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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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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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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05-24

정부의 역할 , 그 새로운 도전

- 정부역할에 대한 법경제학적 분석 -

조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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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역할, 그 새로운 도전

- 정부역할에 대한 법경제학적 분석 -

1판1쇄 인쇄/ 2005년 11월 24일 1판1쇄 발행/ 2005년 11월 30일

발행처/ 한국경제연구원 발행인/ 노성태 편집인/ 노성태 등록번호/ 제318-1982-000003호

(150-75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28-1 전경련회관 전화 3771-0001(대표), 3771-0057(직통) / 팩스 785-0270∼1

http://www.keri.org

ⓒ 한국경제연구원, 2005 한국경제연구원에서 발간한 간행물은 전국 대형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문의) 3771-0057

ISBN 89-8031-358-6 6,000원

* 제작대행 : (주)F K I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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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간 사

정부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 작은 정부를 위한 정부개혁과 민영화의 추세가 전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 니다. 과거 경제성장기 동안 우리 정부는 경제계획을 통하여 국 민경제를 설계하였으며 산업정책, 무역정책, 은행에 대한 개입을 수단으로 기업의 성장을 도운 한편 자원의 인위적 배분을 활용하 여 경제를 관리하여 왔다. 그러나 외환 및 경제위기를 겪은 후 이 러한 정부의 역할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자율성을 해친다는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국민의 정부는 민 영화와 정부개혁을 통하여 정부역할의 변화를 시도하였다. 이러 한 시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으나 장기적으로 정부가 나 아갈 방향은 분명하게 제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참여정부는 이 러한 추세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각종 위원회 가 늘어나고, 공무원 수도 늘어나고 있으며 정부의 재정지출도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국민의 정부에서 계획되었던 민영화계 획과 공공부문의 구조조정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비록 참여정부 에서 정부부문이 다소 확대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큰 흐름으 로 진행되어 오고 있는 정부기능의 재조정이라는 대세를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경제성장의 둔화세가 큰 정부를 유지하기에는 국 민에게 지나치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계화 의 진행은 가부장적인 정부의 역할보다는 투명하고 공정한 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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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 집행자로서의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 정부의 역할은 정형화되어 있어서 모든 나라가 동 일한 것 같이 생각된다. 그러나 독특한 환경과 문화적, 제도적 전 통의 차이로 각국 정부의 역할은 큰 편차를 보인다. 정부역할의 차이는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각국 경제의 경쟁력과 경제발전 정도의 차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에 따라 국가와 정부의 역할에 대한 관심은 최근 크게 늘어나고 있다. 전통적인 정치학과 사회 학적 접근뿐 아니라 경제학과 경영학에서도 국가간 차이와 정부 의 역할에 대한 분석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국가간 비교연구를 위한 데이터베이스가 다양한 기법으로 확보됨에 따라 재무이론에서는 국가간 법체계 및 제도에 대한 비교연구가 활발 하게 진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IMD, WEF 및 국제투명성협회

Transparency International 그리고 Fraser Institute 등에서 국가의 경쟁 력, 투명성, 경제적 자유 등에 대한 랭킹을 제시하는 등 최근 여 러 기관에서 정기적으로 국가간 경쟁력을 비교하고 이를 상대적 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화되어 가고 있는 시대에서 정 부역할과 국가경쟁력에 대한 국제적 비교는 투자자와 기업가들의 초미의 관심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이켜보고 검토해 보는 것은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본 연구는 특히 최근의 문헌에 대하여 비교적 광범위한 조사를 통하여 정부의 역 할에 대한 법경제학적 통찰력을 얻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문헌조 사를 통해 나타난 중요한 관점을 통하여 우리나라에서의 정부역 할 변화와 이에 따른 경제관의 변화에 대하여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하였다. 특히 본 보고서에서 나타난 관리경제, 개혁경제, 자 유경제라는 분류는 최근 우리 경제에 대하여 여러 진단과 처방을 내리고 있는 다양한 전문가들의 시각을 효과적으로 정리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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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관점이라고 평가되며 앞으로 우리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유용한 이정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연구를 수행한 본원의 조성봉 선임연구위원에게 감사의 말 씀을 드린다. 또한 이 연구보고서가 나오기까지 많은 문헌 및 자 료정리에 수고를 아끼지 않은 문혜연 연구조원과 세밀하게 편집 을 맡아 준 연구조정실 김유선 씨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한다. 바 쁘신 중에도 불구하고 세미나에 참석하여 귀한 조언을 해 주신 자 유기업원의 김정호 원장과 중앙대학교의 김승욱 교수에게 감사드 린다. 특히 김승욱 교수는 중간발표회에서 좋은 제안을 통해 이 보고서의 체제를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을 주셨다. 또 이 보고서를 충실히 읽고 논평을 해 주신 익명의 심사위원들에게도 감사드린 다. 끝으로 이 연구보고서에 담긴 모든 내용은 저자의 견해이며 본원의 공식적인 견해가 아님을 밝혀두는 바이다.

2005년 11월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노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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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요 약··· 9

제1장 서 론 ··· 13

Ⅰ. 근대적 국민국가의 출현과 경제발전 ··· 15

Ⅱ. 변화하는 정부의 역할 ··· 17

Ⅲ. 변화하는 정부의 역할,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 21

Ⅳ. 정부역할에 대한 논의의 중요성 ··· 24

Ⅴ. 보고서의 구성 ··· 25

제2장 정부의 역할, 어떻게 평가되어 왔는가? ··· 27

Ⅰ. 경제학에서 제시하는 정부의 역할 ··· 29

Ⅱ. 경험주의, 합리주의 그리고 정부의 역할 ··· 38

Ⅲ. 법체계에 대한 국가간 비교연구에 대한 문헌조사 ··· 59

제3장 우리나라 정부의 역할과 경제관의 변화 ··· 91

Ⅰ. 우리나라 정부의 역할과 문헌조사의 시사점 ··· 93

Ⅱ. 과거 우리 정부의 역할에 대한 평가 ··· 96

Ⅲ. 우리나라 정부의 역할,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 101

Ⅳ. 정부역할의 변화에 따른 경제관의 변화 ··· 107

Ⅴ. 우리 경제의 변화와 남겨진 숙제 ···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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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결론: 정부의 역할, 그 새로운 도전 ··· 143

Ⅰ. 제도적 변수로서의 정부의 역할 ··· 145

Ⅱ. 공동체성의 확보 ··· 147

Ⅲ. 자발적 창의성(Spontaneous Creativity)의 확대 ··· 151

참고문헌··· 154

영문초록···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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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목차

<표 1> 우리 헌법의 경제통제 조항의 국제비교 ··· 99

<표 2> 기업의 부채비율, 자기자본비율, 차입금의존도, 금융비용 추이 ··· 104

<표 3> 기업지배구조 개선 사항 ··· 105

<표 4> 대기업에 대한 규제추이 ··· 113

<표 5> 우리 경제를 보는 세 가지 시각의 비교 ··· 126

<표 6> 주요 경제이슈에 대한 관리경제, 개혁경제, 자유경제의 입장 ··· 133

그림 목차

<그림 1> 우리 경제를 보는 세 가지 시각: 관리경제, 개혁경제, 자유경제 ··· 116

<그림 2> 바람직한 정부개혁의 경로 ···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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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약

정부의 역할은 20세기에 들어서서 극적인 변화를 경험한다. 20 세기 전반부에는 사회주의의 탄생과 두 번의 세계대전을 비롯한 국가간 패권주의시대에서 정부의 역할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 나 1980년대 이후로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1990년대에 냉 전시대가 마감되고 사회주의가 한 세대의 실험으로 종식되면서 정부의 역할은 축소되기 시작하였다. 전세계적으로 민영화가 대 규모로 진행되었고 시장의 자원배분 역할이 보다 강화되기 시작 하였다. 우리나라도 경제개발 시기의 강력하였던 정부의 역할이 1990년대 이후 규제개혁을 통하여 서서히 견제받기 시작하였고 외환위기를 계기로 부분적이나마 정부개혁도 단행되었으며, 공기 업의 민영화도 본격화되었다. 비록 참여정부에 들어서서 정부의 규모는 다시 커지고 민영화는 지속되지 않고 있으나 이러한 전세 계적인 큰 흐름을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정부 역할의 변화에 따라 본 연구는 법경제학적 관점에서 문헌조사를 시행하고 이를 통해 얻어진 통찰력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변화하 는 정부의 역할과 이에 따른 경제관의 변천을 조망한다.

경제학에서는 학파마다 정부의 역할을 다르게 제시하고 있다.

고전학파 경제학은 시장에 의한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강조하여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지만 사회주의 경제학에서는 정부가 직접 적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케인즈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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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는 정부가 재정 및 금융정책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 입하여야 한다고 하지만 통화론자, 합리적 기대가설 및 시간불일 치 모형을 주장하는 경제학파는 정부의 일관된 정책을 더욱 강조 한다. 규범론적 관점에서 정부의 역할은 공공재, 외부성, 독과점 및 비대칭정보와 같이 시장실패의 경우를 보완할 수 있다고 논의 된다. 그러나 실증론적 관점에서 정부는 이해집단에 규제를 공급 하는 공급원으로 파악되어 그 부작용이 강조되고 있다. 경제발전 론에서도 정부는 경제발전을 선도하는 주체로 제시되었으나 최근 에는 정부의 역할과 더불어 시장의 힘에 따른 자원배분과 함께 제도적 성숙이 강조되고 있다.

하이에크는 영국적 경험주의와 관습법적 전통이 대륙적인 합리 주의와 성문법적 체계보다도 우수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 이유 는 합리주의적 체계에서는 정부의 역할과 권한을 강화하면서 민 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제약된다는 것이다. 또한 민간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사적 재산권 및 계약에 대한 권한에 대한 보 호가 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본 연구의 국가간 비교분석에서 나타난 시사점은 합리주의보다는 경험주의가, 그리고 성문법 체 계보다는 관습법 체계가 재산권의 확립, 경제적 자유도, 법해석의 유연성, 사법권의 독립, 금융의 발달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제도 의 발전을 가져오며 보다 개선된 경제적 성과를 보인다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문헌조사에서 얻어진 통찰력을 바탕으로 우리 경제를 보는 시각을 관리경제, 개혁경제, 자유경제로 구분하여 정 부역할의 변화와 이에 따른 경제관의 변화를 설명한다. 관리경제 는 정부의 역할과 기업가역할을 협력적인 관계에서 설정하여 놓 고 경제정책을 정부의 일관된 관리하에 두고 운용하자는 사고방 식이다. 개혁경제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혁과 세계화의 흐름에서 나타나는 개방과 경쟁의 원리를 통하여 경제를 운용하자는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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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식이다. 자유경제는 세계화와 국제경쟁을 기업가역할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경제의 자율성과 활력을 높이자는 경제운용의 사고방식이다. 관리경제는 외국자본이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을 최소화하려는 입장이며 국적 있는 경제정책을 선호한다. 반면에 개혁경제는 국내 대기업과 그 총수의 기회주의 적 행동을 경계하며 정부의 강력한 제도개선과 외국투자자의 압 력으로 이러한 문제를 치유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자유경제는 개 방된 국제경쟁에서 정부의 지나친 개입으로 국내 대기업이 역차 별을 받아 자유롭지 못하게 경쟁하게 되는 것을 경계하며 공정하 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기업가역할이 최대한 발휘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는 경제개발기의 관리경제에 서 금융위기 이후에 개혁경제로 변화하였다. 이제 세계화의 진전 과 전세계적인 정부역할의 축소 및 우리 경제체질의 변화로 말미 암아 우리 경제는 점차 자유경제로 변화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 다. 그러나 자유경제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자율적인 장치 보다 강조되고 있는 정부의 역할을 재조정하여야 할 것이다.

국민국가의 정부로서 현재 참여정부는 국가 공동체성을 확보하 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궁극적으로 지향 하여야 하는 목표는 자발적 창의성의 확대이다. 경제발전은 자유 의 신장과 유연한 제도의 성숙을 통하여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창 의성과 효율성이 생산성과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킴으로써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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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서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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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 근대적 국민국가의 출현과 경제발전

정부의 역할은 근대적인 국민국가Nation State의 출현으로 체계화 되고 제도화되기 시작하였다. 국민국가에서는 국민에 대하여 세 금을 거두고 인적 자원이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한다. 국민에 대한 보통교육이 등장하며 병역의 의무와 상비군 체제가 자리 잡 게 된다. 연금과 여러 형태의 사회보험도 등장하게 된다. 하나의 경제단위로서 국가가 형성됨으로써 국가간의 무역이 발생한다.

화폐제도와 금융시스템이 체계화되고 경제적인 면에서의 경쟁뿐 아니라 국가간의 전쟁도 격렬해져서 조직화된 군대와 현대적인 무기체계가 등장하여 대규모 살상과 경제적 피해가 극대화된다.

인류의 경제발전도 국민국가의 등장으로 가속화되었다. 경제사적 인 측면에서 보면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 이후 지리상의 발견과 시 민계급의 등장 그리고 산업혁명을 지나면서 경제적 생산성과 기술 혁신은 급속히 진행된다. 따라서 우리는 경제적인 부와 소득흐름의 증가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을 이를 가능케 하였던 생산성 향 상과 기술적 요인으로 돌릴 수 있다. 그러나 산업생산을 위한 기술 적 장벽이 그리 높지 않고 국제적인 금융기관과 국제원조의 가능성 으로 인하여 초기 자본형성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 현재 시 점에 있어서도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제3세계의 가난한 국가에서 생산성 향상과 경제적 부의 창출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의 미에서 단순한 기술적 요인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외적 요인이 보다 본질적인 경제발전의 원인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무엇 이 이러한 생산성 향상과 기술발전 그리고 산업혁명의 단초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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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며 이를 위한 제도적인 환경은 무엇이었느냐를 묻는 것이 보다 의미 있는 질문이 될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가장 유 력하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 바로 국민국가의 출현이다.

국민국가는 근세 유럽역사의 산물이다. 국가와 국가간의 경쟁 이 무역과 전쟁의 양 측면에서 고조됨에 따라 국가의 영토 안에 있는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동원하고 활용하는 조직단위로서 국민국가가 탄생했던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통찰력 있는 답 은 Kennedy(1989)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는 16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은 과학수준, 기술수준 및 문화수준이 중국, 이슬람국가 및 인도의 무굴제국 그리고 러시아 등에 비하여 오히려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었음을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세와 근대에 접 어들면서 유럽이 세계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차지하고 유럽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이 최강국으로 등장한 이유가 무엇인 가라는 질문을 그는 제기하고 있다. Kennedy(1989)는 한마디로 유 럽문화권에서 나타난 국가간의 경쟁이 가장 기본적인 동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국가간의 경쟁은 결국 국민국가의 탄생을 통해서 꽃피고 있다. 국가가 갖고 있는 힘을 국방력과 경 제력의 조화라고 정의할 때 국민국가는 국가의 경쟁력을 가장 극 대화시키는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제도 적 환경 속에서 유럽은 열세를 극복하여 과학수준을 높이고 기술 력과 산업생산성을 효과적으로 제고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영향은 산업혁명과 오늘날 모든 현대적 국가가 경험하고 있는 엄 청난 경제적 부의 창출인 것이다. 우리가 경제발전이라고 부르는 현상도 사실 얼마나 국민국가의 제도를 잘 활용하느냐에 따른 개 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적절하고 효율적인 정부의 역할은 한 국가와 그 구성원의 경제적 부와 지위에 결정적인 영 향력을 미친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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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 변화하는 정부의 역할

20세기의 마지막 십년은 사회주의가 한 세대의 실험으로 급속 히 붕괴된 시기이다. 또한 많은 나라에 있어서 작은 정부를 지향 하는 정부개편과 민영화를 비롯한 공공부문의 개혁이 나타나고 있다. 바야흐로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모든 국가에 있어서 정부역 할에 변화가 나타났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경제개발 기에 우리나라 정부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경제가 개방 되고 외환 및 금융위기를 겪으며 급속히 세계화의 흐름을 타면서 정부의 역할에는 심각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전통적이 고 가부장적인 정부의 역할에 익숙했던 경제주체들은 변화하는 정부의 역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에 어떻게 대응하여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경제개발기에 정부가 모든 자원배분을 주도하였다.

경제개발계획을 세웠고 수출촉진정책, 중화학공업정책, 산업합리 화정책, 과학기술정책, 대기업정책, 중소기업정책, 무역정책 등의 다양한 정책을 통하여 국가경제의 방향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 하였다. 이와 같은 정부의 절대적인 역할로 인하여 경제의 자율 성은 취약해졌고 시장규율 메커니즘도 자율적으로 작동될 수 없 었다. 금융시장에서의 자율적인 신용평가 및 위험관리기능은 정 부의 개입과 이른바 관치금융으로 인하여 기대할 수 없었고 자본 시장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였으며, 정부의 철저한 개입으로 유 명무실하였다. 이 시기에 그나마 제대로 작동하였던 것은 수출을 통하여 평가받았던 국제시장에서의 경쟁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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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 시기 우리 정부는 시장의 경쟁적인 요소를 자원배분에 부 분적으로 고려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일례로 수출목표를 달성하 는 기업에는 좋은 조건의 금융지원을 하였고 새마을 운동도 철저 하게 성과급에 따라 지원을 하였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와 같 은 경쟁메커니즘이 결국은 정부의 관리주의적 조정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한계를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20세기 전반을 휩쓸었던 두 번의 세계대전과 국가간 패권주의 시대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은 클 수밖에 없었다. 전후의 복구와 신생국의 경제개발 그리고 여러 사회주의 국가의 등장으로 정부 의 계획기능과 자원배분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였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자유무역의 바람이 강해지고 자원과 자본의 국제적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경제에서 국경의 의미가 약화되었다. 이에 더하여 냉전시대가 마감되고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소련 이 붕괴되고 동유럽의 사회주의 정권이 물러나고 중국이 사실상 시장경제로 전환되면서 사회주의 실험은 한 세대로 막을 내렸다.

전후 유럽은 수정자본주의적인 성격이 강화되어 영국, 프랑스 등의 여러 국가에서 주요 산업에 대한 국유화가 단행되었다. 그 러나 1980년대 이후로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고 민영화가 대규모 로 진행되면서 시장의 자원배분 역할이 보다 강화되고 있다. 전 후 신생 개발도상국의 정부는 강력한 경제계획이나 시장에 대한 다양한 개입을 통하여 자원배분에 깊숙이 간여하였으나 1980년대 이후 급속히 진행되어 가는 WTO체제와 이에 따른 무역장벽의 해체, 그리고 국제 자본시장의 발달에 따라 점차 그 영향력을 잃 어가고 있다. 특히 여러 면에서 글로벌 스탠더드가 확립되어 가 고 노동, 환경, 경쟁정책, 각종 정부규제 등에 있어서도 국가간의 차이를 줄이고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강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의 정부주도에 의한 중앙집중적 경제운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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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벗어나 자원배분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각 경제주체에게 맡기 고 이를 시장의 힘에 의하여 운용하는 분산화된 경제질서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고 시장이 정부의 아무런 역할 없이 자동적으로 작동되 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의 경쟁원리, 금융 및 자본시장에서의 규율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되어 소비자, 채권자 및 주주의 선택 권이 제대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경제주체에 대한 건전한 감시가 활성화되고 분산화된 경제질서가 힘을 발휘하여 경제주체의 경쟁력과 사회의 부가가치가 증진되는 것이다.

최근 강조되는 정부의 역할은 바로 이러한 제도적인 장치에 대 한 것이다.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경제활동의 자유 와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경제거래를 보호하는 것이 필 수적인 정부의 역할로 등장하고 있다. 나아가서 이해당사자의 권 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기업에 대한 지배구조 개선 논의가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법률가협회the American Law Institute

가 1994년 최종적으로 공표한 「기업지배구조의 원칙」이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 반향을 일으켰고1) 이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 국 및 OECD와 같은 국제기구가 이와 유사한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놓으면서 세계적인 운동으로 번져갔다.2)

우리나라도 정부의 역할에 변화가 오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 난 60년대, 70년대에는 강력한 경제개발정책을 폈고 80년대말부 터는 노동, 복지, 환경 및 지방자치 분야에 있어서 평등주의적 정 책을 펼쳐왔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불어 닥치고 있는 민영화와 정부개혁의 바람을 우리 정부도 피해갈 수는 없다. 이미 90년대

1) American Law In stitute, Principle of Corporate Governance: Analysis and Recommen- dation, 1994.

2) OEC D(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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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규제개혁이란 이름으로 대대적인 정부규제의 완화가 진행되 기 시작하였고 또 외환위기를 계기로 부분적이나마 정부개혁도 단행되었고 대규모 공기업의 민영화도 시작되었다. 한편, 기업하 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국제적 기준에 맞지 않는 과도 한 규제와 관행도 점차 개선되는 추세에 있다. 참여정부 들어서 정부개혁과 민영화의 추진이 다소 정체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경 제운용의 전반적인 추세는 정부역할의 축소를 거부할 수 없는 흐 름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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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 변화하는 정부의 역할,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정부역할의 변화에 따라 학계, 시민단체 및 전문가들도 정부역 할의 축소를 당연한 결론으로 받아들일 것처럼 보인다. 세계화의 진전과 자유무역의 발달은 일반적으로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특히 그동안 정부가 우월하고 불균등한 힘을 바탕으로 관리주의적 정책을 펼쳐서 시행한 경제에 대한 개입과 이에 따른 자원배분의 왜곡을 고려한다면 정부역할의 축소는 당연한 방향이 라고 생각할 수 있다.3) 그리고 이는 정경유착과 관치금융과 같은 전형적인 관치경제로서 가능하였으므로 이에 대한 가장 표준적인 대책은 무엇보다도 정부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시장의 역할을 강 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역할을 바라보는 학계, 시민단체 및 전문가들의 반응은 이와 같은 당연하고 직관적인 결 론과는 거리가 있다.

그동안 정부역할의 문제점을 인식하여 대외개방을 가속화하고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며 특히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에서의 외국인투자자의 역할을 중요시하고 이들을 통한 시장규율 메커니 즘의 강화를 희망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상당수 전문가들이 공통 적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일부 전문가 들은 오히려 강화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참 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의 전문가들은 외국인투자자의 참여에 따 른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으며 시장규율을 강화하기 위하여

3) 이러한 견해의 대표적인 입장으로 유정호(2004)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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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의 증권집단소송과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였고 사외이사제 도 그리고 기업정보에 대한 공시의무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또 한 외국인투자자 및 투기세력에 의한 경영권 위협도 건전한 시장 규율의 정립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 나 이러한 시장규율의 정립을 위해서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역설 적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다. 특히 다소 국내 대기업에는 차별적이라 할지라도 정부가 재벌정책과 공정거래법을 통한 경제 력집중 억제정책을 강력하게 실시하여 기업지배구조의 개선과 기 업경영의 투명성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그룹에서는 시장규율과 이른바 시장개혁의 주체로서 정부의 역할 을 옹호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이러한 시장역할의 강조가 가져오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 도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외국인투자자에 의한 경영권 위협이 SK그룹 등에 대하여 나타나 일각에서는 국내기업을 외국 인으로부터 보호하고 필요시에는 이를 위하여 정부가 적절한 역 할을 하여야 한다는 식의 논의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최근의 세계화 동향과 영미식 자본주의의 확산이 외국인들에 의 한 은행을 비롯한 금융산업과 국내 경제기반의 지배를 의미하여 사실상 우리가 경제에 대한 장악력과 통제력을 상실하게 됨으로 써 우리 국민경제는 이로써 상당한 경제적 편익을 잃게 된다는 우려를 함께 제기하고 있다.4)

보다 근본적으로 Chang(2003)은 세계화와 자본시장의 개방은 지금까지 선진국들이 차별적으로 시행하여 왔던 정부주도의 산업 정책 및 무역정책을 신흥국가가 채택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로 해 석한다. 즉 기존의 선진국들도 본래부터 세계화와 무역의 자유로 운 흐름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들도 본질적으로

4) 이러한 입장은 이찬근 외(2 005)에 의하여 잘 대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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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무역정책과 산업정책을 활용하여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진 국들이 자신들이 활용하였던 정부주도의 경제정책을 개발도상국 들이 활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마치 자기들이 높은 고지에 오르기 위해 사용하였던 사다리를 다른 개발도상국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 전략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같은 신흥국가는 이와 같은 세계화 움직임이나 슬로건에 속지 말고 정부주도의 경제정책을 지속적으 로 잘 활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화와 무역자유화라는 주장 은 별로 새로운 것이 아니며 정부주도의 경제정책은 국가가 존재 하는 한 어쩔 수 없이 반드시 우리가 견지하여야 할 입장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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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 정부역할에 대한 논의의 중요성

수많은 경제이슈의 홍수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경제력집중 억 제정책, 출자총액 제한, 시장개혁, 증권집단소송, 집중투표제, 지주 회사 규제, 공적연금의 의결권 문제, 은행 민영화, 기업지배구조,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등 외환위기 이후 제기되는 경제이슈 는 많은 논란과 찬반의 갈등 속에 매일 신문지상을 뒤덮고 있다.

본 보고서는 이와 같은 여러 경제이슈의 다양성과 차이가 정부 의 역할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보이고 있다. 다른 정부관은 결국 다른 처방을 유도하게 된다. 한 사회의 법・제도, 경제체제를 운용함에 있어서 이처럼 정부는 매우 중요 한 영향을 미친다. 본 연구는 최근의 문헌을 중심으로 이와 같은 정부의 역할에 대하여 가급적 광범위한 문헌조사를 하려고 시도 하였다. 이러한 시도를 통하여 최근에 제기되는 다양하고 혼란스 러운 경제이슈가 어떻게 정부의 역할과 연결되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였다.

본 연구는 정부의 역할에 대한 규범적인 가치판단을 가급적 자 제하려고 노력하였다.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헌 서베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통찰력과 정책적 함의의 방향이 불분명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경제발전은 자유의 신장과 밀접 한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의 신장은 보다 유 연한 제도의 성숙을 통하여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창의성과 효율 성이 생산성과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올림으로써 가능하여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정부의 역할을 중요시하는 것은 이에 따라 자유 와 자율의 신장에 중대한 영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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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 보고서의 구성

본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2장에서는 정부의 역 할이 그동안 여러 문헌에서 어떻게 평가되어 왔는가를 살펴본다.

우선 경제학에서 정부의 역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경험주의와 합리주의적 전통이 어떻게 정부의 역할에 영향을 주 었는지를 검토한다. 특히 관습법과 성문법 체계에 따라 나타난 정부의 역할의 차이를 조망한다. 그리고 최근에 나타난 국가간 비교연구에 대한 문헌조사를 실시하고 정부역할에 대한 통찰력이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가늠해 본다. 3장에서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논의되는 여러 경제이슈가 정부의 역할, 세계화/경쟁 그리고 기 업가역할이란 관점에서 어떻게 분석될 수 있는지에 대한 분석의 틀을 제시하여 본다. 4장에서는 본 보고서의 결론과 시사점을 서 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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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정부의 역할 ,

어떻게 평가되어 왔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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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 경제학에서 제시하는 정부의 역할

1. 고전학파 경제학과 정부의 역할

경제학은 정부의 역할을 제한하고 있다. 고전학파 경제학의 시 조인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Invis ible H an d’이라는 시장의 기 능을 통하여 자원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5) 기본 적으로 정부의 개입이 없어도 이기적인 경제주체의 상호작용은 신기하게도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아담 스미 스를 뒤이은 리카르도와 마샬 등의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의 기본 적인 명제도 교역의 우월성과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통한 자원배 분의 효율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고전학파 경제학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크게 조명될 근거가 나타나지 않았다.

2. 사회주의 경제학과 정부의 역할

사회주의 경제학은 고전학파 경제학과는 정반대로 정부에 의한 강력한 통제를 전제로 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제시한 사회주의 경제모델에서는 국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게 된다. 또한 국가가 직접적으로 명령과 통제를 통하여 자원을 배분함으로써 많은 부 분에서 시장을 대체하게 된다. 오스카 랑케는 국가의 중앙계획부

5) Sm ith(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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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 가격의 매개변수적인 역할을 모방함으로써 자원을 효율적으 로 분배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정부역할을 정당화하였다. 사회주의 경제학에서의 정부역할은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자원의 배분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여야 한다 고 평가된다.

3. 케인즈와 적극적 재량주의

케인즈는 고전학파 경제학 이후 정부의 역할을 가장 설득력 있 게 제시한 경제학자이다. 케인즈는 정부의 재량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통하여 불황을 타개하고 실업을 극복하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제시하였다.6) 이는 특히 당시 미국에서 대공황 으로 인한 대규모 실업사태와 절망적인 경기침체를 타개하기 위 하여 루즈벨트 대통령이 펼친 뉴딜정책에 대한 이론적 기반이 되 었으며 이후 정부의 거시적이고 총량적인 관점에서 재량적인 경 제개입을 정당화하는 이른바 케인지안식 경제정책의 기초가 되었 다. 이후 60년대와 70년대의 미국 경제정책의 기초는 케인지안 경제학자에 의하여 마련되었다. 이들은 특히 미국 동부의 하버드, MIT, 예일, 프린스턴, 펜실베니아 대학 등에서 거시경제학과 화폐 및 금융이론에서 중요한 이론적 틀을 제시하였다. 대표적인 경제 학자로는 사무엘슨, 토빈, 클라인 등을 들 수 있다.

6) Keyn es(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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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카고학파와 일관된 정부정책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플레이션과 불황이 동시에 나타 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문제에 대하여 정부의 재량적 경제정책은 그 한계를 노정시켰다. 이러한 경제환경하에서 미국의 시카고 대학 을 중심으로 프리드먼을 비롯한 통화론자들의 주장이 70년대와 80 년대를 풍미하였다. 통화론자들은 케인지언과는 반대로 정부의 재 량적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이 단기적 효과를 가져올 수는 있으나 이는 곧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인하여 효과를 상실하게 되고 안 정적인 경제운용에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하였다. 통화 론자들은 정부의 재량적인 정책보다는 일정한 통화량 증가율을 준 수하여 국민들에게 안정적인 기대감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함 으로써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을 주장하는 케인지언과 대비된다.

통화론의 주장을 계승한 시카고 대학의 루카스를 비롯한 합리 적 기대가설Rational Expectation Theory 이론가들은 통화론의 주장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국민들의 합리적 예측으로 인하여 정부의 재 정정책은 단기적으로도 효과를 거두기 어려우므로 일관된 통화정 책을 펼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2005년 노벨경 제학상을 받은 키들랜드와 프레스콧은 통화론자와 합리적 기대가 설의 정책적 함의를 보다 일반화한 시간불일치Time Inconsistency 모 형을 제시하여 재량Discretion보다는 일정한 준칙을 준수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경제정책이라고 주장하였다.7) 이와 같은 시 카고 대학을 중심으로 재기된 통화론자와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경 제학자들의 주장은 거시경제적인 측면에서 상황에 따라 개입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보다는 일정한 준칙을 엄정하게 지켜서 신 뢰와 일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7) Kydland & Prescott(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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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부의 규범적 역할에 대한 미시경제학적 분석

지금까지의 논의들은 한 국민경제에 미치는 거시적인 영향을 중심으로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부문별로 또한 구체적인 경제적 활동의 내역별로 정부의 활동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논의는 20 세기 들어서 경제학의 분야가 세분화되고 각 분야별로 이론적 발 전이 나타나면서 등장하게 되었다.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 다고 논의되는 부문은 시장에 의한 자원배분이 최선의 결과를 가 져올 수 없는 경우로서 이른바 시장실패라고 불리는 공공재, 독 과점, 자연독점, 비대칭정보 및 외부성의 경우이다.

재정학Public Finance 또는 공공경제학Public Economics에서는 공공 재Public Goods의 공급이 정부에 의하여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공공재는 다른 사람들의 소비를 막을 수 있는 배제 성Excludability과 한 사람이 소비할 때 다른 사람의 소비가 제한되 는 경합성Rivalry이 없는 재화를 말한다. 일례로 국방이나 치안과 같은 재화/용역은 바로 이와 같은 특성을 갖고 있다. 소비의 배제 성과 경합성이 없으므로 사람들은 공공재를 무임승차Free Rider할 유인을 갖게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유인을 갖게 되 므로 재화의 공급이 근본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는 문제점 이 나타난다. 결국 이와 같은 공공재의 공급은 아무도 담당하려 하지 않게 되므로 정부가 담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시경제학과 이를 보다 심화하여 연구하고 있는 산업조직론

Industrial Organization에서는 독과점이 적정 이하의 생산을 함으로써 사회적 후생을 감소시키고 자원의 배분을 왜곡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정부는 반독점규제를 실시하여 이러한 독과점의 폐해를 방지하고 경쟁을 촉진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독과점의 폐해를 치유하는 정부의 역할 중 특히 두드러진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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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자연독점의 경우이다. 생산에 있어서 규모의 경제가 크게 나 타나는 경우에는 여러 기업보다 독점기업이 이를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독점기업이 생산을 담당할 경우 생산량을 줄 이고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있으므로 정부가 독점을 허용하되 그 가격을 비용에 적정한 이윤을 허용한 정도에서 규제한다는 것이 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엄청난 고정비용이 소요되고 규모의 경 제효과가 나타나는 전력, 가스, 통신, 철도, 상・하수도 등의 네트 워크 산업에서 자연독점 규제를 실시하고 있다.

비대칭정보Asym metric Inform atio n는 공급자와 수요자가 재화나 용 역 또는 노동서비스의 가격 및 특성에 대하여 갖고 있는 정보의 수준이 상이한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거래에 따른 위험 이 커서 시장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수 있음을 Akerlof(1971)는 보 이고 있다. 이 경우 정부는 엄격한 품질관리를 실시하거나 제품의 표준적인 규격이나 품질을 관리하는 등 적극적인 역할을 펼침으 로써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재화나 용역의 생산과 소비에 외부성Externality이 나타나는 경우 다른 경제주체의 경제적 편익과 비용이 영향을 받게 된다.

다른 경제주체에 긍정적인 영향이 나타날 때에는 외부경제의 효 과가 있다고 말하며,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날 때에는 외부불경제 의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외부성이 나타나게 되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생산수준보다 적거나 또는 불필요하게 많은 생산이 나 타날 수 있다. 정부는 외부성이 나타나는 재화의 생산이 사회적 으로 적정 수준만큼 나타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규제와 인센티 브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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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부의 실증적 역할에 대한 분석

정부의 규범적 역할에 대한 논의가 정부가 어떠한 일을 담당하 여야 한다는 식의 분석이라면 정부의 실증적 역할에 대한 논의는 실제로 정부가 맡고 있는 역할을 검토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정부가 시장실패를 보완하여 시장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부분 을 담당할 수 있다고 논의되지만 실제로 정부가 하는 역할을 보면 이와 같은 규범적 논의와는 다른 정부의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시장실패를 정부가 보완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정 부가 하는 역할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논의가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라는 개념으로 정리된다. 정부실패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정부가 국민의 이해보다는 정부부처나 정치인 자신의 이해 를 따른다는 것이다. 둘째는 선거에 따른 압력이 정부의 지출과 조세에 대한 결정을 부적절한 방향으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셋째 로 주요직 공무원이나 정치인의 임기 또는 다가오는 선거를 염두 에 두기 때문에 단기적인 성과를 올리는 것에 집중하기 마련이라 는 것이다. 넷째로 이해당사자들을 위하여 규제가 편향된다는 것 이다. 다섯째, 공공정책의 특성이 소득재분배나 평등화정책을 추 구하기 마련이므로 시장에서의 인센티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여섯째, 정부의 가격규제나 가격지원 등에 따라서 자원배분에 왜곡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일곱째, 시장에 비하여 정 부는 자원의 적정배분을 위한 정보를 알아내고 공급하는 데 열등 하기 때문에 최적의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 은 정부실패에 대한 논의는 Buchanan and Tullock(1965)이 공공선 택의 이론을 통해서 제시하였다. 공공선택 이론의 시각에서는 정 부를 이해단체에게 규제를 공급하는 공급원으로 보고 있다. 이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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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정부관은 사회후생수준을 극대화하는 계획자로 정부를 보고 있는 전통적인 경제학의 정부관과 대별되는 것이다.

이해당사자를 위하여 정부가 규제를 공급한다는 이른바 포획이 론Capture Theory의 논의는 Stigler(1971)의 규제연구가 그 시발이 되 었다. 이후에 Peltzman(1976)은 이를 정치과정과 연계하여 보다 일반화시켰다. 그는 정부가 선거라는 국민의 심판과정을 염두에 두고 이해당사자에 대하여 규제를 ‘공급’함에 따라 얻어지는 편익 과 국민복리의 적절한 조합을 추구한다고 주장하였다.

Olson(1965)은 Stigler(1971) 이전에 이미 이익집단과 정부의 관 계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그는 대규모 이익집단에 비하여 소규모 이익집단이 조직화되기 쉽고 그 비용은 적으므로 정부의 정책결 정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주장하였다.

7. 경제발전론에서의 정부의 역할

경제발전론에서는 정부가 개발도상국들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주체로서 서술되고 있다. 정부는 앞서 말 한 기본적인 기능 외에도 자본의 동원, 경제개발계획의 입안, 인 적 자원의 개발을 위한 교육의 제공, 물적 인프라의 건설, 특정산 업의 보호・유치 및 성장을 위한 지원 등 다양한 발전전략을 입안 하고 수행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제학자 Wagner는 경제의 발전과정에서 정부의 역할 과 기능이 확대되며 그러한 가운데 정부지출이 지속적으로 늘어 난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정부규모와 GNP 사이에는 정의 상관 관계가 나타난다는 소위 와그너법칙이 제시되기에 이르렀다.

Rosenstein-Rodan(1957)은 경제발전의 기폭제적인 기능을 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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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투자를 확대하는 빅푸시Big Push이론의 선도자로서 정부의 역 할을 강조하였다. 또한 Hirshman(1958)은 불균형성장이론을 통하 여 특정산업에 대한 집중적 투자와 지원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Rostow(1960)는 경제발전 단계론을 제시하였다. 이에 따르면 경제발전 단계는 전통적 사회 → 선행조건 단계 → 도약 단계 → 성숙으로의 전진단계 → 고도대중 소비단계를 거치는데 그는 도약단계로 접어들기 위한 정부역할의 중요성을 경제발전과 연계하여 지적하고 있다.

동아시아 경제발전의 원인에 대한 해석도 정부의 역할에 따라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Wade(1990)는 동아시아에서 시장에 비 해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Jung (1997)에 의하면 바우어Peter Bauer, 랠Deepak Lal, 리틀Ian Little, 존슨

Harry Johnson, 발라사Bela Balassa, 시몬Julian Simon, 바그와티Jagdish

Bhagwati 및 크루거Anne Kruegger 등 신고전학파적인 입장을 택하는 측에서는 동아시아의 성공을 주로 시장기구의 자유로운 작동의 공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경제발전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정부의 역할은 제도적인 인프 라를 구축하여야 한다는 논의가 최근에는 그 기반을 넓혀가고 있 다. North(1990)는 특히 시장기구가 작동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 할을 통한 사유재산권의 확립이 필수적이며 계약의 이행을 강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North and Thomas(1970)는 10세기 이후 18세기까지 서구의 경제성장을 주로 사유재산에 관 한 제도적인 혁신을 통하여 조명하고 제도적인 혁신이 경제성장 을 좌우하는 주된 인자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Morris and Adelman(1988)도 1850~1914년의 기간중 국민소득이 크게 증가한 23개국을 대상으로 경제성장의 유형을 비교하였는데 여기서도 제도가 경제발전의 속도와 유형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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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요인임을 밝히고 있다.

World Bank(2002)는 이러한 관점에 따라 빈곤을 감소시키는 제 도의 구축에 관하여 논의하고 있다. 즉 제도가 어떻게 시장을 지 원하고, 제도를 작동시키는 요인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러한 제도 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논의를 여러 구체적 사례를 통하여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훌륭한 관료제도, 독립적인 사법부, 사유재산 권의 보장, 투명하고 시장지향적인 기업지배구조 및 금융기관과 독립적인 중앙은행 등으로 대변되는 제도적 정착이 과연 지금의 선진국들이 한창 경제발전을 이룰 때에도 잘 구축되어 있었느냐 에 대하여 Chang(2002)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선진국들은 현재 그들이 개발도상국에게 권면하고 있는 제도적 성숙을 통하 여 발전하였다기보다는 개발도상국들이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형 태의 보호무역과 산업정책 그리고 유치산업 보호를 통하여 발전 하였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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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 경험주의, 합리주의 그리고 정부의 역할

1. 문제의 제기

국민국가의 형성은 체계적이고 제도화된 정부의 역할과 그 맥 을 같이 한다. 그 결과 국가경제가 창출하는 경제적 부가가치와 소득의 흐름 그리고 국방력 등의 변화는 그 이전의 시대와는 비 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여러 국민국가의 형성과정 그리 고 그 발달과정에는 상당한 유사성과 차별성이 존재한다. 물론 모든 국가는 부존자원, 언어, 지리적 위치, 인종, 인구의 크기 및 구성 등에서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에 나름대로 모두 특색을 갖기 마련이다. 그러나 국민국가의 형성과 제도적 특성을 살펴볼 때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으로 인하여 이를 몇 개의 국가형태로 분류 하는 것이 가능하다. 자본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 전체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 왕국과 공화국 등과 같은 구분이 그것이 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통적인 구분 외에도 우리의 관심을 불러 들이는 국민국가의 분류방법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류법은 국가의 특성에 대한 우리의 의문점을 잘 해결해 줄수록 의미 있는 분류법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전반부의 거의 동일한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많은 국가 에서 전체주의적 또는 파시즘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는 정부형태가 출현하였다. 그리고 국민국가의 발전이나 경제발전의 단계에까지 이를 확대하여 보면 경제개발기의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아시아 와 중남미 국가들에서도 이와 유사한 정부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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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거의 유사한 환경 속에서도 왜 영국과 미국에서는 파시즘 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왜 이들 국가에서는 산업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통제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현저히 적었으며 언론을 통한 정부의 의도적인 대중조작이나 선동정치가 제한적이었는가? 전시 와 극한적 상황하에서도 국민이 누리는 자유가 심하게 훼손되지 않았는가? 정부의 의도적인 설계와 하향식 명령보다는 자율적이고 제도적인 성숙이 왜 발달했는가? 이러한 궁금증은 영국과 미국이 갖는 제도적인 특징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로 발전하게 된다.

영국과 미국의 공통적 특징은 경험주의적 전통과 제도를 갖는 관습법 국가라는 것이다. 뒤에 상세하게 나타나겠지만 최근 신제 도주의적 연구, 또한 재무이론과 지배구조 논의에 대한 제도적 특성에 대한 연구에서 영미식 관습법적 국가의 특징에 대한 논의 는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쏟아져 나오는 국가별 특 성의 횡단면 자료에 대한 실증적 연구의 대다수가 영미식 관습법 적 요인을 국가별 특성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본 보고서에서도 경험주의적 전통과 제도에 입각한 국민국가와 합리주의적 전통과 제도에 입각한 국민국가로의 분류를 중요하고 의미 있는 분석으로 판단하고 있다. 물론 어떤 국가도 순수한 의 미에서의 경험주의적 전통 또는 합리주의 전통에만 기초하고 있 지는 않다.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양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 으며 부분적으로 다른 전통과 제도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영미를 대표주자로 하는 경험주의적 제도와 유럽 대륙의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일본으로 대표되는 합리주의적 제 도의 특징은 뚜렷이 구분된다.

최근 재무이론 문헌을 중심으로 봇물처럼 나타나고 있는 경험 주의적 관습법 국가의 제도와 합리주의적 성문법 국가의 제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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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횡단자료 분석에 앞서 Hayek(1948, 1973, 1976, 1979, 1996) 는 영미식 경험주의적 국가전통과 대륙식의 합리주의적 국가전통 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적 비교분석을 수행하였다. 이 장에서는 Hayek의 연구에서 나타난 것을 중심으로 경험주의적 전통과 합 리주의적 전통의 차이를 살펴보고 그 결과 정부의 역할에는 어떠 한 차이점이 나타나는지를 검토한다.8)

2. 경험주의적 제도의 특징

(1) 경험주의적 사고방식

영국적 전통의 경험주의적 사고방식의 근저에는 사회와 전통을 변화시키고 움직이는 데 인간의 능력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인 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경험주의적 사고방식은 인 간은 전지전능한 신과는 구분되어 그 능력과 도덕성이 완전하지 않고 죄 많은 존재라는 기독교적 인간관과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주의적 사고방식에 따르면 인간이 어떤 제 도나 전통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지금까지 누 적된 경험에 따라 나타난 제도와 결과를 존중하여야 한다는 인식 을 갖고 있다. 이는 기존의 제도와 시스템이 다양한 시행착오와 시험을 거쳐서 이미 어느 정도 검증된 것이기 때문에 이를 급격 히 바꾸는 경우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과 잘못이 나타날 수 있다 는 조심성이 내포된 견해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경험주의적 사 고방식은 문명을 힘들게 획득한 시행착오의 누적적 결과로 이해

8) Hayek의 연구 중 The Constitution of Liberty는 하이에크/ 김균(19 97)을 많이 참조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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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다. 또한 문명은 부분적으로는 세대에서 세대로 명시적인 지식의 형태로 전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 우월성이 증명된 도 구와 제도 속에 체화된 경험을 합한 것이라는 입장이다.9) 경험주 의는 제도의 기원을 특별한 고안이나 설계가 아니라 성공한 것들 의 존속에서 발견하였다. 이처럼 경험주의적 사회이론은 설계되 거나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 르는 수많은 사람들 각자의 행위로부터 생겨난 제도, 사람간의 관계에서 복잡하지만 질서정연하고, 또 합목적적인 제도가 어떻 게 성장하는가를 보여준다.

이와 같은 경험주의적 사고방식은 진화론적 논의와 매우 유사 하다. 그래서 우리는 경험주의적 논의가 진화론에서 영향을 받았 다는 인상을 갖게 되는데 사실은 그 반대이다. 즉 다윈은 진화론 을 사회진화론에서 이끌어낸 것이라고 한다.10) 사회진화에서 결

9) 이러한 사고방식은 17세기의 법관인 Hale의 홉스에 대한 다음과 같은 비판에 서 잘 드러난다. “특히 법과 통치에서는 당사자의 이성으로는 지금, 또는 즉각 적으로, 또 길게 보아도 그 합당함을 알지 못할지라도, 즉각적으로 멀리 보면 또 결과적으로는 합당하다고 받아들여지는 일들이…… 많이 있다. 오랜 경험 은 가장 현명한 위원회가 얼른 예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법률의 편리함, 또는 불편함에 관한 발견들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현명하고 배운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을 통한 수많은 법률의 수정과 보완이, 이러한 오랜 경험의 도움 없이 가장 완숙한 현자가 만든 것보다…… 더 법률의 편리함에 잘 맞아 떨어 진다. 이것이 현재 법의 합당함을 통찰하는 일을 한층 더 어렵게 하는데, 법은 오래되고 반복적인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이며, 경험은 보통 바보의 첩이라 불 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현명한 수단이며, 또 어떤 현자도 단 번에 예견할 수도 고칠 수도 없는 것을 제공하고 그 결함을…… 찾아내기 때 문이다. 우리가 제도의 존재이유를 우리에게 명확히 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확실성을 주는 제도화된 법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하며, 개별제도들의 존재이유 는 모를지라도 그것들을 관찰하는 것이 합당하다.”(Hold sworth , A History of English Law Ⅴ, 1924. 하에에크/ 김균(1997)에서 재인용)

10) 다윈에게 스코틀랜드 진화철학을 접할 수 있게 한 사람은 스코틀랜드 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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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요소는 육체적으로 유전되는 인간속성의 선별이 아니라 성 공적인 제도와 습관의 모방을 통해서 나타나는 선별이다. 이 선 별과정은 개인과 집단의 성공을 통해서 작동하지만, 그 결과 나 타나는 것은 개인의 유전적 특징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기능, 즉 학습과 모방에 의해 전달되는 문화적 진화라는 것이다.

경험주의적 사고방식은 필연적으로 그 속성상 보수적이면서 역 사와 전통을 존중하는 특성을 갖게 된다. 성공적인 자유사회는 역설적으로 항상 전통에 얽매인 사회이다. 영국이라는 이름이 한 편으로는 자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과 그토록 밀접하게 연 관된 것은 역사의 패러독스 중의 하나이다.11) 제도와 관습 그리 고 오래된 전통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존중할 수 있는 장치가 없 는 자유란 보호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가 유익 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발적 준수가 그 조건이다. 따라서 자 유는 뿌리 깊은 도덕적 믿음 없이는 절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이 러한 도덕적 믿음은 결국 그 사회에 오랫동안 뿌리내린 전통과 관습에 의하여 유지되는 것이다.

한편 자연스럽게 형성된 전통이나 제도는 인위적으로 구성된 것 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기에 체계적으로 비춰지지 않는다.

경험주의적인 제도와 체제는 대부분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비체계 적이고 산만하게 보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경험주의적 사고방 식은 정교하지 않으며 불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경험주의적 사고방식의 또 다른 특징은 실용주의적이라는 데에 있다. 경험주의적 사고방식은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디자인이 나 직관적 이해보다는 실질적으로 얼마만한 효과가 나타날 수 있 느냐를 중요한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뒤에 상술할 합리주의적

학자였던 James H utton 이라고 한다. 하이에크/김균(1997).

11) H . Butterfield(1952), p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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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방식에 따른 체제변화가 주로 혁명이나 큰 정치적 변혁을 통 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합리주의적 설계주의는 실질적 변화보다 는 다소 인위적인 결과와 정치적 홍보에 치중하는 경향이 상대적 으로 높다. 그러나 경험주의는 인간의 삶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개선하였느냐에 관심을 두고 이를 위한 부대적인 장치나 설계상 또는 미학적 치장에는 다소 둔감할 수 있다.

경험주의는 자유의 본질을 자발성과 강제의 결여에서 찾는다.

따라서 결과의 완벽성보다는 자유로운 절차를 중요시한다. 자유 롭지만 실수를 저지르는 시행착오의 과정 자체에 대하여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며 이 과정에서 얻어지는 교훈을 중요시한다. 따라 서 경험주의적 성장은 다소 느리고 유기적이며 반쯤 의식적인 성 장을 옹호하게 된다.12)

(2) 경험주의의 대표적 사상가

경험주의는 영국적 전통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영국 안에 서도 관습법의 법률학 전통에 뿌리를 둔 스코틀랜드의 도덕 철학 자들에 의하여 경험주의적 사고체계는 명시적으로 확립되었다. 대 표적인 사상가들로는 David Hume, Adam Smith, A. Ferguson, J.

Tucker, E. Burke, W. Parley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B. Constant, Montesquieu, Alexis de Tocqueville과 같은 프랑스 학자들은 영국적 전통에 정통하고 있어 경험주의적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험주의적 사고방식은 멀리는 아테네와 로마와 같 은 고대 공화정국가의 사상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일례로 Cicero는 로마헌법이 위대한 이유가 한 사람이 아닌 다수의 재능 에 기초하고 있으며 한 세대가 아니라 수세기 동안 여러 세대에

12) Talmo n(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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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친 오랜 기간 끝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또한 Cicero는 Cato를 인용하면서 어떤 사람도 모든 것을 다 파악할 수 있는 엄청난 재능을 갖지 못하며, 또 어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 람들 모두의 결합된 힘도 실제경험과 시간의 검증이라는 도움 없 이는 미래를 위한 모든 필수적인 배려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13) 또한 후기 로마의 법률학자 Neratius는 법률가들 을 훈계하면서 “우리는 우리 제도들의 근거에 대해 의문을 제기 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확실한 많은 것 들이 전복될 것이다”라고 하였다.14)

3. 합리주의적 제도의 특징

(1) 합리주의적 사고방식

프랑스 전통의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은 인간이성의 무한한 힘을 가정하고 있다. 따라서 합리주의는 인간이 그 이성의 힘을 제대 로 발휘한다면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합리주의는 문명을 임의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지적・도덕적 능력 이 인간에게 있다고 가정한다. 즉 인간에게는 합리적인 행위를 하는 성향이 있으며 인간의 지성이 우수하고 본질적으로 선하다 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합리주의적 논의는 이성의 전개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므로 전반적으로 그 논의가 매 우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으며 체계적이다. 따라서 합리주의적 완 벽주의는 인간이 본래 죄인이요, 불완전하다는 기독교적 인간관

13) De re publica ii. 하이에크/김균(1997)에서 재인용.

14) Corpus iuris civilis. 하이에크/ 김균(199 7)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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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는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갈등 속에 있다.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은 자연스럽게 인간의 노력과 창의력에 의 한 새로운 시도와 개혁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역사와 전 통을 존중하기보다는 이를 이성적으로 재구성하고 불합리한 부분 을 고치는 것을 강조하게 되므로 진보적이며 나아가 급진적인 사 고방식과 한편으로 닿아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프랑스대혁명에 따른 왕정의 붕괴와 시민사회의 등장은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을 크게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의 명예혁명과는 달리 프랑 스대혁명은 왕정을 완전히 종식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시민사회 는 새로운 권력형태와 통치구조를 설계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과거 왕정이 앙시엥레짐으로 비난받으면서 이를 완전히 붕괴시키 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과 거의 경험이나 전통을 새로운 통치구조에 접목시킬 여유도 없었 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 변화는 설계주의적 합리주의가 꽃피울 수 있는 가장 최적의 환경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합리 주의는 세계를 새롭게 만들 것인가를 숙고하는 지성이 되었고 시 민사회는 이러한 설계에 따라 현명한 독창적 입법자 또는 독창적

‘사회계약’에 의하여 형성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합리주의가 표방하는 설계주의적 입장은 사회 구성원의 자발적 노력과 이에 따른 누적과 집적의 힘으로 자연적으로 이루 어지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반드시 설계를 담당하여야 하며 이를 위한 권한을 지녀야 한다. 따라서 설계를 위한 공공권력의 개입 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자연스러운 귀결로서 합리주 의에서는 절대적으로 집단적인 목표의 추구와 달성 속에서만 자 유가 실현된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잘 알 수 있는 특징 으로 합리주의적 사고방식하에서는 ‘사회적’이라는 단어가 매우 빈번하게 사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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