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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조직적 구성

1. 열두 제자

마가복음에서는 “열두 제자”들이 비(非)특정한 그룹으로부터 선택 (막 3:13-19)이 이루어진데 반하여 누가복음에서는 “열두 사도”들이 “제 자들의 무리” 가운데서 예수의 선택을 받아 예수의 사역에 동참했다. 또 한 열두 제자의 모습은 여러 곳에서 다른 제자들과 구분되어 나타난다.

누가는 열두 제자의 명단을 소개하면서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 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6:13)라는 구절로 시작 하고 있다. 이것은 열두 제자들의 역할을 짐작할 수 있도록 실마리를 제 공하는 구실이 된다. 즉 이는 그들이 예수의 많은 제자들 중에서 선택하 여 뽑은 핵심적인 제자일 뿐 아니라 그의 사도가 되기 위하여 훈련 중에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제공하고 있다.

1) “열 둘”이란 수

“열 둘”이라는 숫자에는 구원적이고 역사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

이 숫자는 그들로부터 이스라엘 민족들이 이어져 왔기에 이스라엘 열두 족장인 야곱의 아들들을 생각나게 한다. 또한 이 숫자는 교회 시대로 가 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어 가롯 유다를 제외한 열 한 제 자들이 이 숫자를 채우기 위해 새로이 맛디아를 뽑아 유다의 자리를 대 신게 함을 보게 된다(행 1:15-26). 또한 고린도 전서 15:5에 보면 예수께 서 장사한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유다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열 한 제자가 아닌 ‘열 둘’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보더라도 그 초기에 벌써 ‘열 둘’이란 용어가 얼마나 정형화되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 다. 하지만 열 둘이라는 숫자를 해석함에 있어서 당시 이스라엘의 남은 지파가 두 지파 반, 유다와 베냐민 그리고 레위 지파의 반뿐이며, 나머지 아홉 지파 반은 북 왕국 멸망 이후(주전 722년) 소멸되어 버렸다는 그 당시에 대한 정설(Jeremias, 1995: 332)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당시의

‘열 둘’의 개념은 개인을 가리키는 단순한 숫자적 개념이 아니라 마지막 때의 열 두 지파를 대표하는 그룹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330).

그러므로 열 둘은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구원 역사의 연속성을 상징하며 또한 아직은 연결이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의 연속 성 내지는 비(非) 연속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 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 19:28)는 제자들을 향한 예수의 말씀을 교회가 하나님의 전체적인 구원 계획안에서 위대한 축복의 약속에 동참해야 함 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이 약속들은 오직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에게 만 언약되었던 것들이었다. 흥미롭게도 열 둘이라는 숫자는 요한계시록 에 다시 한 번 중요하게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가 환난 시대에 예배를 위해서 인치심을 받으며(계 7:1-8), 하늘의 새 예루

살렘에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 문들에 기록되고, 성곽의 기 초에 열 두 사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계 21:12-14)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2) “사도”로 칭하고 있는 의미

원래 “제자”와 “사도”는 서로 다른 개념이다. “제자”(μαδητη , 배우 다)라는 말과는 달리 “사도”(ἀπὀστολο )라는 말은 “ἀπὀστἐλλω”(send, 보 내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로 그 기본적인 개념은 전령자(messenger) 혹은 사절(envoy)로서 보냄을 받은 자를 의미한다. 성경에서는 또한 “ἀγ γἐλο ”(messenger, 전령자, 사자: 눅 7:24, 9:52), 혹은 “κἠρυξ”(herald, 사 신, 반포자: 딤전 2:7, 딤후 1:11)라는 말이 같은 의미로 사용됨을 볼 수 있다(Freedman et al., 1992: 309-311). 그러므로 이 세상의 예수를 따라 다니며 배우던 이들은 제자들이요, 부활한 예수를 만나고 그분에게서 부 활 선포의 사명을 받은 자들은 사도들인 것이다. 그런데 누가는 종종 열 두 제자들을 사도들이라고 칭하고 있다(6:13, 9:10, 17:5, 22:14, 24:10).

예수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가장 이상적인 증언자로 그 리고 있는 누가공동체는 가장 강력한 선교에 대한 열망을 지닌 초기 교 회 공동체이다. 그러기에 그 공동체의 가장 핵심적인 열두 제자 또한 예 수의 사역을 잇는 증언자들이어야만 했다. 이 일을 위해 누가는 열두 제 자를 이스라엘 선교를 위한 지도자들의 상징 표시로 “사도”라는 칭호를 사용함으로써 새로이 다가올 하나님나라 운동, 즉 교회의 지도자 역할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최후 증언의 한 부분을 담고 있는 누가복음 22:29-3011)은 열두 사도들의 미래적 역할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라 할 수 있다 (서중석: 222-223). 그러므로 “제자들”로서의 “열 둘”은 예수께서 완성케

11)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하시는 믿는 자들을 위한 본보기로서의 구별을 나타내지만, “사도”들로 서의 “열 둘”은 새로이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 운동, 교회의 지도자들로 서의 구별을 나타내는 것이다(Nolland, 1989: 270).

3) 누가공동체의 열두 제자

마가복음에서는 열두 제자들이 마가공동체 내에 부정적인 모습으 로 그리고 있지만, 누가에 있어서 사도들은 대체로 예수에게 충실했던 것으로 되어 있다. 누가는 사도들의 실수의 범위나 강도를 약화시키고 있기도 하다. 제자들의 우둔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마가의 구절들(막 7:18, 8:21, 9:20)이 누가에 의해서 생략이 되고 있는 것이다(서중석: 213).

예수에 대한 베드로의 비난(막 8:32-33)도 누가에 의해서 생략되고 있다 (눅 9:22). 예수의 수난 예고를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마가의 묘사 (막 9:32)도 누가는 그러한 결과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말미암은 것으 로 반영되고 있다(눅 9:45). 누가에 의하면 사도들은 첫 소명을 받은 순 간부터 예수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눅 5:1-8).

마가가 본 예수는 열두 제자들이 흩어질 것으로 예고되고 있고(막 14:27), 강경한 어조로 충성을 맹세한 베드로의 공언에 대해 예수는 “네 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막 14: 30)라는 말씀으로 예고하고 있다. 하 지만 누가가 본 예수는 사도들이 흩어지리라는 예고를 생략하고 있다.

물론 누가는 여기에서도 베드로의 부인을 예고하고 있지만 이것이 마가 에 비해 훨씬 약화되어 있다. 누가는 “내가 너를 위해 네 믿음이 떨어지 지 않도록 기도하였다”(눅 22:32)라는 예수의 선언을 삽입하였다. 그러므 로 누가가 사도들을 자신의 공동체 멤버들을 위한 이상적인 모델로 삼았 다는 주장은 이러한 근거들로 인해서 한결 강화되는 셈이다(215).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