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중학교 추첨배정으로 시작된 평준화

평준화정책은 1969년 서울특별시에서 중학교 무시험 입학제도 를 도입함으로써 시작되었다. 1970년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의 도시로 확산 적용되었고, 1971년부터는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

평준화정책 이전에 사립은 물론 공립중학교도 학생선발권이 허용 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변화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문교부는 무시험추첨배정제도의 목적으로 어린이의 정상 적 발달 촉진, 초등학교의 입시준비 교육 지양, 과열과외 해소, 극 단적인 학교 차이 해소, 그리고 입시로 인한 가계부담 감소 등 다 섯 가지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입시제도 변화 를 통한 학군별 추첨입학제도와 함께 세칭 일류학교를 폐지하고, 학교별로 교원, 학생, 시설, 재정 등 학교교육의 투입요소를 평준 화하는 정책을 동시에 추진했다.

1960년말 중학교 학생의 추첨배정은 당시 중학교 입시경쟁이 점차 과열된 데 따른 것이었다. 6・25전쟁 이후의 출산붐(Baby Boom)으로 취학 대상자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고, 당시 의무교육 의 정착으로 전후(戰後) 초등학교 취학률이 급속하게 증가했다. 그 러나 초등학교 졸업생은 급격하게 증가한 반면, 중학교 수용능력 은 이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소위 일류 중 학교의 학생수용 규모 역시 거의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입시경쟁 은 날로 과열되어 갔다. 좀더 좋은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입시

경쟁이 가중되면서 동시에 과외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심지어 원 하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이 6학년을 다시 다니는 경 우도 발생했다.

중학교 평준화정책은 초등학생의 입시부담 경감과 신체발달 향 상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짧은 기간에 개별 중학교간의 차이를 줄였고, 소위 일류학교에 진학학기 위한 재수생문제를 해 결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중학생 과외공부를 줄이는 데는 아 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평준화정책은 중학생의 과외수 요를 증가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평준화정책은 한 학교 내 학생 간의 학력격차를 확대시켰다. 그 결과 같은 학교 수업내용이라도 우수한 학생은 그 수준이 너무 낮아 효용이 매우 약화되었고, 학 력이 낮은 학생은 그 수준이 너무 높아 따라가기 힘든 결과를 초 래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학교간의 경쟁을 억제해서 학교교 육의 다양성과 질적 수준을 크게 저하시켰다는 점이다.

또한, 중학교 평준화정책이 중학교 교육의 확장을 명시적인 목 표로 삼지는 않았지만, 시험 없이 진학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중 학교 진학률의 급속한 증가에 기여했다. 결과적으로, 중학교 평준 화정책은 중학교 입시문제를 해결한 반면, 고등학교 입시지옥을 강화하는 작용을 했다. 실제로 평준화 초창기 학생들이 고등학교 에 진학하기 시작하는 1970년대초, 고교입시 부담이 가중되고 과 외 역시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문교부 의 해답은 중학교에 이어서 고등학교를 평준화하는 것이었다.

1974년 서울과 부산에서부터 시작된 고교 추첨배정제도는 1975년 대구, 인천, 광주로 확대되어 간다.12)

12) 1973년 3 월 발표 당시, 제시된 고등학교 평준화정책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촉진하고, 둘째 고등학교의 평준화를 기하여 학교간 격차를 해소하며, 셋째 과학 및 실업교육을 진흥하고, 넷째 지역간

추첨방식에 의한 학교배정은 곧 학교의 학생선발권과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의 선택에 상관 없이 균질한 교육을 배분하기 위해서는 여러 정책이 뒷받침되어 야 했다. 당시 교육당국은 학교교육 전반에 걸친 매우 광범위한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게 된다. 우선 부실학교를 정리하는 등 학 교시설 정비를 시작으로 학교별로 차이를 보이던 각종 잡부금 징수를 금지시켰다.

또한 교원자질 향상 및 처우개선, 사립학교의 육성 및 지원을 강화해 가면서 교원정책과 사립학교에 대한 규제정책도 틀을 잡 아가게 된다. 이와 함께 과외 금지 조치 및 과외수업을 한 교사 에 대해서는 인사 조치를 취하는 등 사교육 억제정책을 동시에 추진한다. 신설학교 적정배치와 도심지 학교 외곽 이전과 함께 학군 세분화를 추진하고, 고교 취학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방송통 신고등학교를 설치하게 된다. 농・어촌지역 학교에 우수교원 배 치, 시설확충 등을 포함한 육성책도 함께 마련하게 된다.13)

그러나 고등학교 평준화 역시 중학교 평준화제도와 유사한 부 작용을 초래했다. 고등학교의 취학률은 급속히 증가하는 가운데, 일류 대학에 대한 입시경쟁은 더욱 가열되었다. 학생의 선택이나 학교의 선발이 배제된 채, 추첨에 의한 배정방식은 학교 내 학생 들간의 학습능력 차이를 확대시켜 학교수업을 편성・운영하는 데 어려움을 안겼다. 이로 인해 학교교육을 통해 제대로 배울 수 없 다는 인식이 확대되어 과외증가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교육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고, 다섯째 과외를 줄이고, 여섯째 학생인구의 대 도시 집중경향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중학교 평준화정책의 기본목적인 입시 경쟁과 사교육의 억제와 더불어 실업교육의 육성과 지역간 교육격차를 줄이 겠다는 정책목표가 추가된 것이다.

13) 「교육50년사」, 교육부, 1998.

평준화 도입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교 평준화지역은 증가 와 감소가 반복하고 있다. 현재는 서울시와 6대 광역시를 포함한 전국의 27개 도시가 교육부 장관에 의해 평준화지역으로 지정되 어 있다.14) 한편, 교육당국은 평준화의 보완방침으로 영재교육을 위한 특수목적고등학교의 설립을 허가했다. 1987년부터 각 도마 다 설립한 과학고등학교와 외국어고등학교는 우수한 학교시설과 교사를 가지고 공개적으로 학생을 선발함으로써, 평준화정책 이 전의 소위 일류 고등학교를 일부 대체하는 기능을 하게 되었다.15) 또한 1995년 교육개혁위원회의 제안으로 자립형 사립고교가 도입 되었으며 현재 6개교가 시범운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