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한국인의 죽음관 형성에 대해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2

Share "한국인의 죽음관 형성에 대해"

Copied!
10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한국인의 죽음관 형성에 대해

1)

-전통에서 현대까지

이화여자대학교 한국학과

최 준 식

들어가면서

현대의 한국인들은 과연 죽음, 특히 내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내세관을 포함해서 죽음관과 같은 사람들 의 가치관이 어떻게 형성되었나를 살펴보려 할 때 가장 중 요한 요소 중에 하나는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가치관 형성에 종교만이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사회 학자들에 의하면 사람들의 가치관이 형성되는 데에는 종교, 가족, 교육, 경제, 정치 체제와 같은 주요 요소들이 큰 영향 을 미친다. 이 다섯 가지 요소는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의 가치관을 형성한다는 것이다.2)

이 글에서는 이 요소 가운데 종교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 출 것이다. 그 이유는, 우선 종교란 문화의 핵을 이루고 있 어 사람들의 심성 가운데에서도 가장 핵심부를 형성하고 있 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죽지 않는다면 종교는 생 겨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표현이 가능할 정도로 죽음이라는 주제는 종교와 떼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인간이 행하는 삶의 여러 분야 가운데 거의 종교만이 인간의 죽음을 이론적일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다루고 있 다. 특히 사후생과 같은 주제에 관해서는 거의 종교가 독점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죽 음관 혹은 내세관을 살펴보려 할 때 종교에 대한 고려는 가 장 중요하게 다루어져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인들의 내세관 형성에 영향을 준 종교는?

현대 한국에는 많은 종교들이 공존하고 있다.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모르지만 가장 토종적인 무교(巫敎)를 비롯해 외국서 들어온 불교와 유교가 천 수 백 년 동안 이 땅에 있

어 왔다. 혹자는 여기에 선도를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선도 혹은 (중국의) 도교는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극히 미약하게 있었을 뿐 불교나 유교처럼 이 땅에 수입되어 정착되지는 못했다.3) 그리고 여기에 근세에 들어와 자생종교인 동학과 증산계 종교, 그리고 원불교와 같은 신민족종교들이 생겨나 한국 종교 대열에 합세했다. 신민족종교가 태동되고 발전되 고 있던 시기에 한국에는 그리스도교가 들어와 지금까지 엄 청난 발전을 해서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와 같이 한국에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다양한 동서양의 종교들이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공존하게 된다. 그런데 종 교들이 이렇게 많다고 해서 이 종교들이 모두 한국인들의 가치 체계를 형성되는 데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우선 배제되어야 할 종교는 근세에 형성되었거나 수입된 종교들이다. 근세에 형성된 동학을 위시한 신민족종교는 생 겨난 지 백여 년밖에 안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도수도 미약 해 이 종교들의 교리가 한국인들의 가치관 형성에 도움을 주었을 것 같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이 종교들은 대부분 전통 종교들의 교리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따로 보지 않아도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 종교들이 견지하고 있는 생사관이 전통 종교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 면 최근 비약적인 기세를 자랑하는 그리스도교는 신도수의 엄청난 증가에도 불구하고 수입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교리를 비롯해 제반 요소들이 한국의 전통문화와 이 질적인 면이 많아 정착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따라서 그 당 연한 결과로 그리스도교는 현대 한국인의 죽음관 형성에 별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살펴보아야 할 종교는 이 땅에 천 수백 년 이상 을 존재해 왔던 무 ․ 불 ․ 유와 같은 전통 종교들이다. 이 세

1) 이 글은 2007년 한국죽음학회 춘계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글을 수정한 것이다.

2) 이러한 사회학적인 견해를 구조기능주의적(structural-functionalist) 접근이라 할 수 있다.

Lynne Ann DeSpelder & Albert Lee Strickland (2005), The Last Dance--Encountering Death and Dying, 제7판, McGraw Hill 출판사, pp. 70-71.

3) 이 문제는 필자의 졸저『최준식의 한국종교사 바로 보기--유불선의 틀을 깨라』(한울, 2007)에서 상론했다.

(2)

종교들은 이 땅에서 장구한 세월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세 종교 모두가 현대 한국인들의 가치관 내지는 죽음관 형성에 기여한 것은 아니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제외시켜야 할 종 교는 불교이다. 자칫 잘못 생각하면 한반도에서의 장구한 불교 역사 때문에 우리들은 불교가 한국인들의 가치관 형성 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불교 는 마지막 왕조인 조선조 때 정치적인 탄압을 받으면서 사회 의 실세 세력에서 벗어나 종교 유적은 대거 남길지언정 사람 들의 머리 속에서는 거의 지워지게 된다. 다시 말해 조선조 를 지배하던 사회 문화는 완전히 유교식으로 형성되어 불교 적인 영향이나 색채는 발견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는 것은 무교와 유교인데 이 두 종교가 한 국의 사회문화 형성이나 한국인의 가치관 형성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이미 필자가 많은 기회에 표명했기4) 때문에 다시 상세하게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우선 무교 는 단군 이래로 지금까지 한 번도 절멸되어본 적이 없이 한 국문화가 형성되는 데에 저류(底流)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지적해야겠다. 한국 문화는 소수를 빼놓고 그 본류를 찾아 가다 보면 무교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무교의 중요성을 알아차릴 수 있다.5) 누누이 주장한 것이지만 무교는 한국인 들의 심성 가운데 가장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들이 내면적으로 갖고 있는 질서를 탈피하려는 자유 스러운 기질은 유교의 질서적인 세계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 같고 무교의 그것과 많은 면에서 비슷한 점을 보이기 때 문이다. 이런 사실을 통해 추정해 보건대 한국인들은 무교 와 많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죽음관도 한국인들은 무교의 그것을 많은 부분 수용했을 것으로 생각 된다.

그 다음에 살펴볼 종교는 유교이다. 유교가 한국인들의 가치관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자명한 일이다. 현대 한국인들의 성격이나 한 국의 사회 문화는 한 마디로 말해 조선의 그것을 그대로 빼 다 박았다. 이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 대한민국은 비 록 중간에 일제기라는 시기라 있었지만 조선 왕조를 이어 생겨난 국가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 사회의 문화는 한번 형성되면 수백 년은 지속된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조선말

의 사회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조선은 과연 어떤 나라인가? 조선은 한 마디로 말 해서 세계 인류 역사상 가장 유교적인 국가라 할 수 있다.

조선 유학의 특징을 현상윤이 “단순과 철저”라고 했던 데에 서 알 수 있듯이6) 조선은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보다도 더 단순하고 철저하게 유교를 신봉했다. 유교가 어떻게 조선의 사회 문화를 형성했는가에 대한 것은 앞에서 인용한 필자의 책(1997)에서 상세히 언급했기 때문에 다시 밝힐 필요는 없 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한국인들의 죽음관 역시 유교로부 터 강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판단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생 각된다.

한국인의 죽음관

우리는 바로 앞에서 한국인의 죽음관은 유교와 샤머니즘 의 영향을 받아 구성되었다고 했는데 이 종교들이 견지하고 있는 내세관은 어떤 것일까? 보통 한국인들은 내세에 대해 서 대단히 희박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인식이 일반적으로 팽배해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인들은 내세의 존재를 부정하 거나 무관심으로 대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한국인들이 내세 의 삶보다 현세의 삶을 더 중요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점이 사실이라면 이런 식의 한국 인들의 생사관이 형성되는 데에 이들 종교의 교리가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하는 것에 대해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 작 업을 위해 우선 유교부터 보기로 하자.

1. 유교의 생사관

유교는 나름대로 생사관에 대해 정교한 교설을 갖고 있 는데 유교에서 말하는 생사관은 한 마디로 말해 내세를 인 정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유교사를 일별하면, 후대에 성리학이 나타나 상당히 복잡한 삶의 원리를 선보이게 되는 데 인간의 죽음과 관련해 유가들이 제시하는 이론은 그것이 어떤 것이건 간에 그들의 대스승인 공자가 말한 범위에서 결 코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공자의 가르침이 일종의 원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공자는 인간의 죽음에 관해서 별 로 이야기를 남기지 않았다. 이것은 공자가 그만큼 인간의

4) 이 주제에 관한 필자의 생각은 다음의 책을 참조하면 된다.

졸저(1997),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사계절 ____(2005),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1, 사계절

5)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민속예술인 판소리나 산조 음악, 살풀이춤, 시나위 음악, 사물놀이 들이 모두 굿판에서 연유되었다는 의 미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6) 현상윤(1949), 『조선유학사』, 민중서관.

(3)

鬼 --> 精 --- 魄 ↗ ↘ 一(元)氣 + 神 一氣

↘ ↗ 神 --> 氣 --- 魂

죽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공자는 귀신이나 인간의 죽음 같은 내세에 관한 이야기 가 나오면 질문을 던진 제자들에게 맞대응을 하면서 의제를 피해간 것으로 유명하다. 한번은 그의 제자인 계로가 귀신 을 섬기는 방법과 인간의 죽음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해 공 자는 본인은 알고 있었지만 제자의 과도한 호기심을 잠재우 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본인도 실제로는 몰라 위기를 모면 하려고 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제자의 질문을 되받아 쳤다. 즉 귀신에 대해서는 ‘너는 사람도 제대로 섬길 줄 모 르면서 무슨 귀신 섬길 걱정을 하느냐’라고 하고 죽음에 대 해서는 ‘삶도 모르는 주제에 어찌 죽음을 알려고 하느냐’고 하면서 제자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7) 이 구 문을 놓고 현대 유학전공자들은 공자는 모든 관심을 죽은 뒤와 같은 미래가 아닌 현재에 집중시켰다고 해석하는데 해 석이 어찌 됐든 간에 공자의 이 발언 때문에 후대의 유가들 은 죽음 이후의 문제를 거론할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공자 는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도 별반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자가 귀신과 같은 영적인 존재에 대해서 완전 히 부정적인 태도로 간 것은 아니다. 가령 번지라는 제자가 앎[知]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자 공자는 “백성의 뜻을 (따 르려) 노력하고 동시에 귀신을 공경하지만 멀리 하면 가히 앎이라 할 수 있다”8)고 대답을 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그가 귀신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고 언급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 만 귀신이 영적인 존재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외 에 공자가 유의미하게 인간의 영혼에 대해 언급한 것은 거 의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공자는 인간의 영혼 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태 도는 그가 제사에 대해 언급할 때 특히 더 두드러진다. 그는 제자들에게 제사를 지낼 때 진짜 귀신, 즉 조상들의 영혼이 존재해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귀신이 있는 것 처럼 (생각하고) 제사를 드리라고 충고한 것으로 유명하 다.9) 이와 같이 교조인 공자가 영혼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 고 죽음 뒤의 삶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기 때문에 후대 의 유학자들에게는 이것이 하나의 지침이 되어 버린다. 그 결과 내세와 영혼을 부정하는 가르침은 유교의 대표 교리로 굳건한 자리매김을 한다.

이와 연관해서 우리가 보아야 할 유교의 교설은 후대 성 리학자들이 만들어낸 인간의 삶에 대한 이론이다. 이 이론 은 원시 유교의 그것과 비교해볼 때 비교적 정교하게 짜여 있지만 이것 역시 공자의 기본적인 가르침 안에서 그것을 합리화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리학 의 생사관에 의하면 인간은 “원래부터” 존재하고 있었다고 하는 일기(一氣) 혹은 원기(元氣)가 음양으로 분화되면서 생 겨난다. 이것을 좀 더 자세하게 보면, 일기가 두 기운으로 분화되는데 음의 원리를 대표하는 정(精)과 양의 원리를 대 표하는 기(氣)가 그것이다.10) 그런데 이것만 가지고는 지각 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아직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정기’라는 막연한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정신 작용 을 주재하는 신(神)의 요소가 추가되어야 한다. 그 결과 사 람은 이성적인 기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아직 도덕 에 대한 인식은 생기지 않았다. 여기에 혼백(魂魄) 개념이 첨가되어야 인간은 비로소 도덕성을 갖추게 된다고 한다.

이런 여러 원리의 결합체인 인간은 이와 같은 상태로 평생 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이때 이 기운들의 힘이 다 하게 되면 음의 원리인 백은 땅으로 돌아가고 양의 원리인 혼은 하늘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 세상이나 저 세상이 나 그 인간과 관계해서 남는 것은 하나도 없게 된다. 그저 몸은 땅에서 썩어서 없어지고 혼은 공중에서 흩어져 없어질 뿐이다. 존재하는 것은 일기일 뿐 개체 인간은 생겼다 말 뿐 인 것이다. 이것을 도표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이 교설은 꽤 정교하게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 은 의문이 생긴다. 이 의문들에 대해 여기서 모든 문제점을 제기할 수는 없고 대표적인 것만 들어보자. 우선 드는 의문 은 이 일기라는 것이 어떤 동인(動因)에 의해 음양으로 분화 되어서 인간이 되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만 물은 모두 이 일기에서 나오게 되는데 어떤 기운은 인간이 되고 어떤 기운은 동물(혹은/그리고 식물, 광물)이 되느냐는

7)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敢向死, 曰 未知生, 焉知死”. 『논어』 권 11, 先進편.

8) “攀遲問知,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논어』권 6, 雍也편.

9) 祭如在 祭神如神在”, 『논어』권 3, 八佾편.

10) 이때 정은 “형체적 존재기”라고 하고 기는 “유동적 생명기”라고 하는데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지만 정은 물질을 말하 고 기는 그 물질에 생명을 불어넣는 기운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4)

것이다. 이 질문에 아마 성리학자들은 이런 과정을 주재하 는 것은 이(理)라고 할 터인데 그래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 다. 그것은 어떤 이가 어떤 발인(發因)에 의해 일기로 하여 금 인간이 되게끔 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정기신 개념과 혼백 개념은 그냥 지나치기로 하자. 인간이 갖고 있는 공능(faculty)을 유학 식으로 풀어쓴 것이니 이것 은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는 것이지 옳은가 그른가를 따 질 만한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것 은, 이 이론에 의하면 인간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모든 것이 분산되고 남는 것이 없다고 했는데 육체가 땅으로 돌아간다 는 것은 실제의 세계에서 목격하는 일이니 인정할 수 있지 만 영혼이 공중에서 흩어져서 사라진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우리의 오감으로는 영혼이 죽은 뒤 사라지는지 남는지에 대한 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니 다만 그 진위를 알 수 없다고 해야 할 터인데 신유학자들은 어떤 확실한 근거로 혼이 사라진다고 단정을 하는 것일까? 모르 는 것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도그마가 되기 쉽다.

어떻든 이 교설을 통해 우리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유학자들은 공자 이후로 죽음 뒤의 세계를 부정했다는 것이 고 그 자연스러운 연장으로 영혼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 다. 다시 말해 유학도들은 철저하게 현세적인 세계관을 견 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유학도들은 이렇게 허무적인 인생관을 갖고 아무 문제없이 잘 살았을까? 종교학적인 관 점에서 보면 인간들은 거의 예외 없이 영생과 불멸을 꿈꾼 다. 이 점에서는 유학도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들이 택 한 영생법은 간접적인 영생법이었다. 즉 비록 개체적인 자 신의 영혼은 소멸되어 없어지지만 자신의 분신인 아들을 통 해 간접적으로 영생하는 것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 학의 유일한 종교의례라 할 수 있는 제사를 통해 자신들이 아들의 뇌리 속에서 기억됨으로써 자신은 죽지 않고 살아있 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성리학자들을 포함해서 일 반 유교도들은 이론적으로는 영혼의 실체를 부정했지만 제 사를 지낼 때에는 조상의 영혼이 집을 찾아와 그들과 같이 음식을 나눌 수 있다고 믿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제 사를 지낼 때에는 분명 영혼이 존재한다. 이 점은 강신이 되 고, 차려놓은 음식을 조상들이 먹는 순서를 마련해 놓은 제 사 과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렇듯 이론적인 생각과 실제적인 실천은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데 영생과 불멸을 원한다는 면에서 유교도들도 역 시 예외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내세관은 여전 히 희박하다. 그들은 제사를 지낼 때에만 조상령이 찾아온

다고 생각할 뿐 그 조상령이 어디에서 어떻게 존재하다 일 년에 몇 안 되는 제삿날을 알고 어떻게 찾아오는지에 대해 서는 별 관심이 없다. 그 점에 대해서는 스스로 더 추궁하지 도 않고 생각을 더 진전시키지도 않는다. 대신에 제사 지내 는 현재의 시점, 즉 제사의 절차라든가 음식을 음복함으로 써 조상들로부터 복을 받겠다는 생각에 더 집중한다. 그리 고 제사가 끝나면 조상들은 다시 잊혀지고 자손들은 자신들 의 현세 삶에만 몰두하게 된다.

유교가 견지하고 있는 생사관이 얼마나 현세중심적인가 를 알기 위해서는 제사보다 장례 절차를 보는 것이 더 적합 할지 모른다. 조선 시대 이후로 한국인들은 장례의식을 (민 속 개념이 함유된) 유교 이념에 입각해서 치렀기 때문에 이 의식을 살펴보면 실제로 한국인들이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 각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필자는 과 거에 한국인들이 견지했던 장례의식 전체를 다 보려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장례의식은 매우 번쇄하기 때문에 그것을 다 필요 없다. 각각의 순서 가운데 조선인들의 가치관이 엿 보이는 순서만을 골라 보면 우리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은 전혀 하지 않는 순서이지만 과거에는 사람이 죽 으면 지붕에 올라가 죽은 이의 이름과 주소 등을 부르면서 복(復)이라고 세 번 외치는 순서가 있었다. 이른바 고복(皐 復)이라고 하는 것으로 이것은 망자에게 돌아오라고 하는 것이다. 가는 사람을 저승으로 편하게 잘 보내주는 것이 아 니라 무조건 이승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가는 저쪽에 대 해서는 정보가 없고 여기서 살아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니 돌아오라고 하소연하는 것이리라. 이렇게 해서 장례식이 시 작되면 곧 사자상(혹은 사잣밥)이 차려져야 한다. 이것은 가 는 사람을 배려한 것으로 인간의 죽음이란 자연스레 죽는 것이 아니라 저승사자들이 와서 붙잡아 가는 것이라 생각한 나머지 가는 혼으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가게 하기 위해 저승사자들에게 일종의 뇌물을 바치는 것이다. 여기에 는 밥, 술, 돈, 짚신 등이 놓이는데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간장이 놓인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저승사자가 간장을 물인 줄 잘못 알고 들이키게 되면 목이 말라 자꾸 이승으로 돌아 올 것이라는 매우 순진한 발상으로 시작된 것이라 한다. 발 상이 어떻든 이것은 가능한 한 저승으로 가는 길을 늦추고 조금이라도 이승에 머무는 시간을 길게 하려는 눈물 나는 처사라 하겠다. 게다가 부모가 노환으로 자연사를 해도 자 식은 죄인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죄인처럼 옷을 입어야 했다. 머리를 풀어헤칠 뿐만 아니라 새끼로 만든 머리띠를

(5)

둘렀고 옷은 삼베로 거칠게 만들어 죄인의 옷처럼 단을 풀 었다. 이런 생각 밑에는 좋은 이승을 두고 험한 저승길로 부 모를 보낸 데에 대한 회한이 숨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 시 말해 이승은 좋고 저승은 그렇지 않다는 암묵적인 가정 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순서인 습(襲)이나 반함(飯含) 등은 생략해도 되겠다. 시신을 염한 뒤 영좌가 만들어지고 문상 객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장례 절차가 진행된다. 이렇게 해 서 3일 째 되는 날 발인제(영결제)를 지내고 영좌와 시신은 집을 떠나 무덤으로 향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주목 을 끄는 것은 상여소리이다. 이 소리 가운데에는 한국인들 이 지니고 있는 현세중심주의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구절들 이 있어 우리의 관심을 끈다. 예를 들어 “한번 아차 죽어지 니 저승길이 분명하데이. 대궐 같은 집을 두고 나의 갈 길 찾아가네. 이제 가면 언제 오노 한번 오기 어려워라”라는 구 절이나 “저승길이 멀다 해도 문전 앞이 저승이데이”11) 하는 것은 지극히 현세중심적인 태도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 것 이다. 당시의 경제 사정으로 보면 일반 민중들이 살았던 집 이란 매우 누추하기 짝이 없었을 터인데 그것을 궁궐이라고 표현한 것부터가 그렇다. 그러니까 저승이 어찌 생겼든 이승 것이 무조건 훨씬 더 좋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승으로 오는 것을 매우 힘든 일이라고 표현한 것도 그렇 다. 가기 싫은 곳을 가긴 가는데 언제 돌아올지 어떤 기약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승길은 무조건 가기 싫은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저승 자체를 아예 무시 혹은 부정하는 듯한 표현도 있어 재미있다. 이 상여소리에 나오는 것처럼 저승 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가 그저 문 앞이 저 승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저승 자체를 부정하거나 혹은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저승길이 멀 다 해놓고 바로 문 앞이 저승이라고 하는 것은 일단은 앞뒤 가 맞지 않는 표현이지만 이런 표현을 통해서 우리는 이 상 여소리의 주인공들이 이승과 저승 사이의 거리를 무시하고 저승을 이승 바로 옆으로 끌어들이려는, 다시 말해 지극히 현세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현세 중심적인 사고는 예서 멈추지 않는다. 상여소리에서 도 그런 한국인들의 성향을 읽을 수 있지만 한국의 민담에 서도 같은 것을 감지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 설화 속에서 인간의 죽음은 많은 경우 저승사자가 와서 당사자를 구인 (拘引)해 가는 것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죽음을 맞이한다고 하기보다는 끌려간다는 생각이 짙다. 마 치 저승사자는 경찰이 되고 망자는 범인처럼 되어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계속 도망 다니면서 피하다가 저승사자에 게 걸리면 어쩔 수 없이 잡혀간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상여소리에서 묘사되는 저승사자 역시 그렇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방금 전에 언급한 것처럼 저승이 바로 문 앞에 있다고 해놓고서는 상여소리만 보면 저승까지 의 거리가 꽤 되는 것처럼 묘사된다는 것이다. 이에 해당하 는 소리는 “일직사자 월직사자 한 손에 창검 들고 또 한 손 에 철봉 들고 쇠사슬을 비껴들고… 저승 원문 다다르니 우 두나찰 마두나찰 소리치며 달려들어…”와 같은 것인데 이 이야기만 보면 저승 가는 길이 얼마나 멀고 싫었으면, 아니 면 얼마나 무서웠으면 이렇게 묘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 다. 꼭 경찰이 범인을 잡아 감옥으로 끌고 가는 모습과 흡사 하다. 빨리 안 가면 칼로 찌르고 철봉이나 쇠사슬로 내려칠 판이다. 이렇게 어렵게 저승에 도착하면 말과 소의 얼굴을 한 무시무시한 나찰12)이라는 이름의 악마들이 달려 나와 당 사자를 저승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이렇게 저승 안으로 끌 려 들어간 다음에 어떤 일이 생기는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 언급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이것만으로도 죽음과 관계되 는 과정들이 얼마나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묘지까지 가면 관을 묻게 되는데 그 다음에 는 망자의 혼을 다시 집으로 모시고 오는 순서가 있다. 이것 을 반혼(返魂)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도 한국인들의 현세중심 적인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사람이 멀쩡히 죽었는데 그 혼이 저승으로 가게끔 내버려두지 않고 다시 집으로 모시고 오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에게 삶의 중심은 항상 살아있는 사람이 사는 현세의 집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집으로 모셔온 혼은 빈소에 있는 영좌에 모셔지고 3년 동안 마치 살아 있는 사 람처럼 대우한다. 끼니마다 밥을 차려준다던지 나가고 들어 올 때 아뢰는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하다 3년이 되면 탈상 을 하면서 영좌 등 망자와 관계된 것을 모두 치운다. 한국인 들은 이것으로써 망자는 저승으로 갔다고 생각하고 살아있 는 자신들은 현세로 돌아오면서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나게 된다.

이렇게 아주 간단하게 전통적인 관점에서 장례 절차를 보았는데 각 순서에 깔려 있는 기본적인 생각은 망자가 가 는 저승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살아 있는 자들이 있는 현세 11) 임재해(1990), 『전통상례』, 대원사, “빛깔 있는 책들”, 총서 101-16, p. 22.

12) 불교에 나오는 악마 같은 존재로 원래는 사람을 잡아먹고 죄인을 못 살게 군다고 하는데 나중에는 불교의 수호신이 된다.

(6)

에 보다 많은 강조를 두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 에 와서 한국인들이 병원에 딸린 영안실과 같은 곳에서 장 례 절차를 밟을 때 이런 순서를 다 따르는 경우는 거의 없 다. 게다가 종교도 기독교나 불교 등 다양하게 있기 때문에 장례 절차도 위의 예와 아주 다른 경우도 많을 것이다. 현대 한국인들이 영안실에서 어떤 종교 의례를 어떤 식으로 치루 는 지에 대한 것은 문화인류학적인 주제로 또 다른 논문이 필요한 큰 문제이다. 그러나 잠정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 은 현대 한국인들이 어떤 장례 의례를 치르던지 지금까지 검토한 것처럼 전통 상례에 깔려 있는 현세중심적인 생각을 중심으로 행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추정해볼 수 있는 근거는 어떤 사회든지 상장례에 관한 관념들은 매우 보수적 이라 시대를 달리 해도 크게 변하지 않고 기본적인 생각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2) 무교(巫敎)의 생사관

우리는 지금까지 유학에서 제시하는 생사관이 이론과 실 제에서 얼마나 현세적인가를 보았는데 이 면에서는 한국의 무교도 같은 선상에 있다고 하겠다. 샤머니즘은 민간신앙인 관계로 유학과 같은 수준 높은 이론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무교에서 행하는 의례나 신화를 보면 무당들 역시 철저하게 현세중심적인 원리에 입각한 내세관을 갖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무교에서 행하는 사령제는 반드시 다 그런 것은 아니지 만 기본적으로 망자가 살아 있을 때 가졌던 한을 풀어주어 그 험한 저승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무교적 관념에 의하면 죽은 망자들은 대 개가 살아 있을 때 한을 갖게 된다. 게다가 만일 불의의 사 고로 죽게 되면 이런 경우에는 큰 한을 갖게 되고 그 결과 저승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게 된다. 무교적인 믿음을 따르면 이럴 때 망자의 혼은 자신의 한 때문에 자손 들에게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게 된다고 한다. 이때 망자는 본인이 뜻한 게 아니었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손들에게 해 를 입힐 수도 있게 되는데 사태가 이 정도 되면 무당은 신 도들에게 사령제를 지낼 것을 조언하게 된다.

무교의 사령제는 지역에 따라 새남굿이나 씻김굿, 오구굿 등 매우 다양한 이름으로 나타나는데 우리가 관심 있는 것 은 그런 다양한 굿에서 어떤 절차로 굿이 진행되는가와 같 은 것이 아니라 굿의 종류에 관계없이 무당들이 내세에 대 해 어떤 견해를 갖느냐는 것이다. 굿은 비록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어느 굿을 보든 저승에 대한 확실한 묘

사가 발견되지 않는 것은 공통된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명 확하게 지적해야 할 것은 무교는 저승관이 확실하지 않다는 점에서는 유교와 맥을 같이 하지만 사람의 혼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유교와 확실하게 다른 태도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구굿과 같은 사령제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오구 굿에서 가장 중요한 거리는 죽은 부모의 혼령이 무당에게 실려 자식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여 기에서 무당들이 사람의 영혼을 확실하게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마지막 순서에서 서울 지역의 무당들의 조상 인 바리데기 공주가 망자의 넋을 넋전 상자에 담아 저승 세 계로 간다고 믿는 데에서도 같은 사정을 알 수 있다. 즉 영 혼을 확실하게 인정하니까 그것을 상자에 싣고 저승으로 데 려 가는 설정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죽은 영혼들이 가는 저승은 어떤 곳일까?

이 주제와 관련해서 일단 드는 생각은 무교는 자신의 고유 한 저승관을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불교나 기독교와 같은 종교에서는 저승이 대체로 천당(극락)과 지옥으로 나 뉘는데 무교에서는 천당에 대한 묘사를 찾기가 힘들다. 반 면에 지옥에 대한 묘사는 종종 발견되는데 무당들이 말하는 지옥에 대한 묘사는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 불교의 그것을 차용해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당들은 ‘칼산지옥’이니

‘불산지옥’ 하는 따위로 저승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런 지옥 들은 절에 있는 명부전과 같이 망자를 위한 건물의 벽에 그 려져 있는 지옥과 같은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무교의 지 옥이 불교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한국 무교에 서는 저승 가운데 천당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도 않고 가끔 발견되는 지옥에 대해서는 불교의 것을 차용해 쓰고 있으니 그만큼 무당들이 내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것 을 알 수 있으리라. 기실 이런 발상이 나오는 것은 무교가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을 생각해 보면 곧 알 수 있다. 한 국 무교가 지향하는 목표는 아주 간단하게 말해서 이 현세 에서 액을 물리치고 가능한 한 많은 복을 받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무교의 추종자들 역시 오로지 이 현세에 서 무병장수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할 뿐 죽음이나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 지 않는다. 혹은 관심은 있는지 몰라도 애써 외면한다. 그래 서 그들이 생각하는 저승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앞에서 본 상여소리에서는 저승이 문밖에 있다고 했는데 무교에서도 역시 저승이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모퉁이를 돌면 바로 저승이라고 주장한다. 저승은 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 니라 이승에 바짝 붙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저승관은 저승

(7)

에 별 관심 없어 그저 별 생각 없이 이승에 붙어 있다고 상 정했던지, 아니면 저승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이 승에 빌붙어 있는 것이라고 본 데에서 유래한 것일 것이다.

저승은 중요도 면에서 이승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이 다.

무교의 저승관을 엿볼 수 있는 모티프들은 많이 있겠지 만 우리는 같은 주제에 대해 바리공주 무가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적잖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바리공주 무가에서 주목하는 것은 그가 저승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그리고 저 승의 앞에 도착해서 겪었던 일과 관련된 것들이다. 다른 이 야기들은 모두 젖혀놓고 그가 부모의 약을 구하기 위해 저 승으로 떠난 다음부터의 일만 보자. 이와 연관해서 가장 먼 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저승으로 가는 길이 말할 수 없이 험난할 뿐만 아니라 멀다는 것이다. 그 긴 여정에는 수많은 난관이 있어 바리공주의 혼자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기 때 문에 관음보살 같은 신적인 존재의 도움을 받는다. 아울러 바리는 저승길에서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만 난다. 이들은 생전에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인데 이들이 받 는 고통의 모습은 불교의 탱화에서 묘사한 것과 유사해 무 교의 저승관은 역시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저승길을 험난한 고생길로 묘사하고 있는 데에서 우리는 무교의 저승관이 대단히 부정적이라는 것을 다시금 알 수 있다. 가기 싫은, 혹은 가서는 안 되는 길이라고 생각 하니 그 길을 대단히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이리라. 이것은 우리가 상여소리에서 살펴 본 것과 매우 유사하다. 상여소 리에서도 저승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 의 유일한 세계였던 이승을 등지고 가자니 억지로 갈 수밖 에 없는데 저승사자들이 칼과 쇠사슬을 들고 어서 가자고 재촉하는 것과 바리공주가 저승 가는 길에서 겪는 고초는 아주 비슷하다.

어떻든 그 긴 노정을 거쳐 바리공주는 무사히 저승문에 도착한다. 여기서 공주가 수문장인 무장신선을 만나 그의 요구대로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하는 등 그의 수발을 정성껏 들고 아들을 여럿 낳은 대가로 부모를 살릴 영약을 얻는다 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사 실은 배경으로 저승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저승 자체에 대한 묘사는 없고 모든 이야기가 문 앞까지의 이야기로 끝난다는 것이다. 바리가 갔던 길은 저승으로 향하는 길이었지만 그 가 ‘뼈빠지게’ 일을 한 곳은 저승 문 앞이지 저승 안으로 한 발짝이라도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 이야기를 보 면 무교의 신화를 만들었던 주인공(무당)들은 저승 자체에

대해서 관심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정이 그러 하니 이 이야기에서는 저승에 대한 어떤 묘사도 찾아볼 수 없다. 저승은 문이 굳게 닫힌 채 미지의 땅으로만 남을 뿐이 다. 이렇듯 이 무가의 주인공들은 저승에 대해 관심이 없었 기 때문에 그 안으로 들어갈 생각도 없었다. 그 때문에 이들 은 다시 이승으로 향한다. 물론 바리는 부모님을 살려야 하 는 의무 때문에 이승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지 모르지만 그의 남편이 된 무장신선과 그들의 자식들마저 그들의 기거 처였던 저승을 버리고 이승으로 향하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이승을 중시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이승 은 모든 가치의 중심이었고 저승을 버리면서까지 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세상이었던 것이다.

이상으로 보면 전통적인 한국인들은 저승을 이승과 완전 히 다른 세상으로 상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승은 초월적인 세계가 아니라 문 밖을 나서든 길모퉁이를 돌든 바로 이승 곁에 있는 지척의 세계이다. 저승은 따로 어 느 곳에 존재하는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인들 은 저승에 대해 아주 희박하거나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 을 뿐이다. 아니면 아예 저승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주제와 관련해서, 그런 한 국인들이 좋아했던 속담 가운데 ‘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좋 다’느니 ‘거꾸로 매달아도 사는 세상이 낫다’느니 ‘죽은 정 승이 산 개만 못하다’느니 하는 속담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현세에만 향해 있 기 때문이다.

3. 아직 확연하게 알 수 없는 현대 한국인들의 내세관 지금까지 검토한, 전통적인 한국인들이 견지하고 있는 내 세관이 현대의 한국인들에게는 어떻게 계승되어 있을까? 이 주제에 대해서는 연구나 조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잘 알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말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조선 조처럼 사회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가치관이나 신념 체계 가 유교(그리고/혹은 무교)로 단일화되어 있을 때에는 그 사 회의 구성원들이 견지하고 있는 생사관이 어떠한지에 대해 쉽게 예측할 수 있었지만 현대 한국인들은 유교 외에도 기 독교, 불교 등 복수의 신념 체계를 갖고 있어 같은 주제에 대해 접근하기가 힘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여러 종 교를 신봉하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관이 자신들이 믿고 있는 종교에 따라 형성되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냉철하게 검토해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앞에서 인용한 책들을 통해 한국인들은

(8)

두 층의 의식구조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13) 그 두 층이란 주지하다시피 조선인들의 심성을 구성해왔던 유교와 무교 인데 이 구조는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다시 말해 한국인은 자신을 불자로 고백하든 아 니면 기독교도로 고백하든 주위의 인간과 세계를 대하는 태 도는 철저하게 유교와 무교적인 가치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들은 잠정적인 유교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교의 영향은 많은 변화14)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 전히 가히 절대적이다.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몇 십 년은 지 속될 것으로 추단되는데 이에 따라 현대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내세관 혹은 생사관 역시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 을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내세관이나 상장례 (喪葬禮) 같은 인간의 죽음과 관계되어 있는 관념은 사람들 이 견지하고 있는 어떤 가치관보다 보수적이라 잘 바뀌지 않기 때문에 현대 한국인들의 그것은 조선인들의 그것의 연 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추측이고 현재 우리가 한국인 들의 내세관 혹은 죽음관을 피상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것 은 각종 통계 자료를 통해서일 것이다. 물론 이 통계 자료도 무작정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가치’, ‘태도’,

‘행동’이라는 세 가지의 다른 차원에서 생각하고 행위 하는 데 이 세 차원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 시 말해 어떤 사람이 어떤 가치를 갖고 있다고 해서 행동도 같은 선상에서 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 를 들어 생각으로는 ‘과외하는 것은 나쁘다’라는 가치를 갖 고 그 가치에 따라 일정한 태도로 이웃 사람들을 대하지만 정작 자신은 자녀들에게 과외를 시키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가치와 태도와 행동의 불일치이다. 따라서 각종 통계 자료에서 한국인들이 내세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 이 표출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한계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간 발표된 통계 자료 를 일별해보자. 그동안 한국인과 한국사회에 대해 다양한 방면에서 많은 통계 조사가 있어 왔는데 한국인들의 내세관 에 대해서는 극히 적은 조사밖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 록 단편적이지만 2005년에 행해진 한국인의 장례문화에 대

한 갤럽 조사15)를 보면, 현재 한국인 가운데 40.7%가 사후 세계가 있다고 보고 41.6%가 사후 세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는 결과가 나왔다(‘무어라 말할 수 없다’는 17.7%). 사후 세 계를 믿는 사람들의 비율을 연도순으로 보면, 1994년에 44.7%에서, 2001년에는 44.9%로 그다지 차이가 없다가 2005 년에는 위에서 본 대로 40.7%로 소폭으로 감소했다. 반면에 사후 세계를 부정하는 사람은 1994년에 28.4%에서 2001년 에는 32.9%로 늘었고 2005년에는 41.6%에 달하게 된다. 윤 회설을 믿는지의 여부에 대해 행해진 1984년 조사에서는 20.7%가 윤회설을 긍정했는데 2004년에는 49.4%로 그 숫자 가 대폭 증가한다. 윤회설을 믿는다는 것은 내세를 긍정하 는 것과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으니 최근에 전 인구--아이 들은 포함 안 되겠지만--의 절반이상이 사후생을 긍정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16) 그런가 하면 1996년에 공보처에 서 행한 조사17)에 의하면 ‘사후 세계를 믿는다’가 54.5%이 었고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40.1%인 것으로 결과 가 나왔다. 위의 조사결과들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종합해 보면 거칠게 이야기해서 전 국민의 반 정도가 내세의 존재 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이러한 결과는 앞에서 본 것처 럼 내세나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유교적인 태도와 배치된 다. 다시 말해 필자의 주장처럼 한국인들이 유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면 내세에 대한 긍정의 강도가 이와 같이 강 하게 나올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현상을 해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인구의 반 정도에 달하는 내세를 인정하는 사람의 숫자는 한국에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숫자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현 재 한국에는 거칠게 잡아서 불교가 약 1,200만, 기독교가 약 1,200만에 달하는 신자가 있고 그 외에 다른 종교 신자까지 포함하면 대체로 인구의 절반 정도가 종교를 갖고 있는 것 이 된다. 그런데 이 종교들에서는 하나 같이 내세를 긍정하 고 있으니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동으로 내세를 긍 정하게 되고 그 결과 이런 통계가 나온 것 아닌가 하는 생 각이 든다.

그러면 우리는 이 결과만을 믿고 한국인들은 내세지향적 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만 생각할 수 없다는 통계가 있어 흥미롭다. 이것은 위에서 인용한 갤럽 조사(2004)에서

13) 이 설을 가장 최근에 인용한 것은 졸저(2007), 『한국인을 춤추게 하라』(사계절)이다.

14) 예를 들어 여성들의 권익 향상으로 가부장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평등한 부부관계를 원하는 것이나 집안의 갈등 구조도 고부간에서 시아버지와 며느리, 그리고 장모와 사위 사이의 갈등으로 바뀌는 것 등이 그런 변화라 할 수 있겠다. (동아일보 1006년 9월 20일 자) 15) 한국 갤럽, "한국인의 장례문화“, Special Release 2006. 3. 13

16) 한국 갤럽 조사(2004), “2004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 2”, 17) 공보처(1996), 『한국인의 의식 ․ 가치관 조사』.

(9)

나온 통계인데 “극락이나 천국은 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 라 이 세상에 있다”라는 질문에 1984년에는 60.7%가 긍정을 한 반면 2004년에는 63.4%로 소폭 증가하고 있는 것이 그것 이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닐지 몰라도 천당이 이 세상에 있 다는 생각은 매우 현세지향적인 사고임에 틀림없다. 유추컨 대 천당과 사후 세계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지금 이 생에서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살게 될 때 바로 이 세계가 천당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리라.

천당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모르니 지금 여기서 잘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까 한 국인들은 반 이상이 머리 속에서는 내세가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이 현세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머리 속의 가치와 실제의 태도나 행동이 다르게 나온 것이 다. 머리로 내세를 긍정하는 것은 교회나 절에서 가르친 것 을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인 결과이지만 실제의 태도에서는 지극히 현세적인 성향을 가진 유교의 간단 없는 영향으로 현생을 강하게 긍정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인들의 내세 관은 확실히 알지 못한다고 인정하는 것이 솔직한 태도이리 라. 한국인들의 내세관을 확실히 알려면 우선 이 주제만을 목표로 하는 통계 조사가 면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 조 사에서는 가치를 대표하는 머리 속의 생각은 물론 진보된 조사 기술을 사용하여 한국인들이 실제로 믿고 행동하는 원 리를 확실하게 드러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드러난 통계 자료를 가지고 사회의 다른 부문, 즉 종교나 정치, 경 제 등과의 관계 속에서 이것을 적절하게 해석을 해야 할 것 이다.

글을 마치며

우리는 지금까지 전통 시대에 한국인들이 죽음과 내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았고 부족하나마 현대 한국인들 이 같은 주제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한국인들은 매우 현세적인 사고방식 속에서 살아 왔다 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얼마 안 되는 통계 자료를 통해 그런 삶에 대한 태도는 현대의 한국인들에게도 연장되고 있는 것 을 부분적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 로는 사람들은 그 심성 저변에 갖고 있는 밑바닥의 생각이 나 가치관을 자신들이 큰 위험에 빠지게 될 때 확실하게 드 러내 보일 것으로 생각된다. 평상시에는 예의나 체면 등을 따지느라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보이지 않다 위급 시 자신 의 모든 것이 까발려져서 자신의 원래 모습이 그대로 드러

나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본다면 한국인들의 내 세관이나 죽음관은 그들이 통계 설문지에다 답하는 데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암과 같은 불치병의 진단을 받고 중환자실이나 호스피스 병동에서 있을 때 적나라하게 드러 날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인을 포함해 거개의 사람들은 죽 음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되면 그간 일생 동안 바 깥으로부터 주입되었던 생각들을 떨쳐버리고 자신의 가장 깊은 속에서 자동적으로 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에 따라 행동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 는 가족들도 같은 맥락에서 그들이 원천적으로 지니고 있던 죽음관을 표현하게 될 것이고 가족과 환자는 그들이 가장 많이 공유하는 가치관을 공명하게 될 것이다. 이때 나타나 는 양상에 대해서 연구된 바는 잘 발견되지 않지만 현장에 있는 의사나 간호사의 말을 들어보면 한국의 말기 환자와 그 가족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삶을 연장할 수 있는 데까지 연장시키는 쪽으로 기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시 한부 인생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이것을 순순히 받아들이 고 여유롭게 죽음을 준비하면서 삶을 정리하는 말기 환자들 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 의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정확한 통계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여 나온 결과가 아니라 얼마나 신빙성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 다. 또 그런 간단한 설명만을 듣고 그 상황의 복잡다단한 양 상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 면밀한 분석 을 위해서는 인간의 죽음을 다루는 각 방면의 학자들이 오 랜 기간 학제간적인 접근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인간 의 죽음이란 워낙 다방면에 걸쳐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하 나의 학문으로는 그 전체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을 뿐만 아 니라 수없이 많은 변수가 있어 각각의 상황에 일일이 대응 할 수도 없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한 학문적인 시각에서 접 근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시각장애인(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REFERENCES

1) 현상윤,『조선유학사』, 민중서관, 1949.

2) 임재해,『전통상례』, 대원사, “빛깔 있는 책들” 총서, 1990.

3) 최준식,『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사계절, 1997.

4) _____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1, 사계절, 2005.

5) ______,『한국인을 춤추게 하라』,사계절, 2007.

6) ______,『최준식의 한국종교사 바로 보기--유불선의 틀을 깨라』, 한울, 2007.

7) 한국 갤럽, “한국인의 장례문화”, Special Release 2006. 3. 13.

(10)

8) 한국 갤럽 조사, “2004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 2”, 2004.

9) 공보처,『한국인의 의식 ․ 가치관 조사』, 1996.

10) Lynne Ann DeSpelder & Albert Lee Strickland, The Last

Dance--Encountering Death and Dying, 제7판, (McGraw Hill Press, 2005).

참조

관련 문서

‘유산’일 것이다. 이 유산을 어떻게 청산하느냐에 따라 한반도는 물론 동아 시아 전체의 갈등요인을 결정적으로 해소할 가능성이 큰 만큼 그 세계사적 의의는

한 사람의 진로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이렇듯 중요한 진로결정에서 상당수의 학생들이 체계적인 진로탐색이나

누수가 발생하고 바닥(여자의 입장에서는 천장)이 뚫리는 등 열악한 상황에서 두 사람은 여러 가지 불편함을 겪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에 대한 연민을

시설,캐디서비스가 몰입에 영향을 미쳤다.이러한 연구 결과는 골프장에서 제공 하는 대부분의 환경적 요인은 서비스 관계의 질 형성에 중요한 요소임을

1B).이는 NFI-C가 후기 치아의 발생 과정 특히 치근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다는 것을 의미한다.하악절치의 횡단표본에서 설측의 상아질이 형성되지 않을

본 연구에서는 부모 애착과 진로준비행동의 관계에서 심리적 독립과 자아정체감 이 각각 진로준비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할 뿐만 아니라, 심리적 독립과

연속적 구매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만족, 불만족의 형성에 대한 인지적 모델을 제시한 Labarbera 와 Mazursky(1983)는 서비스의 만족 불만족에 대한 연구 결과는

마지막으로 남녀 중학생들의 무용 표현활동 에 대한 능력믿음은 가치지각 , ( ) 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수업참여 수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