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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업성의 개념

제4절 의료소비자 피해구제 내실화

1. 전문직업성의 개념

전문직이란 의사나 변호사처럼 전문지식을 근거로 직업 활동을 수행하 는 집단을 말한다. 전문직은 흔히 높은 학력과 수입을 가지며, 업무 수행 에서 상급자나 외부의 통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자율성을 갖는다. 이런 특성들로 인하여 전문직은 대중이 선호하는 직업군으로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사회학적으로는 전문지식과 함께 지식을 사용하는데 적용 할 가치기준이 중요시된다. 오래 전에 사회학자 윌리암 구드(Goode, 1960)는 전문직의 특성으로 전문화되고 추상적인 지식 습득을 위한 장기 간의 교육훈련과 “서비스 제공 지향성”(an orientation toward pro-viding a service)의 두 요건을 적시한 바 있다. 전문직에 대한 일반인들 의 관심은 전문지식의 사용하는데 따른 사회경제적 위세나 보상에 관심 이 있는데 반하여 사회학적으로는 전문지식 사용에 따른 업무수행에서의 자율성 구사와 환자의 복리와 공익을 위하여 의학지식의 사용이라는 직 업정신 또는 직업가치에 관심을 갖는다.

전문직의 개념 또는 이론모형은 20세기 전반기, 특히 1930년대에서 1950년대 사이에 만들어졌다. 이 시기는 흔히 ‘의학의 황금기’(golden age of medicine)라고 불린다(McKinlay and Marceau, 2002;

Burnham, 1982). 당시 주요 질환이었던 감염병을 새로 개발된 항생제 를 이용하여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되면서 의학이 질병을 퇴치 또는 박멸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만들었고, 그에 따라 의사에 대한 사회

적 존경심은 극도로 높아졌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사회학자 파슨즈(Talcott Parsons, 1951)는 의사의 전문가로서의 역할과 환자의 병 역할(sick role)의 상보적 관계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였다. 즉, 의사 는 환자의 행동을 통제하고 환자의 쾌유를 위해 헌신해야 하고, 환자를 이러한 의사에게 의지하고 복종하도록 동기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 전근대 의료와 구분되는 근대의학의 내적 가치기준으로서 정서적 중 립(affective neutrality), 보편주의(universalism), 성취 지향성 (achievement), 관심의 특정화(specificity) 등의 행동유형을 제시하였 다. 즉, 의사는 환자와 정서적 교류를 하지 말고 초연하게 진료만을 해야 하고, 환자의 빈부귀천을 따지지 말고 공평해야 하며, 의사의 지위는 의 사로서의 성취 업적만으로 평가받아야 하고, 의사는 오로지 의학적 관심 만으로 직업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오로지 의학적 탐구 에만 관심을 갖고 직업 활동을 하고, 환자의 치료만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기 때문에 의사를 존경하고 그의 자율적 시술권한을 인정하는 것은 마땅하다는 것이 파슨즈의 생각이었다.

이렇게 의사라는 직업을 중심으로 의료전문직 개념이 구성되었기 때문 에 의사는 전문직의 이념형적 특징에 잘 부합된다. 의사가 되려면 수준 높고 체계적인 의학지식을 습득하기 위하여 다른 어느 직업보다 긴 시간 의 교육훈련이 필요한 점, 그 과정에서 집단정체성과 직업가치를 체계적 으로 습득하며 결과적으로 의사로서의 동일체감이 높은 점, 항시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며 환자진료가 다시 연구와 연결되어 의학지식 생산에 기 여하는 점, 직업자부심이 매우 강하며 과업수행에서 외부의 간섭을 배제 하고 자율성을 지키려 하는 점 등은 전문직업성의 이념형적 특성을 잘 보 여준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전문직의 형성은 근대사회에 들어와 이루어졌다. 전

근대 사회에도 의학이나 법학 등이 존재했지만 지식의 축적 정도나 사회 적 기여 및 영향력 측면에서 미미한 수준이었고 의사들도 높은 사회적 지 위를 갖기 어려웠다. 전근대 사회에서 의사 또는 치료자는 사회계층적 지 위에 따라 분화되어 존재했고, 하나로 통합된 직업집단도 아니었다. 치료 능력을 인정받은 상급의 의사들은 정치권력(국가)이나 경제 권력을 가진 지배집단의 후원 또는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에 상급의 한의사들이 국가 관료로 임용되거나 귀족계층의 진료를 담당 했던 사례가 있다. 이들은 당대 최고 수준의 의술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 문에 “전문가”라고 볼 수도 있지만 현대의 전문직과는 여러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우선 진료에 대한 법적인 권한, 즉 전문지식의 자율성을 확 보하지 못하였다. 질병치료의 성과나 실패에 대한 궁극적인 판단을 ‘고 객’이 하였기 때문에 왕이나 귀족을 치료하다 죽게 한 의사는 처벌을 받 을 수도 있었다. 즉 의료행위의 법적 근거나 시술자에 대한 법적 보호 장 치가 만들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전문지식을 갖고 있다고 해도 시술행 위에 대한 면책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근대사회에 들어와서 전문직이 형성되고 이들의 지위와 권한에 대한 법적 근거와 의료제도가 만들어진 이후에 의사는 환자의 기대나 요구 또는 환자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의학적 관점과 의학 지식에 의거해서만 질병을 판단하고 치료할 수 있게 되었고 치료행위에 대한 면책 특권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즉 권위구조 측면에서 볼 때 과거에는 유력한 고객에 대하 여 의사가 종속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근대사회에서는 환자가 의사에게 복종해야 하는 새로운 권위구조가 만들어졌다. 과거 사회에서는 경제력 이나 정치권력 또는 무력에 의한 사회적 지배만이 존재하였고 지식이 독 자성을 갖기는 어려웠다. 근대사회에서 전문직의 등장은 신분이나 재산 또는 사회적 지위와 같은 전통적인 권력 기반 이외에 지식이 새로운 권력

근거가 되었음을 의미한다(Freidson, 1970a).

그런데 전문직이 형성되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근대사회는 (직업선택의) 자유와 (의사가 될) 기회의 평등을 기본 원리로 하는 사회이 기 때문에 의사들에게만 면허제도를 도입하여 독점적 시술권한과 면책의 특권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Starr, 1982). 의사들은 한편으로는 의학적 원리를 달리하는 분파주의자나 의료사기꾼들(quackery)과 싸워 서 이들을 시장에서 몰아내야 했고, 다른 한편 의사 내부적으로 치료능력 의 부족을 개선하기 위하여 의학교육 제도를 혁신하고 의학지식의 수준 을 높여서 치료역량을 제고해야 했다. 이와 함께 이러한 지식이 사적 이 해관계의 충족보다는 공적 기여를 목적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규범적 또 는 이데올로기적 서약을 함으로써 독점적 면허와 같은 제도적 특권에 대 한 사회적 인정을 받게 된다. 즉 의학교육 혁신과 면허제도 도입 및 근대 의료제도 확립은 의사의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키고 또 높은 수준에서 안 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집단적 사회이동 또는 권력상 승은 이를 견제하는 장치, 즉 상쇄권력을 출현시킬 수 있다(Light, 1995). 정치적 집권자들이 선거제도를 통하여 권력행사의 정당성을 확보 할 필요가 있듯이 의사들도 자신들의 지식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사 회적 동의를 얻는 과정이 필요하였고 여기서 ‘서비스 정신’이나 ‘직업윤 리의 준수’를 서약하게 된다.

의료전문직의 등장은 의학지식의 전문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고, 전문 화가 진행될수록 의사와 환자(대중)간의 지식격차는 더 크게 벌어지게 된 다. 수요자인 대중은 의사가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품질에 대하여 제대 로 평가하고 자신에게 적합한 것을 선택하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의사가 높은 수준의 윤리규범이나 직업의식을 갖고 대중의 이익을 위하여 봉사 하지 않고 전문지식을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경우 의사에게 직업적 특권을 허용하는 제도에 대한 정당성 문제가 제기 될 수 있다. 따라서 의사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율성 확보와 대중의 이익에 봉사하는 사회적 책임(social accountability) 사이에는 일종의 견제와 균형의 관계가 성립된다. 의사의 업무수행에 있어서 자율성이 보 호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업무수행 자체가 대중의 이익을 실현하 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진 것이다.

기능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의학의 전문화와 의사의 권위 상승은 환자 를 잘 치료하여 사회에 복귀시켜 가정과 직장에서 원래의 역할을 잘 수행 하도록 함으로써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기능적 장치로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갈등론의 시각에서 보면 의사의 권위는 의료라는 희귀한 자원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여 집단의 이익을 관철하고 다른 집단을 복속시키 고 지배하기 위한 도구로 해석된다. Freidson(1970b)은 전문직업성의 특징을 통제와 지배로 요약한다. 의사는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업무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간호사나 의료기사 등 다 른 직업군의 직무에 대한 통제력도 행사하면서 병원 또는 의료시스템 전 반에 대한 지배적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이를 ‘전문적 지배’(pro-fessional dominance)라고 부른다.

정치적 또는 권력구조적 측면에서 전문직업성을 분석하자면 위로는 의 사의 특권을 보호해주는 국가와의 우호적 관계가 성립되고, 아래로는 의 사-환자관계로 요약되는 환자의 절대복종 현상이 존재한다. 좌우로는 의

정치적 또는 권력구조적 측면에서 전문직업성을 분석하자면 위로는 의 사의 특권을 보호해주는 국가와의 우호적 관계가 성립되고, 아래로는 의 사-환자관계로 요약되는 환자의 절대복종 현상이 존재한다. 좌우로는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