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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절 규범의 지속과 변용

3. 노동규범

노동규범은 작업장에서 통용되는 행위 규범으로써 노동자의 행위에 영 향을 미치는 기준을 말한다. 이와 같은 노동규범은 언어체계를 통해 형성 유포되며, 규범의 강제성으로 인해 작업장에서는 노동통제의 수단이 되 기도 한다(김왕배, 2001). 노동규범은 작업장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 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우리의 행동이 작업장과 작업장 밖에서 명확히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출근시간에 대한 명확한 규정 과 무관하게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하는 것이 이상적인 노동규범 으로 작동한다면, 우리의 일상생활은 이 노동규범에 의해서 크게 영향 받 을 것이다.

박해광(1999)의 연구에 따르면, 한 기업의 사보에 실린 영웅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남들보다 이른 출근/30여 년을 구매파트에서 지내온 인생/ 한 우물을 판/

정열을 가지고 활동했던/ 회사생활이 당장 마감되더라도 자신이 여지껏 벌여놓은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책임주의자/ 내일이 이 세상의 종말일 지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을 만큼 자신의 삶에 대해 충실한 사람

이것은 일종의 ‘노동자 상’을 구성하는 것으로, 기업에서 설정한 ‘경영 이념’이 이런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아래 표에서 볼 수 있는 기업의 경영 이념은 작업장에서 작동하는 전형적 노동규범으로 볼 수 있다.

〈표 3-6〉 주요 그룹의 경영이념(1994)

그룹 경영이념

현대 근면, 검소, 친애

삼성 인류의 공동이익을 실현하여 인류사회에 공헌하자 대우 창조, 도전, 희생

롯데 적극적으로 일하자, 합리적으로 일하자, 국가사회에 기여하자 자료: 김왕배, 2001, 151쪽 표의 일부

김왕배(2001) 연구에 따르면, 경영담론은 공동체성을 강조함으로써 기 본적으로 집단의 화합과 우애 등을 강조하고, 조화와 안정을 덕목으로 한 다. 그리고 이런 공동체성은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 보금자리, 정, 양 보, 화합, 신뢰, 순종, 갈등과 대립의 종식과 같은 의미를 함축하게 된다.

남녀를 떠나서 노동자로서 직장에 대한 헌신적 태도는 노동시간 이외 의 생활에 대한 고려를 저해할 수 있다. 이런 노동규범이 작동하는 사회 에서 여성 또는 가족친화적 생활이나 남성의 가사참여는 사실상 매우 어 려워 질 것이다.

노동규범으로서 시간에 대한 통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현대인의 일상생활이 24시간이라는 시간형식에 의해서 규정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시간에 대한 정책적 개입의 중요성을 말해주기 도 한다.

한국의 근로시간은 OECD 34개국 중에서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많 은 수준이다. 연간 근로시간이 멕시코는 2,237시간, 한국은 2,163시간이 었다. 가장 적은 국가는 네덜란드로 1,380시간이고, 프랑스의 경우는 30 위로 1,489시간으로 나타났다. 임금 노동자는 가사노동으로부터 방해받 지 않아야 한다는 이념이 규범으로 작동하는데(Hook, 2010: 1485), 한 국에서 이와 같은 규범이 엄격히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림 3-8〕 OECD 국가들의 연평균 근로시간

주: 2014년 10월 14일 자료 추출 자료: OECD Stat(2014)

엄격한 근로시간 규범은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를 제한하고, 여성의 경 우 경제활동 자체를 제한하게 된다. 한국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이 장기간 정체된 것은 이러한 규범적 한계와 연관될 것이다. 또한 여성의 경제활동은 성역할과 관련된 노동규범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고 있다. 한 국에서 여성의 취업은 전통적 규범에 따르면 권장 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여성의 취업 관련 규범은 동시에 젠더 규범과도 직접적으로 연계 된다.

1985년 여성의 취업에 대한 태도 조사결과, 가정에만 전념하겠다는 경 우가 전체의 27.8%, 결혼하기 전까지만 직장을 갖겠다는 경우가 21.6%, 자녀성장 후 취업 8.9%, 가정에 관계없이 취업을 하겠다는 경우 23.5%

로 나타났다(한국의 사회지표(상) 1주 평균 52.5시간노동, 매일경제, 1985, 1. 25).

1980년대에 여성취업은 결코 긍정적 시선을 받지 못했다. “남성에게 직장에서 왜 대졸 여성을 기피하는가 물어보면 여자가 무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가? 고급여성은 쉽게 부릴 수가 없어 불편하다(가정의 벗, 83 년 9월 p.73, 남녀차별대우-여성스튜디오)”는 것이다. “여자가 사회진출 을 해서 성공하게 되면 그만큼 남자의 권위가 떨어지고 여자는 기가 드세어 진다는 잠재된 관념(가정의 벗, 86년 4월, p.69,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는 데-남자의 계절 MBC TV)”이 드라마에 묘사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한다.

드라머에서 그려지는 주부이자 아내이고 직장인인 어머니는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기 일쑤이다. 남편은 오죽 못나서 마누라를 돈벌이시킬까 하는 자격지심으로 아내의 마음을 할퀴고, 아이는 엄마가 출장간 사이에 병이 나고, 시어머니는 집안일에 소홀한 며 느리를 섭섭해 하고(가정의 벗, 86년 7월, p.67, 그런 장면은 이제 그만 사 절이다_드러머 게임 KBS 2TV).

1980년대 후반까지 “결혼한 여성에 대해 퇴직을 강요하던 회사가 고발 당하여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는 신문기사가 간간히 눈에 띈다(가 정의 벗, 87년 5월, p.57, 균형 있는 발전).” 뿐만 아니라 채용기준에 용모 가 중요하게 작동하고, 성격이 순종적인지 중요하게 고려되고 있었다.

아직도 여성들의 취업문이 바늘구멍만큼 좁으며 채용기준도 용모, 연줄, 순종적인가의 여부 등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또한 결혼하면 퇴직해 야 한다든지, 여성들의 정년을 30세로 규정한다든지 하여 설사 취업을 한 다 해도 승진은커녕 얼마나 다닐 수 있을 지 불안하기만 하다(가정의 벗, 87년 10월 p.33, 여성 상위 시대 유감)

“아직도 여성은 사회에서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성들만의 경쟁도 치열한데 여성들까지 끼어드는 게 못마땅해서 그럴 것이다(가정의 벗, 88년 1월, p.35/숙명여대 미술대학장).” 그리고 “자기 일에 성심 성의껏 임하지 못한다는 비난과 함께 ‘결국 여자는 어쩔 수 없 다’는 조롱이 곁들인 수근거림을 듣게 되는 사례까지도 생기게 된다(가정 의 벗, 88년 3월, p.33, 여성과 직업).”

현재는 여성의 노동이 얼마나 존중받고 있을까? 심층면접 자료에 따르 면 “우리 사회 자체가 아이 위주로 인식이 안 돼 있으니까 애 보러 간다 하면 그냥 단순히 여자들 일 이라고 생각(과천 10)” 한다. 그리고 직장에 서 시간에 대한 압박은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이다.

평일에는 바쁘니까 주 5 일 내내 늦게 올 때두 있고 거의 3회 이상은 늦게 와요. 애들이 어떨 때는 아침에 일어나서 아빠 다녀오셨어요 해요(광양 1).

제가 보건소에 와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셋째를 낳았어요. 만약에 병원에 서 교대 근무나 교대근무가 아니어도 근무시간이 굉장히 빠르거나 8시에

우리가 인계를 들어가면 그 안에 출근을 해야 되는데 그런 시간이 빠듯했 다면 저는 절대로 애 안 낳았어요(광양 2).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직장에서 가족 일과 관련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그것은 남성으로서 바람직한 근무태도로 보지 않은 규범이 작동 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리를 주장하는데 동료의 눈치를 봐야하는 것은 그 에 따른 불이익을 조직적으로 보완하지 않고 개인이 감수하도록 하는 조 직체계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보통 맞벌이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이가 아프면 보통 엄마가 쉬잖아요. 그 런데 아빠도 회사에 당당하게 이야기 하고 쉴 수 있는 그런 게 있었으면 좋 겠어요(과천 4).

둘은 이미 휴직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휴직을 할 만한 여건이 안 된 거죠. 아직까지도 조직 내에 자유롭게 휴직을 하기 에는 그런 여건이 안 갖춰진 것 같아요. 아무리 제도적으로 하라고 해도 실질적으로 피해를 보 는 것은 주변 사람이고 들어가는 입장에서는 부담을 주는 상황이 되기 때 문에 이제 여전히 그런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죠(과천 7).

제4절 소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