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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들에게만 있었던 것도 아니며 누가공동체는 두 그룹 혹은 두 계층을 모두 포함한 큰 규모의 평화스러운 공존을 모색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누가의 근본적인 의도 중 하나는 그 공동체의 가난한 멤버나 부유한 멤 버가 모두 선교적 목적 아래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들로 하 여금 깨닫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서중석: 218).

공동체를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 “누가가 유대적 요소가 지배적인 마가 자료와 Q자료로부터 유대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은 그의 작품이 이방 크 리스천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설명해 준다(58)”는 것이다.

그는 예수의 말씀이나 이야기 가운데 어떤 종류들은 팔레스타인적인 전 승을 비유대적이고 헬라적인 상황에 적용시키기 위한 누가의 편집적 수 정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 걸음 더 나가서 누가가 염두해 두고 있는 독자들은 유대적 배경 속에 있는 이방인 크리스천들이 아니라 오히려 주로 이방적인 배경 속에 있는 이방인 크리스천들이었다고 주장 한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 에슬러는 이상의 특징들이 그 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그는 누가공동체를 유대인 과 이방인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복합적인 공동체로 보는 둘째 가설을 지지한다. 그는 “누가 공동체 안에 있는 대부분의 이방인들은 우상 숭배 로부터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아니고 이미 이전부터 유대교 회당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Esler, 31)”이라는 전제 아래 누가의 공동체는 이방 인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로 구 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에슬러의 혼합된 공동체를 받아들이면 서 레인(T. J. Lane)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누가의 청중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누가의 작품에 있어서 두 가 지 요소, 누가의 이방인들에 관한 관심과 유대인들에 관한 관심 을 고려해야 한다. 누가가 대부분 이방인들이지만 상당한 비율의 유대인들도 포함하고 있는 청중을 위해서 썼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최근에 누가의 유대적 문제에 관한 관심이 제기 되었기 때문에 그가 왜 유대인에 관한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지 에 대한 고려 없이 이방인들을 위해서 썼다고 주장하는 것이 어 렵게 되었다.”(Lane, 1996: 194)

누가공동체가 이방인 크리스천과 유대인 크리스천이 혼합된 공동

체였다는 것은 누가가 예수를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의 구원자로 드러내 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누가복음 2:31-32에서 시므온은 어린 예수를 안 고 ‘이는 모든 백성들(πάντων των λαων)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사 람들(ἐθνων)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λαου σου ʹΙσραήλ)의 영광’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모든 백성의 범주 안에 이방 사람들과 이스 라엘을 함께 포함시키는 것으로, 누가는 예수의 사역이 시작하기 전에 이미 예수를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자로 드러낸다. 누가복음 3:5-6에서 도 “모든 육체가(πασα σὰρξ)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의 나사렛 회당에서의 설교, 취임설교로 불리우는 이 설교에서 예수는 자신을 배척하는 고향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역의 성격을 설명하 고 있다. 예수는 엘리야, 엘리사, 사렙다 과부, 나아만 이렇게 네 명의 인 물에 대해 언급한다(눅 4:25-27). 엘리야와 엘리사는 유대인이고,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이 이방인이라는 점은 누가공동체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 로 이해 될 수 있다.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은 이방인들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으나, 기근으로 인해서 굶어 죽게 된 사렙다 과부는 가난하 였고(왕상 17:12) 아람 왕의 군대 장관이었던 나아만(왕하 5:1)은 부자였 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발견된다.22) 이러한 차이점은 누가공동체 내의 이 방인 크리스천들이 사렙다 과부와 같이 가난한 자들과 나아만과 같이 부 유한 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이 함께 공존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게 만 든다. 결과적으로 누가는 예수의 사역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취임설교 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부자와 가난한 자 등 사회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골고루 등장시켜 거론함으로써 누가공동체가 어느 특정한 한 부류의 사 람들에게만 제한되지 않고 사회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22)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 그리고 엘리야와 엘리사는 여자와 남자로도 구분할 수 있다.

세 명의 남자들 가운데 한 명의 여자인 사렙다 과부가 남자들과 함께 소개된 것은 누가복음에서 보이고 있는 여성에 대한 관심과 부합하는 것으로 누가공동체가 유대 인과 이방인, 부자와 가난한자 뿐 아니라 남자와 여자 모든 계층의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피츠마이어와는 달리 누가공동체가 주로 유대인들로 구성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저벨(J. Jervell)이다. 그는 누가-행 전이 유대인 크리스천을 위해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곧 할례로부터의 자유를 시작으로 전개시켜 나간 이방 선교의 정당성을 누가 기자가 장황 하게 설명한 것은 유대인 크리스천을 설득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누가공동체가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God-Fearers)’로 구성되었으며, 순수한 의미의 이방인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Jervell, 1972: 41-49). 그러나 이에 대하여 샌더 스(J. T. Sanders)는 누가-행전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과 이방인들 을 동일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누가복음 12:30에 “세상 백성 들”이라는 언급이 있는데 여기의 세상 백성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과 동일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사도행전의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라고 언급되어 있는데 저벨의 주장대로라 면 누가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가운데 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이것 역시 문제가 된다고 주장한다(Sanders, 1991:

446-448). 오히려 누가의 이중적인 선교 전략은 누가공동체 내에 공존하 고 있었던 두 주요한 인종적 그룹들에 대한 누가의 균형 잡힌 관심으로 설명될 수 있다(서중석, 221). 곧 누가공동체가 유대인 크리스천들과 이 방인 크리스천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고 보는 견해가 그 중 어느 한 그룹만으로 구성되었다고 보는 견해보다 누가공동체의 규모나 그 공동체 가 설정해 놓은 선교적 대상의 범위와 그 특성에 한결 걸맞은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Ⅳ. 누가공동체의 선교적 역할

위에서 언급한 대로 누가공동체 내부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누가복음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공동체는 누가의 관심의 대상들이었던 소외된 자들로부터 권력자들까지, 가난한 자들로부터 부자들까지,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들까지 어느 그룹에도 치 우치지 않은 다양한 대상들을 공동체 멤버로 삼고 있으므로 그들의 그룹 은 거대한 공동체, 포괄적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다. 누가공동체는 전환 기적 공동체였으며, 그 공동체는 복음을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 으로, 모든 족속에게(눅 24:47) 전파하려는 선교적 전략과 범위의 결과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포함하게 되었다. 이러한 누가공동체의 다양하 고 복잡한 상황, 상이한 요소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차별이 없는 보편적 인 포괄적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선교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증언자들이 필요했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