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사람들이 머물러 살고 있는 도시를 정비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되면서 도시 전체 차원의 물리적 목표를 하부 지역으로 배분하여 추진해 온 지금까지의 도시개발 방식은 스스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기성 시가지에 거주하는 주민들 의 의사나 사회적 특성을 무시한 채 도시 전체차원의 목표를 그대로 추진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도시 전체 차원의 목표나 정비 방식이 지역 차원의 목표 및 정비방식과 조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도시를 계획하여 보전할 곳은 보전하고 개 발할 곳은 개발하며, 정비할 곳은 정비해가는 전체 과정으로서의 도시만들기가 사회 구조 변화에 맞춰 새롭게 보완되어야 한다. 단순히 물리적 측면의 과제 변 화 외에도 1990년대 이후의 민주화, 세계화, 지방화로 달라진 사회 전체와 개인 의 관계, 도시 거버넌스(governance) 등 사회구조 변화와도 부합되는 것이어야 한다.
먼저 민주화에 따른 사회구조 변화이다. 우리 사회는 경제적 성과에 못지않게 1980년대 들어와 정치적으로도 의미있는 발전을 이룩해냈다. 그 동안 국가 차원 의 총량적 경제성장에 매진하면서 상대적으로 유보해 왔던 개인의 자유와 권리 에 대한 중요성이 1987년 6월의 시민항쟁 및 민주화 선언 이후 우리 사회에서도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전체 사회의 발전을 명분으로 개 인의 자유와 권리를 일방적, 권위적으로 침해하는 일은 받아들이기 힘든 시대가 되고 있다.
예로서 공익(公益)을 전제로 개인 소유 토지를 공원이나 도로 등의 공공시설 예정부지로 지정한 채 아무런 보상 없이 수 십년 동안 규제해 온 도시계획 규제 제도도 지난 1999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을 받아 시정된 바 있다25). 또 1971 년 이후 30년 이상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증‧개축 제한을 특별히 받아 온 개발제한구역내 토지 소유자의 권리도 2000년대 들어와 집단취락 해제 조치 등
25) 도시계획법 제 6조 위헌소원(전원재판부 1999.10.21 97헌바26)에 대한 판시를 받아들여, 도시계획시 설 부지로 지정된 지목이 ‘대’인 토지는 지정 후 10년이 경과하면 매수청구권을 부여받고, 20년이 경 과하면 자동적으로 해제되도록 하였다.
을 통해 구제받게 되었다. 그러는 한편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도시계획 및 도시개발이 주민이나 이해관계자와 갈등을 빚게 되는 사례는 훨씬 늘어나게 되었다. 민주화된 사회에서의 도시계획 및 도시개발의 기 능 및 역할도 새롭게 정립될 필요가 있다26).
또한 도시계획 및 도시개발은 1990년대 이후 급성장해 온 시민사회27)를 포함 하여 도시를 다스려가는 체제, 즉 도시 거버넌스(governance)와도 조화되지 않으 면 안된다. 1987년 6월의 시민항쟁 이후 시민사회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다양 한 시민단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와서는 지방의회 가 구성(1991년)되고, 민선 자치단체장이 등장하면서(1995년) 그 동안 정부 (government)의 비민주적이며, 권위주의적 행태에 대한 반발 심리가 상승 작용 을 하여 시민 참여에 대한 욕구가 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김석준외, 2002:252).
여기에 지역개발, 도시개발이 초래하는 자연환경 훼손을 반대하는 시민 단체 주 도의 환경 보전 운동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국, 유럽에서와 같 은 시민사회 형성의 조짐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여진다. 각종 시민단체가 정치 및 행정을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형성된 네티즌 여론이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되고 있다.
사회와 개인, 정부와 시민사회의 관계가 이와 같이 날로 새로워지고 있는 한편 으로, 정부와 시장의 관계도 정부 주도로 경제성장을 해 오던 과거와는 다른 것 이 되고 있다. 1997년 IMF 구제 금융을 겪으면서 자본시장을 적극 개방한 바 있 고, 2000년대 들어와 추진하고 있는 칠레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우 리나라 경제 활동 전반이 세계화 시대의 시장(市場) 메커니즘(mechanism)과 연 동하게 되어 있다.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도 시장 자율성을 높여가는 것이 이 시 대의 주요한 과제로 되고 있다.
26) 참조: 박재길 외, 2004, 도시계획결정과 사회적 정의, 국토연구원.
27) 시민사회론에 관해서는 참여사회연구소의 한국시민사회와 참여민주주의에서 발표된 김호기의 논문 참조(김호기, 한국시민사회의 현 단계와 참여민주주의의 과제): 김호기는 사회의 구성이 정치사회(국 가), 시민사회, 경제사회의 세 영역으로 이루어지고 시민사회는 사적 결사체들, 이데올로기 기구들의 활동, 일상생활 및 여론형성을 떠 맡고 있다고 하였다.
오랫동안 정부가 독점해 온 통치(統治)가 이제 국가, 지자체, 시장, 그리고 시 민사회가 같이 다스리는 거버넌스(governance)28) 로 전환되고 있다. 거버넌스 시 대로 되면서 도시 만들기도 과거와 같이 국가나 지자체를 정부만이 주도하는 것 이 될 수 없다.29) 시장(market)도 당연히 나름대로 역할을 할 것이지만, 정부나 시장(market)과 협력하여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며 이와 동시에 때로는 부딪히 고 조정하면서 시민들의 생활영역을 지키고 가꾸어가는 시민사회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28) 최병대는 거버넌스의 개념을 “함께 참여하여 함께 만들고 함께 해결하며 아울러 책임도 함께 지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김석준외, 2002:246)
29) 최병대(김석준외, 2002:253-254)는 도시 행정 분야에서 ‘1990년대 초의 지방자치제 실시 후, 그 동안 공무원 중심의 공급자 중심의 행정에서 시민과 함께 하는 또는 시민주도의 서비스 공급으로 전환’
되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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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 H ․ A ․ P ․ T ․ E ․ R ․ 3
선진국의 살고싶은 도시만들기 사례
제 3장을 통해서는 유럽, 미국, 일본의 선진국을 대상으로 생활자 관점의 도시만들기 의 동향을 파악하여 우리나라의 도시 만들기 정책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얻고자 한다.
각 국별 구체적 사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추진해가기로 하고, 본 연구에서는 미국 및 유럽의 대표적 도시사례 몇 개를 개략적으로 파악하면서, 일본에 대해서는 관련 자료를 통하여 배경과 추진구조를 보다 깊이있게 검토하고자 한다.
1. 선진국 사례의 연구방향
우리보다 먼저 산업화, 도시화 및 지방분권 등의 사회구조적 변화를 경험한 선 진국을 대상으로 생활자 관점의 도시만들기가 어떠한 배경에서 제기되어 어떻게 추진되어 왔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볼 때 지역의 사회자 본을 중시하는 생활자 관점의 도시만들기는 기존의 도시 만들기를 보완해가야 할 새로운 영역에 해당한다. 그러나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어떠 한 방향으로 어떻게 가야할지 막연하다. 나아갈 방향에 대해 충분히 납득하여 사 회적 합의를 얻을 수 있다면 그 만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방향이 설정되면 다음으로는 현재 상황을 토대로 실천 전략을 설정하고 추진할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 선진국의 경험을 참고하려는 것은 살고싶은 도시만들기의 개념
정립에 필요할 뿐만 아니라 도시만들기의 정책방향을 설정하는데 시사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국의 실태 및 경험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연구 노력이 필요하다. 본 연구에서는 앞으로의 정책방향을 설정하는데 참고할 목적 으로 선진국 사례를 개괄적으로 파악하는 데 그치기로 한다. 특히 유럽 및 미국 의 경우 자료 구득이 용이하지 않음을 고려하여 각국에서 일반적으로 좋은 도시 로 평가되고, 자료 구득이 그나마 용이한 도시를 선정하여 현재 동향을 파악하는 것으로 한다. 따라서 사회적 배경이나 추진 구조까지 깊이있게 다루지 못하고 도 시거버넌스를 배경으로 개략적 상황을 파악하는 것으로 한다. 다음으로 일본의 경우에는 생활자 관점의 도시만들기로 볼 수 있는 마찌즈꾸리(まちづくり)의 개 념과 마찌즈꾸리의 사회적 배경 및 발전과정을 파악한 후 마찌즈꾸리 추진 유형 별 도시 사례와 중앙정부의 정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유럽이나 미국과 비교하여 조금 더 세부적이고 입체적으로 고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