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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식민주의에 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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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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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13] 식민주의, 왜 지금까지도 문제인가

[학습목표]

1. 유럽의 식민주의에 대해 알아본다.

2. 식민주의의 유산에 대해 알아본다.

3. 식민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알아본다.

[학습과제]

1. 식민지 해방전쟁에서 시대의 흐름을 알아차리고 이에 순순히 따랐던 영 국과는 달리 끝까지 식민지를 내놓지 않으려고 했던 프랑스나 네덜란드, 벨기에 같은 나라의 식민지 정책에 대해 생각해 보자.

2. 제3세계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을 무조건 식민착취에 돌리는 것 도 옳지는 않으나, 서양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식민주의를 옹호 하는 것은 더 큰 문제라는 주장에 대해 생각해 보자.

3.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데 매우 유용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던 사회적 다 윈주의에 대해 생각해 보자.

4. 식민지배 체제란 식민주의자들이 식민지인들의 정치적 주권을 빼앗고 자유를 박탈함으로써 식민지인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만드는 체제라는 주장에 대해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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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식민주의, 왜 지금까지도 문제인가

1. 식민주의의 의미

15세기 말은 세계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 시기에 유럽인들 이 아시아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했을 뿐 아니라 대서양을 건너 아메 리카 대륙에도 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의 500년은 유럽인들의 힘이 전 세계로 팽창해 나간 시대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아메리카를 정복하여 식민지화 했으나 점차 힘이 커지며 나중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에도 식민지들을 건설할 수 있었다. 그리 하여 19세기에 이르러 몇몇 유럽 국가들은 본국의 수십 배 크기의 광대한 식민제국을 건설하며 강대국이 되었다.

식민주의는 간단히 말하면 이렇게 해외에 식민지들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 한 이념이나 실천을 말한다. 즉 군대와 관리들을 파견하여 식민통치 체제 를 만들고, 본국인을 옮겨 살게 하거나 토착민들을 억압하고 착취하여 식 민지가 본국에게 쓸모 있게 만들려는 이념이나 실천이다.

콜럼버스로부터 시작된 유럽의 식민주의는 1520, 30년대에 스페인인이 중 남미 지역을 정복함으로써 궤도에 올라갔다. 포르투갈인은 아시아 무역에 참여하며 곳곳에 무역거점들을 만들었으나 이는 식민지라고 하기는 어렵 다. 유럽인들이 아시아의 대제국들에 범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7세기 에는 영국인이나 프랑스인이 북아메리카 지역의 식민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식민주의가 본격화한 것은 1757년에 영국인이 인도의 벵골 지역을 시작으로 인도 전체를 식민화하면서부터이다. 1780년대에 유럽에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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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는 1880년대에 시작된 아프리카 쟁탈전으로 20년 사이에 53개 의 유럽식민지로 완전히 분할되었다. 20세기 초의 아프리카 지도

된 산업혁명이 이에 큰 힘을 실어 주었다. 산업화로 인해 가능해진 강력한 군사력이 세계의 힘의 균형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19세기에 아 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식민지화는 가속되었다. 특히 1880년대부터 시작 되는 신제국주의 시대에는 아프리카의 거의 전 지역이 유럽국가들에게 경 쟁적으로 분할되며 비서양지역의 95% 가량이 유럽국가들이나 미국, 일본 의 식민지나 반식민지로 떨어졌다.

식민주의는 2차대전 후에야 끝나게 되었다. 식민지인들의 끈질긴 저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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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한 유럽 식민국가들의 약화, 냉전체제로 바뀌는 국제정치의 흐름이 더 이상 그것을 불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영국은 시대 의 흐름을 알아차리고 이에 순순히 따랐다.

그러나 프랑스나 네덜란드, 벨기에 같은 나라는 끝까지 식민지를 내놓지 않으려고 했으므로 장기간의 가혹한 식민지 해방전쟁이 뒤이었다. 그럼에 도 식민지 해방이라는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결국 1960년대에 이르 러 세계의 거의 모든 식민지가 해방되기에 이르렀다.

2. 식민주의의 유산

독립을 얻은 식민지인들은 해방이 되기만 하면 모든 문제들이 한꺼번에 다 해결될 것으로 믿었다. 정치적 무질서나 억압, 경제적 빈곤, 사회적 불평 등, 문화적 예속 같은 모든 문제들을 다 식민통치의 결과로 보았기 때문이 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들의 기대는 빗나갔다. 해방 이후 반세기가 지났지만 과거의 식민지들인 대부분의 제 3세계 국가들은 아직도 과거와 비슷한 상 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식민국가들인 선진국에게 정 치, 경제적으로 예속되어 있을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식민통치라는 과거의 직접지배가 이제 보다 교묘한 간접지배로 모습을 바꾸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가까운 장래에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사실 지난 수 십 년 사이에 제3세계 후진국들과 선진국들 사이에, 즉 남·북 사이의 경제적 격차는 더 커졌다.

제3세계 국가들은 빈곤과 기아, 자연재해로부터 계속 고통을 받고 있고 그 것이 완화될 조짐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 같이 식민지에서 시작해 거 의 선진국에 근접한 경우는 희유한 예이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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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식민주의는 겉으로는 사라졌으나 아직도 제 3세계인들에게는 무거운 짐으로 남아있다.

그러면 제3세계국가들이 이렇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제3세계 학자들 은 모든 문제의 근원을 식민주의에게 돌린다. 식민주의가 아시아, 아프리 카 국가들의 자생적인 정치적, 경제적 발전을 가로막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조장했을 뿐 아니라 문화적 창조성도 억눌렀다는 것이다.

반면 많은 서양학자들은 그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식민지배에는 부정 적인 영향도 있고 긍정적인 영향도 있으나 긍정적인 점이 더 많았다는 것 이다. 그것이 식민지를 근대화하고 문명의 혜택을 가져다주는 데 큰 역할 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서양학자들 가운데 양심적인 사람이 없는 것은 아 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유럽중심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아직 까지도 온갖 엉터리 이론이나 주장을 내세우며 식민주의를 옹호하고 정당 화한다.

사실 식민주의 문제는 제3세계 학자들과 서양학자들 사이에 원천적으로 첨예한 의견대립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물론 제3세계가 안고 있 는 모든 문제의 근원을 무조건 식민착취에 돌리는 것도 옳지는 않다. 그러 나 서양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식민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그럼에도 일부 국내학자들 가운데에는 이런 잘못된 서양이론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식민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요사이 일부 학자가 주장하 는 '식민지근대화론'이나 '협력이론'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일제 시대에 근대화가 이루어졌고 친일파는 근대화를 추구한 사람들이었다 는 것이다. 근대화만 이루어지면 주권은 아무 관계도 없다는 식의 이야기 이니 참으로 한심한 이야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태도에는 현실정 치적 이해관계도 관련되어 있겠으나 한 편으로는 서양이나 일본학문을 선 진학문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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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거 일제의 식민시대를 경험했고 아직도 그 유산에서 자유롭지 못 한 한국 같은 나라에서 이렇게 무비판적인 수준을 넘어서서 식민주의에 영 합하는 태도는 참으로 몰지각한 일이다.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할 것이다.

3. 식민주의 이데올로기

16세기 초에 중남미 지역을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은 식민지 지배의 정당 성을 ‘정복의 권리’에서 찾았다. 자기네들이 정복한 땅이니까 그것을 점령 하고 다스리는 것은 정당한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아메리카의 땅과 주민들을 지배하고 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일은 도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17세기에 북아메리카에 자리 잡기 시작한 영국, 프랑스 사람들은 원주민들 의 땅을 불법적으로 빼앗은 것이 아니라 ‘빈 땅’에 원주민들의 동의와 협 조를 받아 정착했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의 행위를 스페인 사람들과 차별화 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그 자신들에게는 중요했을지 몰라도 아메리카 원주민 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들이 곧 울타리치기와 농업을 통해 확보했 다고 하는 사유재산권을 '자연법'으로 내세우며 원주민들의 땅을 침범했기 때문이다. 자연법을 내세운 이런 주장은 자신들의 행위를 도덕적인 양 가 장하고 있는 점에서 정복의 권리 주장보다 더 악랄한 태도라고 하겠다.

1870년대 이후의 제국주의 시대에 오면 많은 나라들이 식민지 확보를 위 해 경쟁을 했으므로 식민지에 대한 요구는 더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또 대 중화한다. 그래서 유럽 각국의 제국주의자들은 시장의 확보, 원료의 조달 지, 자본의 투자처, 과잉인구의 유출지로 식민지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 다. 식민지가 있어야 강대국으로서의 위신이 올라간다고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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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데 매우 유용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던 것이 사회적 다윈주의이다. 적자생존을 인간사회에까지 확장함으로써 힘 있는 국가가 힘없는 국가를 지배하는 것을 자연적 질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의 대중화에 앞장 선 것은 독일의 식민협회, 독일과 영국의 해군 협회 같은 수많은 제국주의적 정치, 사회단체들이다. 많게는 수백만의 회 원을 가진 이들 단체는 식민지 확보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옹호하고 제국주 의적 가치를 확산시키며 정부의 식민정책에 압력을 행사했다. 심지어 1908년에 영국에서 창립된 보이 스카웃 같은 소년운동조차 소년들에게 제 국주의적 가치를 주입시키려고 애썼다.

19세기 말에 와서 세계경제가 점차 보호무역주의로 돌아가게 되자 이제 제국은 자국경제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이런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1895-1903년까지 영국의 식민장관을 지낸 조셉 체임벌린이다.

그는 당시의 추세대로 가면 곧 자유무역의 시대가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게 되면 이제 주된 강국들은 제국으로부터 원료를 가져오고, 모국은 공산품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이민을 내보내는 자족적인 경제블록을 형성하 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그는 영국이 산업능력이나 군사적 능력에서 점차 국제경쟁에서 패배하 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국내의 사회문제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그러 므로 제국의 형성은 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었 다. 그래서 그는 영국과 영국의 백인 정착식민지들을 결합하는 제국적 경 제통합을 꿈꿨다. 그러나 식민지인들의 불신 때문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런 생각은 뒤의 경제공황 시기에 상당한 정도로 현실화되었다.

4. 식민화와 유럽인의 도덕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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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유럽인들이 식민 지배를 도덕적인 일로 미화하는데 소홀했던 것 은 아니다. 미화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행위가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생각의 바탕에는 자신들이 비유럽인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우월하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그들이 보기에 비유럽인들은 기독교를 믿지 않으므로 이 세계의 진정한 의 미를 이해할 수 없다. 비유럽 사람들의 기술 수준은 매우 낮으므로 자연을 잘 지배할 수도 없다. 인종적인 면에서 볼 때 도 비유럽인들은 백인종인 유럽인들에 비해 열등할 수밖에 없다. 또 열대 지역 사람들은 더운 기후 때문에 천성적으로 게으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식민지인들은 게으르고, 잔인하고, 놀기만 좋아하고, 순진하고, 결 단력이 없고, 겉과 속이 다르며, 보다 복잡한 추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 고, 이성이 아니라 충동에 따라 행동하는 한심한 존재로 이해되었다. 그러 니 이렇게 아직 성숙하지 못한 식민지인들이 유럽인의 보호를 받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19, 20세기에 오면 유럽 사람들은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도덕적인 사명 속에서도 찾았다. 높은 문명 수준을 갖고 있는 유럽의 백인종들이 이 들을 가르치고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면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치능력이 없고 아시아 사람들은 전제의 폭압 속에 있 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따라서 이들을 해방시키고 정치적인 훈련을 시킬 필요가 있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이들에게 제대로 노동을 하는 습관이나, 절약이나 저축 등 여러 가지 경제관념을 넣어 줄 필요가 있었다. 또 문화적 면에서, 식민 지 사람들은 나쁜 관습이나 미신, 비도덕적 행위들에서 스스로는 벗어날 수 없으므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식 민통치는 유럽 사람들의 선물이자 문명을 나누어주는 은혜로운 행위로, 또 인류애의 발로로 찬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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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선교는 이런 맥락에서 정당화될 수 있었다. 식민지인들에게 미신이 나 낮은 수준의 종교 대신 고등종교인 기독교를 믿게 함으로써 그 도덕성 을 높여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서양문명의 혜택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 이다.

선교사들이 교육이나 의료사업을 병행했으므로 이런 주장이 어느 정도 먹 혀들어갈 소지도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 선교사업은 약간의 문화적 혜택을 가져다 준 것은 사실이라 해도 식민지의 토착 문화를 파괴함으로써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F. D. 러가드는 나이지리아 총독을 지내기도 한 영국의 식민지 관리인데 두 가지의 도덕적 사명을 주장했다. 하나는 유럽문명의 복음을 식민지에 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방치되어 있는 식민지의 자원들을 세계경제를 위해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러가디즘이라고 해서 20 세기 초에 유럽 각국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주장이다.

키플링이라는 영국 시인이 ‘백인의 짐’을 지자고 호소한 것도 비슷한 맥락 이다. 백인의 가장 훌륭한 아들들을 보내 식민지인을 돕게 하자는 것이다.

식민지인들이 져 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은 짐을 지겠다고 엉뚱하게 나서고 있는 것이다.

5. 가혹한 식민지배 체제

그러나 실제의 식민지배는 인류애에 가득 찬 이런 갸륵한 주장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식민지배 체제란 식민주의자들이 식민지인들의 정치적 주권 을 빼앗고 자유를 박탈함으로써 식민지인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 할 수 없게 만드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식민국가의 성격이나 식민지가 위치해 있는 지역에 따라 식민체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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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은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식민지인을 억압하고 식민지 착취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어디에서도 식민지인들은 정치, 외교, 군사적 자주권을 빼앗기게 된다. 또 식민지는 식민국가들의 요구와 이익에 봉사하는 방향으로 다시 짜여진다.

그러므로 식민지인들은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부 인당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식민지배 체제는 식민지인들에게는 근본적으 로 부정적인 것이고 악일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의 경우를 보면 정치적인 면에서 식민주의가 갖고 있는 이런 부정 적인 성격들을 잘 알 수 있다.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식민지의 많은 경계선 을 자기들끼리의 타협에 의해 제멋대로 만들었다. 오늘날 아프리카 국가들 의 국경선에 직선으로 된 것이 많은 것이 그 결과이다.

이 경계선들은 종족이나 문화, 지리, 또 생태학적인 문제를 도외시한 것임 에도 독립 이후 그대로 새 국가들의 국경선이 되었다. 그래서 한 종족이 여러 나라로 분산된 경우나 한 국가 안에 여러 종족들이 같이 사는 경우가 매우 많다.

또 나라 사이에 자연자원이나 경제적인 능력 면에서 너무나 큰 차이가 존 재한다. 어떤 나라는 너무 크고 어떤 나라는 너무 작으며 어떤 나라는 풍 부한 지하자원을 갖고 있는 반면 어떤 나라는 사막밖에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강물을 이용하는 문제, 바다로의 출구 등 많은 문제를 두고 수많은 국제적 분쟁이 생겨나고 있다. 이 대부분이 잘못된 식민지배의 유산 때문 이다.

게다가 식민당국자들은 식민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 분할통치 정책을 취했 다. 일부 종족에게 특권을 주어 다른 종족과 대립하게 함으로써 여러 종족 들이 함께 단합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종족 사이의 분열은 독립 후에도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에서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아시아 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종족간의 분쟁이 가끔씩 종족학살 같은 극단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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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형태로 치닫기도 한다.

서양인들은 이런 종족학살을 제3세계인의 미개성 탓으로 돌리고 자신들은 문명인인 듯이 자랑하나 이는 매우 잘못된 태도이다. 그 원인을 만들어 준 것이 서양인들이기 때문이다. 또 종족이나 민족 사이에 이해관계가 충돌하 면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어느 곳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유럽도 예외가 아니다. 2차대전은 유럽인들의 영토확장욕의 산물이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또 유대인, 집시 등 많은 소수종족 들이 학살을 당했다. 아프리카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또 식민국가들은 관료제도와 군사제도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현지인들을 흡수하여 만든 이 제도들은 식민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지 식민 지의 근대화나 식민지인들의 복리를 위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런 제도 는 식민지인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동족을 억압하던 이들 식민지 관리나 군인들이 만든 전통은 오늘날에도 대 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에 그대로 살아남음으로써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나 라를 만드는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가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걸핏하 면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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