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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가치의 집중화

제2절 자녀의 가치와 의미

3. 근대적 가치의 집중화

자녀에게 부여되었던 다양했던 근대적 가치들은 1990년대를 지나면서 한 가지로 수렴되고, 그 과정에서 몇 가지 특징적 현상이 나타났다. 우선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는 점차 전문화되고 자원의 집중도가 증가한다. 자 녀교육은 가족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됨으로써, 가족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가족 갈등의 중심에도 자리 잡게 된다. 가족관계의 모든 것이 점 차 자녀교육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1994년도 한 보도 에 따르면, 부부가 서로에게 바라는 배우자 상은 자녀교육에 열중하는 것 이었다. 부부는 서로에게 부모로서 자녀교육에 헌신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특히 주 생계부양자로서 남편은 아내에게 자녀교육과 관련하여 더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배우자의 중요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아내는 남편의 역할을 가 계책임(33.3%), 자녀교육(21.8%)으로 답했고, 남편은 아내의 가장 큰 역할 을 자녀교육(34.1%)으로 꼽았다. 또 ‘배우자가 해주기를 바라는 집안일’ 역 시 아내, 남편 모두 ‘자녀와 함께 지내기’로 응답했다(경향신문, ‘자녀 양육 교육에 모든 것 건다’, 1994년 5월 8일).

사회적으로 자녀교육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1990년대 초반에는 본격 적으로 자녀교육의 지침서가 발간되기 시작했다. 자녀교육에서 전과 다 른 점은 점차 과학적인, 체계적인 방법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점점 자 녀교육이 정보의 전쟁과 다름없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학부모들을 위한 자녀교육도서의 출간이 최근 활발하다. 「젊은 엄마를 위

한 경험 많은 선생님의 충고」(집현전) 「귀여운 내자녀, 이렇게 장하게 키워 라」(혜진출판사) 「엄마, 나를 자신있는 아이로 키워주세요」(서울문화사)

「아빠와 아이」(샘터사) 「우리집 자녀교육 이렇게 한다」(오늘) 등이 근래 잘팔리는 자녀교육지침서들이다. ....또 번역도서 「아빠와 아이」..는 전통적 으로 자녀교육에서 소외돼온 ‘아버지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해 눈길을 끌고 있다(경향신문. ‘자녀교육지침서 잇달아 출간’. 1991년 6월 24일).

자녀교육의 중요성은 여전히 현재의 부모에게도 제일의 가치가 되고 있다. 자녀교육에 대한 몰입은 전국 어디서나 마찬가지인데, 지역적 특성 이 반영되겠지만 몰입도는 자원이 부족한 지역일지라도 마찬가지이다.

뿐만 아니라 소득수준의 차이, 지역 자원의 차이, 엄마 취업여부의 차이 에 관계없이 일반적 현상으로 수렴되고 있다. 2012년의 심층면접 자료 분석결과에 따르면 이런 특성이 잘 드러난다. 광양시 33세 기혼여성으로 자녀를 3명 둔 사례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여기는 진짜 없어서 순천으로 영어학원 다니는 애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순천으로 많이 이사 가요. 순천이 차로 15분 거리정도 밖에 안되는데 정말 차이가 많이 나요 수준이. 여기는 진짜 시골이고 순천은 교육도시라고 그 래서 그런지 엄청나게 엄마들이 학구열이 달라요. 주변에 많이들 시켜요.

기본적으로 1학년 애들 보면 미술, 피아노, 운동을 꼭 시키고 영어도 안하 는 아이들 없는 것 같고(광양 1).

소득이 적고 학원비용이 비싸서 학원에 보내지 못하는 경우 엄마가 직 접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35세 기혼 여성으로 자녀가 3명인 사례는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

큰애 같은 경우는 해야 될 것들이 영어 같은 경우는 해줘야 되는데 그거를 못 시키고 있고 제가 저는 이제 영어 전공이 아니라 제가 딱히 봐주는 거는 책 가지고 아침에 듣는 거 따라서 읽고 이정도 수준인데 전문적으로 보내 고 싶죠. 근데 그거는 못 보내고 있고 비싸더라고요.

학원으로 보내면 다 한명씩 학원으로 보내야 되잖아요. 한명씩 한명씩 보 내면 학원비가 너무 지출이 많이 되다보니까 제가 이제 여기 교원에 있으 면서 책으로 많이 공부를 시켜요. 그래야지 셋째까지 다 배울 수가 있으니 까(광주 7).

어려서부터 공부하는 내용에서 영어는 거의 빠짐이 없다. 앞선 사례에 서도 언급되었지만, 대전광역시에 거주하는 36세 기혼여성으로 자녀가 3 명인 사례의 경우, “방과후 활동이 좋을까 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하 고 있는 것 보니까 굉장히 괜찮은 것 같더라고요. 가격도 저렴하고...학원 은 영어만 일단 1학년 때부터 했는데 개인 그룹과외여서 학원은 아니고 시간을 정해서 가서 배우고 오고 운동으로 수영을 하고(대전 1)”있었다.

부모들은 경제적으로 가능한 선에서는 최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 다. 그렇지 못할 경우 부모로서 심한 죄책감까지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이 자녀의 교육은 가구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일종의 사회적 압박으 로 작용하는 구조가 되었다. 대전광역시에 거주하는 34세 기혼여성의 경 우 자녀가 4명인 사례에서 이런 어려움이 잘 드러난다. “이제 애들 학원 같은 거나 그런 거 남들은 사교육 영어니 뭐니, 피아노니, 예체능 이런 거 막 하는데 그런 거를 못해주니까 그런 부분에서 이제 가장 마음이 안 좋 다(대전 2)”는 것이다.

자녀 교육에 몰입하는 것은 근대적 자녀가치의 초기부터 지속되었다.

초기 산업화과정에서 계층상승을 이루기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었 던 고학력을 취득하기 위해 자녀를 제대로 교육시킬 필요가 있었고, 따라 서 부모들은 자녀를 적게 낳고 최대한 자녀교육에 투자했던 것이다(배은

경, 2012: 199~206). 이런 초기 교육 몰입은 현재까지도 정도를 더하며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자녀에 대한 근대적 가치로서 정서적 만족감은 다른 가치에 의해서 억압되는 특징을 볼 수 있다. 주로 다른 근대적 자녀가치들이 정 서적 만족감을 짓누른다. 건강한 자녀의 출산, 아낌없는 교육투자, 자녀 의 안전한 성장, 양육비용의 부담, 양육의 육체적 고통 등이 정서적 만족 감을 능가한다. 이런 모든 것들이 부모의 도덕적 책임의식을 증가시키고, 자녀로 인한 정서적 충만함은 빠르게 상쇄된다. 이런 압박이 담론적 차원 에서도 현실적 차원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은 또 하나의 현 대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심층면접 사례 중 과천시에 거주하는 38세 기혼여성으로 자녀 3명인 경우, 첫째 때는 아이가 너무 좋았으나 둘째 때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 하여 기쁨이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첫째 딸 낳고서는 너무 좋았어요. 저희가 안 키웠으니까 자유롭게 살았고 첫 아이니까 사랑도 많이 받았고 첫 딸은 또 재산이라고 해서 큰 아이는 복 스럽고 그런 걸로 많이 이야기를 해주셔서 좋았고 저도 몸도 건강했었고 아이도 건강했었고 했는데…둘째 낳을 때는 제가 임신 할 때 너무 많이 힘 들었어요(과천 10).

자녀양육기의 어려움은 큰 고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과천에 거주하 는 31세 기혼여성은 “아이계획은 결혼 후 1년 후에 낳으면 좋겠다는 생각 은 했는데요. 갑자기 생겼어요. 아이가 어쩌다 생기면은 낳기는 하지만, 육아 스트레스로 절대 다시 그 기간을 겪고 싶지가 않다(과천 8)”는 것이 다. 대체로 엄마들은 출산의 기쁨, 자녀의 정서적 만족을 말하지만 곧이 어 자녀양육의 어려움을 말한다. 기쁨을 먼저 말하지만 곧이어 어려움을

더 많이 말한다.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37세 기혼여성으로 자녀가 3명 인 경우 이런 점을 볼 수 있다.

둘째가 안 힘들었고 그리고 둘째가 너무 예뻤어요. 그러니까 큰 애를 처음 보는 순간하고 둘째를 처음 보는 순간하고 전혀 틀렸어요. 큰 애는 두려움 이 더 컸고요. 둘째는 그게 너무 예뻐가지고, 제 얼굴에 그냥 보였데요. 그 너무 예뻐하는 모습이 당연히 낳아야지 그냥 그랬어요. 제가 주위에서 볼 때 물론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어서 안 낳기도 하겠지만 요즘 엄마들은 아 이 키우는 거 힘들어서 안 낳는 것도 많다고 봐요(광주 5)

그때는 애기를 낳고 싶었죠. 되게 신기했죠. 배속에 뭔가 있다는 게 그리고 조금씩 크면서 배속에 꿈틀거리잖아요. 근데 만약 제 또래 친구들이었으면 아마 애기를 거의 안 난다고 했을 거예요...태어나서 기쁨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애기가 생기면서 남자나 여자나 부담감 부담스러움이라고 해야 되나, 어떻게 던지 먹여 살려야 되니까 처자식을. 서로한테 그런 부담감을 애기가 태어나고 그런 부담감이 생긴 건 사실이거든요(대전 4).

정서적 가치가 주로 경제적 가치에 의해서 내밀한 사적 영역으로 밀려 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서적 가치는 가족 내에서 또는 부부사이에서 또는 부모자녀 간에만 말해지고, 사회적으로 정서적 가치의 의미는 말해 지지 않고 사회적으로 공유되지 않음으로써, 사회적 담론으로써 힘을 가 지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