문제이다. 학교 학습 과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러한 유형의 문제는 기억과 파지를 사고의 중요한 능력 요소로 간주한다. 제2유형 문제는 제1유형처럼 다른 사람에 의해서 제시되기는 하지만 표준화된 문제 해결 방식이 본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문제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고 능력 요소는 기억, 파지뿐만 아니라 분석 능력과 추론 능력 이다. 제3유형의 문제는 문제 자체가 제시되지 않은 것으로, 발견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또한 그 문제의 해결 방식 역시 아직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중 요한 사고 능력 요소는 상상력, 발견력, 통찰력이다.” (성일제, 앞의 책, 60면.)

성찰적 사고가 요구되는 삶의 맥락들은 대부분 제3유형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