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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와 보조 출연자들의 재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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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줄기에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에피소드는 이다음 회차에 인과관계로 가볍게 연결 짓거나 주요

11) 임소, 양종훈, 「상징수렴이론에 따른 한・중 “몰입식” 플롯 리얼리티 쇼의 영상 특징 연구 - <크라임씬>과 <명성대 정탐(明星大偵探)>을 중심으로」, 연기예술연구 제21권, 2021, p. 245~267. 예능의 플롯화는 국제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 발전에서 뚜렷한 추세이며, 리얼리티 쇼의 발전 과정에서 다큐멘터리 촬영 방식에서 게임화 조작을 통한 점진적인 플롯 요소의 추가 또는 리얼리티 쇼에 “가벼운 플롯”, 나아가 현재에는 “강한 플롯” 모델의 추세 역시 등장하게 된 점을 바탕으로 해 “몰입식” 플롯 리얼리티 쇼가 시청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유형의 하나가 되었고 이는 프로그램의 플롯과 감정적 공감 등이 초래하는 강력한 몰입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영화 같은 예능, 대탈출 (성이지) 59

소재, 보조 캐릭터들의 이름을 다시 활용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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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부암동 저택을 무단 침입했던 사건이 이후 경찰에 연행된 출연진들이 다음 회차 무간 교도소로 들어가게 되는 원인이 된 다. 더불어 이전 회차에 나왔던 익숙한 용어와 보조 출연자들의 재등장은 시청자들에게 반가움을 준 다. 태양여고 편에서 나온 수면제 ‘졸리G’가 이후 빵공장 편에서도 다시 한번 등장한다. <대탈출>의 비밀정보단체 SSA는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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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미래대학교,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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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빵공장 편에 나와 사건의 흐름을 이어간다. 보 조 출연자 중 태양여고의 악역 ‘계수상’이 조마테오 정신병원의 환자로서, 무간 교도소의 소장 ‘구경 만’과 그의 쌍둥이가 좀비 공장에서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어 판매하는 조직 ‘사자회’의 ‘구경도’로 나오는 연출을 통해 독립적인 에피소드를 손쉽게 대탈출의 세계관으로 포함할 뿐만 아니라 시청자 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주며 예능적 요소까지 놓치지 않았다.

Ⅲ . 결론

지금까지 <대탈출>의 연출방식을 분석하여 이 프로그램의 인기요인을 분석했다. 초대형 세트장, 고퀄리티 분장은 시청자들은 시각적으로 사로잡고 보조 출연자들의 높은 연기력은 극에 사실성과 몰입도를 높였다. 거기다 출연자들의 프로그램을 대하는 진정성 있는 태도는 초기 부정적 반응을 보 였던 시청자들을 설득하고 출연자마다 개별적인 특징을 갖추며 프로그램의 질을 올리고 대중들의 공감을 얻었다. 치밀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확장되는 서사 구조를 통해 형성된 세계관은 마치 영화 가 끝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며 계속해서 시청이 이어지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이야기 속 아직 풀리지 않은 복선들은 올해 하반기에 방영예정인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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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정리될 것으로 예측되어 시청자 들이 지속적인 관심과 함께 프로그램의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참고문헌

강월정, 「한국 예능 프로그램 '대탈출' 속의 영화적 요소 분석」, 건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20.

김다운, 「[현장] ‘대탈출’ 정종연 PD “tvN 예능 중 제작비 제일 비싸, 상상 초월”」, 서울경제, 2018.06.28.

https://www.sedaily.com/NewsView/1S0ZFWNY1E, 접속일, 2021.05.16.

설가녕, 양종훈, 「한・중 방송 리얼리티 쇼의 게임화 비교 연구 - 한국 T.V <대탈출>과 중국 T.V <밀실 대탈 출>을 중심으로」, 연기예술연구 제20권, 2020, p. 171~197.

유지혜, 「‘부산행’ ‘킹덤’ 접수했던 좀비들 다시 모였다」, 동아닷컴, 2019.05.21. https://www.donga.com/news/ar ticle/all/20190520/95614260/4, 접속일, 2021.05.15.

임소, 양종훈, 「상징수렴이론에 따른 한・중 “몰입식” 플롯 리얼리티 쇼의 영상 특징 연구 - <크라임씬>과

<명성대정탐(明星大偵探)>을 중심으로」, 연기예술연구 제21권, 2021, p. 245~267.

콜린 엘러드,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문희경 역, 더퀘스트, 2016.

홍혜민, 「[직격인터뷰] 정종연 PD “‘대탈출3’, 모두 리얼…힌트・대본 절대 ”」, 한국일보, 2020.04.28.

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2004281423313119, 접속일,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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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미상> : 자신을 알 때 이뤄낼 수 있는 것

손준희 (수학교육과)

나에게 예술은 참 어렵다. 교양 없는 사람이라고 비춰질 수도 있겠으나, 배경 지식이 없다면 그 작품이 뜻하는 바를 잘 모르기도 하고(대체로 신기하다는 감상을 많이 한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듯 하 나의 예술 작품에도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해석을 보지 않으면 나 자신이 이 작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떠올릴 수 없기도 하다. 사실 내게 예술은 어려운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게 한 것은 중, 고등학교 때 배운 문학의 영향이 가장 강할 듯 하다. 학생 시절 에는 문학 작품에서 단 한가지의 해석만이 정답이 된다. 내가 생각한 그 작품의 뜻과 출제자가 생각 하는 뜻이 다르면 틀린 해석이 되는 셈이다.

<작가미상>의 주인공인 쿠르트도 영화 내에서 전반적으로 비슷한 혼란을 겪는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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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세계대전 직후가 배경이 된 이 작품의 맨 처음 장면에서 쿠르트는 이모와 미술전으로 보이는 곳에서 등장하는데, 이 때 해설가로 보이는 사람은 어떤 작품은 옳고, 어떤 작품은 그릇된다는 주장을 펼친 다. 나치 독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함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사회의 이념이 충돌하면서 혼란을 겪는 모습을 보았다. 그가 동독에 살았을 때에는 사회주의리얼리즘을, 아내 엘리와 서독에 갔을 때는 추상표현주의를 각각 경험했으나 그는 슬럼프를 맞게 된다. 이때 페르텐 교수가 “자네는 누구이고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그에게 던지는데, 그의 한마디가 이 작품을 전반적으로 꿰뚫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교수가 “자신의 내면을 깨닫고 외부로부터 자유로워져야만 진정한 예술이 탄생한 다”는 말을 쿠르트에게 해주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자신을 알지 못한 채 진정한 자신의 예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꾸짖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가 동독과 서독을 이주하면서 예술 이념의 변화를 겪었기에 “자신의 그림”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운 모습을 겪어 진정한 자신의 그림을 그리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말은 쿠르트 뿐만 아니라 내게도 상당히 인상적으로 비추어졌다. 내가 예술 작품의 배경지 식이 없으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 무엇인지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내면에서 예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타인의 해석에 의존하다 보니 어려움, 혼란을 겪게 된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문득, 페르텐 교수의 말이 예술 한 분

야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관계나 진로 설정, 혹은 현재 배우고 있는 글 쓰기 등의 부분들도 나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제대로 행하지 못할 것들이다. 대학 글쓰기를 초반에 배울 때에도 글쓰기의 주체는 “나 자신”이며,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의 말이 글 속에 들어 있 어야 한다고 배웠었다. 페르텐 교수의,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영화에서 나온 한마디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크게 와닿는 부분이었다.

위에서 생각해보았던, 마치 “너 스스로를 알라”라고 말하는 듯한 페르텐 교수의 한마디와 이 작품 의 제목인 “작가미상”을 동시에 두고 생각해본다면 꽤나 인상깊다. 그는 예술품의 창조자인 쿠르트 에게 한 말이지만, 내가 중, 고등학교 때나 이후나 그랬듯,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많은 예술 감상자들이 배경지식이나 타인의 해석을 빗대어 자신의 해석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작가 미상. 즉 작가를 알 수 없다는 말은 이 예술 작품을 만든 작가가 어느 시대적 배경에 살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등의 배경 지식을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작가의 이 름을 안다고 해도 그 작가에 대한 것이 드러나 있지 않은 경우도 비슷할 것이다. 쿠르트는 마지막 장면의 인터뷰에서 작품에 어떤 정치적 의견을 담았냐는 질문에, 자신은 주장을 하지 않으며, 그림 을 그린다고 말했다. 즉 상술했던 바와 같이 특정 이념을 따르지 않고(혹은 따르는 것을 보이지 않고) 대상 에 관한 정보도 모두 배제된, 작가미상인 작품을 그려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이 말이 곧 자신의 작품에 또다른 자아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작가에 관한 것은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에게 보여지는 작품 단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 작품 자신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껏 타인의 의견이나 지식을 들어온,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글쓰기도, 읽기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알아야만 진정한 글을 쓸 수 있고, 나 자신을 알 아야만 자신의 기준에서 글을 읽고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가 드 러나지 않았거나 작가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글을 읽는다면 더더욱 주어진 것이 많지 않거나 없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어찌보면 단순히 한 명의 작가가 예술에 대해 혼돈을 겪고 이를 해결하는, 누군가에게는 진부한 흐름의 영화일 수 있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예술가가 살아가면서 겪었던 나름의 정체성의 혼란이 마 치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며 겪는 혼란과 같은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것이 무 엇인지,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 겪는 방황 말이다. 스스로에 대해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예술을 통해 잘 드러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의 제목인 작가미상으로 빗대어 생각을 해보자면,

(앞서 제시했던 생각과는 상당히 다르지만) 작가 미상의 상태인 자신이라는 작품에, 스스로를 알아감으로써 그 의미를 채워나가는 것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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