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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는 대학입시 문제

대학입시 제도는 평준화정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지금까 지의 입시개혁이 빈번히 실패한 원인 중에 하나는 평준화정책은 그대로 두고 입시제도만 바꾸려 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내신제도 를 정착시켜, 수학능력시험이나 대학별 고사의 비중을 줄여 학생 들의 대학입시 부담을 경감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평준화 정책을 이유로 학교간의 특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내신제도를 허 용하지 않고 있으며, 대학은 여전히 수학능력시험이나 대학별시 험에 의지하려 하고 있다. 최근에 불거져 나온 고교의 소위 ‘내신 부풀리기’는 이러한 대학의 행태를 도리어 정당화해 주고 있다.

내신제도의 도입은 예비고사와 개별 대학의 입시가 필답고사로 만 이루어져 학생들이 학교교육을 외면하고 암기식 교육에만 치 중하게 한다는 비판에서 출발했다. 1980년 내신제도가 도입된 것 은 미국의 경우와 같이 중・고등학교에서의 학업 성과를 대학이 평가하도록 하자는 목적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내신이 강화될 경우 교사들이 학생의 다양한 학업성과를 관찰해 평가를 하게 될 것이므로 학생들이 시험위주의 암기학습에 치중하거나 과외에 매 달리지 않고 학교교육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강하게 작용

24) 이주호・홍성창(2 001) 참조.

했던 것이다. 또한 이렇게 될 경우 과외에 대한 수요도 많이 감소 할 것이라는 기대도 물론 적지 않았다.

당시 내신제도의 도입은 소위 강남 8학군 문제를 해소하는 데 일조하리라 기대되었다. 평준화로 학교선택을 제한하고 수업료, 교육과정, 교원의 수준을 균등하게 묶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유층 이 많이 사는 강남지역 학생들이 일류 대학에 많이 진학하는 현 상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었다. 학부모들이 대학진학을 앞둔 자 녀들을 불법으로라도 서울의 강남 8학군으로 진학시키려고 하면 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게다가 이 지역의 부동산 가격 상승 을 부추긴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그렇다면 학교별 차이에 상관 없이 모든 학교의 내신을 동일하게 인정하게 하고 대학입시에서 그 반영비율을 높인다면 8학군 학교 학생들의 대학진학을 견제하 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대학입시와 내신비중은 당시 강남지역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 었다. 수능제도의 도입과 함께 내신비중이 높아지면서 과학고와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 학생의 내신을 대입에 어떻게 반영할 것 인지를 놓고도 한바탕 혼란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최근 2008년 대입개선안이 발표되면서 다시 한번 엄존하는 학교간 격차의 인 정여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대학입학 전형을 고려해 볼 때 내신제도는 아직 본래의 도입 취지를 살리고 있지 못하고 있다. 입학전형에 서 각 대학들의 내신 비중이 명목상으로는 높게 나타나고 있으나 실질 반영비율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25) 정부가 대

25) 일반 정시모집의 경우 학교생활기록부의 반영비중이 대부분 30~40 %를 차지 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반영비중은 이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전국 대학의 학생부 평균 실질반영비율은 2002 학년도 9.69%, 2 003학년도 8.85%, 2004학년도 8.21% 등으로 해마다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동아일보 2004. 2. 16일자 참조.

학들로 하여금 내신반영 비율을 높이도록 강제했을 뿐 실질적인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대학이 각 고교의 내신을 불 신하고 활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표 8> 고등학교별 수능성적과 내신성적의 관계

수능 상위 10%에 속하는 재학생 비율 (%)

고등학교수 (총 1,847)

내신성적 ‘수’ 부여 비율 (%) 최대 비율 최소 비율 차이

90 ~ 100 15 88.3 35.4 52.9

80 ~ 90 9 79.8 29.0 50.7

70 ~ 80 6 38.2 26.5 11.8

60 ~ 70 4 68.0 33.4 34.6

50 ~ 60 9 36.0 23.2 12.8

40 ~ 50 9 38.4 21.5 16.9

30 ~ 40 13 43.0 13.7 29.3

20 ~ 30 42 54.1 10.9 43.2

15 ~ 20 107 35.6 9.7 25.9

10 ~ 15 216 36.3 6.9 29.3

8 ~ 10 88 32.4 9.6 22.8

6 ~ 8 103 31.6 6.3 25.3

4 ~ 6 82 37.6 8.1 30.0

2 ~ 4 100 31.8 7.0 24.9

0 ~ 2 1,044 64.3 2.9 61.4

자료: 김성인, 「대입전형제도의 문제점, 분석 및 개선방안」, 󰡔교육개발󰡕, 1・2호, 2001.

<표 8>은 대학수학능력시험과 고교별 내신성적의 관계를 정리 한 자료이다. 조사대상인 1,847개 고등학교의 수능과 내신성적을 분석한 결과 우선 학교별로 학력차이가 크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학생의 90% 이상이 수능성적 상위 10% 이내에 드는 고등학교가 15개 학교인 반면, 상위 10%에 재학생의 2%도 들지

못하는 학교도 1,044개교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군다나 수능 성적이 비슷한 수준의 고등학교들간에도 ‘수’를 주는 비율이 60%

까지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수능에서 최저성적 대에 있 는 고등학교 중에서 최고성적 대의 고등학교보다 ‘수’를 주는 비 율이 더 높은 학교도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문계열이나 실업계열 등 학교 종류나 교육과정, 학생선발 방식 등 개별 학교 의 특성을 고려해서 내신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결국 내신제도 도입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여전히 고등학교간 엄존하는 학력차이와 내신 부풀리기를 이유로 학교별 성적을 신 뢰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수능시험이나 대학별 고사에 대한 의 존도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내신제도 도입을 통해 학교교육을 정상화시켜 사교육비와 대학입시 부담을 동시에 경감하고자 했던 당초의 목표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내신제도가 제자 리를 잡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치유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 구하고 정부는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2004년 교육부가 발표 한 2008년 대학입학제도 개선안도 그러하다. 개선안은 수능시험 의 변별력을 낮추고 대학별 시험에 대한 규제를 통해 대학들로 하여금 내신의 비중을 높이도록 강요하는 것이다.26)

26) 교육부가 20 04년 발표한 2008년 대학입시 방안에는 몇 가지 중대한 문제점 이 있다. 첫째, 내신 부풀리기 방지를 위해 ‘원점수+석차등급제’를 도입하는 것은 좋으나 이것만으로 내신반영 비중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는 것은 안 이한 발상이다. 둘째, 교육부는 수능성적을 9등급으로만 제공함으로써 치열 한 점수경쟁을 덜 수 있으며 재수생들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수 능성적 1~2점을 더 따기 위한 경쟁이 없어지는 만큼, 오히려 수능등급 하나 를 더 올리기 위한 경쟁이 불붙을 것이다. 셋째, 교육부는 수능시험을 문제 은행식 출제로 전환해 연 2회 시험 실시 및 2일에 나누어 시행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으나, 모든 학생에게 똑 같은 형식의 시험을 강요하는 현행 체제 를 바꾸지 않고서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특히 2008년 입시안이 내신의 비중을 높이면서 상대평가를 강 화하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같은 교실 내 학생들간의 경쟁이 심각 해지고 있다. 정부가 고교간의 학력 차이를 내신반영에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들은 경쟁의 압력에서 완전히 빗겨 서있고 학교 내 학생들에게만 경쟁의 압박이 가중되는 것이다. 또한 우수한 학생을 많이 배출하는 학교일수록 그 학교 학생들은 내신에서 상 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제도 아래 에서 학교들은 열심히 노력할 유인이 약한 반면, 같은 학교 학생 간의 직접적인 경쟁만이 과열되고 있다.

사실 명백히 자가당착으로 보이는 학교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내신제도는 정책 담당자들에 의해 미리 계획된 정책은 아니 었을 것이다. 통제 중심의 교육체제를 자율적인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전개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는 대학과 학교들이 스스로 역량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전환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대입제도를 정부의 힘으로 바꾸고자 하였다. 그 결과는 학교 간 차이를 인정하지 않 은 매우 왜곡된 형태의 제도로 변화되었다.

그렇다면 대학입시에서 내신제도를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

중등교육의 내실화와 대학의 자율이라는 두 원칙하에서 바람직한 대학입학전형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그것은 학교의 자율 성과 다양성을 확대해 나가고 이들의 학교별 차이를 인정하는 것 이다.

정부는 내신제도에 있어서 학교간 차이를 인정할지 여부를 개 별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중앙집권 적으로 학교간의 학력에 따른 등급을 매겨서 이를 개별 대학에 반영토록 하는 과거의 고교등급제는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또 한 대학들이 출신학생들의 수능성적이나 대학입학 현황만으로 해

당 고교 졸업생들을 평가하는 것도 제한되어야 한다.

각 대학들은 개별 학교의 학력 차이뿐만 아니라 고교특성, 교 육과정 등을 고려해 복합적으로 학교의 교육프로그램을 평가하고 개별학생들이 그곳에서 어떠한 교육과정을 이수했는지 살펴보아 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개별 학교의 교육과정, 학업성과 등 다 양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대학의 신입생 선발에 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입시개혁의 핵심은 학교별 차이와 특성을 인정하는 데 있다.

그래야 학교간의 바람직한 경쟁은 살리고, 학생간의 소모적인 입 시경쟁은 줄어들게 된다. 결국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키고 과외문 제, 입시문제를 장기적으로 해소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