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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사용하지 않고 쓰러져 있는 나무를 사용하며 항상 자연을 먼저 생각하고 자 연을 위해 행동한다. (…) 나의 아버지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서 나오는 체로키 부족처럼 행동하신다. 아빠가 건축가이신데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한에서 설계를 하신다. (…) 고기를 먹을 때에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드시 고 되도록 드시지 않는다. 일을 나갈 때는 어쩔 수 없이 자가용을 이용하시지만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고 여름이나 겨울에 함부로 냉 난방기를 사용하지 않으신다. (…) “어떤 행동을 할 때 반드시 결과를 생각하고 나아지는 것을 생각 하고 행동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 같단다. 단지 자연이 좋고 누군가 나한테 피해 를 주면 나도 싫듯이 자연한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불편하더라도 이렇게 사는 거야. (…)”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내영-F-3]

제시된 인용문은 인디언 세계를 묘사한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라는 소 설을 바탕으로 쓰인 비평적 에세이 텍스트이다. 위 인용문의 경우 고기를 먹지 않거나, 집을 지을 때 쓰러져 있는 나무를 사용하는 등의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행위’를 중심으로 대상 텍스트를 인식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 한 행위를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경험을 통합하고 있음에도 불구 하고 이것이 도약적인 의미 구성을 통한 학습자의 ‘새로운’ 자기이해로까지 이어 졌다고 보이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로 풀이된다. 첫째는, 특징적 요소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비평적 에세이를 쓸 경우, 대상과의 접점이 좁기 때문에 확산적으로 자아를 투영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위 인용문의 경우 이것이 결여되 었기 때문이다. 인식된 요소가 자신의 일관된 삶의 태도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쓰기의 과정에서 그러한 요소가 가치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위 인용문의 경우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고기를 먹지 않는 등 체로키족과 아빠와의 가시적 이고 표면적인 행위의 공통점에 주목하여 자신의 경험을 통합할 뿐, ‘생명 존 중’, 혹은 ‘공존’이라는 가치화의 과정이 확인되지 않는다. 그것은 쓰기 과정에서 인디언들의 행위가 어떤 점에서 자연과 동화되어 사는 삶이라고 느껴졌는지, 그 러한 삶의 방식이 ‘좋은 삶’에 어떻게 기여하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표면 화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자신이 왜 그러한 요소에 주목하게 되었는지를 텍스트에 드러내지 않은 것을 두 번째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요소 중심 인식의 경우 텍스트와의 접점이 좁기 때문에 그러한 접점을 통해 텍스트를 자신에게로 견인해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위 인용문의 학습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 는 텍스트의 물음에 대해 ‘자연과 동화되어 조화롭게 사는 것’이라 응답하고 있

지만, 수많은 요소 중 그러한 물음과 응답을 중심으로 텍스트를 인식한 이유를 드러내지 않는다. 따라서 그러한 응답이 대상 텍스트를 지향적으로 인식하는 과 정에서 도출된 것인지, 단순히 대상 텍스트에 표면화된 명제를 되풀이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는 명시적으로 그 이유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기보다 는, 학습자가 글쓰기 과정에서 자신의 정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대상 텍스트와의 물음과 응답이 ‘자신의 것’으로 기능하기 위해 서는 자신이 대상에 감응한 지점에서부터 쓰기가 시작되어야 하고, 대상에 대한 감응은 정서의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위 글의 경우 인디언들의 ‘되도록 고 기를 먹지 않는’ 것이나, ‘집을 지을 때에도 쓰러져 있는 나무를 사용’하는 삶의 방식이 자신에게 어떻게 느껴졌는지,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에 대한 내용은 소거된 채 인지적으로 사고를 진행해가고 있어 텍스트의 물음을 자기에게로 견 인해오는 과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더불어, ‘자연과 동화되어 조화롭게 사는 것 은 무엇인가요?’라는 물음이 쓰기 텍스트 문면에 드러나 있기는 하지만, 이는 텍 스트와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지향적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 니라 텍스트에 주어진 내용을 언급하기 위한 수사적인 것에 가깝다. 따라서 요 소 중심의 대상 인식의 경우, 비평적 에세이 쓰기 과정에서 표면적 연결이 아니 라 자신의 것으로 견인해오는 확산된 가치화 과정이 중시되며, 이를 위해 자신 의 정서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편, 텍스트의 특징적 요소 중 인물을 중심으로 인식하는 경우 해당 인물에 대한 공감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그러한 정서 자체에만 머물게 되 면 오히려 새로운 자기이해로 이어지기 어렵다.

세상에는 선천적으로 뛰어난 사람도 또 부족한 사람도 없지만 세상이 만들어낸 기준에 따라 누구는 태어나자마자 차별을 받고 누구는 환영을 받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나도 한때 나의 담임선생님에 의해 눈에 띄는 차별을 받던 시기가 있었다.

(…) 항상 모든 면에서 나는 선생님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또 배려의 대상 도 아니었다. 나와 내 친구가 같이 인사를 드릴 때면 나는 무시하시고 친구에게 만 안부를 물어보시며 인사에 대해 응답해주셨다. 급식을 먹을 때면 항상 나만 다른 아이들에 비해 급식을 덜 주시고 부족하다며 더 먹지 못하게 하시고는 다 른 아이들에게 그 급식을 나눠주셨다. 또 다 같이 잘못을 해도 나만 유독 많이 혼내시는 경우가 많았다. (…)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억울하고 부당한 일이지만 그 때 당시에는 내가 너무

어렸고 또 혹시나 그렇게 했을 경우 그 후에 있을 뒷감당이 너무나 두려운 마음 에 반박할 마음조차 갖지 못했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과 나의 경험을 연관시키는 활동을 하니 인종차별을 받던 흑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활동을 하기가 훨씬 더 수월했다. 흑인들도 마치 눈에 띄는 차별을 받던 나처럼 그 차별의 부당함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그 부당함 속에서 얼른 헤어 나오고 싶지만 차별들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인 식되어 이미 딱딱하게 굳어질 대로 굳어져버린 사회 속에서는 그럴 만한 용기조 차 갖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너무나 안타깝고 슬펐을 것이다. 내가 실질적으로 잘못한 것은 없지만 가해자들의 뇌리 속에 이미 박힌 선입견에 따라 마치 내가 모든 것을 다 잘못한 것처럼 꾸며지는 사회에 대해서도 엄청난 싫증을 느꼈을 (…)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고 사회가 어떻게 그렇게까지 진행되었 나 싶은 생각이 든다. [앵무-F-3]

위 인용문의 학습자 또한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평등’이라는 가치나 그것이 빚어지는 맥락에 대한 고민 없이 ‘차별받는 흑인’이라는 특징적 인물에 초점을 두고 인식한 것을 볼 수 있다. 쓰기 과정에서 차별 문제에 주목하여 자신이 선 생님에 의해 차별받던 시기의 경험을 떠올렸으나, 이러한 쓰기를 통해 안타깝고, 슬프고, 실망스러운 인물의 정서 자체의 이해에 머물 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다. 그러한 정서 상태가 환기하는 것이 어떤 가치의 부재(不在), 혹은 과잉(過剩) 에 대한 반응인가를 평가하여, 심리적 비평형의 상태를 해소하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기존 자신을 재인한 것에 불과하여, 성찰적 사고의 수행 양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성찰적 사고를 위한 비평적 에세이 쓰기에서 요구되는 것은 자신의 정서에 민 감하게 반응하는 것이지만, 그러한 정서를 통해 자신에게 없는 가치를 찾고 이 를 지향적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를 동반하지 않는다면 지평의 확대를 경험 할 수 없다. 위 학습자의 경우 차별이라는 요소에서 비롯된 자기 정서의 확인을 통해 정의, 용기, 혹은 자기 신뢰 등 자신에게 없는 가치를 탐색하고, 텍스트에 서 제공하는 ‘의미의 화살표’를 따라가며 그것이 자신의 삶에서 빚어낼 수 있는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요소 중심으로 대상을 인식하고 경험을 통합하는 학습자들의 경우 대 상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자기 우위적인 면모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대상과의 접점이 좁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인식을 깊이 있게 하지 못하는 것에 서 비롯되는데, 이는 뒤의 ‘2.2) 자기 우위적 대화 구조의 형성’에서 더 논의하

기로 한다.

결국, 요소 중심 인식의 경우, 성찰적 사고는 자신의 정서를 확인하고, 대상에 대한 지향적 인식을 확인하되, 이를 확산적으로 가치화하여 자신의 미래적 가능 성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수적이라 하겠다.

나. 맥락 중심의 전체적 인식

맥락이란, 사전적으로는 ‘사물 따위가 서로 이어져 있는 관계나 연관’을 말하 는 것으로, 학자에 따라 다양하게 논의되지만, 대표적으로 할리데이와 하산 (Halliday & Hasan)의 논의를 따를 수 있다. 이들은 맥락을 크게 ‘언어 맥락’과

‘언어 외적 맥락’으로 구분하고, 언어 맥락을 ‘텍스트 내 맥락(intratextual context)’과 ‘텍스트 간 맥락(intertextual context)’으로, 언어 외적 맥락을 ‘상 황 맥락(context of situation)’과 ‘문화 맥락(context of culture)’으로 세분하 였다.13) 본고에서의 맥락이란 성찰적 사고의 실제적 인식 대상이 될 수 있는

‘내용’ 의 범주에 초점을 둔 것으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상황이 나 역사적 배경으로 한정된다. 이는 할리데이와 하산의 ‘문화 맥락’에 가까운 개 념이며, 2007 교육과정에서의 ‘사회 ‧ 문화적 맥락’과도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14) 가령 전후 소설을 읽고 분단된 역사적 상황을 인식하거나, 교육과 관련된 비평 적 텍스트를 읽고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그러한 예이다.

사회 ‧ 문화적 맥락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문제의식의 초점을 맞추 는 것은 그런 사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안 에서 자신이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기에 구체적인 자 기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학습자들은 대체로 소설이나 비평적 텍스트를 대상 텍스트로 삼았을 때 맥락 에 인식의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았으며, 특히 맥락이 지닌 모순점이나 문제점

13) M. A. K. Halliday & R. Hasan, Language, context, and text, Oxford : Oxford University Press, 1989, 44-49면.

14) 단, 2007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사회‧문화적 맥락을 ‘담화와 글의 수용, 생산 활동에 간접 적으로 작용하는 맥락으로 역사적‧사회적 상황, 이데올로기, 공동체의 가치‧신념’으로 정의 하는데, ‘공동체의 가치‧신념’의 경우 다음 절에서 논하고자 하는 ‘주체가 추구하는 핵심적 가치’에 종속되는 개념이므로 이를 제외한 나머지가 맥락 중심의 인식 대상이 된다. (교육 인적자원부, 『(고시 제 2007-79호에 따른) 고등학교 교육과정 해설 Ⅱ』, 2007, 13면 참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