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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기에 갖는 자유

문서에서 우수 (페이지 91-95)

정지수 (사학과)

신을 믿지 않고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회부 된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선고받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러분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해준다든가 눈물을 흘리고 용서를 빌었다면 무죄 판결을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위험에 직면하더라도, 흔히 볼 수 있는 비열한 행동을 해서 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방식에 따라 말함으로써 생명을 보존하는 것보다는 오히 려 나의 방식대로 말하고 죽는 것이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1) 이후 그의 친구 크리톤이 감옥 에 찾아와 탈옥할 것을 설득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로 인해 법의 결정이 힘을 발휘하지 못 하고 짓밟혀서 나라의 존속이 불안해지는 것이야말로,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큰 해를 끼치며 살아가 는 것이네.2) 만일 옳지 못한 행동이라면, 내가 여기에 남아 있어서 죽임을 당하거나 그 외의 재난이 닥칠 것이 확실하더라도 이를 고려해서는 안 되네.”3)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이 토록 당당히 자신의 신념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그가 큰 깨달음을 얻은 위대한 인물이어서 일 수도 있지만, 가장 근본적으로는 그가 자유를 지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광물과 식물, 동물들에게는 자연이 프로그래밍한 대로 행동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없다. 따라서 약하게 태어난 새끼를 유기하는 어미 동물을 비난한다거나, 침입자로부터 목숨 바쳐 서식지를 보호하는 병정개미를 칭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들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틀에서 벗어난 다른 태도를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인간도 여러 가지 욕구나 본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에 의해 프로그래밍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문화적 프로그래밍의 영향 속에 살고 있다. 우리의 사고는 그것을 표현해주는 언어에 의해 규정되며 특정한 전통 속에서 교육받으면서 특정한 태도와 습관, 지식을 배운다.4) 그 결과 우리는 상당히 예측 가능한 존재로 살 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경우에는 다른 생물들과 달리 단언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대부분

1)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황문수 역, 문예출판사, 2004, 50~51쪽.

2) 플라톤, 앞의 책, 72쪽.

3) 플라톤, 앞의 책, 69쪽.

4) 페르난도 사바테르,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윤리학, 안성찬 역, 웅진지식하우스, 2005, 26쪽.

의 다른 생물들처럼 생존이 최우선 순위인 사람도 있지만, 소크라테스처럼 그 어떤 것보다도 자신의 가치를 관철하는 것이 중요한 사람도 있다. 평생을 한 공동체에서 살아왔어도 그곳에서 배우지 않은 것을 상상하고, 이루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우리가 아무리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프로그램에 예정되어 있지 않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나는 모든 인간이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자유는 ‘선택의 순간에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그 속에서 ‘주체적인 결단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타고난 성별, 외모, 국가, 부모, 범죄나 사고에 휘말리는 일 등을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순 없지만 이러한 일에 대응하여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 자유롭다. 또한 무엇을 시도하는 자유는 그것을 확실히 이루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5) 가능성 안에서의 선택을 의미하는 ‘자유’와 원하는 모 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전지전능’은 구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의지와 선택에 달린 일들이 있지 만 모든 일이 그럴 순 없다. 세상에는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없는 다른 많은 이들의 의지와 그 외의 필연적인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천재지변에서부터 독재자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자유 를 제한하는 많은 힘이 존재한다. 홍수에 휩쓸린 사람을 구하거나 실탄을 쏘는 군인들에 맞서 시위 에 참여하는 것과 같이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일에 자유로운 결단을 내리기 매우 어려울 수는 있 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차라리 자유가 없다고도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 실에 꽤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유롭지 못한 덕분에, 즉 선택의 여지가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일어난 일에 책임지지 않을 수 있으며 마음도 비교적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선택한 것이다. 홍수에 휩쓸린 사람을 바라만 보는 것과 자신을 짓누르는 폭군에게 순종할 것을 선택한 것이다. 언론사나 정치가는 우리를 교묘하게 속여 조종하고, 뭘 사고 싶어도 돈이 없고, 코로나 때문에 함부로 나가지도 못하는 와중에 어디에 자유가 있느냐고 불평할 수도 있지만, 이는 자유를 제한하는 요소들일 뿐 우리의 자유는 선택의 매 순간 빛나고 있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역사 속 위대한 인물들처럼 극적인 것은 아니지만, 나도 나름 상황의 압박 과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택을 내린 경험이 있다. 나의 기준에서는 윤리적이지 않았던 친구 무 리에서 스스로 나오길 선택하였고 그 이후 고등학교에서의 몇 달간이 혼자였던 적이 있다. 선생님, 친구,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수를 결정하여 독학 재수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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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아르바이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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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월간 병행 한 일도 있다. 그 누구도 나와 정확히 똑같은 상황일 수는 없기에 다른 사례를 참고하거나 위로를 받는 것도 어려웠다. 혼자였고 그래서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으며 끊임없이 나를 되돌아보고 나의 가치관과 목표, 현재와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한 시간 속에서 내린 선택들이었기에 나 는 나에게 가장 적합하고 옳은 결정을 내렸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 임을 지기 위해 노력하였다. 조금 고단했지만, 내가 나를 온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에서부터 자유 로움을 느꼈다. 그 모든 고민과 결심, 확신과 노력의 순간들 속에서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

5) 페르난도 사바테르, 앞의 책,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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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명령, 관습,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나 직장 상사 같은 사람들 의 ‘명령’이기 때문에, 내 주위의 모두가 일상적으로 그렇게 하는 ‘관습’이니까, 순간적으로 그렇게 하고 싶은 ‘기분’이 찾아들어서.6) 학교에 갈 준비를 하거나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만으로 충분히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진지한 일, 사람의 운명이 달린 중차대한 일은 누군가의 명령, 사회의 관습, 변덕스러운 기분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해내야만 한다. 유대인 학살로 전범재판 에 서게 된 아이히만이 자신은 단지 ‘명령’을 수행하는 부속품이었으므로 죄가 없다고 변명하는 것 이 과연 타당할까? 어떤 지역에서 인종차별이 만연하여 그것이 ‘관습’으로 굳어졌다면, 그 지역 출신 자가 정치인이 되어 인종차별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자연스러운 일일까? 평소 쉽게 분노하는 사람이 충동적으로 타인에게 큰 상해를 입혔다면 이는 이해나 공감을 받을만한 일인 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주변 상황이 어떻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자 신을 성찰하고 사건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능력, 즉 자유는 회피할 수도, 양도할 수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어마어마한 능력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따라서 우리는 중요 한 선택의 기로를 맞닥뜨렸을 때 올바른 결정을 내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만을 지녀야 한다.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어떤 것이 유용하고 해로운지를 알아야만 한다. 여기서 ‘해(害)’는 단순히 물리, 물질적인 손해만이 아니라 나의 정신과 인간으로서의 성장에 악영향을 끼치는 모든 것 을 포함한다. 아이히만은 자신과 그가 속한 집단에 대해 성찰하지 않고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할 것을 선택하여 수십만의 목숨을 빼앗고 스스로의 정신을 보잘것없고 차가운 기계 부품으로 전락시 켜버렸다. 인종차별주의자는-만약 그가 백인이라면-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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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세상7)에 자신을 가두고 편협한 삶을 살면서 나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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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사람들과 상처와 적의를 주고받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않는 사람 또한 흘러가는 대로 자신을 내던져 버렸으니, 이내 그 감정이 사라지면 지독한 후회와 공허 속에 남 겨질 것이며 그 주위 사람들은 끊임없는 불안에 휩싸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무엇보다도 나와 나 의 소중한 존재들을 위해서 옳은 선택을 내려야 한다.

마라톤의 출발선에 서는 것과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은 다른 일인 것처럼 시도하는 자유-마라톤을 달려야겠어!-를 뒷받침해줄 능력-체력, 지구력, 인내심 등-이 있다면 나의 자유로부터 얻어낼 수 있 는 것-완주-은 훨씬 많아질 것이다. 따라서 나는 주어진 자유를 최대로 즐기기 위해서 지식을 습득하 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더욱 잘 이해하여 최선의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안목을 기르고 그 결단을 완성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과 내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결단을 찾지 못하거나 능력 이 되지 않아 좌절하는 일도 많을 것이다. 만고불변한 진리의 탐구나 절대적인 도덕법칙의 유무처럼

6) 페르난도 사바테르, 앞의 책, 43쪽.

7) 전 세계인구 중 백인이 차지하는 추정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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