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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문학에 나타난 서울과 평양의 도시 이미지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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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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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정연 2004-PR-33. 남북한 문학에 나타난 서울과 평양의 도시 이미지 비교. 2005. 4. 서울시정개발연구원 Seoul Development Institute.

(2) 연구진 연구책임 ∥ 김 성 수 ∥ 성균관대학교 학부대학 교수 연구보조원∥ 박 용 숙 ∥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수료.

(3) 목 차 Ⅰ. 서론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 2. 선행연구 검토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2 3. 연구의 범위 및 방법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5. Ⅱ. 남한문학에 나타난 서울의 도시 이미지의 역사적 변모 · · · · · · · · · · · · · · · · · · · · · ·8 1. 1950년대 이전 문학에 나타난 서울의 이미지 분석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8 2. 1950-60년대 문학에 나타난 서울의 이미지 분석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1 3. 1970-80년대 문학에 나타난 서울의 이미지 분석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27 4. 1990년대 이후 문학에 나타난 서울의 이미지 분석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41. Ⅲ. 북한문학에 나타난 평양의 도시 이미지의 역사적 변모 · · · · · · · · · · · · · · · · · · · · · · 46 1. 1950-60년대 문학에 나타난 평양의 이미지 분석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46 2. 1970-80년대 문학에 나타난 평양의 이미지 분석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50 3. 1990년대 이후 문학에 나타난 평양의 이미지 분석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54. Ⅳ. 남북한 문학에 나타난 서울과 평양의 이미지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57 1. 남북한 문학에 나타난 서울과 평양의 이미지 비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57 2. 남북한 문학에 나타난 상호간의 수도 인식 비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58 3. 도시 이미지 비교를 통한 서울과 평양의 교류방안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66. Ⅴ. 결론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74. 부. 록·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76. 참고문헌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79.

(4) Ⅰ. 서 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연구 배경 그동안 북한학계, 통일학계에서는 남북한의 정치, 경제에 대한 비교 연구와 통일을 향 한 상호 이해와 교류, 협력방안, 그리고 사회문화적 통합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 게 이루어졌다. 반면 도시학이나 도시행정 분야에서는 남북한의 도시나 문화부문, 그 중 에서도 서울과 평양의 도시 이미지에 대한 비교 연구는 매우 미흡하다 못해 전무한 실정 에 있다. 더욱이 ‘남북한 문학에 나타난 서울과 평양의 도시 이미지’ 고찰이라는 본 연구 주제는 그 비중과 가치에 비해 학계에서의 관심이나 정책연구 상 존재조차 미미한 것이 현실이다. 남북 학계와 정부는 각각 자기 수도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나 도시학 연구에서는 많은 성과를 냈다. 하지만 통일 수도라는 통합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본 학계의 노력은 매 우 미흡하고 남북한 주민의 서울과 평양에 대한 상호 인식은 구체적인 실체가 거의 없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일을 위한 가시적인 청사진은커녕 상대편 수도에 대한 기초적 인 자료조차 제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호 이해와 관광 등을 통한 교류의 노력이 얼마나 있었는지 의문인 것이다. 참여정부는 국민의 정부가 주도했던 화해와 협력이라는 대북정책의 원칙을 계승하여 평화와 번영을 기조로 하는 대북정책을 마련하고도 대내 외의 난관 때문에 제대로 정책 현실화를 기대만큼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단을 극복하는 통일시대 를 위해 남북교류를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서울․평양 등 남북 도시간 교류 및 협력의 필 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남북한 문학 텍스트에 나타 난 서울과 평양의 도시 이미지를 비교 고찰하여 통일을 향한 구체적 프로그램을 지향하 고, 궁극적으로 통일 후 사회문화적 통합 작업의 학문적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 나름대로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연구 목적 본 연구는 남북한 문학 텍스트에 나타난 서울과 평양의 도시 이미지를 비교 고찰한다. 그동안 서울학, 도시학이나 정책개발원에서 낸 업적을 바탕으로 서울의 도시 이미지를 정 리하고 북한학이나 통일학에서 얻은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평양의 도시적 이미지를 재구 하여 ‘문학작품에 나타난 서울과 평양의 도시 이미지’를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그동안 이루어진 서울 연구의 성과를 통해 북한 도시 특히 평양과의 비교라든가 남북 교류와 협력 방안 같은 주제로 시야를 확장할 것이다. 이와 관련된 기존 연구는 서울시. 1.

(5) 산하 연구센터에서 북한 도시에 대한 기초연구와 자료 구축 및 남북 도시간 교류 및 협 력 방안을 모색하는 작업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통일을 향한 구체적 프로그 램을 지향하고, 궁극적으로 통일 후 사회문화적 통합 작업의 학문적 정책적 기초를 마련 하는 데 목적을 둔다.. 2. 선행 연구 검토 ‘문학작품에 나타난 서울과 평양의 도시 이미지 비교’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먼저 남한 의 연구동향을 보자. 남한에서 문학연구는 도시학이나 문화이론의 자생적 전통도 부족하 고 시대적 과제를 감당할 분위기도 성숙되지 않은 까닭에 서양이론의 수입으로부터 시작 되었다. 1950년대 당시 영문학계와 불문학계 등에서 지배적으로 자리잡았던 신비평 내지 형식주의 연구방법론이 우리 문학의 주요한 이론적 분석틀로 출발하였다. 때문에 서울이 라는 도시의 이미지를 본격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은 서울학의 하위범주로 서울을 형상화 한 문학과 문화 텍스트의 분석을 통해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권오만, 이동하, 한 형구 교수 등의 선구적인 연구에 의하여 해방 전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문학작 품에 나타난 서울의 모습을 다양하면서도 심층적으로 분석한 성과가 나왔다. 가령 김수 영 시와 김승옥 소설에 나타난 종로 거리의 이미지라든가 박완서, 장정일 문학에 나타난 서울의 뒷골목 풍경 분석 같은 것이 그 예가 될 것이다.1) 반면 건축학, 도시학자의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서울의 모습과 그 의미에 대한 많은 연구성과를 냈다. 김정동, <문학 속 우리 도시 기행>, 박철수, <소설 속 공간 산책> 등 은 건축학, 도시학자의 한국현대문학에 대한 깊은 관심의 산물로 평가된다.2) 김정동 교수. 1) 이 문제와 관련된 문학연구자의 대표적인 선행 연구업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권오만,「종로 : 둥지로서의 여러 모습」,『종로 ; 시간, 장소, 사람』,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2002 권오만,「한국 현대시의 서울체험 연구」,『서울학연구』9,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유민영,「희곡․시나리오 속의 도시상」,『도시문제』24권 3호, 대한지방행정공제회, 1989 이남호,「시에 나타난 도시문제」,『도시문제』24권 3호, 대한지방행정공제회, 1989 이동하,「국문학․국어학과 서울 연구」,『서울학연구총서』,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1994 이동하,「문학작품에 다루어진 도시문제 : 한국소설과 도시화, 산업화의 문제」,『도시문제』24권 3호, 대한지방행정공제회, 1989 이동하,「서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소설적 형상화의 두 가지 양상」,『인문과학』, 서울시립대학교 인 문과학연구소, 1998 이동하,「한국 현대소설에 나타난 종로의 모습」,『종로 ; 시간, 장소, 사람』,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 소, 2002 이동하,「한국문학의 도시문제에 대한 비판적 고찰」,『인문과학』, 서울시립대 인문과학연구소, 2000 이동하,「한국현대 장편소설에 나타난 서울 사람들의 삶」,『서울학연구』,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1999 이동하,『한국문학 속의 도시와 이데올로기』, 태학사, 1999 한형구,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계보 소설을 통해본 20세기 서울의 삶의 역사와 그 공간 지리의 변 모」, 『서울학연구』 14호,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2000. 한형구, 「문자현상, 혹은 문학으로 본 서울 근대 100년의 이미지」, 『서울 20세기 생활∙문화변천 사』, 서울시정개발원, 2001. 2) 김정동, 『문학 속 우리 도시 기행』, 옛오늘, 2001.; 김정동, 『문학 속 우리 도시 기행』 제2권, 푸. 2.

(6) 는 우리의 도시, 건축에서 역사를 담고 있는 현장을 ‘장소성’이라는 개념으로 설정하고 근대사 100여 년 동안의 장.단편소설, 시 등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뒤를 좇아 도시 건축을 섭렵하며 그것을 ‘문학동선(文學動線)’이라 명명, 재구성하는 작업에 주력하였다. 특히 해 방후 문학 속의 도시를 다룬 제 2부 ‘해방 후의 문학동선을 찾아’를 보면, 다음과 같은 목차를 볼 수 있다. 황순원의《술》_해방 직후 평양의 일본인 양조장을 둘러싼 갈등 정비석의《자유부인》_1950년대 서울, "사랑의 길"을 거닐며 김동리의《밀다원 시대》_천 일간의 임시수도, 부산에서 일어나던 일들 최인훈의《광장》_남북 어디에도 없는 광장 손창섭의《신의 희작》_어려운 시대를 산 한 작가의 자화상 김승옥의《무진기행》_지도에도 없는 도시, 안개만이 자욱한 그 도시 이호철의《서울은 만원이다》_1960년대 창녀촌 풍경, 잘사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정연희의《목마른 나무들》_순수의 시대, 4.19 현장을 다시 찾다 오정희의《중국인 거리》_소녀 눈에 비친 1950년대 초 인천의 선창가 근대 시 속에서 다시 찾는 우리가 걷던 도시, 기웃거리던 건축물들 하지만 이들 기존 연구에서는 해방 후 서울의 변모상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나 북한 도 시 특히 평양과의 비교라든가 교류와 협력 방안 같은 주제로 시야를 확장하지는 못했다. 이와 관련된 기존 연구는 서울시립대나 서울시 산하 연구기관에서 남북한 도시에 대한 기초연구와 자료 구축 및 남북 도시간 교류 및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작업이 대표적인 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은 항목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 남북한 주요 도시에 대한 기초적 도시 정보 및 자료 구축  남북한 도시계획 및 도시행정에 관한 기초연구 및 이해 증진  서울․평양 또는 남북도시 간 중장기적 교류 및 협력방안 모색 그러나 이들 연구는 정책 개발을 위한 목표가 사실에 선행하는 접근이라는 약간의 한 계가 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남북 간의 체제우월성 경쟁 의 도구로 활용되거나 화해와 통합을 위한 학술적 노력이 정세 변화에 휘둘리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남북한 문화통합론에 대한 연구는 흔히 정책당국이나 관련 연구기관에서 요 구하는 것처럼 단기간의 실용성을 보장하는 가시적인 연구성과를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본격적인 학술연구작업을 통하여 중장기 전망을 마련하는 기초작업에 충실해야 할 것으 로 생각된다. 남북 간의 정세 변화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인문학 기초 분야 연구가 절 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북한 문학과 문화 특히 거기에 담긴 평양의 모습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나 일부분에 대 한 분석은 있었지만, 자료 수집의 한계 때문에 통일학적 도시학적 이론에 입각한 포괄적 인 본격연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남북한 문학과 문화론에 대한 국내 연구 수준은 초 른역사, 2005.1. ; 박철수, 『소설속 공간 산책』, 시공문화사, 2002. ; 박철수, 『소설속 공간 산책』 제2 권, 시공문화사, 2004 참조.. 3.

(7) 보적인 자료 정리, 소개 수준이거나 아니면 몇몇 자료를 일부만 검토하고 전체적인 실상 인 것처럼 과도하게 일반화시켜 논하는 풍토에 젖어 있다. 이를테면,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한다면 북한의 학자가 1960,70년대에 나온 낡은 자료를 가지고 남한의 문학과 문화 또는 서울의 실상 전반을 재단한다면 얼마나 몰상식한 연구 수준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평양에서 2001년에 나온 『조선대백과사전』의 ‘서울’ 항목 을 보면 지하철 1호선밖에 없는 공해와 미군 행패의 도시로 대한민국 수도의 도시 이미 지가 왜곡 축소 서술되고 있는 형편이다. 마찬가지로 지금까지의 많은 기존연구가 부실한 자료로써 이 분야 연구를 해왔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만영의 서사시나 리종렬의 소설 등 북한 문학에 나타난 평양의 도시 이미지를 보면, 계획도시답게 깨끗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전체주의체제의 선전을 위한 전시적이고 기념비 적 성격이 강한 이중성이 존재한다. 이는 6.25전쟁 이후 북한의 평양시 복구건설 총계획 과 주체사상에 기초한 ‘건축예술론’에 입각한 도시개발 기본방침 등에 역사적 근거가 있 다. 평양은 전쟁 때 미군 폭격으로 90% 이상 파괴되는 바람에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전면적 구조개편이 가능했던 것이다. 1950년대에는 전후복구과정에 개입한 구 소련 과 동구권의 영향으로 신고전주의풍 건축물이 다수였으나 60년대 이후 주체사상이 강조 한 민족형식이 더해져 동구 사회주의권 도시와는 전혀 다른 현재의 모습을 이루게 됐다 고 할 수 있다.. 4.

(8) 북한에서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하여 독자적인 사회주의체제를 구축한 결과 마르크스레 닌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학이 문학예술의 공식원리로 채택되어 당과 인민 에 복무하는 당(黨)문학 당예술을 표방하였다. 현재 북한에서는 ‘주체사실주의’ 창작방법 을 내용으로 한 김정일 시대의 새로운 주체문학론, 영화예술론, 건축예술론이 유일한 중 심이 되어 있다. 1970-80년대 ‘주체사상에 기초한 문학예술론’의 수정보완판이라 할 ‘주체 문학론’의 핵심은 사람, 인민대중의 자주성에 기초한 주체의 문예관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민대중의 자주성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라는 보다 우월한 가치기준에 매몰된다 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본 연구에서는 통일학의 기준에서 이러한 북한의 공식적 문화정책 및 미의식에 대한 비판적 접근과 평가를 수행하고자 한다.. 3. 연구의 범위 및 방법 남북한에서 60년간 이루어진 수도의 문화적 형상과 도시 이미지 분석은 그 자체로 완 결된 하나의 고정불변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역동체이다. 이를 역사주의적 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각 시기를 대표하는 텍스트의 대비는 필수적이다. 남북한 문화사의 초창기(1950-60년대)와 중기(1970-80년대), 그리고 90년대 이후 최근의 변모를 역사적 3 단계 시기별로 파악할 수 있는 분석틀을 세워 각 시기를 대표하는 이론서, 시 소설 등 텍 스트를 비교 분석하는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6.25전쟁 후 전후 복구가 한창 이던 서울의 50년대를 대표하는 문학 작품으로는 『오발탄』을 선정하고, 세계적인 냉전 종속의 기류 속에서 남북 교류가 시작된 평양의 80년대를 대표하는 문학 작품으로는 『평양은 선언한다』 등을 선정하여 각각의 텍스트에 담긴 도시 이미지를 대비 분석하는 것이 일례이다. 본 연구의 방법은 문헌 고찰과 역사주의적 접근방법이다. 남북한 문학 텍스트에 나타난 서울과 평양의 도시 이미지를 그 역사적 변모과정 속에서 분석적으로 고찰하여 통일을 향한 구체적 공통분모를 찾고 사회문화적 통합 작업의 학문적 기초까지 마련하기 위해서 는 역사주의적 접근방법을 필요하다. 전통적인 문헌고찰적 연구방법과 함께 대중문화에 대한 문화론적 접근과 서울과 평양의 생생한 문화 현장을 지리적, 건축학적으로 살펴볼 생각이다. 먼저, 남북한 문예이론과 도시학의 역사적 변모와 비교를 통한 통합논리를 규명하기 위 해서 요구되는 방법론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모든 연구가 다 그렇겠지만 문헌고찰적 연구 방법 자체는 일반적으로 실증적 서지작업과 작품 구조 분석, 그리고 사회역사적 의미 해 석이 유기적으로 연관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서울 관련 자료의 경우 서울시의 자료 와 각종 서울학연구 성과를 통해 수집할 수 있는 기존 연구자료를 사료비판 방법으로 재 구성할 필요가 있다. 북한 자료의 경우에는 자료 접근부터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자료가 처음 나왔을 때와 정치적 상황이 달라진 후대의 경우 후대본이 전후사정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개작되 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문화정책의 기초가 되는 김일성 김정일 전집류부터 각종 문학사,. 5.

(9) 문화사, 문예이론서, 시 · 소설집, ‘영화문학’(시나리오) 자료에 이르기까지 실증적 서지작 업을 거치지 않은 채 최근 자료 또는 남한에서 나온 2차 자료를 인용한다면 잘못을 저 지를 위험이 크다. 북한 문학예술 연구의 경우 종래의 이 분야 연구는 한두 권의 이론서로써. 전체를 규. 정하는 ‘일반화의 오류’를 광범위하게 저질러왔다. 따라서 시대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역사적 대표작 중심의 각종 문헌을 고찰하되, 그 중에는 통일 문학사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는 단초를 규명하는 작업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이에 서울과 평양의 역사적 유래와 공통성을 알 수 있는 텍스트를 분석함으로써 민족적 동질감을 회복할 수 있는 통일 문 화사의 이론적 기초를 세울 수 있다고 본다. 다음으로 필요한 작업은 실증적인 서지작업의 기반 위에서 내재적 비교 분석과 비판 적 역사주의적 해석을 행하는 일이다. ‘내재적’이라 함은 이중적인 의미인데, 하나는 자생 적으로 만들어진 이론을 중시하자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문예이론이 나온 그 사회체제 안으로부터의 시각을 일단 인정한 위에서 가치평가를 하자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우리 남 한 학계의 경우 내재적 연구방법의 계발보다는 외국 이론의 수용과 변용에 힘쓴 결과 자 생적 이론에 대한 불신이 없지 않았다. 또한 어떤 외국이론이나 방법의 타당성을 검증할 때 우리 사회 자체의 안으로부터의 요구를 중시하기보다는 원산지의 우월성 여부에 기준 을 두는 잘못을 저질러왔다. 이에 남북한 이론의 비교만큼은 통일이라는 내재적 준거에 맞춰 분석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재적 분석만 앞세우면 자칫 북한 문화예술의 여러 문제점을 덮어둘 위험도 적지 않다. 남한과는 정반대로 북한 학계에서는 정치 일변도, 이데올로기 과잉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판적 역사주의적 해석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남북한에서 지난 반세기동안 이루어진 문예이론은 나름대로의 보편타당성과 현실적 효 용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존재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내재적 존재의의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효용성의 기준이 아닌 민족통합의 논리라든가 이론적 완결성의 기준으로 본다 면 문제가 적지 않을 터이다. 이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이 때 비판적 접근이 단순한 감정적 판단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역사주의적 접근이 병행 되어야 한다. 역사주의적 접근방법이란 단순히 시간적 변모를 실증적으로 추적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사 전개과정을 역사의 합법칙적 발전과정의 일환으로 파악하고 그 과정에서의 합법칙적 모델을 규명하는 작업까지 포괄할 때 의의가 있다. 역사주의적 접근방법을 적용할 경우 논의의 통시적 근거를 확보하게 될 뿐만 아니라 현재적 의의도 확보하고 나아가 앞으로의 추이를 예견할 수 있는 유용함도 얻게 될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남북한 문학 텍스트에 나타난 남북한 주민의 서울과 평양에 대한 인식 의 단순 비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류 방법론까지 포괄함으로써 통일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이론 및 자료와 그렇지 못한 것을 변별하여 평가할 것이다. 이때, 평가의 기준은 특 정 이념이나 계급의 옹호가 아닌 민족 공동체론에 근거를 둔 입장에서 수행될 것이다. 남 북한의 문화적 통합을 기할 경우, 대중문화의 경우 일제 때의 <아리랑>이라는 뿌리를 두 고 남한의 <사랑의 미로> 같은 트로트 가요나 북한의 <휘파람> <평양 냉면 제일이야> 같은 대중가요가 남북한 주민의 공감대를 늘릴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남북한 어느. 6.

(10) 한쪽의 우열을 가리거나 이질성을 강조하기보다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정서적 통합을 기 하는 데 문학예술이 구체적으로 기여할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들 공통항의 선례를 중심으로 통일을 위한 문학예술 작품의 창작 방향이 설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울, 평양이라는 도시의 이미지를 본격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은 ‘서울 평양학’의 하위범주로 서울과 평양을 형상화한 문학 텍스트의 분석과 비교를 통해 다양하 게 이루어질 수 있다. 김수영 시와 김승옥 소설에 나타난 종로 거리의 이미지라든가 김만 영 시와 리종렬 소설에 나타난 평양 김일성 광장의 풍경 분석 같은 것이 그 예가 될 것 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남북한 문학에 나타난 서울과 평양의 도시 이미지를 단순 비교하 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텍스트를 자료로 해서 거기에 담긴 ‘수도로서의 성 격과 기능, 도시미학적 이미지, 담당 주체의 자아정체성’ 등 주제별로 비교 분석하는 작업 을 궁극적으로 지향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의 전반적인 얼개를 정리해보면, 남북한 문학사의 초창기(1950-60년대)와 중기 (1970-80년대), 90년대 이후 최근까지 역사적 3단계 시기별로 대표작을 선정해서 분석하 는 것을 씨줄로 하고, 개별 텍스트에 형상화된 도시 이미지를 ‘수도로서의 성격과 기능, 도시미학적 이미지, 담당 주체의 자아정체성’ 등 주제별로 비교하는 것을 날줄로 하는 구 도를 지닌다. 이를 통해 남북한 수도의 도시 이미지에 대한 단순 비교뿐만 아니라 궁극 적으로 ‘통일학’의 한 영역으로서 통일정치학, 통일경제학과 동등한 차원의 ‘통일도시학’, ‘통일문화학’이라는 독자적인 영역이 가능한지 전망하고자 한다.. 7.

(11) Ⅱ. 남한문학에 나타난 서울의 도시 이미지의 역사적 변모. 1. 1950년대 이전 문학에 나타난 서울의 이미지 분석 해방 후 남한 문학에 나타난 서울의 도시 이미지를 역사적으로 고찰할 때 흥미로운 사 실은 부정적 형상의 고착화이다. 해방 직후의 희망과 혼란이 교차했던 다양한 이미지에 서 전쟁을 겪은 후 부정적 이미지로 단선화되는 것이다. 남한문학에서 서울의 도시적 이 미지는 5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부패와 타락의 온상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점철되었다는 점이다. 가령 이범선 소설 『오발탄』(1959)에 나오는 “조물주가 쏜 오발 탄”으로 상징되는 1950년대 6.25전쟁 직후의 폐허가 서울의 대표적 이미지로 자리매김된 다. 원조경제에 의존해서 전후의 참상을 이겨나가려는 노력을 긍정적으로 그린 작품을 보기 힘든 반면, 손창섭의 『잉여인간』에서 보듯이 작가들의 서울에 대한 비관적 인식 이 주류를 이룬다. 문학작품에 나타난 서울의 부정적 이미지는 근대적 도시 개편 이후의 역사적 변화에 따라 서서히 형성된 것이다. 서울의 도시계획 역사를 연구한 기존연구 성과에 의하면 서 울의 근대적 도시화는 일제시대에 그 기초가 이루어졌다.3) 총독부에 의한 식민지 건설로 인한 이중도시의 계획적 건설과 함께 민간 차원에서의 일본식 건물 축조를 통해 경성의 왜색화는 더욱 빠른 속도로 전개되었다. 이처럼 일제 치하에서는 식민지 도시화의 경로 를 밟아 전통도시 한양이 식민도시 경성으로 변신하는 일련의 과정이 전개되었던 것이 다.4) 해방은 식민지 질서의 해체와 새로운 사회건설의 신호탄이었다. 대규모 인구 유입으로, 도시 공간구조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민족과 계층에 따른 주거지 격 리 현상이 희석되어, 이중도시의 양상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러나 도시 경관의 차원에 서 보면, 식민지 도시화의 잔재는 거의 그대로 온존되었다. 이는 해외동포와 월남민의 도시 유입으로 주택 및 각종 기반 시설의 수요는 급증하는 데 정치, 사회적 혼란과 행정적 공백으로 그 공급은 제자리걸음만 거듭한 데다가, 정부가 심각한 재정 적자 상황에 봉착해 있어, 도시공간에서 왜색을 걷어내는 것보다는 기존 시 3) 윤정섭, 『도시계획사 개론』(문운당, 1985), 146-7쪽 참조. 4) 이상의 내용, 특히 ‘이중도시’ ‘경성의 왜색화’ 등 일제시대 도시화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을 참조해서 정리하였다. 장세훈, 「한국전쟁과 도시 경관의 변화 : 전쟁 전후 서울의 도시화를 중심으로」, 김필동 외편, 『한국 사회사 연구』, 나남출판사, 2003. 357-362쪽 참조.. 8.

(12) 설과 경관을 적절히 활용하는데 더 주력한 결과이다.5) 해방 정국에서 도시 경관의 변화를 몰고 올 또 다른 변수는 미군정의 도시정책이었다. 그러나 미군정은 정치, 사회적 혼란을 수습해서 최소한의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원활한 식량공급을 통해 민생을 안정하는 데에만 주력했기 때문에, 도시 계획에 대한 사회, 경제 적 수요에 둔감했고, 도시 경관에는 아예 관심도 갖지 않았다.6) 이러한 해방 정국의 혼란스러운 서울의 모습은 이태준의 「해방 전후」나 지하련의 「도정」, 염상섭의 「두 파산」, 『효풍』, 오상원의 『황선지대』등에서 볼 수 있다. 먼저 이태준의 「해방 전후」에 나타난 서울의 이미지를 인용해보자. 현은 서울 정황에 불쾌하였다. 총독부와 일본군대가 여전히 조선민족을 명령하고 앉았 다는 것과 해외에서 임시 정부가 오늘 아침에 들어왔다, 혹은 오늘 저녁에 들어온다, 하 는 이때 그 새를 못 참아 건국에 독단적인 계획들을 발전시키며 있는 것과 문화면에 있 어서도 현 자신은 그의 꿈인가 생시인가도 구별되지 않는 이 현혹할 찰라에, 문화인들의 대부분이 아직 지방으로부터 모이기도 전에 무슨 이권이나처럼 재빨리 간판부터 내걸고 서두르는 것들이 도시 불순하고 경박해 보였던 것이다. 현은 약간 우울했다. 현은 벌써 이런 경험이 한두 번째가 아니기 때문이다. 해방 전에 는 막연한 지기여서 일조유사한 때는 물을 것도 없이 동지일 것 같던 사람들이 해방 후, 특히 정치적 동향이 보수적인 것과 진보적인 것이 뚜렷이 갈리면서부터는, 말 한두 마디 에 벌써 딴사람처럼 서로 경원이 생기고 그것이 대뜸 우정에까지 거리감을 자아내는 것 을 이미 누차 맛보는 것이었다. 7) 1945년 8월 17일 새벽에 서울에 도착한 일제시대 양심적 지식인이었던 주인공 현은 서 울의 여러 정황에 불쾌해 한다. 해방 정국의 혼란은 “또 문화인들의 대부분이 아직 지방 으로부터 모이기도 전에 무슨 이권이나처럼 재빨리 간판부터 내걸고 서두르는 것들이 도 시 불순하고 경망해 보였던”8) 현의 느낌에서 잘 드러난다. 해방이 되자 제일 먼저 정치활동을 편 것은 공산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민족주의자들 과 함께 반일 저항 세력으로서 그 일부가 해방 전까지 투쟁을 계속해 왔기 때문에 재빨 리 파괴된 조직을 수습,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쉽게 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 조직 재 건을 서둔 인물들은 주로 운동에서 이미 탈락된 부류로 지하련의 소설「도정」에서 최고 간부가 되어 나타난 기철과 같은 인물들이었다. “문득 기철이 눈앞에 나타난다. 장대한 체구에 패기만만한 얼굴이다. 돈이 제일일 땐 돈을 모으려 정열을 쏫고, 권력이 제일일 땐 권력을 잡으러 수단을 가리지 않을 사람이다.”. 9). 5) 위의 책, 362-364쪽 참조. 6) 국토개발연구원 편, 『국토 50년 : 21세기를 향한 회고와 전망』, 서울프레스, 1996, 364쪽 참조. 7) 이태준, 「해방전후」, 『문학』 1946.7. 참조. 8) 이태준, 「해방전후」, 『문학』 1946.7., 22쪽. 9) 지하련 「도정」, 『문학』 1946.7., 60쪽. 그들은 일정 수의 당원과 하부 조직도 없는 상태에서 중앙 당만 먼저 조직하고 상부를 차지하고 앉는 작태를 보였다. 이러한 사상단체들의 춘추전국식 난립을 해 소하고 통일한 것은 박헌영 중심의 조선공산당 재건 준비위원회였다. 그럼에도 박헌영이 인민공화국을 세우고 이승만을 주석으로 세운 것을 비판하는 말처럼 좌익 및 북한의 정치적 입장이 반영되어 있다. 해방직후 북조선분국은 박헌영의 지도력 하에 있을 시기이며, 장안파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의 지도력. 9.

(13) 이태준 소설의 주인공 현은 그러한 좌익 기회주의자를 비판하는 시각을 보인다. 그의 눈에 서울이란 도시는 혼란스런 가운데 기회주의자들이 날뛰는 부정부패와 부조리의 온 상으로 비쳐졌다..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를 찾은 그는 때마침 동료들이 기초하고 있. 던 ‘문건’ 선언문을 읽고 발기인으로 서명한다. 울려 퍼지는 '적기가' 속에 고민하던 '현' 은 '조선 인민 공화국 절대 지지'라는 현수막 사건을 통해 자기 비판과 함께 정세를 판 단하고, 그들의 지도자가 되어 '프로 예맹'과의 통합을 계획한다. 이는 서울의 혼란상 속 에서 양심적 지식인이 택할 길은 그래도 좌익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그러 나 현이라는 퍼소나(분신)를 통해 1930년대 최대의 작가 이태준이 택한 좌익으로의 길과 월북은 역사적으로 오류였음이 훗날 판명되었다. 월북 작가가 서울의 혼란상을 보고 좌경화와 월북을 택했다면, 중도 우파였던 1920-30 년대 대표 작가였던 염상섭은 「두 파산」(1949)에서 서울의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그렸다. 이 작품은 해방 후 혼란기의 두 지식인 여성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물질적(정례 모친) 정신적(김옥임) 파탄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공간적 배경 은 서울 황포현으로, 당시 서울이란 주인공들의 눈에 보기에 정당하고 생산적인 경제 활 동보다는 부당하고 비생산적인 경제활동이 주를 이루던 혼란한 사회였다. 고율의 이자나 떼어먹는 고리 대금업이 성행하고 높은 이자로 인해 정당한 노동 행위가 불가능해지는 부패한 그려지는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해방 직후 경제적 도덕적 가치의 혼란 속을 살아간 두 여인의 생활과 현실 타협 또는 현실 적응주의 세태, 그리고 경제적 파산 과 정신적 파산이라는 두 부정적 이미지를 제시하였다. 주목할 것은 이태준이 좌익을 택 하고 월북한 데 반해, 염상섭은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하는 판단을 유보한 채 삶의 모습 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끝내 남한의 체제내적 원로 작가로 자리잡게 된다는 점이다. 반면 비판적인 저항시인 김수영의 경우 해방 후 서울의 이미지를 밝고 긍정적인 이미 지로 포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50년대 모더니스트의 출발점이 현대 도시 문명에 대한 찬사와 문명비판적 시선이 그 중심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작품을 보자. 아침의 유혹 나는 발가벗은 아내의 목을 끌어안았다 산림과 시간이 오는 것이다 서울역에는 화환이 처음 생기고 나는 추수하고 돌아오는 백부를 기다렸다 그래 도무지 모-두가 미칠 것만 같았다 무지무지한 갱부는 나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것은 천자문이 되는지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스푼과 성냥을 들고 여관에서 나는 나왔다 물속 모래알처럼 소박한 습성은 나의 아내의 밑소리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교과서에도 질투의 XX은 무수하다 먼 시간을 두고 물속을 흘러온 흰 모래처럼 그들은 온다 에 의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당시 박헌영은 소련과 김일성의 인정을 한 몸에 받았다.. 10.

(14) UN 위원단이 내일 오는 것이다 화환이 화환이 서울역에서 날아온다 모자 쓴 청년이여 유혹이여 아침의 유혹이여 김수영의 「아침의 유혹」(1949.4.1)을 보면 서울역에 화환이 처음 생겼다는 사실과 그 유 래가 유엔 한국위원회 내한 환영행사에 있음을 잘 알려준다. 이때 서울은 국내외 정치 중 심지의 이미지로 포착된 셈이다. 해방 직후의 서울은 신봉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 한 자아정체성을 찾고 그를 위해 실존적 결단을 강요하는 공간이었다. 서울은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사회주의의 중심 근거지로 정치 토론과 논쟁, 정당정치의 중심지였으며, 지식인 과 학생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물들이 주체가 되었다. 이국인의 눈에 해방기 서울의 한국 인들은 문자 그대로 정치적 동물로 비쳐질 정도였다.. 2. 1950-60년대 문학에 나타난 서울의 이미지 분석 1) 50년대 한국전쟁이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에 끼친 효과는 엄청났다. 특히 제공권을 장악한 미군 의 대대적 폭격은 서울을 초토화시켰고, 서울 탈환과정에서의 치열한 시가전은 그나마 남 아 있던 건물들마저 크게 훼손시켜, 서울을 폐허의 도시로 만들었다..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다음과 같은 표현이 전쟁의 공포를 잘 보여준다. 1950년대 6.25 발발시 서울의 모습을 보라. 다음 날 오빠는 새벽같이 학교로 출근했고, 나는 동숭동 문리대로 등교했다. 등교하면 서 가로수를 꺾어서 철모와 군용차를 시퍼렇게 위장하고 미아리고개 쪽으로 이동하는 국 군을 보고 비로소 섬뜩한 전쟁의 현장감을 느꼈으나 남들이 하는 대로 씩씩하게 박수도 치고 만세도 불렀다. ... 그러나 하학길은 아침과 좀 달랐다. 여전히 미아리고개 쪽으로 군대가 이동하는 걸 볼 수 있었지만 용감해 보이기보다는 비장해 보였고, 환송하는 시민의 태도 또한 불안하고 어설퍼 보였다. ... 다음날 아침에는 포소리가 미아리고개 너머에서 쏘는 것처럼 가까이 들렸다.10) 한국전쟁 후 전재를 입어 폐허가 된 서울시의 재건과 관련해서는 1950년 부산 피난 시 절부터 서울도시계획 개요, 대서울 재건방안 등의 이름을 달고 갖가지 청사진이 제시되었 다. 이들 재건 계획은 식민지 잔재의 청산과 근대적 도시 건설에 그 주안점을 두고 있었 다. 그러나 정치, 사회적으로나 행정적 여건 상 전후 서울시의 실제 재건사업은 기존 시 10)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웅진닷컴, 1995). 11.

(15) 설의 복구를 중심으로 추진된 까닭에 도시 경관 곳곳에 스며든 왜색을 제거하거나 근대 적인 도시 경관을 건설하는데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서울의 복구 건설은 인력 및 재원의 만성적인 부족상태에서 대규모로 유입되는 귀환민 과 이농민을 수용하기 위해 신속한 도시 재건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지난하였다. 정부의 서울시 재건방침은 이상적인 신도시 건설이 아닌 기존 도시 경관의 복구에 초점이 맞춰 졌다. 따라서 일제가 건설한 주택 및 건축물은 대부분 파괴되어 사라졌지만, 1950년대 서 울시 재건과정을 거치면서 식민지 도시화 과정에서 계획된 도로망이나 공원, 녹지 등은 다시금 복원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공간구조 차원에서 서울의 도시화는 한국 전쟁을 거 치고도 식민지 도시화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의 경관은 식민 지 도시화의 잔재에 분단도시, 병영 도시의 문제가 덧씌워져 더욱 기형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1). 김광식의 단편소설 「213호 주택」은 바로 이러한 전후 복구 건설기 급히 지어진 동일 구조의 ‘재건주택’이 지닌 몰개성적 비인간화 현상을 날카롭게 파헤친 작품이다.. 12). 이 작품의 배경은 6. 25 전쟁 후의 황폐화된 서울 사회로서, 주인공 김명학은 일제 때 공고를 졸업한 인쇄소 기장이다. 장마 때 습기로 인해 기계실의 모터들이 사흘이 멀다 하 고 고장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그는 권고사직을 당한다. 회사에서 쫓겨나온 명학은 울분 에 차서 동창생과 술을 마신 후 상도동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버스 종점에서 내린 그는 집 모양이 똑같은 주택 단지의 자기 집 213호를 향해 걸어간다. 그러나 골목길을 잘못 찾 아 미국인과 한국 여자가 살고 있는 집을 잘못 들어간다. 그는 도둑으로 몰려 집주인으로 부터 봉변을 당하고 경찰서 유치장 신세까지 진다. 이튿날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온 그는 부엌에서 식칼을 들고 나와 현관문 손잡이를 빨래판 모양으로 파내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은 채 손잡이를 자꾸만 더듬어 본 다. 구조나 규격이 획일적으로 건축된 이른바 ‘문화주택’ 단지에 이사온 명학은 자기 집 홋수가 213호라는 것은 틀림없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집 모양이 똑 같아 어느 집이 자기 집인지 분간치 못하여 그런 봉변을 당한 것이다. 그는 을호 주택 3행 길을 접어들면서 눈을 감고 소경처럼 걸어가는 것이었다. 아내는 남 보기 창피하다는 듯이 머리를 숙이고 땅바닥만 바라보고 걸었다. 눈을 감고 걷던 명 학은 칠십 미터쯤에서 눈을 떴다. 틀림없이 자기 집 앞이었다. 그는 현관에 들어가 윗저 고리를 벗어던지고 곳간으로 가서 삽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길가에서 현관으로 들어 가는 뜰길에 발자국을 내어놓고 그 발자국 하나하나를 파내는 것이었다. 아내는 보다못해, "왜 이러세요? 왜, 이래요."했다. "왜 이러긴 뭐가 왜 이래." 그는 곳간 담 밑에 가서 벽돌을 안고 왔다. 발자국 구멍에 벽 돌 두 개씩을 가지런히 놓고 발디딤 길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내는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이러는 남편이 슬프게만 보였다.. 11) 장세훈, 「한국전쟁과 도시 경관의 변화 : 전쟁 전후 서울의 도시화를 중심으로」, 김필동 외편, 『한 국 사회사 연구』, 나남출판사, 2003. 참조. 12) 김광식, 「213호 주택」(『문학예술』, 1956. 6), 임형택 외편, 『한국현대대표소설선 9』(창작과비평 사, 1996), 372-390쪽.. 12.

(16) "여보, 당신, 정말 이게 뭐예요. 사람이 돌기도 한다더니 정말 돌았수?" "돌아? 누가……. 돌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해 놓는 것야." 그날, 발디딤 길이 완성되자 몇 번이고 그 발디딤 길을 걸어 본다. 또 눈을 감고도 걸어 본다. 아내는 남편이 가여웠다. 명학은 다시 길가로 나와 현관 발디딤 길을 눈을 감고 걸어 가 문의 손잡이 부분을 쓸어보고 문도 드르릉 하고 열어 보는 것이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 고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의 아내는 형용할 수 없는 서러움에 흐느낀다. 이 작품은 현대 기계 문명에 예속되어 규격화된 삶의 틀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된 인 물의 존재 의식을 심층적으로 파헤친 문제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인공 김명학은 현대 인의 단조로운 삶과 기계 문명이 지배하는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강한 소외감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고독하다. 그래서 그는 남과 다른 내 집을 만들려는 몸부림을 보인다. 자기 집 문간에 벽돌로 발디딤 길을 만들고 현관문 손잡이를 빨래판 모양으로 파낸다. 이는 자신의 고유한 삶의 영역을 만들려는 것이다. 즉, 이러한 그의 행위는 현대의 기계 적인 삶의 상황에서 자기 삶을 회복하려는 비극적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따라서 작품 은 규격화된 현대 사회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한 인간의 진솔한 의식 표현을 상징적 구도로 함축하고 있는 작품이다. 전후 시기 서울의 이미지를 가장 대표하는 작품은 이범선의 단편『오발탄』(1959)이다. 소설 속에 있는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① 산비탈을 도려내고 무질서하게 주워 붙인 판잣집들이었다. 철호는 골목으로 접어들 었다. 레이션 곽을 뜯어 덮은 처마가 어깨를 스칠 만치 비좁은 골목이었다. 부엌에서들 아무 데나 마구 버린 뜨물이, 미끄러운 길에는 구공탄 재가 군데군데 헌데 더뎅이 모양 깔렸다. 저만치 골목 막다른 곳에, 누런 시멘트 부대 종이를 흰 실로 얼기설기 문살에 얽어맨 철호네 집 방문이 보였다. 철호는 때에 절어서 마치 가죽끈처럼 된 헝겊이 달린 문걸쇠를 잡아당겼다. 손가락이라도 드나들 만치 엉성한 문이면서 찌걱찌걱 집혀서 잘 열리지를 않 았다. ② ‘철호는 그 많은 별들 가운데서 북두칠성을 쳐다보았다. 머리를 뒤로 젖혀 하늘을 쳐다보는 채 빙그르르 그 자리에서 돌았다. 거꾸로 달린 주걱 같은 북두칠성은 쉽사리 찾 아낼 수 있었다. 그 북두칠성 앞에 딴 별들보다 좀 크고 빛나는 별, 그건 북극성이었다.’ ③ ‘그렇게 지내 오던 그 날, 6․25 동란으로 바로 발밑에 빤히 내려다보이는 용산 일 대가 폭격으로 지옥처럼 무너져 나가’ 전쟁 직후라서 폐허가 된 공간도 많았고, 또 산비탈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판자촌과 좁은 골목길 등은 가난한 시대적 상황을 공간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작품에 나타난 서울 의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이다. 전쟁 전후의 비참한 사회 속에서 정신적 지표를 잃은 불행 한 인간의 비극적 혼란상과 부조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 패배하는 양심적 간의 비애를 내 포하고 있는 소설의 배경은 6.25 직후 서울 해방촌이다. 서울 해방촌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로 혼란과 무질서가 횡행하는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굳이 긍정적인 이미지를 찾자면 공해 때문에 21세기 지금은 서울 하늘에서 별 하나 보기. 13.

(17) 도 힘든데 50년대에는 서울 하늘에서도 북두칠성을 볼 수 있었다니 .. 가난한 서울이지만 동시에 깨끗한 서울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같은 시대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서울의 이미지는 어떨까? 시골 선물 종로 네거리도 행길에 가까운 일부러 떠들썩한 찻집을 택하여 나는 앉아있다 이것이 도회 안에 사는 나로서는 어디보다도 조용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나의 반역성을 조소하는 듯이 스무 살도 넘을까말까한 노는 계집애와 머리가 고슴도치처럼 부수수하게 일어난 쓰메에리의 학생복을 입은 청년이 들어와서 커피니 오 트밀이니 사과니 어수선하게 벌여놓고 계통없이 처먹고 있다 신이라든지 하느님이라든지가 어디 있느냐고 나를 고루하다고 비웃은 어제 저녁의 술 친구의 천박한 머리를 생각한다 그 다음에는 나는 중앙선 어느 협곡에 있는 역에서 백여 리나 떨어진 광산촌에 두고온 잃어버린 겨울모자를 생각한다 그것은 갈색 낙타모자 그리고 유행에서도 훨씬 뒤떨어진 서울의 화려한 거리에서는 도저히 쓰고 다니기 부끄러운 모자이다 거기다가 나의 부처님을 모신 법당 뒷산에 묻혀있는 검은 바위같이 큰 머리에는 둘레 가 작아서 맞지 않아서 그 모자를 쓴 기분이란 쳇바퀴를 쓴 것처럼 딱딱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시골이라고 무관하게 생각하고 쓰고 간 것인데 결국은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서울에 돌아온 지 일주일도 못 되는 나에게는 도회의 소음과 광증과 속도와 허위가 새 삼스럽게 미웁고 서글프게 느껴지고 그러할 때마다 잃어버려서 아깝지 않은 잃어버리고 온 모자생각이 불현듯이 난다 저기 나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먹고 떠들고 웃고 있는 여자와 젊은 학생을 내가 시골 을 여행하기 전에 그들을 보았더라면 대하였으리 감정과는 다른 각도와 높이에서 보게 되는 나는 내 자신의 감정이 보다 더 거만하여지고 순화되어진 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 는다 나는 구태여 생각하여본다 그리고 비교하여본다 나는 모자와 함께 나의 마음의 한 모퉁이를 모자 속에 놓고 온 것이라고 설운 마음의 한 모퉁이를. <1954>. 거리 (二) 돈을 버는 거리의 부인이여 잠시 눈살을 펴고 눈에서는 독기를 빼고 자유로운 자세를 취하여 보아라. 14.

(18) 여기는 서울 안에서도 가장 번잡한 거리의 한 모퉁이 나는 오늘 세상에 처음 나온 사람모양으로 쾌활하다 피곤을 잊어버리게 하는 밝은 태양 밑에는 모든 사람에게 불가능한 일이 없는 듯하다 나폴레옹만한 호기는 없어도 나는 거리의 운명을 보고 달큼한 마음에 싸여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마음――― 무한히 망설이는 이 마음은 어둠과 절망의 어제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고 너무나 기쁜 이 마음은 무슨 까닭인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히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텐데 ―――극장이여 나도 지나간 날에는 배우를 꿈꾸고 살던 때가 있었단다 무수한 웃음과 벅찬 감격이여 소생하여라 거리에 굴러다니는 보잘것없는 설움이여 진시왕만큼은 강하지 않아도 나는 모든 사람의 고민을 아는 것 같다 어두운 도서관 깊은 방에서 육중한 백과사전을 농락하는 학자처럼 나는 그네들의 고민에 대하여만은 투철한 자신이 있다 지이프차를 타고 가는 어느 젊은 사람이 유쾌한 표정으로 활발하게 길을 건너가는 나에게 인사를 한다 옛날의 동창생인가 하고 고개를 기웃거려보았으나 그는 그 사람이 아니라 ○○부의 어마어마한 자리에 앉은 과장이며 명사이다 사막의 한 끝을 찾아가는 먼 나라의 외국사람처럼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은 이 번잡한 현실 우에 하나하나 환상을 붙여서 보지 않아도 좋다 꺼먼 얼굴이며 노란 얼굴이며 찌그러진 얼굴이며가 모두 환상과현실의 중간에 서서 있 기에 나는 식인종같이 잔인한 식욕과 강렬한 식욕으로 그중의 하나하나를 일일이 뚫어져라 하고 들여다보는 것이지만 나의 마음은 달과 바람모양으로 서늘하다 그네, 마지막으로 돈을 버는 거리의 부인이여 잠시 눈살을 펴고 찌그러진 입술을 펴라 그네의 얼굴이 나의 눈앞에서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도르라미모양으로 세찬 바람에 매암을 돌기 전에. 15.

(19) 도회의 흑점――― 오늘은 그것을 운운할 날이 아니다 나는 오늘 세상에 처음 나온 사람모양으로 쾌활하다 ―――코에서 나오는 쇠냄새가 그리웁다 내가 잠겨 있는 정신의 초점은 감상과 향수가 아닐 것이다 정적이 나의 가슴에 있고 부드러움이 바로 내가 따라가는 것인 이상 나의 긍지는 애드발룬보다는 조금 무거울 것이며 예지는 어느 연통보다도 훨씬 뾰죽하고 날카로울 것이다 암흑과 맞닿는 나의 생명이여 거리의 생명이여 거만과 오만을 잊어버리고 밝은 대낮에라도 겸손하게 지내는 묘리를 배우자 여기는 좁은 서울에서도 가장 번거러운 거리의 한 모퉁이 우울 대신에 수많은 기폭을 흔드는 쾌활 잊어버린 수많은 시편을 밝고 가는 길가에 영광의 집들이여 점포여 역사여 바람은 면도날처럼 날카러웁건만 어디까지 명랑한 나의 마음이냐 구두여 양복이여 노점상이여 인쇄소여 입장권이여 부채여 여인이여 그리고 여인 중에도 가장 아름다운 그네여 돈을 버는 거리의 부인들의 어색한 모습이여 <1955. 9. 3> 이들 시에서는 50년대 중반 종전 이후 서울의 모습이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1954년 6.25 종결 이후 서울의 종로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도심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북 적거리는 장소였다. 필자는 여기서 지금의 번잡스러운 서울에 서서히 적응되어 가는 자신 을 돌아보면서, 시골에 두고 온 모자 즉 자신의 마음의 상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듯 하 다. 그러나 아직은 완전히 서울의 광경에 적응하지 못한 듯 처녀와 청년들의 행색과 행동 에 대해 못마땅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 시는 당시 서울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유연애 사상이 서울에서 퍼져가고 있다는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다.. 2) 60년대 (1) 최인훈의『광장』과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에 나타난 서울의 이미지. 최인훈의 『광장』(1960)은 해방 이후 6.25전쟁에 걸친 시대적 배경과 서울과 평양 그 리고 낙동강 전선과 남지나해의 선상으로 전개되는 공간을 배경으로 이데올로기적 갈등. 16.

(20) 과 인간적 절망감을 주제로 삼고 있다. 1960년 11월부터 <새벽>지에 발표된 『광장』은 분단 이후 금기시되었던 이데올로기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민족의 분단과 대립의 상황에서 이데올로 기의 문제가 전후 문학의 가장 커다란 관심사로 제기되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문학의 영역에서 공산주의 이념 문제는 건드릴 수 없는 금기처럼 치부되어 왔던 것이 현실이었 다. 이때 4・19는 전후 문학의 이러한 성격에 전환적 고비를 맞게 하였고, 그 결과로 『광장』을 탄생시켰다. 작가 자신이 직접 4・19가 가져다준 자유로움이 없었다면 아마 이 작품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광장』에서 볼 수 있는 남북 분단에 의한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선택의 강요라는 상황, 즉 ‘밀실만 충만하고 광장은 죽어버린’ 남한에 구토를 느끼고 또한 ‘끝없이 복창만 강요하는 잿빛 지옥’ 북한 어느 곳에서도 안 식처를 발견하지 못한 이명준이란 지식인의 삶의 궤적에서 그의 도피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민족의 비극 그 자체였다. 남과 북이 대립된 현실을 ‘밀실’과 ‘광장’이라는 관념으로 치환하여 드러내고 있는데, 이러한 이중의 관념화란 방법론으로 이명준은 격동하던 남과 북을 한눈에 조망하고 진단하고 평가할 수 있었다. 여기서 서울은 건전한 광장은 죽고 협잡과 부패만 난무하는 더러운 시장판으로 그려지 고, 평양은 회색빛 지옥의 사이비 광장으로 묘사된다. 비록 현실적 포착은 아니지만 관념 적 추상이나마 분단체제를 암시했다는 데 이 작품의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1965)에는 등장인물의 익명성과 그들의 언어 불소통과 자아중심주의 등이 보여주는 소외와 중심 상실의 세계가 그려져 있다. 개인의 감성에 의 해 포착되는 현실의 문제를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전후소설이 지니지 못한 독특한 문체 의 감각을 산문 속에 살려 놓고 있다. 소설 속 서울의 도시 형상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 다.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 - 오뎅과 군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 등을 팔고 있고, 얼어붙은 거리 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정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 고, 그 안에 들어서면 카바이드 불의 길쭉한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염색한 군용 (軍用)잠바를 입고 있는 중년 사내가 술을 따르고 안주를 구워 주고 있는 그러한 선술집 에서,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우리 세 사람이란 나와 도수 높은 안경을 쓴 안(安)이라는 대학원 학생과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요컨대 가난뱅이라는 것만은 분명 하여 그의 정체를 꼭 알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도 나지 않는 서른대여섯 살짜리 사내를 말한다. 먼저 말을 주고받게 된 것은 나와 대학원생이었는데, 뭐 그렇고 그런 자기소개가 끝났 을 때는 나는 그가 안씨라는 성을 가진 스물다섯 살짜리 대한민국 청년, 대학 구경을 해 보지 못한 나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 전공(專攻)을 가진 대학원생, 부잣집 장남이라는 걸 알았고, 그는 내가 스물다섯 살짜리 시골 출신, 고등학교는 나오고 육군사관학교를 지 원했다가 실패하고 나서 군대에 갔다가 임질에 한 번 걸려 본 적이 있고 지금은 구청 병 사계(兵事係)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아마 알았을 것이다. 시골에서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온 청년들의 눈에 가장 부럽고 신기하게 비치는 게 무 언지 아십니까? 부러운 건, 뭐니뭐니해도, 밤이 되면 빌딩들의 창에 켜지는 불빛, 아니 그. 17.

(21) 불빛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고, 신기한 건 버스 칸 속에서 일 센티미터 도 안 되는 간격을 두고 자기 곁에 이쁜 아가씨가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심각한 얘기를 좋아하는 이 친구를 곯려 주기 위해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기의 음성을 자기가 들을 수 있는 취한 사람의 특권을 맛보고 싶어서 얘기를 시작했다. “평화시장 앞에 줄지어 선 가로등들 중에서 동쪽으로부터 여덟 번째 등은 불이 켜 있 지 않습니다.” 나는 그가 좀 어리둥절해하는 것을 보자 더욱 신이 나서 얘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화신백화점 육층의 창들 중에서는 그 중 세 개에서만 불빛이 나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해질 사태가 벌어졌다. 안의 얼굴에 놀라운 기쁨이 빛나 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가 빠른 말씨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단성사 옆 골목의 첫 번째 쓰레기통에는 초콜릿 포장지가 두 장 있습니다.” “적십자병원 정문 앞에 있는 호두나무의 가지 하나는 부러져 있습니다.” “을지로 삼가에 있는 간판 없는 한 술집에는 미자라는 이름을 가진 색시가 다섯 명 있는데 그 집에 들어온 순서대로 큰 미자, 둘째 미자, 셋째 미자, 넷째 미자, 막내 미자라 고들 합니다.” “서대문 근처에서 서울 역 쪽으로 가는 전차의 도로리(트롤리)가 내 시야 속에서 꼭 다섯 번 파란 불꽃을 튀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안 형은 오늘 저녁엔 서대문 근처에서 살고 있었군요.” “예, 서대문 근처에서 살고 있었어요.” “난, 종로 2가 쪽입니다. 영보빌딩 안에 있는 변소문의 손잡이 조금 밑에는 약 2센티 미터 가량의 손톱자국이 있습니다.” 밤이 됩니다. 난 집에서 거리로 나옵니다. 난 모든 것에서 해방된 것을 느낍니다. 아 니,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느낀다는 말입니다. 김 형은 그렇게 안 느낍니까?” “글쎄요.” “나는 사물의 틈에 끼여서가 아니라 사물을 멀리 두고 바라보게 됩니다. 안 그렇습니 까?” “글쎄요, 좀․․․․․․.” “아니, 어렵다고 말하지 마세요. 이를테면 낮엔 그저 스쳐 지나가던 모든 것이 밤이 되면 내 시선 앞에서 자기들의 벌거벗은 몸을 송두리째 드러내 놓고 쩔쩔맨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의미가 없는 일일까요? 그런, 사물을 바라보며 즐거워한다는 일이 말입니 다.” “의미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난 무슨 의미가 있기 때문에 종로 2가에 있는 빌딩들의 벽돌수를 헤아리는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렇죠? 무의미한 겁니다. 아니 사실은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지만 난 아직 그걸 모릅 니다. 김 형도 아직 모르는 모양인데 우리 한번 함께 그거나 찾아볼까요. 일부러 만들어 붙이지는 말고요.”. 18.

(22) 전봇대에 붙은 약 광고판 속에서는 이쁜 여자가 ‘춥지만 할 수 있느냐’는 듯한 쓸쓸한 미소를 띠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어떤 빌딩의 옥상에서는 소주광고의 네온사인이 열심히 명멸하고 있었고, 소주광고 곁에서는 약 광고의 네온사인이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 했다는 듯이 황급히 꺼졌다간 다시 켜져서 오랫동안 빛나고 있었고, 이젠 완전히 얼어붙 은 길 위에는 거지가 돌덩이처럼 여기저기 엎드려 있었고, 그 돌덩이 앞을 사람들은 힘껏 웅크리고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종이 한 장이 바람에 휙 날리어 거리의 저쪽에서 이쪽 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 종잇조각은 내 발 밑에 떨어졌다. 나는 그 종잇조각을 집어 들 었는데 그것은 ‘美姬 서비스, 特別廉價’라는 것을 강조한 어느 비어홀의 광고지였다.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난 서적 월부판매 외교원에 지 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돈 사천 원을 주더군요. 난 두 분을 만나기 얼마 전까 지도 세브란스 병원 울타리 곁에 서 있었습니다. 아내가 누워 있을 시체실이 있는 건물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만 어딘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울타리 곁에 앉아서 병원의 큰 굴 뚝에서 나오는 희끄무레한 연기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어떻게 될까요, 학생들이 해부 실습 하느라고 톱으로 머리를 가르고 칼로 배를 찢고 한다는데 정말 그러겠지요?” 이 작품에서는 두드러지는 것은 ‘나’ 와 ‘안’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 도시적 삶의 파편화, 곧 개인주의의 심화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만남은 이름으로 대표되는 인격 끼리의 만남이 아니고, 단순히 기호적 위상으로만 상대를 인식하는 무덤덤한 만남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 도시적 삶의 파편화, 곧 개인주의의 심화를 알 수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통해서 60년대의 의식의 방황을 그린 것이다. 특히 포장마 차라는 배경을 중심으로 1964년의 서울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1964년은 아직도 민주화 가 이루어지지 못한 독재체제 아래에서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서 경제성장이 진행되던 삭 막한 시대인데 서울의 우울한 공간적인 배경 묘사가 그 도를 심화시켰다고 할 것이다. 정치적 배경을 보면 그 해 겨울은 한일기본조약 반대와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던 학생들이 서울시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전면전에 나선 군사정부에 의해 패퇴함으로써 심정적으로 매우 추웠다. (2) 이호철-『서울은 만원이다』에 나타난 서울의 이미지.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1966)는 1960년대, 서울의 인구가 현재의 1/3수준이었을 당시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다룬 소설이다. 이 소설은 60년대 후반기 서울이라는 시대적 공간적 배경 속에서 길녀라는 여주인공의 서울 정착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다. 경남 통영 출신인 길녀는 여학교 때 백일장에도 나가던 꿈 많은 문학소녀였다. 하지만 군대에서 두 오빠가 죽고 술주정꾼으로 전락한 아버지 때문에 가세가 기울자 어쩔 수 없이 서울로 상 경을 하게 된다. 당시 서울은 현재보다 행정상 그 면적이 매우 적어 삼백 칠십만 명이 살 기에는 너무나 좁았던 것 같다. 서울은 만원이다. 1966년으로 접어들자 겨우내 방구석에 처박혀 있던 서울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 고, 금년 봄 들어서 오래간만에 데모가 없어서인가, 시골에서들도 뭐 찾아먹겠다고 떼를 지어 몰려들어 갑자기 서울 거리는 폭발을 할 듯하였다.. 1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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