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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이슬람연구 제 15주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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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이슬람연구 제 15주 강의

무슬림전도를 위한 실천적

방안을 위한 제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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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전도는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어려운 사역이다. 11-13세기 동안 진행 된 십자군전쟁은 기독교도와 무슬림사이에 뿌리 깊은 상처와 불신을 낳았고, 역사적으로 기독교 서 구사회는 꾸란과 무슬림들에 의해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는 무함마드에 대해 천시하는 태도를 보였 으며 또한 그런 내용을 담은 많은 출판물들을 발간해왔다.

한편 이슬람은 출발부터 기독신앙의 핵심교리들을 거부해오고 있다.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신앙인 이 슬람은 무함마드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해왔다고 믿고 있다. 알라가 아담과 화와를 지을 때부터 이 슬람은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이런 이유 때문에 무슬림들은 구약을 정경으로 믿는 유대인들과 기독 교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인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음을 수수께끼처럼 여기고 있다. 또한 무슬림들은 기독교와 서구제국주의(Western Imperialism)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여 서구제국주의가 자신의 문 화를 전파하기위해 기독교를 도구로 사용해 왔다고 믿는다. 기독교를 향한 무슬림들의 이러한 적대 적 태도와 편견은 복음전파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무슬림전도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21세기 기독선교의 성패는 이슬람권선교의 성패에 달렸다고 해 도 틀리지 않는데 이유는 이슬람은 높은 출생률, 공격적인 포교로 현재 성장속도가 가장 빠른 세계종 교로 급부상 했으며 신학적으로 복음에 가장 저항적인 종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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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도로 준비하라.

무슬림들의 닫힌 마음의 문이 열리도록 먼저 중보할 필요가 있다. 고린도후서4장4절에서 바울은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 말했다. 오직 성령하나님만이 인간의 부 패하고 혼미한 마음 그리고 어두운 마음을 열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 문이 굳게 닫힌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격려와 소망을 주는 대표적 말씀이 사도행전16장14절이다.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 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The Lord opened her heart to respond to Paul's

message). 복음을 전하기 앞서 무슬림들을 위해 기도로 준비할 때 주께서 그들 마음의 문을 열어주 실 것이다.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거부하도록 겹겹이 쳐 놓은 이슬람의 어두운 장막들을 성령만이 거두어 낼 수 있다. 따라서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나누기 전 성령의 도우심을 입기위해 먼저 간구할 필요가 있다(참 고: 시편119:130,고전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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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단의 방해와 저항이 있음을 알라.

성경의 가르침으로 볼 때 이슬람신앙은 사람으로 잘못된 길로 걷게 하고 영적 어두움으로 내어 모는 사단이 만든 작품이라 할 수 있다(참고: 행26:18).. 무슬림전도의 열매가 빈약한 이유는 사단이 무슬 림들과 그들의 거주지역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참고: 고후10:4).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 는 사실상 사단과의 영적전쟁에 들어가게 된다. 사단은 자신의 영향력과 세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복음 전도자가 움직이는 이상으로 더 분주하게 움직일 것이다(참고: 엡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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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좋은 인간관계를 맺으라.

무슬림들은 세상의 누구보다 복음에 적대적이며 기독신앙에 대해 부정적인 자들이다.

무슬림들은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에 대해 편견과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자들이다. 이런 시각 및 편 견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사랑과 우정과 신실함으로 깰 수 있다.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인간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필 파샬(Phil Parshall)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신뢰와 우정을 쌓은 복음 전도자로 말미암아 무슬림들이 기독교에 관심을 보인다” 고 말했다잔 길크리스트(John Gilchrist) 또 한 “무슬림들이 우리의 형제와 자매가(brother and sister)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친구(friend)가 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무슬림들과 쌓은 신뢰와 우정은 그들에게 복음을 나눌 기회를 얻게 해준다 . 좋은 인간관계는 무엇이든, 어떤 주제이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해준다.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동안 기독신앙에 대해 무슬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상관없이 그저 친구, 좋 은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한다. 성급히 개종시키려 한다든지, 신학적 논쟁을 벌이거나, 복음을 강요하 는 듯 한 인상을 주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복음 전할 수 있는 문은 더 열리게 된다. 복음 전도자가 무슬림도 그들이 무슬림이기 이전에 보편적인 인간의 기본욕구(본능)와 감정과 긴요한 필요들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기억 할 때 사랑과 온유로 만날 수 있고 대화 할 수 있다.

이슬람권에서 오랫동안 사역한 윌리엄 밀러(William Miller)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무슬림들을 분 석한 결과 주변의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예수닮은 사랑’(the Christlike love)에 감동받아 무슬림들 이 개종에 이른다" 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개종시킬 목적으로 형식적인 사랑으로 자신들에게 접근하 는 기독인들과 진실된 사랑으로 자신들을 사랑하는 자를 구분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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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대일 전도방식을 택하라.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할 때 일대일 전도(person to person evangelism)방식을 사용해야한다. 주변 에 다른 무슬림들이 있을 경우 무슬림은 틀림없이 자신의 신앙을 열렬히 자랑하고 변증하려고 한다.

설사 이슬람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질문, 불만, 또는 기독신앙에 대한 궁금한 점을 갖고 있어도 주변에 무슬림들이 있을 경우 마음을 결코 털어놓지 않는다. 집단 상황에서 무슬림을 전도한다는 것은 불가 능하다는 점을 알고 일대일 만남방식을 추천한다.기독교로 개종한 한 무슬림여성은 선지자 무함마드 가 많은 부인을 소유했고 그 중에는 나이어린 여자아이도 있었다는 사실에, 알라가 참신이라면 그런 자를 종교지도자로 삼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가 선교사와 일대일로 만나 대화하던 중 기독교로 결국 개종 하였음을 간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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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슬람은 단순히 하나의 종교가 아닌 삶 자체임을 기억하라.

윌리엄 밀러(William Miller)는 “이슬람법은 종교법이자 민법(civil law)으로 무슬림들의 삶 전 영역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고 평했다.무슬림 사회에서는 ‘세속’(세상)과 ‘종교’(신앙) 라는 영역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음을 알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복음 전도자는 이슬람은 단순히 하나의 종교가 아니라 삶 자체임을 알 필요가 있다. 이슬람은 무슬림에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관습... 삶 그 자체이다. 이슬 람이 한 민족 혹은 국가를 지배할 때 정교(政敎. church and state)가 분리되지 않는 사회가 된다.

기독교로 개종한 레자 사파(Reza F. Safa)는 “이슬람이 일단 가정, 사회, 국가를 지배하면 그것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말했다.무슬림들은 자신의 일상생활을 알라가 듣고 보고 있다는 의식 하에 매일을 살아가는 자들이다. 이슬람권에서 출생하여 성장한 자는 이슬람 세계관으로 철저히 훈련되어 살아가고 있기에 복음에 저항적인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힘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들을 이해 할 때 복음전도자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내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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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모든 무슬림들이 동일하게 믿는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모든 무슬림들이 동일한 것을 믿는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역 사적으로 이슬람은 수니파, 시아파, 그리고 수피파로 나누어져 왔고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지역(나라) 도 차이가 있다. 또한 아프리카의 이슬람과 중동의 이슬람 혹은 인도의 이슬람 사이에도 차이가 있음 을 알 필요가 있다. 지역에 따라서도 관습(관행. practices) 그리고 행위(behavior)에서도 차이가 존 재한다.서구사회로 이주하여 정착한 무슬림 역시 전통적인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무 슬림들 사이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둘째, 무슬림들이 갖는 다양성의 결정적 이유는 모든 무슬림들이 아랍어 꾸란 을 읽지 않다는데(혹은 읽지 못하는데)있다. 무슬림들은 꾸란이 아랍어로 계시되고 기록 되었기에 아랍어로 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 살 고 있는 상당수의 무슬림들에게 아랍어는 사실 외국어에 속한다. 학자들의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약 16억의 무슬림 인구 중 약20% 미만이 22개의 아랍국가에 사는 아랍인들이며 나머지 80% 의 무슬림 들은 실제로 아랍어를 잘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르는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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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모든 무슬림들이 원리주의자(근본주의자)가 아님을 기억하라.

모든 무슬림들이 원리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무슬림들에 의해 자행하는 대부분의 테 러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이들의 테러행위로 인해 이슬람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 이다. 사실 상당수의 무슬림들이 숫자에서 소수인 원리주의자들의 테러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 는 것도 사실이다.

8. 기독교인과 무슬림 서로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에 주의하라.

무슬림들이 서구세계에 대해 고정관념(stereotype)을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구세계도 이슬람 세계에 대해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데 서로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대화의 장벽 은 커질 수 밖에 없다.

브루스 맥도엘(Bruce McDowell)과 안네스 자가(Annees Zaka)는 그들의 저서 Muslims and

Christians at the Table 에서 이슬람세계와 서구세계가 서로를 향해 갖고 있는 고정관점을 잘 설명 해주고 있다. 대다수의 무슬림들은 서방세계를 “물질주의적”, “부도덕”(성적자유, 음주, 인종차별),

“생명경시(낙태)” “부패한 사회”...등과 같은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반면 서방세계는 무슬림세계에 대해 “무식한 아랍인들”, “기름으로 돈을 번 유목민들”, “과격한 테러리스트”, “위험한 집단들”... 과 갖은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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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무슬림에게 복음서 한권을 읽도록 권하라.

친분을 맺는 무슬림에게 누가복음을 읽어보도록 권한다. 누가복음에는 마리아에게 수태소식을 전하 는 천사가 등장하고, 세례요한의 출생과 같은 무슬림들이 꾸란을 통해 익숙한 내용들이 많기 때문에 편하게 읽을 수 있다. 누가복음의 또 다른 장점은 이야기들과 비유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무 슬림들은 스토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레위(세리 마태)를 부르는 주님의 이야기는 ‘죄인 가운데 죄인인 자’를 영접하시는 주님을 보여준다(눅5:27-31). 잃어버린 양, 동전, 탕자의 비유는 하나님이 잃어버린 자들을 먼저 찾으시며, 잃어버린 자를 찾았을 때 기뻐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돌아오는 자들 을 두 팔을 벌려 환영하시는 하나님을 잘 그리고 있다(눅15:1-7, 8-10, 11-24). 이런 스토리들은 무 슬림들에게 큰 흥미를 갖게 만들 수 있다. 마태복음 역시 무슬림들에게 흥미로운 주제를 담고 있는 책으로 기도, 금식, 구제, 정의, 결혼, 이혼...등과 같은 주제들이 담겨 있다. 이들 주제들에 대해 주님 이 말씀하는 것에 대해 대다수의 무슬림도 많은 공감을 할 것이다.

특히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기에 깊은 친분을 맺은 무슬 림에게 요한복음을 읽도록 한 후 개별적으로 만나 예수님에 대해 복음서가 말씀하는 것에 토의해 보 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꾸란은 무슬림들에게 하나님의 모든 선지자들을 존경할 것을 명하고 있다(수 라2:136). 따라서 무슬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권하는 것이 좋다. 예수 그리스 도는 누구며 그가 어떤 주장을 했는지에 대해 고려해보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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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온유한 자세를 취하되 확고함을 가져라.

무슬림과 대화 시 공격적이거나 적대적 태도를 취해서는 안된다. 만약 대화가 논쟁형태로 흘러가면 무슬림들을 더욱 신명나게 만들 수 있다.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가지 않도록 차분해 질 필요가 있다. 언제나 온유하며 친절한 자세로 대화에 임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주의 종은 다투지 않는 자이어야 한다고 가르친다(참고: 딤후2:24, 벧전3:15). 틀림없이 무슬림들은 기독인들이 갖는 기독신앙에 대한 우월감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디모데후서2:24-25절은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라고 명하고 있다. 복음 전도자는 온유의 자세를 지닐 필요가 있다.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제시하거나, 변증할 때 온유함으로 하되 그러나 확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사단의 속임과 거짓된 진리에 빠진 무슬림들의 영혼이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사도행 전의 초대교회가 보여주었던 복음에 대한 확고한 자세는 현대 복음 전도자들에게 소중한 교훈을 주 고 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2:32). “생명의 주를 죽 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행3:15). “사 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행4:33).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 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행13:30-31) 선포했던 것을 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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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무슬림들도 기독교의 용어들을 사용하지만 상당한 의미차이가 있음에 주의하라.

무슬림들도 성경 기록된 하나님, 예수, 성령, 기도, 천사, 구원, 죄 등과 같은 용어들을 사용하지만 성 경과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가 이들 용어들에 부여하는 의미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는데 이것을 소위 ‘용어장애’(terminology block)라 부른다. 복음 을 전하는 자는 이 용어들의 성경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무슬림들은 그 용 어들을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수라4:171절은 예수를 “알라의 말씀” 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익숙한 요한복음1장1절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할 때 사용된 용어와 유사하게 들릴 수 있다.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무슬림 신학자 알 가잘리(Al-Ghazali)는 수라4:171절의 “말씀” 은 알라의 말씀(

명령)에 의해 마리아의 몸속에서 생성된(created)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성부 하나 님의 완전한 계시 그리고 마지막 계시로 세상에 오신 영원한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를 뜻하는 것이 아 니다. 따라서 수라4:171절에서의 “말씀” 은 요한복음1장1절의 예수님의 신성을 표현하는 “말씀”과 는 거리가 멀다. 무슬림들은 “알라의 말씀”이란 표현을 예수가 하나님이 아님의 증거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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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가능한 한 이슬람에 대해 많은 지식과 이해를 가져라.

복음전도자는 꾸란, 알라, 무함마드, (원)죄와 죄용서, 낙원, 마지막 심판과 같은 이슬람의 핵심 가르 침은 물론이고 무슬림들의 삶과 문화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복음전도자의 이슬람에 대한 깊 은 이해와 지식은 용어들에 대한 잘못된 이해 즉, 용어장애를 피할 수 있게 해준다. 이슬람에 대한 풍 부한 지식은 무슬림들과 대화 시 도움을 제공해 주며 또한 전도자로 지혜롭게, 분별력을 가지고 복음 을 전할 수 있도록 해주게 된다. 예를 들면 무슬림에게 처음 복음을 나눌 때 예수에 대해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 이라는 용어사용을 조심하게 해준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 임이 틀림없지만 '하나님의 아들‘ 이란 용어는 무슬림들을 자극하여 효과적인 복음제시보다 논 쟁에 들어가게 만들 수 있다. 무슬림들은 ’하나님의 아들‘ 이란 용어를 육체적 개념으로 이해하며 알 라에 대한 신성모독으로 여긴다. 무슬림들에게 ‘아버지’는 육체적 관계의 개념이다. 이런 이유로 알 라를 ‘아버지’ 라 부르는 것을 신성모독으로 간주한다.

매세이(Kudan Massey)는 무슬림들이 흔히 제기하는 이슈들, 예를 들면 성경은 부패되었고, 기독교 는 삼신을 믿는 다신교적 종교라는 그들의 주장에 어떻게 대처하며 반응해야 하는지 사전에 준비할 것을 조언하였다. 그들이 상투적으로 물어오는 변증적인 이슈들에 대해서 사전에 충분히 공부하고 대화 시 인내와 존중의 자세로 그들을 대할 것을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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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라.

기독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God is love)는 표현은 무슬림들에게 매우 낯선개 념이다. 무슬림들은 “절대 초월적이며 (인간을 포함한)창조세계와 절대 구분된 알라(Allah)” 에 익숙 해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은 자신들이 믿는 알라는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자비를 베풀지만 잘못을 행하는 자를 무서울 정도로 잔인한 존재로 이해하고 있다. 알라는 그를 순종하며 사랑하는 자만을 사 랑하며 불신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알라는 선한 자에게 자비를 베풀지만 나쁜행위를 한 자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수라3:31절은 “일러 가로되 너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나를 따를 것이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사랑하사 너희의 죄를 사하여 주시니 하나님은 용서와 자비로 충만하시 니라” 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무슬림들이 알라를 사랑하는 동기는 알라의 사랑과 용 서를 얻기 위해서라는 점이다. 알라로부터 용서를 받아 감사함으로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소위

“사랑을 받고자 한다면 먼저 나를 사랑하라”는 식이다. 무슬림들에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일 때도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 이심을 강조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롬5:8). 성경의 하나님은 단순히 ‘사랑이라는 행위(행동)’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사랑의 본체’ 이다. 요한일서4장 8절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고 기록하고 있다. 신약성경의 으뜸 되는 주제가 다름아닌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 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전도자는 무슬림들에게 하나님은 두려운 심판자가 아니 라 사랑의 하나님임을 이해토록 도와 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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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예수님에 대한 꾸란의 잘못된 가르침을 부드럽게 수정해주라.

예수님에 대한 무슬림들의 이해는 꾸란에 기초하고 있다. 무슬림들은 오직 꾸란만이 변질되지 않은 상태로 현재까지 보존된 유일한 책이라 믿는다.꾸란은 태초부터 하늘에 보관되어있던 원본(the original)의 정확하며 원본과 일치하는 사본이다.무슬림들은 꾸란은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 의해 훼 손(왜곡)된 본래성경(the Original Bible)을 대처하는 알라의 완전한 마지막 계시로 이해하고 있다.

이때문에 무슬림들은 예수에 대한 꾸란의 가르침이 정확하며 최종적인 것으로 믿는다. 흥미로운 사 실은 무슬림들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는 매우 잘못되었지만 무함마드를 제외한 그 어떤 선지자들보다 예수님에 대해 존경심을 보이며 꾸란 또한 예수에 대해 명예롭고 존경스러운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 음을 복음전도자는 지혜롭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꾸란도 예수의 동정녀 탄생, 예수께서 병든 자들을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린 기적들을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예수를 메시아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완전한 의인으로, 죄 없는 자로, 어느 날 세상에 다시 돌아올 분으로 말한다. “천사들이 말하길 마리아여 하나님께서 너에게 말씀으로 복음을 주시니 마리 아의 아들로써 그의 이름은 메시아 예수이니라 그는 현세와 내세에서 훌륭한 주인이시오 하나님 가 까이 있는 자 가운데 한분이라”(수라3:45). “하나님께서 그를 오르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권능과 지 혜로 충만하심이라”(수라4:158). 무슬림들은 예수님이 기적을 행한 것에 대해 높은 존경심을 보인다 (수라3:49, 5:11). 지금도 이란에서는 환자를 잘 고치는 의사에게 “선생님은 예수의 생기(입김. the breath of Jesus)를 갖고 있군요!” 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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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짧지만 효과적인 개인간증을 준비하라.

요한일서1장3절은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한다” 고 말하고 있다. 복음을 전할 때 잘 준비된 간증은 큰 효과가 있다(참고: 역상16:8-9, 마10:32, 막5:19-20, 요4:28-30, 39, 딤후1:8, 벧 전3:15).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잘 준비된 짧은 간증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 예수 믿기 전과 믿은 후의 변화가 분명히 대조되는 간증 일수록 좋다. 죄 사함 그리고 구원에 대한 확신, 주께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바꾸어 놓으셨는지... 등 을 담아 간증하는 것이다. 비록 신학의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중생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최소한 자기 생애에서 일어난 변화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변화된 삶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16. 복음을 나누라.

깊은 신뢰와 우정의 관계를 맺은 후 무슬림에게 복음을 나눌 기회를 지혜롭게 만들어 간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로 죄인인 인간에게 죄 사함을 주신다는 기쁜 소식이다(엡 1:13, 행13:26). 복음은 바울의 생애와 사역에 있어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다. 구원받은 후 바울은 자 신의 생애를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바쳤는데 그리스도의 복음 없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서는 인간은 구 원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참고: 롬10:13-17). 전도의 첫째 되는 목적은 죄인인 인간을 그리스도께 로 인도하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복음에 대해 가장 저항적인 집단이지만 무슬림 전도에 대한 꾸준한 연구와 노력이 이루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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