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근대 도시계획을 지배해 온 도시 패러다임으로는 크게 ‘전원도 시’(garden city) 패러다임과 ‘녹지 속 고층도시’(skysrapers in the park) 패러다 임의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먼저 ‘전원도시’(garden city) 패러다임은 1900년을 전후하여 영국의 에베네즈 하워드(Ebenezer Howard)가 주창한 전원도시에서 비롯된다. 전원도시는 도시와 농촌의 장점을 결합한 저밀도 정주지역으로 구상되어 ‘농촌이 붕괴되면서 대도 시로 유입된 인구를 이제 다시 전원도시를 건설하여 분산시킴으로써 대도시 문 제를 해결하고, 도시와 농촌을 같이 살릴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것’ 이었다(이겸 환,1993:34). 이러한 전원도시 패러다임은 미국으로 건너가 교외 주택지 건설에 붐을 일으켰고, 그 영향은 멀리 일본에까지 미치면서 20세기 도시계획을 지배하 는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녹지속 고층도시’(skysrapers within a park) 패러다임은 1920년대 들어 와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건축가 르 꼬르뷔제(Le Corbusier)가 구상한 “300만을 위한 현대도시”(1922)11)에서 비롯된 것으로 근대건축가국제회의(CIAM)(1928),
11) 「인구 300만인의 현대도시」구상을 통해 도심에는 ha당 3,000인을 수용하는 60층 높이의 사무실
아테네 헌장 발표(1933) 등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이 패러다임은 자동차 가 기능적으로 분리된 각 내부 기관이 잘 결합하여 달리게 되듯이, 도시도 거주, 여가, 노동, 교통의 4 대 기능을 철저히 분리 배치하는 것을 바람직한 것으로 보 았다. 자동차 위주의 슈퍼블록(super block) 형성과 고층 건물군으로 상징되는
‘녹지 속 고층도시’는 1950년대까지 대도시 내부를 재개발하고 재건축하는 모델 로 되고, 아시아 신생 독립국 등에서는 국가발전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담는 신수도(新首都)의 계획모형으로도 채택되었다12).
근대 도시계획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이상의 두 가지 도시 패러다임은 1960년 대 들어와 근본적으로 비판을 받게 된다. 이들 패러다임의 문제점을 ‘생활자’13) 관점에서 들춰내고 도시 만들기가 지향할 원리를 새로이 제시한 점에서 제이콥 스(Jane Jacobs)도 특히 주목받을만하다(Jacobs,1961:4)14). 또한 갠즈(Herbert Gans)도 근대 도시계획의 물리적 결정론의 사고를 비판하며 소비자, 이용자 중 심의 도시만들기를 강조하고 있다(허버트 제이 갠즈 저, 조대성 역, 2001).
‘전원도시 패러다임’은 교외 주택지의 평면적 확산과 그에 따른 직장‧주거 공 간의 원격화로 교통 혼잡과 에너지 낭비를 초래하고, 중심 시가지 쇠퇴를 촉진시 켰으며, 보행자에게 불편한 구조의 활력 없는 도시를 만들었다는 지적을 받게 되 었다15). 미국에서 확산된 전원도시 패러다임은 도시가 본래 지녀야 할 활력
건물을 배치하고, 건폐율을 5%로 하여 광대한 녹지를 주위에 배치하며, 거주공간의 아파트 또한 넓은 녹지 가운데 당시로서는 높은 8층 규모로 배치하였다. 교통시설로서 도로를 위계별로 구분해 배치하 고, 철도, 비행기 연결 센터를 기능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12) 르 꼬르뷔제가 직접 계획한 것으로는 인도 펀잡 주정부의 수도 찬디가르(Chandigarh)를 들 수 있고, 그의 추종자인 루시오 코스타(Lucio Costa)가 계획한 브라질리아도 이러한 패러다임의 산물이다.
13) 제이콥스는 ‘실생활(real life)’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14) 제이콥스는 「미국 대도시의 삶과 죽음( 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 1961)」이라는 저서를 통해 ‘전원도시 패러다임’과 ‘녹지 속 고층도시’ 패러다임을 다 같이 비판하고 있다. 제이콥스 는 ‘어떠한 원칙과 실제가 도시에 사회적, 경제적 활력을 주고, 또 어떠한 것이 도시를 죽이게 하는 지는 실생활(real life)에서 부터 알 수 있다.’ 고 전제하고 논의를 전개하였다: 마미야(間宮陽 介,1992:30)는 또한 제이콥스의 도시관을 ‘생활을 위한 도시’, 혹은 ‘장소로서의 도시’로 표현하고 있다.
15) 뉴어바니즘 협회장인 로버트 데이비스(Robert Davis)는 미국에서 교외 주택지 스프롤이 확산하게 된 것은 1939년 만국박람회에서 자동차시대의 비전을 보여주면서 아메리칸 드림으로 현혹하게 한 자동 차 회사의 제너럴 모터스 사와 이 회사 사장으로 나중에 아이젠하워 정부의 국방장관이 되어 “제네럴 모터스 사에 좋은 것이 국가에 좋은 것이다”라며 국가광역및방위고속도로체계( National System of
(vitality)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오히려 혼잡이나 시끄러움과 동일시하여 도시 를 탈출하고자 하는 잘못을 범하였다고 한다16). 또한 르 꼬르뷔제의 ‘녹지 속 고 층도시’ 패러다임도 도시를 자동차와 마찬가지의 기계로 간주하고, 사람도 생리 적으로만 다루어 인간 부재의 도시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17). 르 꼬르뷔 제 류의 건축가들이 도시를 예술작품으로 접근하는 것은 근본적 잘못이라고도 지적한다.
제이콥스는 전문가(expert) 관점이 아닌 생활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살기 좋고 생활하기 쉬운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도시로서 ‘다양성’에 바탕을 둔 ‘활력’ 있는 도시를 주장한다. 다양성을 가질 수 있는 구체적 조건으로 토지이용 복합화, 가구(block)의 소규모화, 오래된 건물에 대한 보존, 사람들이 밀집하기 충분한 밀도 유지 등을 밝히고 있다(Jacobs, 1961:372; 間宮陽介,19 92:31-33). 갠즈 또한 도시계획가의 물리적 환경결정론과 전문가 패권주의 (professional imperialism)를 불식하고, 소비자, 이용자의 관점에서 사회를 계획 할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1960년대에 제기된 생활자 관점의 도시만들기는 도시개발원칙을 체계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운동으로 발전하여, 미국에서는 뉴 어바니즘 협회(Congress for the New Urbanism)가 결성(1993년)되었고, 영국에서는 1992년부터 찰스 (Charles) 황태자를 중심으로 도시마을운동(Urban Village Campaign)이 전개되 었다. 이들 운동에서는 도시의 활력을 되찾는 일은 사람들의 생활을 중심으로 하 여 다양성과 인간 척도, 그리고 공공 공간의 질을 확보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강
Interstate and Defense Highway)를 구축하여 철도망을 걷어내게 한 찰스 윌슨(Charles Wilson) 및 제 2차 대전후 귀향 군인에 새 주택에 대한 저리 융자를 하여 자동차와 집에 대한 수요에 불붙인 정부의 잘못으로 보고 있다. (뉴어바이즘 협회 저, 안건혁․온영태역, 2000:233-234)
16) 마미야(間宮)에 따르면 “제이콥스는 하워드를 ‘도시가 잘못된 점이나 틀린 점을 미워할 뿐만 아니라 도시 그 자체를 미워하고 있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악이며, 자연 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하였다’라며 비판”한 것으로 보고 있다(間宮陽介,1992:32-33).
17) 주택을 ‘사람이 사는 기계( machine for living )’로 보는 르 꼬르뷔제의 생각이 도시에도 그대로 적용 되고 있다. 마미야(間宮陽介,1992:20)는 르 꼬르뷔제가 인간이 생리만이 아니라 심리나 역사나 생활을 가진 존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주거를 생각하고자 하는 인간을 심리적 인간이나 공리적 인간 이 아니라 기관지나 폐, 위장 등의 기관으로 이루어지는 생물로서의 인간으로 보았다고 비판한다.
조하고 있다. 더 이상 자동차 위주의 교외화가 지속가능하다거나 심지어 바람직 한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상식이 아닌 것으로 되었다(안건혁․온영태 옮김, 뉴어 바니즘 협회 저, 200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