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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찌즈꾸리의 사회적 배경과 발전과정

일본에서 ‘마찌즈꾸리’라는 생활자 관점의 도시만들기가 발전해 온 배경에는 기존의 도시만들기 체제가 생활자 관점을 경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성한 점을 들 수 있다. 지자체도 생활자 관점의 도시만들기를 위해 행정혁신을 도모하여, 행정의 계획화, 종합화를 추진해 온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기존의 도시만들기 체제에 대한 반성

메이지 유신(1868년)으로 새로이 근대국가로 출발한 일본은 구미 열강을 뒤

쫓아 산업화와 군사력 강화에 매진하였다. 1919년에 최초로 제정된 도시계획법 도 바로 이러한 근대화‧산업화를 지원하기 위한 조치의 하나에 해당된다43). 1919 년의 도시계획법 체제는 일본이 제 2차 세계대전에 패한 후 다시 경제적 부흥을 일으키게 되는 1960년대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기존의 도시계획법 체제로는 도저히 대응할 수 없는 사회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동안 추진해 온 산업화와 도시개발이 공해 (公害) 문제와 보육시설 부족 등 시민 생활환경의 어려움을 초래하자, 국가 전체 가 총량적 경제성장을 이룩한다 할지라도 국민생활은 반드시 그에 비례하여 나 아지는 것이 아님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기존의 도시만들기 체제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스스로 공해로부터 생활환경을 지키고, 생활환경 관련시설 등의 확 충을 요구하는 주민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동안 당 사자 주민을 배제한 채 입안하여 결정되어온 법정도시계획도 문제시 되었다 44). 법정 도시계획은 재산권을 포함하여 주민들의 일상 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사업 착수 단계에나 가서야 비로소 그러한 도시계 획 결정이 사전에 있었음을 알게 되자, 도시계획에 반대하거나, 도시계획 입안과 정에 주민참가를 요구하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1968년 새로이 제정된 도시계획 법은 도시계획결정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위양함과 동시에 도시계획 입안 과정 에 주민참가 절차를 보완하는 조치를 하게 되었다. 또 그 연장선에서 1980년에는 도시계획제도에 지구계획제도가 새로 자리잡게 되고 지구계획의 수립절차를 규 정하면서 지자체 단위의 주민주도에 의한 도시만들기를 제도화하는 계기가 마련 되었다.

43) 메이지 유신 이후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해 온 일본은 밖으로는 청일전쟁(1894-1895), 러일전쟁 (1904-1905)을 통해 해외식민지와 이권을 취득하고, 내부로는 산업혁명으로 중공업을 일으켜 군수산 업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이에 따라 탄광도시, 항만도시, 군사도시가 새로 만들어지고 대도시로 인 구가 모여들게 되었다(石田賴房, 1986,日本近代都市計画の百年, 自治体研究社, 107-108.)

44) 예로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간선도로를 확보하고자 하는 도시계획 결정이 사전에 이루어졌으 면서도 주민들은 사업단계에서 비로소 알게 되면서 도시계획 반대 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 되기도 하였다(石田賴房, 1986:301-303),.

(2) 생활자 관점에 선 지자체 행정의 혁신

이러한 주민운동은 시민생활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사회적 요구로 볼 수 있다.

과거 농촌지역에서 공동체단위로 해결되던 부분들이 도시에서는 해결할 수 없게 되면서 주민들은 이를 지자체에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생활자치의 측면에서 지 자체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새로이 깨닫게 되었다. 주민들의 생활운동에 호응 하여 1970년대에는 혁신계열의 지자체 단체장이 대거 등장하여 지자체 혁신이 시작되었다45).

지자체 혁신은 지자체 단체장의 리더십과 함께 지자체 공무원 스스로 생활자 관점에서 지자체 행정을 다시 생각하는 운동의 ‘직원참가’ 운동을 불러 일으켰다.

주민참가와 직원참가를 양축으로 한 마찌즈꾸리 행정이 정착되면서 지자체는 지 금까지 국가 하청기관이라는 위치를 벗어나 생활자치를 실현하는 기구로 모습을 갱신하게 된다. 과거에는 국가→ 광역지자체→기초지자체의 하향적 사고가 지배 적이었으나, 생활자치를 전제로 역으로 기초지자체→광역지자체→국가의 행정 구조로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46).

지자체 행정이 생활자 관점에서 종합화되려면 국가 하청기관이 아니라 생활행 정의 최전선에서 시민생활의 종합성에 대응하는 기구로 바뀌어야 하고, 직원들 도 생활자로서의 감각을 가져야 한다. 직원들이 시민 생활자의 한 사람, 한 사람 으로 실제 현장에 나가 주민들과 접촉하며 행정과 주민간의 가교역할을 함과 동 시에 지자체 전체조직의 한 사람으로 행정에 참가하면서 부서별 업무위주의 장 벽을 극복하여 종합행정을 구현하게 된다.

지자체 행정을 개혁하여 선진 지자체로 만들어가는 데는 지자체 단체장의 리

45) 특히 공해추방과 커뮤니티 형성을 주창하면서 1967년 도쿄 도지사가 된 사회당 계열의 미노베(美濃 部) 지사는 ‘시빌미니멈 (civil minimum) 달성을 위한 3개년 연동계획’과 ‘광장과 푸른 하늘의 동경구 상’을 제시하면서 기존 가치관의 변화를 주도했다. 여기서 광장은 커뮤니티 형성을, 푸른 하늘은 시 빌미니멈을 의미한다.

46) 마쯔시다(松下圭一)는 생활자치 주권자인 시민이 세금으로 그들의 대행 기구인 지자체 행정기구를 구성하여 업무를 신탁하고, 이를 관장하는 대표기구로서 시장과 의회를 구성하게 되었음을 전제하 면서, 지금까지 지자체를 국가 주권의 하청기관으로 인식해 오던 데서 탈피하여 기초지자체 → 광역 지자체→ 국가 라는 밑으로부터의 통합과정을 통해 기초지자체, 광역지자체, 국가도 시민 신탁으로 성립된다고 주장한다(松下圭一a.1971.:316).

더십이 매우 중요하다. 예로서, 일본의 경우 마찌즈꾸리 행정의 선진 도시로는 도쿄도 세타가야구(東京都 世田合區)를 많이 거론하고 있다. 세타가야구가 이와 같이 선진 도시가 된 데는 1975년 자치구청장의 직선제 부활부터 시작하여 28년 간 구청장으로 재직해 온 오오바 (大場) 구청장의 리더십이 크게 작용하였다47). 마찌즈꾸리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조례, 요강 및 사업제도로 발전시키고 세타가 야구의 행정 기본계획을 뿌리내리게 한 결과에 힘입은 것이다48).

(3) 지자체 행정의 계획화․종합화 체제 구축

생활자 관점의 도시만들기를 추진하면서 지자체 행정을 계획화하고 체계화한 것에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일본의 경우 물리적 차원의 도시기본계획과는 별도로 지자체 행정의 각종 목표와 정책(policy) 및 시책(program)을 계획하여 종합하는 시정촌(市町村) 기본계획 수립이 제도화 되고49), 이를 예산과 연계시키는 실시계 획을 운용해 오고 있다. 시정촌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을 통해 지자체 직원들 은 각자의 직무적 관점이 아니라, 직원개인의 관점에서 부서별 토론이나 프로젝 트 팀 등으로 전체 계획에 참여하여 지자체 정책을 종합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 시정촌 기본계획은 ‘일련의 정책(bundles of policies)을 계획’하는 정책계획 (policy planning)으로 종래 부실하게 운용되어 온 청사진적 계획을 완전히 대체 하고, 각 부문별 정책도 계획화하는 길을 열어 계획 체계화에 기여하였다. 지자 체 행정계획의 시정촌 기본계획은 1990년대 들어와 우리나라의 도시기본계획과 같은 성격의 물리적 종합계획인 ‘도시계획에 관한 기본방침’과 양립하는 구조로 그 관계를 다시 정립하게 된다50).

47) 세타가야구 구청장인 오오바 게이지(大場啓二)는 ‘세타가야구가 전국에서 처음 시작한 시책이 지금 은 국가 제도로 되었거나, 여러 지자체에서 실시하게 되었다. 각 지자체의 시책도 나날이 진보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大場啓二, 1990: 264)

48) 박재길(朴載吉, 1992)은 세타가야구의 이러한 변화를 세타가야구 기본계획의 변천을 통해 고찰한 바 있다.

49) 1968년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근거하여 일본의 시정촌 기초지자체는 행정운용의 기본이 되는 기본구 상을 의무적으로 수립하게 되었다. 비전 또는 헌장 성격의 기본구상은 대략 10년 내외의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구현된다.

또 하나 지자체 행정이 초기에 계획화, 체계화되는 데는 외부 전문가들의 도움 이 매우 컸다. 그 당시까지 외부 위탁으로 밖에 수립해 본 적이 없는 지자체 직원 들에게 정책계획인 시정촌 기본계획을 스스로 수립하여 운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초기에 전문가들이 지자체 직원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 지자체 기구내부에 계획 수립 방법론을 축적하게 한 데 크게 기인한다51). 그 뒤 ‘지자체 행정내부에서도 도시계획능력을 체득하면서 정책적인 일은 스스로 하고 연구적인 일들은 외부에 맡기는 정책기구로 발전해 오고 있다. 도시계획 전문가의 도시계획 컨설턴트들 도 주민과 지방자치단체의 중계적 입장에 선 계획업무로 충실한 조사결과를 지 자체 행정에 전하고 또 자극하면서 행정을 도와주고 있다(石田賴房, 1986: 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