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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적 사고를 위한 쓰기 교육의 전제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학습자의 자아실현, 혹은 정체성 형성에서 찾을 수 있다. 개인의 잠재적 가능성으로서의 자아, 혹은 자기에 대한 어떤 중심적인 관 점으로서의 정체성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으로서, 삶 속에서 계속적으로 구성 되어 가야 하는 것이다. 이때 자아, 혹은 정체성이 구성되는 방향성의 설계는 학 습자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무엇보다 학습자 개인의 사고와 밀접한 연관 을 갖는다고 할 때, 교육의 목적은 필연적으로 사고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아와 정체성은 개개인의 경험을 근거로 하여 실현되는데, 지금까지의 나와 는 다른 나, 질적으로 변화된 나를 그 지향점으로 삼으며, 자아 성장의 이러한 미래 지향성은 개개인의 생활 세계를 기반으로 삼아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성찰 적 사고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성찰적 사고의 이러한 미래 지향성으로 말미암아 성찰적 사고는 인간의 다양한 사고 능력 중 가장 고차적인 성격을 가 지며, 학습자의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기제로서 기능한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거기-있음(현존재)은 일상적으로 자기 자신을 망각한 채 자 기 자신이 신경 쏟고 있는 어떤 구체적 일이나 사물에 얽매여 살아가며 이것을 비본래적 존재 양식이라 하며 ‘빠져 있음’이라 부른다. 이것은 우리가 자기 자신 으로 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부터 등을 돌린 채 일상의 세계(존재자) 속으로 빠져 든다1)는 것을 의미하는데, 성찰적 사고는 단순히 세계 속에 함몰되어 있을 위험 으로부터 학습자를 꺼내어, 진정한 자아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따라서 교 육의 궁극적 목적은 성찰적 사고를 지향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찰적 사고의 가장 큰 특징은 이처럼 좋은 삶을 지향하는 일종의 삶의 기술 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어교육 현장에서는 성찰적 사고를 교육적 처치를 통해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기능하는 것으로써 인식하고 있 다. 다음은 2011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 중 성찰적 사고와 관련하여 기술된 부분 이다.

1) 이기상, 앞의 책, 204-206면.

중학교 / 국어 / 2. 내용의 영역과 기준 / 나. 학년군별 세부내용 / 중 1~3학 년군 내용성취기준

- 쓰기 -

(7)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계획하는 글을 쓴다.

글쓰기에는 자신의 체험에 대해 거리 두기를 통해서 반성적으로 성찰하게 하 고, 건강한 자아를 형성할 수 있게 해 주는 힘이 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자 신의 삶에 대해 자신감을 기를 수 있으며, 다른 사람과 협력하며 생활할 수 있 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자서전 쓰기와 같은 활동을 통해서 이제까지 살아 온 과거의 경험을 현재의 시간 속으로 편입시켜 성찰의 대상으로 삼고, 앞으로 의 삶을 진지하게 계획해 보는 쓰기 경험을 갖도록 지도한다. 자신의 삶을 성 찰하고 계획하는 글쓰기를 지도할 때는 자서전의 구성 및 표현상의 특징 등을 지도한 다음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 속에서 의미 있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쓸 내용을 정리해 보고, 여러 가지 효과적인 표현 방법을 활용하여 직접 글로 써 보도록 한다2)

고등학교 / 국어과 / 화법과 작문 / 2. 내용의 영역과 기준 / 세부 내용 - 자기표현과 사회적 상호 작용을 위한 작문 -

(30) 생활 속의 체험이나 깨달음을 글로 씀으로써 삶의 체험을 기록하고 자신 의 삶을 성찰하는 습관을 기른다.

일상의 삶을 성찰해 보고 여기에서 얻은 깨달음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과 태 도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 일상의 삶을 섬세하게 관찰함으로써 의미를 발견하고 여기에서 발견한 의미를 기록해 두고 작품으로 산출하는 습관 과 태도를 가지다 보면 자신의 삶에 대해 좀 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감상 문이나 수필, 회고문 형태의 글을 써 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관조해 보고 긍정적 정서를 기르며 이를 다른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공동체의 글쓰기 문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3)

‘정보 전달을 위한 쓰기’ 영역의 경우 ‘정보의 효용성, 조직의 체계성, 표현의 적절성, 쓰기 윤리’를, ‘설득을 위한 글쓰기’ 영역의 경우 ‘논거의 타당성, 조직 의 효과성, 표현의 적절성’ 등을 그 내용 요소로 명확히 제시한 것과는 달리, 성 찰적 사고를 위한 글쓰기의 경우 ‘일상의 삶을 섬세하게 관찰함으로써 의미를 발견’한다거나, ‘여러가지 효과적인 표현 방법을 활용하여 직접 글로 써 보는’

것 정도로, 다른 종류의 글쓰기에 비해 실체가 없는 것으로서 뭉뚱그려져 제시

2) 교육과학기술부, 『(고시 제 2012-14호에 따른) 고등학교 교육과정 【별책5】』, 2012, 53-54 면. 밑줄은 연구자.

3) 위의 책, 109면. 밑줄은 연구자.

되어 있다. 이것이 성찰적 사고를 통한, 혹은 성찰적 사고를 위한 글쓰기를 학습 자 스스로 알아서 수행할 수 있는 간단한 것으로서 제시한 것이든, 그 반대로 일종의 영감이나 재능에 기반하여 수행할 수 있는 고차적인 것으로서 제시한 것 이든, 성찰적 사고에서 작문 교육의 역할을 축소시켜 버린 것이 사실이다. 그러 나 구체적인 글쓰기의 방법을 제시해줄 수 없는 글쓰기 교육이라면 그것은 교육 이 아니라 지시에 불과할 것이다. 글쓰기 교육의 목표는 실현 가능한 것으로서 제시되어야 하며, 교사와 학습자 모두 성찰적 사고 능력을 교육을 통해 누구나 신장시킬 수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선행되어야 한다.

더불어 2007 개정 교육과정에서 ‘자기 성찰을 위한 글쓰기’의 영역이 설정되 어 있던 것과는 달리, 2011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성찰적 사고를 ‘자기표현’ 글 쓰기의 영역으로 제한하여 버렸다. 이것은 화법 교과와의 밀접한 결합을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성찰적 사고의 영역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성찰적 사고를 위해 자신의 진솔성과 진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중요하지 만, 성찰적 사고를 위한 글쓰기는 단순히 자기표현에서만 끝나서는 안 되기 때 문이다. ‘나는 슬프다’, 혹은 ‘나는 누구다’와 같은 ‘자기표현’만을 강조한 글쓰기 는 결과적으로 자기표현이 아니라 ‘표출’적 글쓰기에 머무를 가능성이 있다. 모 든 자기 표현적 글쓰기가 성찰적 사고를 담보하는 것이 아니기에, 대상의 의미 와 구성과정, 그 속에서의 ‘자아 성장’을 강조하는 쓰기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 다.

이때 자아의 성장이란 과거의 자아와 현재의 자아가 차이를 드러내고 그 차이 가 긍정적인 변화를 뜻하는 것을 말한다. 이 자아의 성장이 진정한 성장인지, 아 니면 퇴보인지 그 방향의 타당성 여부는 보편적인 기준에 의해 확인될 수 있다.

이러한 보편적 기준은 타자, 그리고 세계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자아의 성장 을 지향하는 글쓰기라면 온전히 자아 중심적인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소통의 차 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성찰적 사고를 위한 글쓰기 교육은 내면에 침 잠하는 글쓰기를 지향해서는 안 될 것이며, 현재의 나보다 한 단계 더 고양된 나를 형성하기 위해서, 소통의 관점을 고려해야 한다.

나아가 학습자가 더 나은 삶, 더 나은 나를 구성하기 위해 자신의 사고를 타 인의 것으로서 대체해 버리는 것은 성찰적 사고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자신 의 사유 과정과 결정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하며, 이때 단순 히 표준화된 교육 내용과 교육 과정을 따르기보다는, 학습자 개개인의 사고 내

용과 과정을 중시하는 개별화된 쓰기 과정을 통해 그러한 결과를 내면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성찰적 사고, 자아, 정체성은 결과를 산출하고 거기에서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제 국면에서 계속적으로 진행되며 지속적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으로, 성찰 적 사고 형성을 위한 쓰기 교육은 쓰기의 결과보다는 그러한 과정을 가르치는 교육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