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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제자들-넓은 의미로서의 제자들

A. 조직적 구성

3. 기타 제자들-넓은 의미로서의 제자들

누가에게 있어서의 “제자들”이란 특히 누가가 “그 제자의 허다한

18) 누가복음에 나타난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의 우주적인 확장인 것이다. 즉 복음의 메시지가 모든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한 본문은 매우 풍부하다. 3:23-38(마태와는 달리 예수의족보가 인류의 조상인 아담에게 까지 소급되어 올라가고 있음), 3:12-14(이방인 군인들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음),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관심(9:52; 10:29-37; 17:11-19), 2:14(온 인류에게 향한 천사의 평화 메시지), 2:32(시므온은 예수가 이방인들을 위한 빛이라고 말함), 3:4-6(세례 요 한에 대해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며 말 함), 구약 성서로부터의 비 이스라엘인에 관한 일담 두 가지(사렙다 과부와 수리아 사람 나아만의 이야기, 4:25-27)등을 참조하라(Hoerber, 1994: 67).

무리”(6:17)란 말까지 사용한 점 등으로 미루어 마가나 마태의 것보다 훨 씬 규모가 큰 그룹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가 이렇게 예수의 제 자들을 크게 확장하고 있는 이유란 무엇일까? 서중석 교수는 이에 대해, 숫자상으로 급격히 늘고 있는 자신의 공동체 멤버들로 하여금 과거의 그 러한 제자들과 일치시키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즉 과거의 제자들은 자 신의 당대 공동체의 모델 그룹으로 설정하기 위한 것이란 주장이다(서중 석: 213). 다른 복음서 기자들도 물론 그렇지만, 누가도 예수의 이야기를 과거의 이야기로 그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자신의 현재적 관심사 에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당시에 열두 제자들, 칠십 인의 제자들, 그리고 갈릴리로부터 온 다수의 여인들이 예수를 따르며, 여러 방면에서 예수의 사역을 도왔 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을 듣고 따랐던 군중들이나, 예수 주위에 간헐적 으로 등장한 무리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여야 하는가? 예수의 말씀 을 듣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 소위 제자들이라 호칭되던 사람들을 두 부 류로 분류할 수 있는데 하나는 예수의 메시지를 듣고 그 메시지를 받아 들이되 자기네들이 사는 곳에 머물면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던 사람들 을 말하며, 다른 하나는 이와는 상반되는 예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를 좇은, 그래서 예수가 책임을 져야하는 제자들이다. 어떤 이들은 실제적으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참 제자들로 분류하기도 한 다. 그 대표적인 학자가 타이센(Gerd Thissen)과 같은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초기 연구서에서 그 당시 예수 앞에 있었던 사람들을 ‘놀라운 기 적을 행하는 사람들(제자들)’과 ‘동조자들’로 분류하여 기타 지역 사람들 과 구별을 한다. 타이센에 의하면 두 그룹 모두 예수 운동의 사회적인 조직의 일부이지만, 제자들이란 예수의 근본적인 윤리를 주의해서 지키 는 자들이요, 반면에 동조자들이란 그들이 속한 사회에 지속적으로 머물 러 있으면서 예수의 근본적인 윤리와 타협했던 사람들이다(Theissen, 1978: 8-23). 그러나 타이센은 예수를 따르라는 부름을 받지는 않았지만 제자들이라 할 수 있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무리가 있었다는 증거를 간과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예수를 따라 다니면서 그와 생활하며 그의 지상 사역을 돕 는 일은 그를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아니었다. 그러 한 특권은 작은 그룹을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여기 에 대한 예로서 소개되는 몇 가지 사건을 볼 수 있다. 우선은 거라사 지 방의 귀신들렸던 사람들의 경우(눅 8:26-39)에서, 군대 귀신이 쫓겨난 후 거라사 사람들은 예수께 당신과 함께 있도록 해 주십사고 빌었지만, 예 수께서는 그를 돌려보내시며,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며 말씀 하신다. 그러자 그는 물러나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행하신 일을 온 고을에 선포한다. 아마도 이 사람은 열두 제자가 예수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그도 역시 제자가 되기를 소원 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 어떤 주석가는 예수께서 이를 통해 또 다른 제자의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한다.

“이 사람들은 자신에게 보여진 모형에 따라 제자도의 길을 걷고 싶어 했다. 그 결과 예수께서는 거절하지 않고 단지 그 방향을 돌리셨을 뿐이었다. 그 결과 예수께서는 유대 팔레스타인으로 돌 아가셨고, 이방인인 그도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자신에게 주었던 역사를 전파하기 위해서였 다.”(Nolland: 414-415)

아리마대 요셉은 또 다른 예(눅 23:50-54)이다. 이 사람은 예수의 사역 때 실제적으로 동행하였던 사람은 아니었으나, 예수의 제자가 되어 있던 사람으로서(참조. 마 27:57), 예수의 장사지내는 사건을 통해 볼 때 그는 계속해서 이스라엘 공회의 공회원으로 일하고 있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세리장 삭개오의 경우(눅 19:1-10)도 그렇다. 자신의 소유 절반 밖 에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은 것을 보면, ‘모든 것을 버리고 나 를 좇으라’는 부르심의 대명제에 위배되어 예수를 따르지 못했음은 자명 하며, 아울러 나머지 절반 가지고 자신이 처한 곳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며 헌신했음을 짐작케 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는 자는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될 수 있다”(참조. 눅 14:27)라는 말씀은 예 수의 제자로서의 초청이 “누구든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것으로 생 각해 볼 때, 여기서의 “예수를 따르다”는 것은 많은 군중이 스스로를 헌 신하기로 결심하고 자신들의 처지에서 예수를 따르는 행동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뜻도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예수의 공생애 활동 중에 누가는 8:1-3절에서 예수와 함께 동행하 는 여인들을 소개한다. 예수를 따르는 여인에 관한 이야기는 마가복음 15:40-41에 언급되었지만 그들은 누가에서 훨씬 초기에 소개되었고 누가 기자에게 있어 여성의 위치가 중요함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누가는 갈 릴리의 각 성과 촌을 두루 다니시면서 그와 여행하는 두 개의 집단을 언 급하는데 하나는 열두 제자이고 다른 하나는 악한 영을 쫓아냄과 병 고 침을 받은 어떤 여인들이다. 두 번째 집단에 나오는 여인 중에 세 명은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데, 막달라라고 불리우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이다. 그리고 많은 다른 여자들이 더 있 음을 언급한다. 이 본문을 통해 여성들이 예수의 선교여행에 함께 했으 며 그들의 소유로 다른 사람들을 섬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갈릴리에 서 예수를 따라 예루살렘까지 온 여인들이 예수의 십자가 곁에 서 있었 으며(23:49), 이들은 예수의 장례에 참여하였고(23:55), 예수가 부활했다 는 복된 소식을 처음으로 받은 것도 바로 이 여인들이었다(24:1-10). 그 들은 예수와 제자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뿐인 부수적 역할로 볼 수 없 다.

유대사회에서 비록 여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이 허락 되어 있기는 해도 여인들이 랍비의 제자가 될 수는 없었다는 사실을 볼 때 전도여행을 다니던 예수의 일행 가운데 여인들이 있었다는 것은 놀라 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누가에게서 예수의 공생애 활동의 목적 가운데 이처럼 여인들도 예수의 교훈과 병 고침으로부터 치유함을 받은 것이었다. 그 여성들은 예수의 사도이며 위임을 받은 사람이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기사로서 여성이 예수와 그리고 제자

들과 함께 동행함으로 제자직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여인 의 전통적인 역할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섬기는 새로운 차원에로 변혁되 고 있음을 누가는 강조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넓은 의미에서의 제자들은 실질적으로 예수 를 따르지는 못했지만, 상징적인 의미에서는 예수께 헌신하며 그를 따랐 다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슈라게(W. Schrage)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핵심적인 제자가 된다는 것이 구원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은 아 니다. 그 분과 동행하며 팔레스타인의 길을 걷지 않아도 예수의 사람이 될 수 있다. 물론 동행하며 함께한 핵심적인 제자들과 같 을 수는 없겠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주님을 따르 는 대가로 영원히 바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의 부르 심은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게 하였으며, 아울러 그를 위해 위 험과 고난도 요구하였다.”(Schrage, 1988: 50-51)

그들은 상징적으로 예수를 따르며 예수 닮기를 노력할 때 제자로 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