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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공동체의 선교적 역할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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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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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가공동체의 선교적 역할에 대한 연구

A Study on the Role of the Mission in the Community of Luke

강남대학교 실천신학대학원

신 약 신 학 전 공

이 대 성

(2)

지도교수 박종수

이 논문을 석사학위(Th.M.) 논문으로 제출함

2005년 12월 일

강남대학교 실천신학대학원 신 약 신 학 전 공

이 대 성

(3)

2005년 12월 일

강남대학교 실천신학대학원

심 사 위 원 장 (인)

심 사 위 원 (인)

심 사 위 원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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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사람이 신학의 길을 시작한 지난 시간들은 참 고맙고 감사한 것들로 가득합니다. 무엇보다 강남대학교와 인연을 맺고 여러 교수님들 을 만나 학문 뿐 아니라 인격까지 배울 수 있는 시간들이 마냥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직도 많은 배움이 필요하기에 노력이 요구되지만, 부족할 때마다 사랑과 격려로 본인의 논문을 지도해 주신 박종수 박사님께 진심으로 감 사드립니다. 그리고 바쁜 일정이지만 논문 심사를 맡아서 세밀하고 자상 하게 지도해 주신 이숙종 박사님. 이상복 박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사람이 논문을 쓰기까지 성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 신 명지대학교 교목이신 구제홍박사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논문이 완성되기까지 너무나 많은 분들이 기도와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 모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특별 히 하루도 쉬지 않고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노모 황옥순 권사님, 묵묵히 옆에서 내조와 기도하는 사랑하는 아내와 올 9월에 태어난 아들 녀석 우림에게 부족하지만 이 논문을 바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05년 12월

이 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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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 론 ··· 1

A. 문제제기 ··· 1

B. 연구방법과 범위 ··· 6

C. 연구 동향 ··· 10

Ⅱ. 누가공동체의 삶의 자리 ··· 14

A. 누가공동체의 역사적 배경 ··· 14

1. 정치적 상황 ··· 14

2. 경제적 상황 ··· 16

3. 사회적 상황 ··· 18

4. 종교적 상황 ··· 21

B. 누가공동체의 사명 ··· 23

1. 평화 ··· 23

2. 복음전파 ··· 26

Ⅲ. 누가공동체의 구성원 ··· 29

A. 조직적 구성 ··· 29

1. 열두 제자 ··· 31

2. 칠십인 제자들 ··· 34

3. 기타 제자들-넓은 의미로서의 제자들 ··· 37

B. 경제적 구성 ··· 41

C. 인종적 구성 ··· 44

(6)

A. 열두 사도의 역할과 유대선교 ··· 48

B. 칠십인 대표의 역할과 이방선교 ··· 50

C. 제자들과 하나님의 백성 ··· 52

Ⅴ. 누가공동체의 신학적 성격 ··· 55

A. 유대와 이방선교에 대한 관심 ··· 55

B. 보편주의 ··· 56

Ⅵ. 결 론 ··· 59

참고문헌 ··· 62

ABSTRACT ··· 65

(7)

이 논문의 목적은 다양한 누가문서의 기록 목적 가운데 신앙의 강 화와 선교의 사명을 위한 복음적이고 교육적인 의도로 기록했다는 주장 을 근거로 하여 초기공동체인 누가공동체가 어떻게 멤버들을 구성하였으 며, 그들의 선교대상은 누구였으며, 그들의 선교적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를 연구함으로써 복음을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눅24:47) 전파하려는 누가공동체의 선교 전략과 범위, 그리고 그 선교의 결과를 밝히는 것이다. 이 연구를 위하여 신약문서가 도출하게 된 사회적 상황 을 염두에 두고 해석하는 사회학적 성서 해석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당시 역사적 배경과 상황은 불안한 정세 속에서 이중 삼중의 억압 과 착취를 받으며 해방을 갈구하던 백성들과 또한 권력과 부를 누리는 귀족층 그리고 로마와의 정치적 갈등, 그리고 패망해 가는 예루살렘의 위기의 정치 상황과 가난한 사람들의 극심한 궁핍과 부자들의 사치스런 생활의 공존, 지위나 계층적 특권에 부를 누리는 계층과 세금과 착취에 의해서 굶주리고 헐벗어 가고 있는 계층의 대립 감정이 극대화되는 경제 적 상황, 유대 사회 안에서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바리새인들과 같 은 훌륭한 종교인들과 다른 한편으로 백성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던 세리와 죄인들, 여인들, 사마리아인, 같은 소외 계층들 간의 양극화 현상 의 사회적 상황, 그리고 공동체 안의 상황 가운데 지연되는 파루시아의 종교적 문제로서 누가공동체의 대립과 갈등의 문제를 일으키고, 동시에 공동체 존립의 기반을 허물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는 이러한 다양한 갈등의 해소를 위해 평화와 복음전 파라는 사명 하에 공동체를 구성함에 있어서 어떤 특별한 계층이 주도 하는 구성원이 아니라, 다양한 민족들과 사회계층들, 그리고 남녀가 함께 어우러진 공동체였다. 누가공동체는 조직적으로 지도자 그룹과 평신도 그룹으로 구성이 되어졌으며,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와 부유한자, 인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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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구성이 된 공동체였다.

또한 누가공동체는 선교 지향적 공동체로서 누가는 공동체내에서 의 선교적 역할과 특징과 선교대상이 그 멤버들이 그 공동체 안에서 갖 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도하고 있다. 즉 열두 사도들로 상징되고 있는 지도자 그룹은 주로 유대인 대상의 선교 활동에, 칠십인 대표들로 상징 되고 있는 지도자 그룹들은 이방인 대상의 선교 활동에, 그리고 많은 제 자들로 상징되고 있는 평신도 그룹들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포괄하 는 개념으로 새롭게 규정된 백성들(라오스) 대상의 선교 활동에 참여하 고 있는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누가공동체가 선교 공동체 및 보 편주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동시에 공동체 멤버들의 선교적 역할의 확대를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누가복음서에 나타난 누가공동 체의 선교적 역할이야말로 다른 공동체와 구별되는 누가공동체만의 독특 한 사명이라고 볼 수 있다.

▶핵심되는 말: 누가공동체, 선교공동체, 보편주의 공동체, 복음전파, 평화,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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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 론

A. 문제제기

누가문서에 대한 연구는 1966년 반 운닉(W. C. Van Unnik)이 그 의 글 “Luke-Acts, a Storm Center in Contemporary Scholarship”에서 누가-행전의 연구가 신약학 연구에 태풍의 눈이 될 것이라고 예시한 후 로 누가문서에 관한 다량의 연구와 방법론적인 변화를 보였다. 누가문서 의 최근 연구 경향은 누가-행전을 역사적인 관점, 신학적인 관점으로 이 해하려는 시도와, 문학작품으로 보는 세 가지 접근 방법으로 좁혀져 방 법론적인 다양함이 넓은 의미에서 일치하고 있음을 보인다(김득중, 1991:

141). 기록 목적에 대해서도 다양한 논의가 있었지만, 학자들마다 의견이 달라서 통일된 의견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누가문서의 기록목적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누가문서의 기록 목적을 바울을 변증하기 위함으로 보는 견해이다. 유대기독교를 향해 바울을 변증한 최초의 사람은 미카엘리스 (Michaelis)이다. 그는 1세기의 초대 교회에는 유대기독교와 이방기독교 가 배타적이지 않았지만 대립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유대기독교 뿐만 아 니라 이방민족들에게도 신의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유대기독교인들 에게 바울과 이방기독교를 변증한다. 누가문서는 성령과 첫 번째 기적의 진실성을 마련하여 기독교 공동체에 이것들을 확증하기 위해 쓰였다. 또 한 바울을 싫어하며 이방인을 받아들이기를 꺼려하는 유대기독교인들에 게 이방인들도 교회에 들어 올 수 있다는 권리를 제시하기 위해서 쓰였 다. 특히 사도행전은 이러한 목적에 합당하다고 주장한다(송순열, 1997:

189).

튀빙겐 학파의 바우어(F. C. Baur)는 이 주제를 한층 발전시킨다.

바우어는 헤겔의 정․ 반․ 합의 역사발전 철학이론에 따라 베드로와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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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보의 유대기독교와 바울과 바나바를 중심으로 한 헬레파 즉 이방기독 교와의 갈등을 서로 와해시키고 화해시키려는 의도로 사도행전이 쓰여졌 다고 주장한다(Reicke, 1964: 225-229). 브랜든(S. G. F. Brandon)의 경우 는 초대기독교 역사를 튀빙겐 학파의 계통에 따라 재구성한다. 그는 누 가문서를 유대기독교의 도전에 대한 응답이며 특히 사도행전은 바울을 위한 변증이라고 본다. 초대교회 안에는 두 진영, 즉 유대기독교의 지도 자인 야고보 중심의 역사적 예수에 관심을 가지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적인 기독교와 바울이 중심인 유대의 민족주의로부터 독립된 세계주의적, 보편주의적인 신적인 하나님의 아들에 관심하는 이방기독교 가 대립하고 있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전 70년 이전에는 유대 적 민족주의 기독교가 이방기독교보다 우세하여 바울이 참 사도라는 주 장을 배격하였다. 그러나 70년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과 함께 예루살렘 교회의 황폐화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적 위치를 상실한다. 반대로 바울 의 영향력은 커진다. 즉 이방인의 선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프랑스의 트로크메(Trocme) 역시 브랜든과 같은 입장으로 야고보 를 중심한 유대기독교인들로부터 바울을 변증한다. 이러한 변증의 결과 는 이방기독교에 대한 관심 즉 선교에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본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의 재림 지연으로 인해 기록으로 남길 필요성 이 대두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지연으로 야기된 신앙이 위기에 직면하자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신학적으로 설명한다. 불트만(R.

Bultmann)은 당시 종말에 관한 묵시적 사변이 팽배해있던 상황에서 그 리스도 재림 지연의 문제를 예수와 교회의 역사, 즉 구속사의 신학으로 본다. 불트만의 이러한 견해를 발전시킨 콘첼만(H. Conzelmann)은 누가 의 신학과 사상을 요약하여 나타낸 것이 그리스도 재림의 지연이라고 보 았다. 그는 누가문서에서 초대 기독교의 종말론을 재구성하면서 임박한 종말론에 대한 언급을 생략하고 구속사의 도식에 맞추어 종말은 먼 미래 에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Conzelmann, 1960: 95-136). 즉 예수와 초대 교회는 임박한 종말을 기대하였다. 이런 기대는 그들의 삶을 오직 미래 지향적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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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사도 이후 시대는 재림이 기대했던 대로 오 지 않는 사실에 직면해야 했었다. 결과적으로 세상 종말은 먼 미래에 있 을 것으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이런 생각은 자연히 미래 지향적 삶에 서 현재 지향적 삶으로의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 콘첼만은 누가문서에서 누가의 두 가지 경향을 찾아내고 있다. 먼저 누가는 초대 기독교의 종말 론을 재구성하면서 임박한 재림에 대한 언급을 생략하였다. 다음으로는 그것과 관련해서 그의 자료 구성을 이스라엘시대, 예수시대, 교회시대로 3구분하는 구속사 도식에 맞추어 편집함으로써 세상의 종말을 먼 미래로 밀어내고 있다. 재림 지연이 사도 이후 시대에서는 주요 문제였기 때문 에 누가가 재림 지연의 현실에 직면해서 초기 기독교의 종말론을 구속사 로 대치시킨 것은 불가피했다. 결국 누가의 기록 목적은 임박한 재림 기 대를 구원사로 대치함으로써 종말 지연의 문제에 대처하려고 한 것이다 (김득중, 197-198).

누가문서의 세 번째 기록 목적은 반(反) 영지주의적 목적으로 기록 되었다고 본다. 탈버트(C.H. Talbert)는 누가 문서의 기록 목적이 영지주 의를 대항한 방어 목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논증으 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나, 누가복음 1-2장의 탄생 설화는 예수의 육체적 탄생을 부인 하는 영지주의에 반대하는 기록으로 읽어야 한다.

둘, 누가복음에 나오는 시간에 대한 언급(1:5, 2:1, 3:1이하)이 보 통은 누가가 역사가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되었 다. 그러나 이것은 영지주의자들이 구원 사건을 역사로부터 분리시켜 신화의 영역으로 돌려버리는 것에 반대하여 구체적 인 세상 사건과 구원사를 연관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한 다.

셋, 누가복음 3:21-22절의 세례 설화는 누가가 성령이 예수에게

“몸의 형태로”임했다고 말하는 점에서 독특한데 이것도 영과 육을 구분하는 영지주의를 반대하기 위한 것으로 읽어야 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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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누가복음 3:23-38절의 족보가 “하나님의 아들”로까지 소급되 는데 그 특징이 있으나 이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성을 통해 “아담을 통해”(3:38) 탄생했음을 말하고 있는 점에서 반(反) 영지주의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섯, 사도행전은 “예수”의 명칭을 다른 명칭들보다 더 자주 사 용하는 데 특징이 있다. 교회의 구주를 말할 때 “그리스 도”라는 명칭보다 “예수”를 더 빈번히 사용하는 것(2:22)은 반(反) 영지주의적 목적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여섯, 사도행전의 바울과 목회 서신의 바울이 여러모로 비슷하게 설명되고 있는데 이것은 목회서신과 누가문서가 다같이 영 지주의 이단을 경계할 목적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199-200).

네 번째는 로마당국을 향한 변증이다. 누가문서가 정치권력에 대해 변증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로서 유대기독교 와 이방기독교 간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교회 내적인 변증과 기독교와 로마제국간의 화해와 공존을 위한 교회 외적인 정치적 변증으로 이해되 어 왔다. 대표적으로 이스턴(B. S. Easton)은 누가문서의 기록 목적은 로 마 당국에 대해서 기독교는 제국으로부터 마땅히 관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누가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두 가지 계통으로 논증을 벌이고 있다. 하나는 많은 로마의 관리들이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던 선례(先例)들을 길게 밝히는 방법이다. 이 런 선례를 토대로 로마의 관리들에게 똑같이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 조치 를 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기독교가 유대교 안의 한 종 파에 지나지 않음을 밝힘으로써 그 당시 유대교가 누리고 있던 “공인 종 교”의 혜택을 기독교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195-196).

다섯 번째는 누가문서가 선교와 교육의 목적으로 기록되었다는 주 장이다. 브루스(F. F. Bruce)는 누가문서에 나타난 변증적 주제가 로마당 국을 향한 변증이 아닌 로마의 지성인 계급을 향한 변증이라고 주장한 다. 누가복음 1:3의 수신자의 데오빌로를 로마의 중류계급의 관리를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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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하는 인물로 보며 바울이 60년경 가이사 앞에서 심문을 받기 위해(행 28:19) 로마에 갔을 때 기독교에 관심을 갖는 가이사 같은 로마의 관리 들에게 기독교를 이해시키기 위해 쓰여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브 루스는 누가문서를 60년 초기 기독교에 관심 있는 로마 대중들을 전도하 기 위해 기록된 것으로 본다.

오닐(O'Neil)은 누가문서의 기록연대를 A. D. 115-130년경으로 추 정하며, 교육 받은 로마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예 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구원이 성취된 도시는 예루살렘이었으나 교회가 세상 가운데서 자신의 역할이 발견되는 도시는 로마이다. “예루 살렘에서 로마”라는 장소의 변천은 종교적 구심점의 변화이며 이방인인 로마인들에게 구원이 있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정치적으로 로마에 해가 없음을 의미하며 종교적으로 일신론이 강조되는 것은 법적 인 논증이 아니라 로마인들을 설득하기 위한 선교의 목적이라고 주장한 다(O'Neil, 1970: 158-159).

마샬(I. H. Marshall)도 브루스나 오닐과 비슷한 입장을 취한다. 누 가문서의 여러 주제들 가운데 그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선교이다. 누가 복음 13:3-4의 데오빌로라는 인물을 수신자로 밝힘으로써 신앙을 견고히 하고,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 기독교를 받아들여 신앙의 기 초역할을 하도록 도우며 누가문서가 교회의 특정문제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닌 선교라는 교회의 항구적인 목표를 돕기 위해 쓰여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마샬은 언제 어디서든, 어떠한 상황에서 든 누가문서가 선교의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초시간적인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

헨첸(E. Heanchen)은 “많은 개별적인 이야기들을 통해서 사도시대 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이 책의 주된 목적은 교회를 견고히 하는데 있 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이 책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멀리, 심지어 세상 끝까지 전파하는데 기여하려한다(Heanchen, 1980: 278).”고 함으로써 선 교적 사명을 일깨우고, 신앙의 깨우침과 강화를 통해 모든 민족에게 구 원을 선포하고 실천되도록 하기 위한 교육의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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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하게 보는 학자는 윌슨(S. D. Wilson)으로 누가문서의 저술 동기가 목회라는 실제적인 동기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보았다. 그는 종말론적인 문제와 그리스도 재림의 지연이 누가가 활동하던 시대의 기독교인들에게 삶의 실제적인 문제였으므로 신앙적으로 견고히 하기 위함이었다고 본다 (Wilson, 1973: 83-87). 즉 종말의 지연은 누가시대의 기독교인들에게 삶 의 실제적인 문제로 종말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교회는 존재해야 했으며, 이방인의 선교 또한 실행되어야 하는 교회의 상황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처럼 많은 학자들이 누가문서의 기록 목적에 대하여 다양한 연 구를 해 왔다. 본 논문은 다양한 누가문서의 기록 목적 가운데 신앙의 강화와 선교의 사명을 위한 복음적이고 교육적인 의도로 기록했다는 주 장을 근거로 하여 초기공동체인 누가공동체가 어떻게 멤버들을 구성하였 으며, 그들의 선교대상은 누구였으며, 그들의 선교적 역할은 무엇이었는 지를 연구함으로써 복음을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눅 24:47) 전파하려는 누가공동체의 선교 전략과 범위, 그리고 그 선교의 결 과를 제시하고자 한다.

B. 연구방법과 범위

본 논문에서는 누가복음서에 나타나는 누가공동체의 구성원들과 누가공동체의 선교적 역할을 연구를 하는데 있어 신약문서가 도출하게 된 사회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해석하는 사회학적 성서 해석방법을 사용 할 것이다. 이 사회학적 성서 해석의 방법을 통해 누가가 전하는 공동체 의 구성원과 조직, 그리고 역할이 누가복음이라는 텍스트 안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가를 밝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회학적 성서 해석방법이란 역사비평적인 범주에 해당되 는 양식비평이나 편집비평과는 그 관심을 달리한다. 양식비평이 본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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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전승이 생긴 삶의 정황을 추적하며 복음서 기자를 ‘수집가’로 보고, 편집비평이 그를 특별한 신학적 관심을 가진 ‘편집가’로 이해하며 본문의 진술 상황을 추적하며 각 단락들의 역사적, 신학적인 내용을 질문한다면, 사회학적 비평1)에서 복음서 기자는 공동체의 대변인으로서 특정 사회적 세계를 공유하고 있는 무리들과 긴밀한 상호 영향 아래 복음서를 기록한 사람으로 이해한다. 이에 대해 서중석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회학적 신약해석이란 신약성서 본문에 나타나는 사상들이나 행위들을 그 본문 배후를 이루고 있는 팔레스타인이나 로마제국 이라는 폭 넓은 사회적 준거 틀 속에 위치시키거나, 원시 그리스 도교 공동체들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작은 단위의 사회적 준거 틀 속에 위치시킨 채 해석하려는 하나의 전망 혹은 상상력의 한 형태이다. 따라서 사회학적 신약 해석의 관심은 성서 본문의 신 학적, 윤리적 진술들 자체에 있지 않고, 그 진술들과 그것들의 사회적 상황들과 관계에 있다. 여기서 ‘사회적’이라는 용어는 인 간의 사상들 또는 행위들의 상호작용을 위한 하나의 범주로 상 용되고, ‘사회학적’이라는 용어는 그 사상들 또는 행위들의 상호 작용을 조직적으로 기술하는 방법들과 이론들을 위한 하나의 범 주로 사용된다. 사회학적 신약 해석 연구들의 관심과 방향은 크 게 세 가지 범주로 분류된다. 첫째는, 원시 그리스도교의 사회적 상황에 집중하는 방향이고, 둘째는 원시 그리스도교의 사회적 조 직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이고, 셋째는 원시 그리스도교의 사회적 세계를 규명하려는 방향이다(서중석, 1991: 397-398).

사회학적 해석은 본문이 주어진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기 위해 구

1) 사회적 해석(Sociological Exegesis)이란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한 엘리옷(Elliott)은

“사회학적 해석”을 정의 내리기를 사회학적 해석은 해석적이고, 사회학적인 학문, 그 것들의 원리들, 이론들, 기술들의 결합된 실행을 통해서 본문을 분석하고 종합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사회학적 해석은 사회학 이론과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해석자의 사회학적 상상력(Sociological imagination)을 동원하는 것이다(Elliott, 1981: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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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되었고, 청중들에게 어떤 사회적 반응을 일으키도록 저술되었는지를 발견하려고 한다. 따라서 신약의 사회학적 분석은 본문과 그 배경에 암 시된 모든 개인과 공동체를 연구한다. 그래서 홀룸버그(Holmberg)는 이 러한 성격의 사회학적 해석은 갑자기 새로운 것(newcomer)이 아니라 그 것은 실제로 비평적 방법의 일부로서 이미 도입되었던 양식비평, 편집비 평에 대한 보완적인 필요성과 관련됨을 언급한다(Holmberg, 1990: 7).

오늘날과 같이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또는 급진적인 사회변동 속 에서도 성서의 상황들은 생생한 메시지의 해석적 전달기능을 감당한다.

또한 성서와 성서 공동체들이 처한 상황을 재구성하는 작업은 오늘날의 종교적인 공동체들에게 활력을 불어 넣는 비전과 에너지의 동일함을 부 여한다. 그리고 세대를 초월한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은 구체적이고도 실 제적인 상황의 본문들에 대해 현대 독자들이 설득력과 호소력을 가지고 접근하게 만든다.

신약과 초기 기독교 연구에 관한 사회학적 접근들은 성서학에 신 선함을 제공하는데 그것은 많은 모호한 고정 관념들로부터 상상력을 자 유롭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또한 그것은 신약의 메시지가 일상생활 과 관련됨을 일깨워 준다.

본 소론에서는 사회학적 성서 해석 접근방법 중에서도 거시 이론 과 미시 이론의 단점들을 보완한 중수준적 접근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중수준적 방법은 새로운 과제를 향해 열려 있다는 점에서 거시 적 방법이나 미시적 방법을 넘어 상당히 앞으로 나아갔다. 중수 준적 접근은 신약성서 연구에 매우 유익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약성서 저자들이 그 문서를 산출한 공동체의 투영일 뿐 아니 라 그 공동체의 역동적인 기획자이기도 하다는 암묵적인 통찰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거시적 접근에서 볼 때, 신약성서 저자들은 그들의 공동체에 의해서 상당히 제한을 받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입장에서는 신약성서 저자들의 역할과 자율성이 극소화된 다. 미시적 접근에서 볼 때 저자들이 공동체의 성격과 형태를 결 정하는 것으로 극대화 된다. 이런 입장에서는 그들의 역할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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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성이 극대화 된다. 그러나 중수준적 접근에서는 신약성서 저자 들이나 그 안에 묘사된 주인공들은 그들의 공동체에 영향을 끼 치거나 또는 영향을 받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들은 자신의 공동 체를 구성하는 사람인 동시에 그 공동체에 의해서 구성된 사람 들이다(서중석, 1998: 340).

사회학적 해석 방법 중에서도 중수준적 방법은 사회의 전체적인 구조에 중점을 두어 그룹이나 개인들 간의 상호작용을 등한시할 수 있는 거시적 방법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개인들의 상호작용 에 주안점을 두어 그 개인들의 행동을 강제하는 사회적 구조를 등한시하 는 미시적 방법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다음으로, 본 논문은 주로 문헌 연구에 의존할 것이다. 특히 누가 공동체를 위한 연구 자료는 대부분 누가복음에 기초하고 있으며, 누가 공동체의 선교적 역할을 찾아내기 위하여 사도행전도 이용된다. 본 논문 의 연구가 이처럼 누가-행전에 의존하는 것은 누가공동체 연구의 직접 적인 자료의 한계성 때문이다. 누가의 두 편에 걸친 저술 외에는 당시의 원저로서 참고할 만한 정보가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 서 본 논문의 필자는 누가공동체 연구를 위해서 일차 자료인 누가복음을 일차로 다룰 것이며, 그에 관한 다른 저술들은 이차 자료로 사용한다.

본 논문의 연구 범위는 다양한 신앙공동체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분파와 통합을 거듭하는 역동적인 초기 기독교 전체를 관심의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복음에 반영되고 있는 70-90년대의 누가공동체와 그 주변 공동체로 제한된다. 또한 누가공동체가 처해 있던 정치적, 경제 적,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고 종교적인 삶의 자리를 살펴봄으로써 그 공 동체의 구성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특별히 이방인과 유대인의 관 계, 또한 누가에게 있어 복음의 대상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역할을 감당 하는 구성원들에 대해서 분석한다. 이러한 누가의 관심을 통하여 선교공 동체와 보편주의적 공동체의 당위성을 분석한다. 그리고 누가공동체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해소전략을 선교적 역할이라는 사명을 통해 제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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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자 한다.

본 논문의 본문 전개는 다음과 같다. Ⅱ장은 누가공동체의 이해를 돕기 위해 누가공동체의 역사적인 배경과 정황을 살펴봄으로써 누가공동 체의 삶의 자리를 이해한다. 그리고 누가공동체의 사명을 살펴볼 것이다.

Ⅲ장은 누가공동체의 멤버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조직적, 경제 적, 인종적으로 분석하여 살펴볼 것이다. Ⅳ장은 열두 사도대표와 칠십인 대표 그리고 제자들의 선교적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Ⅴ장은 누가공동체의 신학적 성격을 살펴봄으로 공동체의 역할 이해를 더할 것이다.

C. 연구 동향

누가복음에 대한 연구는 1930년 크리드(J. M. Creed)와 루스(H. K.

Luce)의 연구를 시작으로 하여 종교사학파의 비평적 연구방법을 동원한 연구에 이르기까지 많은 발전을 보게 되었고 다양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 다. 크리드는 누가가 독자적인 신학자로 볼만한 신학적 중요성을 발견하 지 못했다고 말했는데, 1953년 콘첼만(H. Conzelmann)의 「누가복음서 연구」(The Theology of St. Luke)는 그러한 점을 새롭게 보완하게 되 었다. 콘첼만의 연구결과는 누가복음이 다른 복음서들 보다 다양하고 폭 넓은 신학관을 가진 중요한 복음서임을 입증하였다. 그는 편집사적인 연 구방법을 실행해 볼 수 있는 영역으로 생각하여 이같은 연구를 하게 되 었다. 지금까지 콘첼만 이전의 학자들은 누가를 탁월한 역사가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누가복음의 서론 부분은 역사적인 서술로 보기에 충분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콘첼만은 누가를 단지 역사가나 전승의 수집가가 아니라 독창적인 신학을 주장한 신학자로 크게 부각시켰던 것 이다. 콘첼만은 누가복음을 가장 중요한 신학적 쟁점인 구속사(salvation history) 도식을 가지고 누가복음을 풀어나갔다. 이것은 구속사를 3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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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나누는 것이다. 처음 단계는 이스라엘의 시대, 율법과 예언자의 시대 요, 둘째 단계는 첫 단계의 성취인 예수의 시대라면, 셋째 단계는 예수의 승천과 파루시아(Parousia) 사이의 교회시대이다. 누가복음은 중간 단계 를 취급한다. 여기서 시간의 중심을 의미하는 콘첼만의 책이 나온 것으 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누가를 영지주의로 만든다는 비난을 받아왔고 누가의 역사 기술 자체에 회의적이도록 만들었다는 문제를 가 져오기도 하였다.

이러한 콘첼만의 주장에 대해 누가의 역사 기술을 옹호한 사람은 하워드 마샬(H. I. Marshall)이다. 마샬은 역사가로서의 누가를 평가절하 했던 콘첼만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누가가 예수와 초대교회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역사화시킨 것이 아니라 그 독자들의 신앙을 확증하기 위해 이 미 일어났던 사건들을 역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렇 게 함으로써 누가는 기독교 신앙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 주려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샬은 누가가 두 권의 책을 쓰면서 원래 가졌던 의도는 역사적이지도 신학적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복음 전도적 이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복음전도자로서 누가가 전도와 선교에 각별 한 관심을 가졌을 것임은 분명한 일이라고 말한다(Marshall, 1993:

216-222).

보본(F. Bovon)은 누가신학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하여 누가신학 의 중요한 일곱 가지의 주제들을 나열하여 장을 구분하여 하나님의 계 획, 구원사의 종말, 구약성서에 대한 해석, 기독론, 성령론, 구속과 구원 받음, 교회론으로 연구하였다. 슈미탈스(W. Schmithals)도 누가는 전승 의 기본 가르침으로 하지 않은, 한 공동체를 향하여 있음을 밝히고 다만 원시교회의 일치와 구약성서에 뿌리를 두고 있는 공동체임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밖에도 개별적인 신학주제와 역사적 문제들을 다룬 학자들이 있었다.

한편 최근 신약학 연구에서 “폭풍의 핵”(Storm Center)이라할 수 있는 누가문서 연구에 있어서 학자들간에 거의 이구동성으로 주장되고 있는 이론은 누가가 주로 이방인들을 상대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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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누가문서의 대상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대하 는 주장들도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은 J. Jervell, G. D. Kilpatrick, R.

L. Brawley 등이다. 이런 사람들에 의하면 누가는 유대신학이 여전히 영 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아주 유대적인 교회에 속한 사람이다(김득중, 1991: 296).

저벨(J. Jervell)은 누가문서가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위해 기록되었 다고 한다. 그리고 누가의 공동체는 이방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 니라 “유대인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면서, 누가가 관심하고 있는 이방인은 결코 “이교도들”이 아니라 이방인들 가 운데 이스라엘과 율법과 회당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면서 아직 할례를 받지 않고 있던 고넬료와 같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 이다. 또한 누가가 이방선교를 성서에 나타난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과 그것의 성취라는 제한된 범위에서 다루고 있다고 주장한다. 누가에게서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의 성취로 인해 구원을 유대인들과 함 께 나누게 되는 것이며 이러한 이방선교는 경건한 유대인들의 회심을 통 한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전제조건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는 것이다. Brawely도 누가문서가 반 유대적이며, 친 이방적인 문서라는 점에 대해 이론을 제기하고 있다(299).

한편 에슬러(P. F. Esler)는 그의 새로운 연구 「Community and Gospel in Luke: The Social and Political Motivations of Lucan Theology」에서 누가가 주로 이방인들을 상대로 기록하고 있다는 일반 적인 견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며 “누가 공동체 안에 있는 대부분의 이 방인들이 우상숭배로부터 개종한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이전부터 유대교 회당과 연관되어 있던 사람들”이라는 전제 아래 누가공동체는 이방인들 만이 우세했던 공동체가 아니라 이방인과 유대인이 모두 지배적으로 존 재했던 공동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누가복음 안에서의 공동체의 구 성과 복음의 대상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단 편적인 연구들과 주석서를 통하여 누가복음에 대한 연구, 특히 공동체의 선교에 대한 관심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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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누가 공동체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는 친 유대적이라는 주장들과 누가의 기록 대상이 이방인들이라는 견해들이 맞서고 있다. 그 러나 누가공동체의 규모나 그 공동체가 설정해 놓은 선교적 대상의 범위 와 그 특성을 살펴봤을 때 누가공동체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모두 포함 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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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누가공동체의 삶의 자리

복음서에 있어서 그 공동체의 역사적 배경이나 삶의 정황을 연구 하는 것은 복음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현대 성서해석은 성 서문헌의 사회적 맥락이나 사회적 조건 또는 그 “삶의 자리”를 규명하려 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예수의 본래적인 말씀은 교회공동체의 전승과정 에서 변형되고 그 전승의 변형과 공동체가 처한 제반 사항은 매우 밀접 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약성서 본문에 나타나는 사상들이나 행위들을 그 본문의 배후를 이루고 있는 팔레스타인이나 로마제국 사회 라는 폭넓은 준거 틀 속에서 위치시키거나, 원시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라는 보다 구체적인 작은 단위의 사회적 준거 틀 속에 위치시킨 채 해석 하려는 하나의 전망 혹은 상상력의 한 형태인 사회학적 신약해석의 관점 에서 볼 때에 배경과 정황에 대한 이해는 복음서의 해석의 필수적인 과 제인 것이다.

이러한 해석 방법은 다른 복음서들보다도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 과 관련된 자료들이 풍부한 누가복음에 있어서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한 다. 따라서 누가공동체의 동시대적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과 누가공동 체가 직면한 종교적 문제를 파악하는 일은 누가공동체에 대한 올바른 이 해에 있어서 선행되어야 할 작업이다.

A. 누가공동체의 역사적 배경

1. 정치적 상황

누가공동체가 처한 역사적 배경을 아는 일은 누가복음의 기록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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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관계되어 있다. 기록시기에 관하여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우선 누 가가 마가(주후 65년경)보다 늦게 쓰여 졌을 것이라는 것이 학설로 받아 드려지고 있음을 볼 때 주후 65년 이후일 것이다. 누가복음에서 예루살 렘 포위와 주후 70년경의 성전 파괴를 알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생 각해 보면(눅 13:34-35, 19:41-44, 21:20-24) 최소한 주후 70년 이후로 보 는 경우도 가능할 것이다. 누가는 예루살렘 멸망 직후의 세대가 가졌던 교회관과 신앙관의 제도화, 신학화된 후기 시대를 반영하는 기록들을 볼 때 기록 연대를 85년경으로 볼 수 있다(Perrin et al., 1996: 456). 그밖에 일부학자들은 더 늦은 시기와 좀더 이른 시기로 보고 있지만 이상의 결 과를 추론해 볼 때 약 주후 65-110년경으로 볼 수 있으며, 좀더 좁힌다 면 70-80년대 후반 경으로 볼 수 있겠다.

이 시기는 세계의 지배자로 부상되었던 로마제국이 “로마의 평화 (PAX ROMANA)”와 안보를 위해 무력으로 식민지를 통치하던 시기이 며, 이스라엘 민족이 로마 제국에 의해서 압박을 받았던 시기로써(눅 2:1) 아구스도 황제의 등장과 디베료 황제(눅 3:1), 글라우디오 황제(행 11:28, 18:2), 가이사(행 25:12, 21), 수리아의 총독 구레뇨(눅 2:2),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눅 3:1, 23:1; 행 4:27), 총독 서기오 바울(행 18:12),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행 23:26), 백부장 고넬료(행 10장)등의 등장 으로 로마의 통치가 이루어졌던 시기이다.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견고한 조직의 로마제국은 군사적, 폭력적 방법으로 지중해 연안의 여러 나라들 을 강압적으로 점령하여 통치하고 있었다. 이러한 로마제국의 무력적 정 복은 정치적 종속으로 주변국들을 속국으로 전락시켰으며, 이러한 정복 은 곧 착취와 수탈로 이어졌다(Wengest, 1987: 27). 이러한 정치적 상황 에서 갈릴릴 지역의 사람들은 예루살렘 지역의 사람들보다 더 심하게 로 마로부터 침탈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갈릴리 사람들을 침탈하고 착취하 는 것은 로마뿐 아니라 예루살렘의 부자들과 귀족들과 종교가들이었다2)

2) 당시 로마 체제에 협력하여 권력과 부를 누렸던 예루살렘의 헤롯 당원들과 보수 귀 족 계급인 사두개파 사람들은 산헤드린의 의결권을 가지고 있었고, 유대의 각 지역으 로부터 예루살렘 회당을 유지하기 위한 성전 세를 거두어들임으로써 권력과 부를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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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sidy, 1983: 144-147). 이처럼 불안한 정세 속에서 이중 삼중의 억압 과 착취를 받으며 해방을 갈구하던 백성들과 또한 권력과 부를 누리는 귀족층 그리고 로마와의 정치적 갈등, 그리고 패망해 가는 예루살렘의 위기 속에 있었던 정치적 상황은 누가 공동체의 삶의 자리였다.

2. 경제적 상황

1세기에는 어떤 도시나 지방 정부이건 전 인구의 약 1%에 해당하 는 소수의 부자들이 전 도시 혹은 지방 재산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었 다(김경진, 1998: 112).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로마 세계의 고대 사회는 특별히 그 사회의 엘리트 그룹을 위하여 만들어졌던 사회인 반면에 사회 의 나머지 계층은 특권층이 그 삶을 편리하게 향유할 수 있도록 돕기 위 한 존재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고대의 어느 사회건, 지방이건 간에 그 행정 및 운영에 있어서 부자들이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클 수밖 에 없었다. 특히 국가적인 재난이나 재해 위기 상황에서 시나 지방 정부 는 공동체 내의 부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부자가 물질적으로 도와주 면, 정부는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기념비를 만들어 부자들에게 명예 를 그 대가와 보상으로 선사했다고 한다(113).

1세기의 사회, 경제적 형편을 분석한 학자 가운데 C. C. McCown 은 팔레스타인의 비농업자원과 상업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체 경 제적 성장에는 도움을 주지 못했고 다만 농산물의 생산성에 의하여 수확 량은 팔레스타인 전체인구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고 지적하며 따 라서 많은 인구가 가난한 상태나 궁핍 속에서 살았다고 말하고 있다 (McCown, 1962: 637).

렸다. 이들은 갈릴리 사람들을 “이방의 갈릴리인”이라고 하여 인사는 물론, 말도 걸지 않았다. 갈릴리 사람들이 로마 사람들에게 착취당한 것 보다 예루살렘 부자들에 의해 멸시 당하고 있었고,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 하나에만 마음이 있었을 뿐 대중적인 인 기에는 관심이 없었고, 또한 추종 세력도 없었다(Cassidy, 1983: 144-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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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밖의 이러한 사회경제적 상황은 교회 내에서도 유사했을 것 이다. 바로 누가가 다른 복음서 기자들에 비해 소유와 재물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은 이유가 될 것이다. 경제 문제에 관한 누가의 민감성은 그가 경제생활과 직접 관련된 소유와 재물에 대한 자료들을 많이 수집하여 소 개하는 데서 드러나고 있다. 경제생활과 관련하여 소유와 재물 사용에 대한 교훈들이 누가복음에서는 주로 누가의 특수 자료들에 속하는 것이 기 때문에 누가에게 있어서 그런 문제 곧 경제적 문제, 특히 돈과 재물 의 올바른 사용 문제가 중요 관심사였던 것으로 사려 된다.

누가의 경제적 관심은 나사렛 예수의 첫 설교(눅 4:16-21)에서부터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즉 마태와 마가보다 훨씬 사회에서 가난한 자들 의 상황과 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먼저 누가는 지적하고 있다.3) 어수선 하고 어지러운 사회경제 상황은 복음서의 여러 부분에서 나타나고 있다.

세리들의 횡령(눅 3:13), 세금의 착취(눅 19:2),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눅 16:19-21) 억울한 과부(눅 18:2-5)와 동전 몇 잎으로 살아가는 과부의 구 차한 삶(눅 21:1-4), 병자들, 과도한 이자(눅 16:1-8) 등은 이러한 사회 경제적인 상황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이러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서 기 독교의 복음 선포는 일차적으로 로마제국의 지배하에서 이득을 보았던 부자들보다는 종속되고 억압받던 가난한 자들에게 오히려 절실했을 것이 다.

당시 로마 지배하에서 로마 제국 영향력 안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대략 4만명 정도로 추산되며 이들 중에 67년 로마 시내에 있었던 기독교 인의 수는 천명 정도에 육박하였다고 한다(Reicke, 1986: 319). 제국내의 기독교인들은 대부분이 가난한 상공인들이나 농부였으며 노예들도 상당 수 있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그 당시 도시 사회에 존재했던 거의 모든 사회계층 사람들을 포괄하고 있었는데 이들에게는 사회적 상승 경향이 나타나 결국 약간의 상류계층에 속하는 교인들과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 이 섞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

3) 눅 4:16-21. 예수님의 이 첫 설교가 누가복음에서만 나타나고 마가나 마태에는 없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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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공동체는 관리나 장교계급, 황실과 관련된 사람들과 같이 부 유한 사람들과 이와는 반대로 유리하고 굶주리는 빈곤한 자들이 공존하 는 공동체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계층 간의 부조화로 인하여 누 가는 빈부주제에 대한 메시지를 고려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가 난한 사람들의 극심한 궁핍과 부자들의 사치스런 생활의 공존, 지위나 계층적 특권에 부를 누리는 계층과 세금과 착취에 의해서 굶주리고 헐벗 어 가고 있는 계층의 대립 감정, 이러한 공동체를 위협하는 빈부의 부조 화와 위화감과 긴장은 공동체의 존립의 기반을 허물 위험을 내포하고 있 었다고 추정된다(Theissen, 1986: 63).

이처럼 공동체 내의 시급한 문제에 대한 하나의 처방과 교훈으로 예수님의 재물에 대한 말씀과 기사들을 누가는 자신의 복음 속에서 빈부 주제로 형상화하였다. 이러한 누가의 교훈은 누가의 공동체에는 기독교 인이 살아가기에 힘든 그 당시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었다(168).

3. 사회적 상황

마틴 헹겔(Martin Hengel)은 이미 기원전 3세기 중반부터 팔레스 타인 유대교(Palestinian Judaism)와 헬라 유대교(Hellenistic Judaism) 사이에는 의미 있는 구별이 없다고 주장한다(Hengel, 1981: 107-175). 오 히려 이미 그 때에는 헬레니즘이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 든 상태였 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은 그 외양에 있어 디아스포라의 형제, 자매들과 거의 다를 것이 없었으며, 그들의 생활 속에는 헬라의 경제적, 행정적, 문화적 영향들이 깊이 침투해 있었다는 것이다. 헹겔은 팔레스타 인 유대교와 헬라 유대교를 구분하지 않는다. 디아스포라 유대교 공동체 들에게 발견될 수 있는 특별한 경향은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이 유대교의 특정한 면들, 특히 유대교의 엄격한 일신론과 강한 윤리적 기준들에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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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을 느껴 많은 도시들에서 헬라인과 로마인들을 포함하여 많은 비유대 인들이 꾸준히 회당 예배에 참석하고 마침내는 유대인 공동체와 접촉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촉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스스로 모 든 율법을 지키겠다는 서약과 함께 유대교 개종자로 들어가는 경우와 흥 미로 회당 예배에 자주 참석하면서 유대인들과 느슨한 관계를 가지는 경 우이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들이 후자의 범주에 들어가고 유대교 공동체와 비슷한 것으로 여겨졌던 기독교 공동체로도 이들과 같은 범주의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들이 유입되었을 것으로 여겨 진다(Osiek, 1996: 34-36).

예수 당시의 갈릴리는 인구 밀도가 높고 소득이 높은 지역이었으 며 상업과 어업도 번창하였다. 누가에 훨씬 앞서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 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다(갈 3:28)”고 지적하고 있는 데 아마도 그 시대에 이미 유대인과 이방인, 노예 계급과 지배계급, 남자 와 여자간의 차별과 갈등이 적지 않은 사회 문제로 대두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커다란 문제로 등장되었을 때에 바 울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그런 문제로 해결의 열쇠가 됨을 말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 우리의 소망”이란 말이 그 당시 사회에 던져 진 소망의 메시지였을 것이고, 누가의 문서에서 오히려 사회적인 문제들 에 대한 관심이 다른 어떤 신약성서들보다도 더 분명히 그리고 더 강하 게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김득중, 75).

유대 사회 안에서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바리새인들과 같은 훌륭한 종교인들과 다른 한편으로 백성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던 “세 리와 죄인들” 같은 소외 계층들 간의 양극화 현상은 상당히 심각했던 것 으로 보인다. 누가는 이러한 소외 계층에 대한 그릇된 편견과 갈등 속에 서는 사회적 평등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화합과 계층 간의 갈등해소에 많은 지면을 할애 한다. 누가가 계층 간의 화합과 평등 을 주장하는 것은 예수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 살았고, 그들을 위해 일하고 죽었을 뿐 아니라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 아브라함의 자녀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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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아 사회의 일원으로 용납이 되어야만 사회 전체의 평화가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76-80).

누가는 여인들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데 당시 유대 사회에서 그리고 초대교회에서 사회적으로 완전히 소외 된 존재인 여성 에 대하여 하나님의 선한피조물로 그리고 남자의 선한 파트너로 창조되 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사회에만 아니라 희랍과 로마 사회에서 남자와 똑같이 인간적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남녀평등 혹은 여권 등은 감히 상 상하기 어려운 상황의 사회였다(86-91). 누가는 당시의 여인문제에 대해 서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성차별에 대해서도 강력한 발언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사마리아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 누가는 신약성서 기자 중에서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다(Jervell, 1972: 113). 누가는 마태복음 10: 5-6 절4)에 나오는 것과 같은 선교명령이 생략되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마 리아인에 대해 우호적이며 긍정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누가가 사마리 아인에 대해 갖는 긍정적인 관심은 다른 복음서 기자들과는 달리 누가만 이 사마리아인에게 관계된 이야기들을 여러 개 전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서 엿 볼 수 있다(김득중: 92-101). 그렇다면 왜 누가만이 사마리아인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쪽 유대인과 북쪽 사마리아 인 간의 묵은 감정적 대립5), 곧 지역감정이 사회의 평안을 깨뜨리고 있

4) 마 10:5-6: “5)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5) 구약성서에서 유일하게 사마리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열왕기하 17장 29절에서 볼 수 있다. 첫째는 솔로몬 왕이 죽은 이후에 히브리왕국과 남왕국 유대와 북왕국 이 스라엘의 분열에서 서서히 나타나고 있으며, 둘째는 주전 제 6세기경 바벨론 유배당 하면서 주전 587년 시대에, 셋째로 주전 4세기에 와서, 넷째로 제 2세기에 와서 유대 인들은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로 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으면서, 다섯째 주전 제 1세 기에 로마 시대에 와서 폼페이가 사마리아를 포함해 여러 성읍을 재건하면서, 여섯째 주후 6-9년 사이 유월절의 한 밤중에 어떤 사마리아인들이 죽은 사람들의 뼈를 예루 살렘에 있는 성전 뜰 전체에 뿌림으로 해서, 일곱째 로마 총독 꾸마누스(48-52)시대 에 갈릴리와 사마리아 경계에 있는 사마리아 평야에 위치한 게마 마을에서 그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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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때에 누가는 이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주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에 대해 갖는 그릇된 편견 때 문이었다. 그래서 누가는 이 그릇된 편견을 깨드리기 위해 사마리아인들 을 보다 훌륭한 사람들로, 그리고 다른 유대인들과 똑같이 대우하고 평 가해야할 사람들로 부각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누가는 가난한 자들, 여자들, ‘죄인’들을 소외자들로 언급하며,이와 관련된 구절들은 거의 우호적으로 언급되어 있다.6) 이들은 약자라는 이 유만으로 ‘구원받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그런데 누가는 이와 같은 사회 적 상황에서 약자로 취급되는 이들을 위한 윤리를 자신의 선교론과 종합 시킴으로써 약자들을 위한 선교 신학을 전개한다.

4. 종교적 상황

공동체 안의 상황 가운데 지연되는 파루시아에 대한 문제가 있었 다. 한스 콘첼만(Hans Conzelmann)은 누가 신학에 대한 그의 고전적 종 합(Synthesis)에서 복음서 저자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대한 문제가 파 루시아(parousia)의 역사적 지연7)인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이미 지적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유월절을 지키러 올라가는 유대인 일행 중 한 사람을 살해한 사건에서 벌어 졌다. 이러한 사건들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을 서로가 서로를 용납 할 수 없는 미움과 증오의 대상으로 더욱 부각시켜 놓았다(김득중: 92-95).

6) 참조: 6:20-23; 7:18-23; 13:33-34; 14:12-14, 15-24; 16:19-31; 18:18-23; 19:1-10;

21:1-4. 여자들에 관한 구절들: 1:39-45, 45-55; 2:36-38; 7:11-17, 36-50; 8:1-3;

10:38-42; 11:27-28; 13:10-17; 15:8-10; 18:1-8; 21:1-4; 23:27-31, 44-49, 50-56;

24:1-12. 죄인들에 관한 구절들: 5:27-32; 7:34; 7:36-50; 13:1-5; 15:3-7; 15:8-10, 11-32; 19:1-10; 22:61-62; 23:39-43.

7) 예수의 파루시아 지연에 대한 신학자들의 주장:

피츠마이어(Fitzmyer, 1986: 231)는 누가의 종말론에 관해 누가 신학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왜냐하면 누가-행전에는 종말에 대한 단일 한 견해가 나타나기 보다는 다양한 견해가 복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틸(Mattil, 1979: 41-45)은 누가의 종말론에 관해 누가가 종말을 역사화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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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Powell, 1995: 64). 즉 누가공동체의 직면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공동체 안의 상황 가운데 지연되는 파루시아에 대한 것이었다(김득중, 1992: 102).

지연되는 종말의 문제는 누가 뿐만 아니라 1세기 후반에 기록된 모든 문서들의 저자들이 직면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예수는 물론 초대 기독교인들은 모두 자기들의 시대가 이 세상의 종말의 시대라고 믿었고, 그래서 임박한 종말 사상을 갖고 있었다. 마가복음 9:1에 보면 예수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다.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평행 마태복음 16:28에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라고 말한다. 단지 마태 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 대신에 “인자(人子)”가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의 임박한 도래에 직면하여 빌립보 인들이 기뻐할 것을 촉구하며(빌 4:4-5), 때가 얼마 남지 않음을 상기시키고(고전 7:29), 곧 일어날 죽은 자들의 부활과 산자들의 변화를 가르친다(고전 15:50).

즉 초대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죽기 전에 예수께서 다시 인자와 심판자 로 재림하시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여 이 세상에 마지막이 올 것으로 믿 었다. 다시 오시리라는 예수의 말씀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고 있었다. 그 런데 예수 주변에 있었던 제자들과 증인들이 하나씩 죽어감에 따라서 종 말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신 앙과 복음의 메시지를 위협하게 되었다. 신앙적인 동요와 위기가 생겨나

지연된 것으로 보지 않고, 행 17:31을 근거로 오히려 종말이 임박한 것으로 보았다.

엘리스(Ellis, 1972, 11-20)는 누가의 종말론이 미래적 종말론과 실현된 종말론으 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윌슨(Wilson, 1976: 336)은 임박한 그리고 지연된 종말론을 주장한다. 이러한 그 의 두 가지 차원의 주장은 누가의 목회적 정황에서 출발한다. 그의 주장은 누가의 종 말론을 단순히 한 가지 견해에서 보려한 학자들보다 훨씬 설득력을 갖는다. 왜냐하면 누가는 단순한 한 가지 문제에 직면하여 그의 글을 적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다양한 여러 가지 문제들에 직면하여 글을 쓰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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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된 것이다(차정식 외, 2002: 260). 만일 예수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다른 기독교 신앙도 거짓일 것이다.”라는 기독교 신앙의 존폐 위기에 몰리게 될 것이 분명했다.

누가는 예수가 메시아였다면 그가 비록 승천하였더라도 곧 오셔야 만 하는데 재림이 기대했던 대로 오지 않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향하여 신앙적인 해답과 지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누가는 파루시아에 대한 해결 방법으로 하나님 나라가 그리고 종말이 곧 임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는 것, 즉 임박한 종말의 기대를 먼 미래로 연장 시키는 것이었다. 즉 임박한 종말 기대 가운데서 미래와 하늘에만 관심 을 집중시키고 있는 초대 교인들의 관심을 현제와 이 땅으로 돌려놓는 것이었다. 종말이 오기 전에 먼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눅 19:11, 21:9). 누가는 파루시아를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니 라 종말론적 인식을 새롭게 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즉 파루시아에 대한 기대보다는 다른 차원으로의 사명을 가지게 만든다(Nickle, 1994:

180-181). 그래서 누가는 종말을 먼 미래로 유보시키고 그 미래를 하나 님의 권한으로 남겨두고 먼저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행 1:7-8).

B. 누가공동체의 사명

1. 평화

누가의 중요한 신학적 관심사중의 하나는 평화(εἰρἠνη)이다. 다른 복 음서와 비교해서 누가는 ‘에이레네’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평화’란 마가복음에서 1번, 마태복음에서 4번,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6번 사용되고 있는데 누가복음에서는 14번,8)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7번9)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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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 번역된 ‘εἰρἠνη-로마의 평화(Pax Romana): 법적인 안정을 의미’가 누가복음서 안에서 다양한 용어로 여러 차례 사용되었음을 볼 때 누가공 동체를 향한 평화의 요청이 간절했음을 볼 수 있다.

특별히 누가는 복음서 서두에서 예수의 공생애 활동을 예고하면서 장차 예수가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하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눅 1:79)”고 말한다. 그 리고 예수의 선교여행 중 선포한 평화의 복음은 특히 죄인과 희망 없는 병자와 같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차적으로 주어진다. 감사의 눈물을 흘 리며 당신께 극진한 사랑을 보인 죄인인 여인에게 예수는 구원을 확인시 켜주면서 평화의 인사를 보낸다(눅 7:50). 열두 해 동안 혈우병에 걸려 신음하는 여인, 따라서 출산도 못하고 사람들로부터 부정을 끼치는 사람 으로 소외시 당하던 여인을 고쳐주면서 예수는 같은 구원의 확신과 평화 의 인사를 보낸다(8:48). 마침내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시작하신 선교여행 을 끝 마무리지을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군중들의 입에선 “찬송하리로 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 광이로다(19:38)”는 찬송이 터져 나온다.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의 탄식도

“네가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19:41-44).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처음으로 하신 것 도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것이었다(24:36). 여기서 평화란 하나님께 뿌리 를 둔 ‘인간의 전체적인 안녕과 구원’을 뜻한다. 또한 구약성서의 샬롬에 서처럼 누가의 평화개념 속에도 사람들 사이의 화평(14:32), 안정과 같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가치들이 포함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누가가 이해 한 예수는 로마의 평화를 위협하기에 충분한 말씀과 행동을 서슴지 않았 다.

마리아의 노래는 “권세 있는 자들을 권자에서 내치시고 비천한 이 들은 들어 올리셨도다 배고픈 이들은 좋은 것으로 채우시고 부유한 자들

8) 1:79; 2:14,29; 7:50; 8:48; 10:5,6; 11:21; 12:51; 14:32; 19:38,42; 24:36. 이중에 6번이 누 가 특수자료 이다.

9) 7:26; 9:31; 10:36; 15:33; 16:36; 24:2

(33)

은 빈손으로 떠나보내시는(1:52-53)”분으로 예수를 소개한다. 예수의 나 사렛 첫 설교는 이사야 61장의 내용을 자신의 사명에 결부시키면서 가난 한 사람들, 묶인 사람들, 억눌린 사람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데 이는 힘 있는 사람들, 자유시민들, 부자들에 의해 유지되던 로마제국 의 지배체제에 역행하는 처사이다(4:18-19). 예수는 가난하고 억눌린 자 들의 편에 섰다. 부자들을 비판하고(6:24-25), 제물 축적의 위험을 경고 하며(8:14; 6:15; 6:19-31; 18:24-25; 21:1-4), 부자들에게 가진 것을 없는 자와 나누라고 촉구하였다(12:32-34; 16:9; 18:18-23). 사회적으로 천대받 는 여인들, 윤리적으로 멸시 당하던 죄인들도 예수의 특별한 관심과 자 비를 불러 일으켰다. 예수는 억압과 불의를 거슬러 말씀하시고 행동한다 (18:1-5; 20:45-47). 동시에 그는 무력과 폭력을 반대하며(13:1,13;

19:45-46; 22:47-51), 봉사와 겸손에 바탕을 둔 사회를 이루고자 애썼다 (9:47-48; 14:7-11; 17:7-10; 20:46-47).

예수의 이와 같은 태도는 막강한 군사력보다 큰 폭력에 의지하고 있는 로마제국과 그 정치권력의 근원적 기반을 뒤흔들게 될 것이다. 예 수는 결국 백성들을 선동했다는 명목 하(23:5)에 정치범에게만 해당되는 십자가형에 처해지도록 고소당한다(23:23). 누가는 복음서를 편집해 나가 면서 예수의 탄생부터 예루살렘에 이르는 공생애 전 과정 속에서, 예수 는 평화를 위해 오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누가의 후속편인 사도행전 에 까지 이러한 사상은 확장되어 예수를 만민의 주로써 이 복음을 평화 의 복음으로 확대 전파 하였다(김득중, 186).

이방인에 이어 누가는 가난한 자와 죄인들에게 까지도 구원의 대 상이 됨을 말한다. 나사렛에서의 예수의 설교의 첫 주제는 “주의 영이...

내게 기름을 부으심은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했다는 주장 이다. “가난한”이란 말은 누가복음서의 전편에 걸쳐 반복해서 나타난다.

누가는 만찬회의 비유에서 원래 잔치에 초대받았던 사람들이 초대를 거 부한 후에 그 잔치에 나오게 된 사람들을 “가난한 사람들과 불구자들과 맹인들과 절뚝발이들(눅 14:21)”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초대는 장차 올 새 시대의 기쁨에 동참하라는 복음의 초대의 상징이다. 원래 그 잔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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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되었던 유대인들은 그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제 초청은 버림받은 자들에게 돌아갔다.

누가는 하나님이 단지 자기에게서 소외된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죄 인된 사람들을 용서하기를 원할 뿐 아니라, 계약 백성의 테두리에서 제 외된 유대인이든, 하나님의 계약에 참여할 기회가 없었던 이방인이든, 그 누구라도 자기로부터 떨어져 나간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누가 공동체는 여러 그룹이 속해있으며 그들은 공동체 안에서 많은 갈등을 겪고 있음을 누가복음을 통해서 간접 적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이 다양한 누가공동체 안에서의 갈등을 극복 해야 한다는 굳은 의지가 누가의 신학 안에 표현되어진다. 누가는 예수 를 통해서 공동체의 갈등이 극복되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했고, 예 수가 누가복음에서 보여준 중요한 주제중의 하나는 평화였던 것이다. 이 제 누가는 그들이 모든 구원의 대상임을 밝히고 그들이 하나로 화합되어 지는데 그 공동체의 사명이 있음을 알 수 있다.

2. 복음전파

이 부분은 다른 복음서에서도 공통적으로 가지는 주제이며 복음서 의 핵심이다. 하지만 누가복음서는 만민의 구주의 복음10)을 강조한다.

이것은 시므온의 찬송에도 잘 나타나 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 니.”(눅 2:29-32)

시므온은 기사 속에서 시므온은 경건한 사람으로 이스라엘의 희망 10) 눅 8:43-48; 17:11-19; 18:15-1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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