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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권력의 소재

문서에서 재정법제 (페이지 92-95)

미국 예산법제를 가장 잘 특징지우는 본질적인 질문은 행정부와 의 회 중 누가 재정권한(“power of the purse”)을 가지는가, 즉 헌법은 대 통령과 의회 중 어디에 재정권한을 부여하고 있는가이다. 당연히 그 대답은 연방헌법규정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이에 대하여 연방헌법 제 8조 제1항은 “의회는 조세를 부과 징수할 권한을 가진다”고 규정하 고, 제9조는 “어떠한 금전도 법률에 의한 세출승인에 의하지 않는 이 상 재무성으로부터 인출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경 우 재정권한은 행정부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의회에 있다고 해석된 다.126) 이 점은 우리 헌법과 차이를 보이는 중요한 대목이다.127)

126) James V. Saturno, The Congressional Budget Process: A Brief Overview, CRS Report for Congress, RS20095, p. 1.

127) 로널드 레이건이 1986년 11월 8일 한 라디오 연설에서 미합중국 국민에게 한 연설에서도 이 점이 잘 나타나고 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미국의 선조들 은 재정권력을 가장 중요한 입법부의 책임으로 인식하였습니다. 만약 이 권력이 남 용된다면 이는 우리 조국에게 매우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우리의 재산권 에 대한 위협은 물론 국가의 막대한 재정적자를 가져올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의 경제안정과 조국의 안보를 보장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왜 우리 가 예산절차를 개혁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http://www.

rules.house.gov/archives/bud_procres.htm 참조.

미국의 경우는 재정권한을 의회에 부여하고, 의회에서 행해지는 여 러 재정관련 의회행위들의 절차가 중요하게 된다. 연방헌법에는 이에 관한 상세한 절차규정을 두고 있지 않지만 1921년 예산회계법을 필두 로 한 여러 개별법률들에서 이러한 절차들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행정부에서 예산을 편성하여 이른바 ‘대통령예 산’이라는 이름으로 의회에 제출하지만,128) 이는 법률의 규정에 의하 여 의회에서의 예산싸이클이 시작하기 위한 단초가 되기 위한 선행작 업에 불과하며, 연방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한이라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대통령예산이 의회에 제출되면 의회는 이를 바탕으로 다시 새롭게 의회 스스로의 예산안인 예산결의안을 상하원 공동결의 안 형식으로 다시 만드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예산안은 그대로 의회의 예산결의안으로 옷만 바꿔입는 것이 아니라, 이보다 축소된 범위내에서 예산결의안이 되어 채택되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129)

반면, 이와 비교할 때 독일의 경우는 예산편성권은 내각수상을 정점 으로 한 행정부에 그 주도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의회는 이를 제출받 아 심의 의결하는 것으로 재정권한을 분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 국가이면서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한 정체 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 헌법은 독일의 경우와 유사하게 예산의 편성 권을 명시적으로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행정부에 부여하고 있고(헌법 제54조 제2항), 국회는 이를 제출받아 심의 확정하는 권한을 갖도록 규정하고 있다(제1항). 결국 재정권한은 미국의 경우처럼 의회에만 전 속하는 것이 아니라, 예산의 편성권과 심의 의결권을 분리하여 전자 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행정부에, 후자는 국회에 부여했다고 해석 된다. 따라서 이러한 재정헌법규정들을 구체화하는 하위 법률들은 이

128) 이 점에서는 우리나라의 경우와 동일하다.

129) James V. Saturno, The Congressional Budget Process: A Brief Overview, CRS Report for Congress, RS20095, p. 2; Bill Heniff Jr., Overview of the Executive Budget Process, CRS Report for Congress, RS20175, pp. 1.

러한 헌법적 권한배분의 위계질서를 준수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 우 예산편성의 주도권은 행정부에 있으며, 의회는 편성된 예산을 심 의 의결하는 권한을 가진다. 따라서 의회는 심의 의결을 정확히 하 고 분석 평가하기 위해 독자적인 조직과 인력을 운용할 수는 있지 만, 예산편성단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예산편성의 주도권은 행정부에 있기 때문에 예산편성의 단계에까지 국회가 여하한 수단으 로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것은 헌법이 정한 재정권한의 배분범위를 벗어나는 것이 됨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반면 행정부는 예산주관부 처인 기획예산처를 중심으로 정확한 예측과 분석을 통해 합리적이고 적정한 예산이 편성될 수 있도록 효율적이고 정확한 분석기법을 마련 하고 적용하여야 하며, 예산편성에서의 주도권을 합리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반영할 의무가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예산편성권을 행정부에, 심의 확정권을 의회에 부 여하는 경우에는 과연 행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의회가 어느 범위내 에서 수정을 가할 수 있는가와 관련하여 양 국가권력간 재정권한의 한계획정의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헌법은 국회는 정부 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헌법 제57조), 주로 지출면에서 정 부의 예산안의 금액을 국회가 삭감할 수는 없지만 증액할 수 없도록 선을 긋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의 경우는 재정권한을 행정부나 의회 어느 한 국가기 관에 전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산편성권과 예산심의 확정권을 각각 행정부와 국회에 분장시킴으로써 상호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의하여 국가예산을 관리하고 집행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헌법의 취지라고 해 석된다. 이러한 점에서 재정권한을 원칙적으로 의회에 부여하고 있는 미국의 법제와는 사뭇 다른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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