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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론적 배경: 보건의료서비스와 소비자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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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건의료서비스 시장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 또는 가족에 게 발현한 건강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법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갖추고 있 지 못한 의료소비자는 공급자인 전문가가 제공하는 정보에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특히 ‘질병’과 같이 고통과 급박함을 동반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더욱 제한한다.

자신이 받게 될 의료서비스가 양질의 것인지, 얼마나 효과적인지, 반드 시 필요한 것인지, 지불해야 할 가격은 적정한 것인지에 대한 소비자의 무지는 반대로 전문가 결정의 절대성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이는 대리인 (agent)으로서 의료전문직의 위상 상승을 가져온다. 의료서비스에서 소 위 ‘대리인 이론’이란 소비자는 의사-환자 관계에 있어서 전문적 지식과 정보를 보유한 의사에게 결정 권한을 위임하고, 대리인은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 의사결정을 내림으로써 궁극적으로 소비자 편익을 극대화시킨다 는 논리이다.

대리인 이론이 취지(소비자 편익 극대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선의의 대리인’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의료서비스 제공자인 의료전문직은 자신 의 이익이 아니라 환자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Mooney&Ryan, 1993). 그러나 현실에서는 의료전문가가 유용한 대리 인(useful agency)로 기능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정보가 집중되어 있는 대리인이 그 역할에 충실하지 않을 때, 보건의료서비스 전달체계에 서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보 비대칭성과 대리인 관계의 부 작용이 결합된 대표적인 사례가 공급자 유인수요(provider induced demand)라 할 수 있다.

보건의료 부문에서 공급자 유인수요는 의료전문직이 자신의 이익을 위 해 환자의 선호를 변경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서비스 빈도와 가 격이 의료전문직의 수입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행위별수가제도

(fee for service)가 지불보상체계로 운영되는 경우 과잉진료를 둘러싼 논란이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그 원인으로 흔히 지적되는 것이 낮은 수가 와 아울러 의료전문직의 유인수요이다. 의료전문직에 의해 발생하는 유 인수요에 대해서는 그 실재성 여부에서부터 발생 기전, 지불보상체계와 공급자 인력 추계 등 다양한 연구 성과가 축적되어 왔다. 그러나 대체적 으로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보건의료 부문에서 공급자에 의 한 유인수요 존재는 지지되는 경향으로 파악된다(정형선 외, 2011)

의료서비스 시장에서의 정보비대칭을 해소하고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 택을 돕기 위해서 성실한 대리인이라는 직업윤리가 강조되기도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실용적인 정보 생산‧제공의 요구 도가 높아진다. 이는 보건의료 영역에서 소비자들에게 건강과 삶의질 개 선을 위해 자신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서비스가 무엇이며, 어디에서 그 서비스를 얻을 수 있는지, 서비스의 질적 수준과 가격 등은 어떠한지 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즉, 세계보건기구가 강조하고 있는 바 (WHO, 2012), 수용가능하고, 접근가능하며, 비용부담이 가능하고 활용 가능한(acceptable, accessible, affordable and available) 의료서비 스를 누릴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정보제공 필요성이 높아졌다.

2. 불확실성

의료서비스와 관련한 불확실성은 일반적으로 의료수요에서의 불확실 성과 치료효과에 관한 불확실성으로 구분된다(정영호 외, 2004). SARS, 신종플루 등 최근의 전염병 창궐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떤 종류의 질 병이 어느 시점에서,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발생할 것인지를 예측하 는 것은 매우 어렵다. 질병 발생의 불확실성은 의료수요의 불확실성과 직

결되는데, 특히 실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는 유효수요(effective demand)를 측정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문제이다. 여기에 무형성을 특징 으로 하는 의료서비스 재화의 특징과 개별 수요자(환자)에게 제공되는 서 비스의 차별성, 의료광고의 제한 등도 의료수요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 는 요인으로 작용한다(Arrow, 1963: 안상윤, 2011).

치료효과에 대한 모호성 역시 중요한 주제인데, 특히 치료효과의 불확 실성은 의료전문직의 자율성과 깊은 관련성을 가진다. 의료서비스에 내 재한 불확실성과 모호성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가 서비스 제공과정을 표 준화한 근거중심의학(evidence based medicine)의 추진과 각 질병사 례별로 제정되는 임상진료지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임상 사 례에서 표준을 적용할 것인지의 결정은 의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 는 의사들에게 임상적 자율성과 자율적인 규제를 부여하는 근거로 활용 된다(Armstrong, 2002; 김광점, 2009). 게다가 생명현상을 대상으로 삼 는 의료서비스의 특성상 적정한 치료방식은 개인별로 상이할 수 있으며, 이는 치료효과의 개별성 및 특수성의 원인으로 작용한다3).

수요의 불확실성과 치료효과의 불확실성은 의료전문직에 자율성 (autonomy)을 부여하는 중요한 근거이며, 이 자율성의 수준은 보건의료 영역에서의 소비자 위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전문직 종의 직업적 자율성은 불확실성과 기술성의 비율(indeterminacy tech-nicality ratio)에 따라 결정된다고 알려져 있다(Traynor, 2009). 즉, 어 떤 지식이 객관화‧명문화되고, 그 결과가 외부로부터 평가되는 지식(기술 성)이 아니라 장기간의 전문적 교육과 경험에서 우러나는 직관적 지식의

3) 치료효과의 모호성과 개인별 특수성은 역설적으로 최근 ‘개인맞춤형 의학(personalized medicine)’이라는 새로운 의료서비스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개인맞춤형 의학은 기본적 으로 개인별로 특화된 유전체 정보를 활용, 질병과 노화의 원인을 찾아내고 이를 예방‧치 료하는 서비스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이는 치료효과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계기로 작용 할 수 있다(삼성경제연구소, 2011).

효용성이 높을수록 자율성은 비례하여 높아지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의 료경영의 주체나 소비자의 권한이 증가하면서 전문직의 자율성은 상대적 으로 침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Feinglass&Salmon, 1990; Salmon et al, 1990).

최근 들어 의료서비스의 특징이었던 불확실성이 때론 줄어들고, 때론 증가하는 현상이 혼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전문직의 위상을 낮추 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음은 흥미롭다. 직관이나 비체계적인 임상경험이 아니라 임상연구에서 나온 근거를 강조하는 근거중심의학(evidence based medicine)은 과학성, 객관성, 보편성, 재현성이라는 원칙 하에 의사의 전권적인 처분 여지를 축소시킨다(김남순 외, 2012; 조병희, 2006). 또한 결정과정에 불확실성이 한층 증가한 문제들, 예를 들어 낙태 나 배아줄기세포 연구, 연명 치료 등 윤리적‧사회적 문제들이 의료 영역에 서 등장하면서 철학, 윤리학, 법학, 사회학, 신학 등 다양한 영역이 의료 영역에 참여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권복규, 2012).

3. 공급 독점

일반적인 재화나 서비스의 공급과 달리 의료서비스의 생산과 유통은 법률(의료법)에 의하여 규정된 일정한 자격과 면허를 보유한 사람에게만 허용된다4). 이와 같은 면허제도의 도입 취지는 인간의 생명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서비스의 특징을 고려할 때, 일정 기간 이상의 교육기간과 실무 능력을 갖춘 전문가를 통해 서비스를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무자격

4) 우리나라 현행 의료법(법률 제10387호) 제2조는 보건복지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사‧치 과의사‧한의사‧조산사‧간호사를 의료인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제27조에서는 의료인이 아니 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함으로써 ‘무면허 의료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설령 의료인이라 할지라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 역시 무면허 의료행위로서 허용되 지 않는다.

자에 의한 소비자 피해를 차단하고 건강 보호‧증진이라는 편익을 극대화 할 것이라는 점에 있다(윤강재‧김동수, 2013). 또한 교육‧실습‧시험 등의 과정을 거친 사람에게만 면허를 발급하고 배타적인 업무영역을 보장하는 것은 의료서비스의 품질을 확보하기 위한 기제이기도 하다.

반대로 이와 같은 진입장벽이 의료서비스산업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의료기관 설립 주체를 제한하고 의료인의 독점적 공급 을 보장함으로써 의료서비스의 총량이 증가하고,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비 보험 의료서비스의 가격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양질의 의료서 비스가 적정한 가격에 제공됨으로써 소비자지향성을 강화하고, 의료서비스 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의료서비스 시장에도 ‘경쟁’을 보다 적극적으 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 방향이 영리의료법 인을 허용하는 등 의료서비스 시장에서의 공급자 독점을 완화하고 진입장 벽을 낮추는 것이다(삼성경제연구소, 2007; 윤희숙‧고영선, 2009).

의료서비스 분야에서 공급 독점을 해소하는 것이 소비자지향성을 높이 는데 기여한다는 주장은 흥미롭다. 이와 같은 논리는 경제위기를 거치면 서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대두된 ‘복지국가 개편’이 보건의료 분야에도 적용된 것이다. 국가 의료체계의 상징과도 같았던 영국의 NHS에서 엄격 한 심사에 근거한 예산 배정, 자금운용한도 설정, 실적지표 도입, 입찰제

의료서비스 분야에서 공급 독점을 해소하는 것이 소비자지향성을 높이 는데 기여한다는 주장은 흥미롭다. 이와 같은 논리는 경제위기를 거치면 서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대두된 ‘복지국가 개편’이 보건의료 분야에도 적용된 것이다. 국가 의료체계의 상징과도 같았던 영국의 NHS에서 엄격 한 심사에 근거한 예산 배정, 자금운용한도 설정, 실적지표 도입, 입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