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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적 관점에서 가족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것은 1960년대 이후부 터로 볼 수 있으며, 초기 연구는 주로 최재석(1983)과 같이 가족제도사적 관점에서, 가족의 구조와 기능, 크기와 유형, 가족 구성원의 범위와 가족 주기를 주로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함인희, 2014, p.8). 이후 연구 분 야와 주제는 가족의 형태적 특징의 다양성, 핵가족의 변화양성, 페미니즘 관점에서 젠더 관계, 가족의 물적 기반의 변화, 가족 정상성의 위기 또는 해체, (제도적)가족주의와 정책적 영역의 확대, 가족의 후기근대성 등으 로 확장되어 왔다. 여기서는 가족의 변동 관점에서 주요 논의를 중심으로 쟁점을 정리하고 그 함의를 연구에 반영하고자 한다.

1. 한국의 핵가족화

우선 기존 연구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한국의 핵가족화에 대한 것이었 다. 1960년대에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면서, 가족형태는 좀 더 산업사 회에 적합한 형태로 변했다. 직업과 교육을 위해 도시를 향한 이동이 증 가했고, 이동의 편의를 위해 대가족 또는 확대가족이 핵가족으로 변화했 다는 것이다. 산업화 시기부터 시작한 산아제한 정책은 인구뿐만 아니라 가족의 수를 줄이는데도 기여했다(한국산업사회학회, 1998, p.130). 대 체로 산업화나 도시화가 더욱 고도화된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가족의 관념이나 실질적인 관계의 범위가 핵가족에 더욱 유사해졌고, 결혼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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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 간의 결합이기 보다는 개인 간의 선택 문제로 점차 변화했다(김동춘, 2020, p.96). 전통적 부계가족의 가치가 핵가족의 근대적 요소에 의해 약화되고 대체되는 변화가 진행되었다(이재경, 2015, p.284).

일반론적 차원에서 산업화와 함께 핵가족화가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 지만, 한국에서 산업화를 계기로 확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대 전환한 것 으로 보기는 어렵다. 핵가족 보편론은 근대이후 핵가족이 새롭게 보편화 되었다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다. 이런 주장은 서구에서 먼저 시작되었 는데, 서구 사회학자들은 전통시대에 서유럽의 중심적 가족형태는 확대 가족이라고 주장하였지만, 가족사 연구가 발전하면서 사실상 부모와 의 존적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이 오랜 시간 중심적 가족 형태였음이 드러났 다(Giddens & Sutton, 2014, p.414).

한국에서도 이런 논의가 진행되었다. 조선 후기에 부계 중심성이 강화 되었어도 직계가족보다 핵가족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 다(최재석,1983). 이미 조선시대에 소가족 또는 핵가족이 중심적이었으 며 따라서 산업화가 핵가족화를 유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확 산되었다(조정문, 장상희, 2001, p.86; 김혜경, 2014, p.103). 다만 1970년대 산업화시기를 거치면서, 이념적으로 친족과 가족제도에서 독립 적인 낭만적 사랑과 부부중심 결혼이란 이념이 규범화된 것으로 평가된 다. 즉 연애결혼이 확산되고 부부와 미혼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이 3세대 가족 ‘이상’을 본격적으로 대체했다는 것이다(김혜경, 2014, p.108).

반면, 한국사회의 직계가족 규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핵가 족화 경향에 반론도 제기되었다. 인구학적인 핵가족화 해석이나 가족형 태 분류의 한계를 주장하는 연구가 있었고(장현섭, 1993), 장남의 분가현 상을 핵가족 분화가 아닌, 임시적인 “분거”로 해석하기도 했다(안호용, 1991). 그리고 1970년대 중반 이전까지 농촌 가족은 형태상으로는 핵가

족이었으나 관계의 측면에서는 친족, 씨족, 마을 공동체와 여전히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형태상으로는 핵가족이 보편화되었다고 해도 실제 관 념적인 ‘집’의 범위는 여전히 형태상의 가족과 일치하지는 않는 친족이나 씨족 집단에 가까운 것이었다(김동춘, 2020, p.95). 또한 가족을 기본적 생산조직으로 볼 때, 부부관계와 세대관계에서 친족으로부터 사회경제적 독립을 중시하는 핵가족 원리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족생산체 계에서는 경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친족 사이의 유기적인 협력 및 의 존관계를 유지해야하기 때문이다(장경섭, 2009, p.55). 따라서 산업화시 기에 형성된 한국의 핵가족화가 완전한 전환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 다. 산업화, 도시화, 가족계획사업이 가족 변화에 영향을 미쳐 규모 측면 에서 소가족화 추세를 따랐지만 전통적인 가족주의와 대가족 체계가 지 속되어 전통과 근대가 공존하는 측면이 있었다(이재경, 2015, p.287).

이런 측면이 한국의 핵가족화가 서구의 그것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 다. 한국의 남성중심성은 그 뿌리가 이미 전통사회에서 비롯되었으며, 일 부는 최근까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강력한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제 가 확산된 것은 조선 중기 이후로 본다. 조선 후기 주자의 성리학이 지배 질서가 되고, 장자를 통한 가계계승이 생활원리로 확산되면서 가부장제 가 강화되었다(최재석, 1983; 이이효재, 2003; 이여봉, 2006, p.319).

일본 제국주의 통치하에서 호주에게 강력한 가족지배권과 법적 대표권을 부여하는 비민주적인 호주제도가 법제화되면서 전통적인 호주제가 더 강 화되었고, 한국전쟁 이후 1958년 신민법은 가족제도의 근대화를 표방하 였지만 여전히 제국주의 강점기 하의 호주 중심제도를 유지하였다. 적어 도 2008년 호주제도가 폐지되기까지 법령상의 가부장제는 유지되고 있 었다(양현아, 2012; 김혜경, 2014, pp.104-106; 김동춘, 2020, p.96), 지금도 여전히 핵가족화 논의는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핵가족화 여부가 아니라, 한국 핵가족화의 특수성이 무엇인 가일 것이다. 장경섭(2009)은 한국의 핵가족화를 ‘불균형 핵가족화’로 규 정한다. 한국사회의 특수한 자본주의적 경제발전 과정에서 인구학적·물 질적·심리적 측면의 핵가족화가 서로 불균형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불균형 핵가족화’는 개개인들의 문제점에서 연유했다기보다는 주로 한 국적 자본주의 사회변동의 거시적 문제점들을 반영하고 있으며, 결과적 으로 이런 불균형이 가족의 사회 부양 혹은 사회재생산 기능의 위기를 가 져오게 했다고 설명한다(장경섭, 2009, p.51). 전체적이고 장기적 관점 에서 핵가족화가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그 핵가족화는 매우 불균형적인 것이었다(장경섭, 2009, p.320). 그리고 반복되는 경제불안과 부동산 등 의 물가폭등, 최근 들어 특히 심각해진 고용불안과 빈부격차 그리고 여전 히 제한적인 사회보장제도 등이 물질적으로 안정된 핵가족화를 오히려 가로막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장경섭, 2009, p.230).

김동춘(2020)은 한국의 핵가족화를 ‘강요된 핵가족’이자 ‘수정 확대가 족’으로 설명한다. 한국의 경우 농촌의 자족 경제가 해체되면서 자연스럽 게 전통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화한 것이 아니다. 시장경제가 외생적으 로 주입되었고, 식민지 국가가 호주제라는 변형된 전통가족과 제한적 근 대가족을 강요했으며, 한국전쟁과 국가주도의 산업화가 핵가족화를 강요 했다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 강요된 근대화의 결과로 만들어진 형태상 의 핵가족은 과거 유럽과 같은 개인주의를 수반하지 않았다(김동춘, 2020, p.97). 그리고 ‘관계의 질’ 측면에서, 부부중심, 사생활 중시, 개인 주의, 자녀의 독립성 등을 수반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형태상의 핵가족이 일반화되었다고 하더라도 한국 가족은 나름대로의 특성 즉 ‘수정확대가 족’의 성격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김동춘, 2020, p.269) 이런 맥락 에서 1960년대 후반 이후 198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 가족은 전통적인

것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해서 서구적인 것도 아니었다(김동춘, 2020, p.97). 결국, 산업화가 정점에 이르고 ‘2차 근대’ 단계로 진입한 1990년 대 중반 이후 산업사회의 ‘전형적’ 가족 모델은 무너졌다. 탈산업사회 노 동시장 유연화, 대량의 실업 등으로 그나마 공공복지도 취약한 조건에서 핵가족의 물질적 기반이 와해되며 가족주의는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설명한다(김동춘, 2020, p.269).

요컨대, 한국의 핵가족화는 형태상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1980년대 중 반 경에 일반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성 상 서구적 근대의 전 형 또는 이론적으로 일반화된 산업화의 전형을 따랐다고 보기 어렵다. 특 히 한국의 사회경제적 환경에 매우 강하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가족 관계의 속성 측면에서 서구와 다른 길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무 엇보다도 가족의 물질적 기반이 되는 사회 경제적 여건의 변화는 가족의 변화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2. 정상 가족의 위기와 다양성의 확장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 가족이 형태상으로 핵가족화 되었다면,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핵가족적 특성이 심각하게 약화되기 시작했 으며, 이런 변화에 대해서 대체로 학자들은 동의하고 있다(김동춘, 2020;

이재경, 2015; 김혜경, 2014; 장경섭, 2011). 1990년대 중반 이후 가족 변화는 우선 형태적으로 더 다양해졌으며, 속성상 근대적 정상가족 규범 이 약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큰 방향 전환은 무엇보다 1997년 IMF 외환위기의 영향이 결정적 이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서 가족생활의 급격한 변화와 정책적 대응에 대한 많은 사회적·정책적 담론이 확산되었는데, 외환위기를 계기

로 가족의 거의 모든 면이 변했기 때문이었다(이재경, 2015, p.284). 실 제로 외환위기는 가족의 변화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질적 변화를 만들었다.

구체적으로 IMF 외환위기는 가족의 물질적 조건을 약화시켰고, 여기

구체적으로 IMF 외환위기는 가족의 물질적 조건을 약화시켰고,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