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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적 사고를 위한 비평적 에세이 쓰기의 특징

앞서 밝혔듯 비평적 에세이가 ‘대상을 통한 자기이해’를 실현할 수 있는 장르 적 특성을 지닌다면, ‘대상 이해’를 ‘자기이해’로 능동적으로 매개하는 활동이 바

20) 박영민(2004), 앞의 글, 35면.

21) 실제로 현재 고등학교에서 활용되고 있는 ‘화법과 작문’ 교과서 3종을 살펴본 결과, 2종 의 경우, 비평문 쓰기를 ‘설득을 위한 글쓰기’ 단원에서 다루어 ‘대상에 대한 평가’와 ‘객 관적이고 타당한 근거 제시’를 주요 교수 ‧ 학습 내용으로 선정하고 있었으며(박영목 외, 앞 의 책 ; 송기한 외, 『(고등학교) 화법과 작문Ⅱ』, 교학사, 2011), 1종만 ‘성찰을 위한 화법 과 작문’ 단원에서 다루고 있었으나(이삼형 외, 『(고등학교) 화법과 작문Ⅱ』, 지학사, 2011), 교수 ‧ 학습 내용으로서는 ‘독창적인 견해를 제시하되 그 견해에 대해 납득할 만한 근거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여 근본적으로는 설득적 요소를 강조하고 있음을 확 인할 수 있었다.

로 ‘쓰기’이다. 쓰기는 주체의 내면에 모호하게 존재했던 의미를 구체적으로 드 러냄으로써 스스로 이를 직시할 수 있는 공간을 생성하는 표현 활동이다. 따라 서 비평적 에세이 쓰기를 통한 자기 의미 지평의 확인은 주체가 지평의 확대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것은 단순한 표출이 아니라 표현의 과정이기에 어렴풋하게 감지(感知)되었던 대상의 의미에 질서를 부여하는 선택과 재구성의 과정을 거치며, 자기와 맺는 관련 속에서 새롭게 구성된 의미를 드러냄으로써 비로소 완결되기 때문에 자기이해의 자리를 마련하게 된다. 따라서 비평적 에세 이 쓰기는 필연적으로 대상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자기이해와 연결 지어 통합적 으로 서술된다. 객체로 존재했던 대상 텍스트의 의미를 자기와 연관 지어 의미 화 함으로써 대상 이해를 자기이해로 견인해오는 것이 비평적 에세이 쓰기인 것 이다.

독자 반응 비평 이론가인 볼프강 이저(Wolfgang Iser)에 따르면 텍스트 내부 에는 불확정적 의미가 존재하여 독자로 하여금 자기만의 해석을 창조하도록 허 락하거나 유도하기까지 하는 일종의 ‘틈새(gaps)’가 존재하며, 이러한 틈새를 채 우는 일은 독자의 몫이다.22) 이때의 독자, 다시 말해 비평적 에세이 쓰기에서의 필자가 읽은 텍스트의 틈새를 메우는 것은 필자 자신의 지평에 의해서 가능하며, 필자의 지평은 자신의 이러저러한 경험에 의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비평적 에세 이 쓰기에서는 필연적으로 필자의 텍스트 경험과 과거에 보고, 듣고, 행했던 실제 경험들이 통합되어 제시된다. 특히 비평적 에세이의 필자 중심적 속성으로 인해 필 자는 텍스트를 이해하고 해석하여 이를 글로 쓰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경 험을 활용하여 독서 텍스트의 ‘틈새’를 메워나가게 된다. 이때 텍스트 읽기의 과정 또한 일종의 경험으로서 작용하는 것이며, 비평적 에세이 쓰기는 이러한 텍스트 경험의 틈새를 실제 경험으로 메워 하나로 통합하는 의미 구성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쓰기 대상을 바라보는 필자의 인식이 질적으로 새롭게 변화되고 발전하는 것 은, 타 주체와의 갈등 관계를 ‘승화’로 극복하거나, 타 주체를 수용하는 등 타 주체와의 관계 속에서 가능하다.23) 비평적 에세이 쓰기 과정에서 텍스트 경험과 실제 경험이 서로 일종의 대상으로서의 타 주체의 역할을 수행하여 일종의 도약

22) Lois Tyson, Critical theory today, 윤동구 역, 『비평이론의 모든 것』, 앨피, 2012, 372-373면.

23) 전제응, 앞의 글, 22-42면 참조.

적 의미의 구성을 가능하게 해주며, 이러한 과정은 성찰적 사고의 구성 작용과 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개별적으로 흩어져 존재하는 학습자의 단편적, 파편적 경 험들이 텍스트의 구심력에 의해 새롭게 재구성되어 가치 있는 의미로 조직됨으 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텍스트의 의미를 확산적으로 실현24)할 수 있 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평적 에세이 쓰기는 분산되어 있는 각각의 경험들을 내적 맥락에 근거하여 총체적으로 연관시킴으로서 도약적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 이며, 주체가 대상과의 만남에서 자기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되어준다.

한편, 딜타이는 삶이 의미 있는 통일성을 지향하면서 일정한 형태를 이루며 펼쳐진다고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자기 자신의 역사에서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성찰의 방식25)이라고 논의한 바 있다. 한 폭의 그림에서도 마치 개개의 색 채들을 늘어놓은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지만, 화폭의 통일성을 규정하는 회화적인 모티프를 통해 그 의미가 규정되듯, 삶의 모든 부분들은 전 체와 관련된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있으며, 따라서 각 부분의 의미가 전체에 의 해 규정되듯이 각 부분 역시 전체에 대하여 고유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 다. 따라서 성찰적 사고를 위한 비평적 에세이 쓰기란 학습자들이 대상 이해의 통일성에 비추어 개별 경험을 의미화하고, 또 이렇게 구성된 의미를 통해 삶 전 체를 올바르게 정향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독특한 있음을 사물의 자체 동일성과 구별 지어 ‘자기 동 일성’이라고 하면서, ‘자기’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찾아야 하는 것이고 만들어야 하는 것26)임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비평적 에세이 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정 향하는 것은 자기의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행위라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마치 세탁기의 유리문 뒤에서 색색의 빨랫감들이 아무 때나 나타나듯 시대를 뛰 어넘어 도약27)하는 아무렇게나 뒤섞여있는 경험들을 대상을 통해 질서화하고 지 나간 일들과 미래의 가능성 사이에서 재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찰적 사고를 위한 비평적 에세이 쓰기는 학습자들로 하여금 대상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고, 지나간 일들을 세공하여 현재화하며, 성취되거나 실패한 가능성들을 스스로의 행동으로 연결28)시키는 과정에서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과정

24) 김정우, 『시 해석 교육론』, 태학사, 2006, 188면.

25) H. Gadamer, 앞의 책, 78-79면.

26) 이기상, 『존재와 시간 :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 살림, 2006, 182면.

27) Reinhart, Koselleck, Vergangene zukunft, 한철 역, 『지나간 미래』, 문학동네, 1996, 396면.

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성찰적 사고를 위한 비평적 에세이 쓰기를 통해 만들어진 ‘나’, 즉 ‘자기이해’는 성인군자나 완벽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가지고 있 으나 아직 실현하지 못한 삶을 가능한 많이 실현하는 것’29)이라는 점이다. 대상 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고, 대상에서 얻어진 가치를 통해 삶의 방향을 설정하 는 것이 성찰적 사고를 위한 비평적 에세이 쓰기의 전부라면 애초에 도덕 교과 서나 수신서, 자기 계발서와 같은 것들을 읽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 나 성찰적 사고가 가치의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때의 가치는 학습자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기능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공허 한 보편적인 선(善)이 아니라, 자신의 지평을 적극적으로 열어보이며 대상을 이 해하고 이를 자신의 것으로 끌어오는 과정에서 비로소 ‘나’와는 다른 ‘자기’, 내 가 알고 있던 세계와는 다른 어떤 ‘세계’의 발견을 꾀할 수 있다. 따라서 성찰적 사고를 위한 비평적 에세이의 결과는 학습자마다 다르게 실현될 수 있으며, ‘얼 마나 정답과 근접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새로운 자기를 구성했는가’의 여부로써 그 의의를 구현할 수 있다.

더불어, 단 한 번의 운동으로 인해 건강이 회복되고 단번에 체질이 개선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단 한 번의 비평적 에세이 쓰기 수행이 성찰적 사고의 ‘형성’

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운동 경험이 축적되면서 점차 근력이 길러지 고 내적인 변화를 구성해 가듯, 이를 통해 자기를 새롭게 이해할 가능성과 계기 를 내부에 마련하고, 대상을 통해 좀 더 나은 자아를 실현하려 노력하는 자세를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성찰적 사고를 위한 비평적 에세이 쓰기의 본질적 의 미라 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는 비평적 에세이를 쓰는 것 자체만으로는 성찰적 사고를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을 환기한다. 따라서 학습자가 비평적 에세이 쓰기를 통해 텍스트 경험과 실제 경험을 단순히 병치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통합하는 과정 속 에서 도약적인 의미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의미는 ‘자신의 것’으로서 기능하여 ‘새로운 자기이해’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함으로써 비로소 의 의를 가질 수 있다고 할 것이다.

28) 위의 책, 397면.

29) 이부영, 『자기와 자기실현』, 한길사, 2002, 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