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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적 에세이의 장르적 특성과 성찰적 사고의 관련성

비평(批評)은 사물의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따위를 분석하여 가치를 논 한다는 의미로, 비평적 에세이(critical essay)는 대상에 대해 깊이 있게 사고한 바를 주관적 이해와 평가에 기초하여 근거와 함께 쓴 글을 말한다. 비평은 주로 문학 교육의 국면에서 활용되었으나, 영화 비평, 사회 비평, 교육 비평 등 비평 의 대상이 비단 문학 텍스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작문 교육의 장 에서도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본고에서 ‘비평문’이 아닌 ‘비평적 에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비평문 이 대상에 대한 필자의 비평적 견해를 중심으로 화제, 논평, 근거/반응의 구조에 따라 쓰인 텍스트 중심의 글이라면, 비평적 에세이는 대상에 대한 견해를 바탕 으로 촉발된 자신의 정서와 경험에 좀 더 무게 중심을 둔 필자 중심의 글이라는 데에 있다. 논의에 따라 비평문과 비평적 에세이를 같은 의미로서 이야기하기도 하지만15), 본고의 ‘비평적 에세이’는 다음과 같은 김대행(2000)과 김동환(2004) 의 논의를 참고로 한다.

삼은 의미의 재구성을 통한 자기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본고의 ’구성 작용‘과는 다소 차이 가 있다고 하겠다.

14) H. Gadamer, 앞의 책, 94-114면 참조.

15) 박영민(2008), 앞의 글, 6면 ; 오유경, 「비평적 에세이 쓰기를 통한 문학 감상 지도 방안 연구」, 교원대 석사학위 논문, 2011, 22면 참조.

비평적 에세이란 비평이긴 하되 본격 비평은 아니며, 주어로 ‘내’가 등장하는 사적인 글쓰기도 기꺼이 허용하며, 그러나 얄팍한 주관적 감상문 따위는 아니라 는 것, 즉 일정한 형식이나 틀은 필요로 하지 않는 글쓰기의 한 유형으로서 텍스 트(문학 작품)에 대해 자신이 사고한 바를 깊이 있게 써 나가는 글이다. 다만 중 요한 것은 그 내용이 얼마나 자기 자신에게 진솔하고 그와 동시에 타당한 설득 력을 지니고 있는지의 여부이다. 여기서 교사는 학생 개개인의 포트폴리오를 수 집하고 토론 과정까지 지켜보았으므로 그 글의 설득력이 타인에게 기댄 것인지 혹은 타인과의 대화에 귀 기울이지 않은 것인지를 모두 파악할 수 있다.

자기화란 것이 자신이 지닌 이해관계에 따라 자의적으로 모든 것을 해 나가도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실천적 국면에서 세계에 대한 이해는 세계 와의 변증법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16)

텍스트(문학 작품)에 대해 자신이 사고한 바를 깊이 있게 써나가는 글이다. 일 정한 형식이나 절차를 필요로 하지 않는 글쓰기의 유형이다. 흔히 말하는 ‘쓰기’

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자유로운 사고 활동이 이루어진다. 작품의 어떤 한 면모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들을 외곬으로 파고들면 된다. 주인공의 말 한 마디 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것과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하염없이 늘어놓아도 좋고 사건의 진행 과정에 스치듯 등장하는 엑스트라의 행위나 존재에 대해 물고 늘어 져도 좋은 것이 비평적 에세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 얼마나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지의 여부이다.17)

위의 논의에 따르면 비평적 에세이의 주된 특성은 세 가지로 요약 가능하다. 첫 째, 대상(대상 텍스트)에 대한 반응과 이해를 기반으로 자유롭고 진솔하게 쓰이는 글이라는 것. 둘째,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설득력을 획득한 글이어야 한다는 것.

셋째, 자기의 경험과 사고를 중심에 둔 자기화와 관련된 내용이 담긴 글이라는 것 이다. 이러한 비평적 에세이의 장르적 특성은 성찰적 사고의 속성들과 밀접하게 맞 물린다.

첫째로, 대상 텍스트에 대한 반응을 자유롭고 진솔하게 표현한다는 측면은 ‘대상 을 통해’ 자기이해를 실현하는 성찰적 사고 수행의 시작점과 동일하다. 성찰적 사 고가 궁극적으로는 ‘자기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사고 기능으로 정의되기에, 성찰 적 사고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 쓰기의 장르로는 대체로 자아의 목소리가 가장 두드러지는 일기, 자서전, 수필 등의 자기 표현적 글쓰기 장르들이 예로 들어지

16) 김대행 외, 앞의 책, 445-446면. 밑줄은 연구자.

17) 김동환, 앞의 책, 90면. 밑줄은 연구자.

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적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에서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언어들을 토대로 감정과 느낌들을 표현하는 것에 그 목적을 두고 있기 에, ‘대상을 통한 자기이해’라는 성찰적 사고의 방향성을 제대로 실현하기 어렵 다. 물론 능숙한 필자의 경우 자신의 경험만을 바탕으로 성찰적 사고를 통해 의 미를 구성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학습자들의 경우 이러한 장르에서는 경험의 고백과 토로, 혹은 앞으로의 다짐에 머물 뿐 ‘의미 있는 경험’을 초점화하고, 경 험 자체에서 새로운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단순히 ‘어떤 경험을 해서, 어떤 감정을 느꼈고, 어떤 상처가 남았고, 이게 바로 나’라는 식의 자기 경험 쓰기는 경험의 모사에 불과하며 결국 자신을 재인하는 수준에 머무르 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학습자의 성장에 기여하지 못한다. 하지만 비평적 에세이 의 경우 학습자들이 대상 텍스트에 대해 사고한 바를 자유롭고 진솔하게 기술한 다는 측면에서 대상을 주체적으로 초점화, 의미화 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특히, 반성과는 달리 성찰적 사고가 타인, 사물, 상황, 추상적 관념 등을 그 대 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비평적 에세이는 그 대상 텍스트가 다 루고 있는 세계의 폭과 넓이로 말미암아 넓은 성찰의 장을 마련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를 지닌다.

둘째로,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설득력을 갖춘 글이어야 한다는 것은 자신의 해석 이나 평가에 대해 적절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학습자가 제시하는 근거는 필연적으로 ‘왜 그러한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응답일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물음은 대상 텍스트와의 관계 속에서 구체화됨 으로써 대상 텍스트와의 상호 주관성을 배제할 수 없다. 동시에 담화 공동체 속에 서 순환적으로 기능하는 ‘비평’의 장르적 특성상, 비평적 에세이의 설득력은 자신 의 글을 읽는 독자를 고려한 것으로서 독자와의 상호주관성을 띨 수밖에 없다. 이 러한 상호주관성은 학습자로 하여금 대상을 왜곡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태도 를 지양하게 하며, 진정한 자기이해로 향해가는 데 기여한다. 즉, 대상 텍스트와 마주하여 학습자 스스로 설정한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이러한 물음을 의지적으로 해결하려는 과정 속에서 근거 마련뿐만 아니라 텍스트에 관한, 또 필자 자신에 관 한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물음의 연쇄를 통 해 구성되는 사고의 깊이는 성찰적 사고의 본질과도 연관되는 것이라 할 수 있으 며, 정해진 진리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대화적으로 탐구해 가며 판단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본질적인 의미를 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여타의 자기 표현적 글쓰기와는 달리 독자와의 소통과 사회문화적인 용인성 을 고려해야한다는 점에서 비평적 에세이는 보편성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는 자아에 함몰되지 않고 인간다운 삶,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성찰적 사고의 가 치적 속성을 구현하게 해주는 기제가 된다.

셋째로, 자기의 경험과 사고를 중심에 둔 글쓰기라는 것은 비평적 에세이가 일반 적 비평문에 비해 자신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비평에 투영할 수 있는 장르임을 함의한다. 대상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지만 여기에서 비롯된 자신의 경험과 사고 가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비평적 에세이는 ‘읽기’ 그 자체를 넘어서 ‘자기이해’에 도달하기에 적합한 장르가 될 수 있다. 대상 텍스트를 매개로 자기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기 때문에, 비평적 에세이는 ‘표면적으로는 대상 텍스트에 대한 관찰이나 해명의 형태를 취하지만, 결국은 자신에 대한 관찰을 유도하는 수단’18)이 된다. 앞서 제시되었듯 비평적 에세이가 ‘세계와의 변증법적 관계 속 에서 세계에 대한 이해가 자기화로 이어지는 글쓰기여야 한다’는 김대행의 논의 는 비평적 에세이의 이러한 속성을 지적한 것이다.

또한 성찰적 사고가 잘 드러나는 장르로 여겨지는 수필의 경우는 ‘붓 가는 대 로 쓴 글’이라는 그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장르적 성격이 미약하기 때문에, 학습자들이 의미를 구성하는 데에 있어서, 혹은 학습자들에게 이를 교육하는 데 에 있어서도 막연한 점이 있다. 하지만 비평적 에세이의 경우 텍스트에 대한 화 제, 논평, 근거/반응이라는 그 구성 요소가 비교적 명확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치 평가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용인될 수 있도록 독자 개념을 상정하고 쓰이 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밀러(Miller)는 ‘반복되는 상황에 대한 전형적인 수사적 반응’, 즉 상대적으로 반복된다고 인지되는 수사적 상황 하에서 완전한 행동 방 식이라고 느껴지는 것들이 유형화되는 것19)을 장르라 정의했는데, 비평적 에세 이가 지닌 형식은, 단지 형식적 특징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특정의 사고방식 을 내재한 형식으로 학습자들이 비평적 에세이의 장르적 속성 안에서 ‘대상을 통한 자기이해’라는 사고 과정을 자연스레 체득할 수 있게 도와준다. 또한 독자 를 상정하여 소통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사고를 좀 더 정밀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넓혀 주기도 한다.

18) 정정순, 앞의 글, 265면.

19) Carolyn R. Miller, Genre as Social Action, edited by A. Freedman & P.

Medway, Genre and the new rhetoric, London ; Bristol, PA : taylor & Francis, 1994,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