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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으로 인한 마을 변화

3.1. 인구변화24

○ 경기도 연천군의 인구는 2004년 이후 2016년까지 연평균 0.5%씩 감소하였 다(2004년 48,687명 → 2016년 45,907명, 연평균 변화율–0.5%). 하지만 백 학면 구미리 인구는 귀농·귀촌인의 유입(12가구 33명)으로 2004년 46가구 97명에서 2016년 55가구 100명으로 큰 변화없이 유지되었다<그림 7-3>.

○ 강원도 평창군 인구는 지난 13년간(2004~2016년) 2천여명이 감소(2004년 4 만 5,033명→ 2016년 4만 3,318명)하였지만, 개수2리의 인구는 2003년 60가 구126명에서 2016년 82가구 154명으로 증가하였다<그림 7-3>. 개수2리의 경우 귀농·귀촌인은 71가구로 전체 마을인구의 80.0%가 넘는다.

<연천군 구미리> <평창군 개수2리>

<그림 7-3> 연천군 구미리, 평창군 개수2리 인구 변화 추이

자료: 연천군, 평창군 통계연보.

24 진안군의 경우 마을별 인구통계 자료가 제공되지 않아 제시하지 못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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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단양군은 지난 13년간(2004~2016년) 4천명이 넘은 인구가 감소(2004

년 34,743명→ 2016명 30,503명)하였다. 영춘면의 사지원2리도 2004년에는

27가구(53명)에서 2008년 20가구(39명)까지 줄었었다. 하지만 귀농·귀촌인

구의 유입(30가구 62명)으로 2016년 현재 34가구(64명)로 증가하였다<그림 7-4>.

○ 충남 서천군 역시 지난 10년 넘게 지속적인 인구 감소(2004년 65,650명 →

2016년 56,012명, 연평균 변화율–1.3%)를 격었다. 판교면 등고리도 2007년 29

가구 63명까지 인구가 줄다가, 이후 귀농·귀촌인 활성화되면서 2016년 67가 구(151명)까지 증가하였다. 등고리는 전체 가구 중에 귀농·귀촌가구가 34가 구로 기존주민보다 귀농·귀촌인이 더 많다<그림 7-4>.

<단양군 사지원2리> <서천군 등고리>

<그림 7-4> 단양군 사지원2리, 서천군 등고리 인구 변화 추이

자료: 단양군, 서천군 통계연보.

○ 경북 봉화군은 지난 2004년~2016년 기간 동안 연평균 –0.9%씩 인구가 감 소하였다(2004년 37,526명 → 2016년 33,539명). 하지만 명호면 풍호1리의

인구는 2007년에 최하점( 57가구 119명)을 기록한 이후 귀농·귀촌인구 유입

활성화(28가구 61명 유입)로 2016년 79가구 160명까지 증가하였다<그림 7-5>.

○ 경북 상주시 역시 지난 13년간 1만명 넘는 인구가 감소하였다(2004년

112,585명 → 2016년 101,799명). 하지만 모동면 정양리는 같은 기간 16가구

32명이 증가하였다(2004년 52가구 116명 → 68가구 148명)<그림 7-5>. 증가

이유에는 귀농·귀촌인구의 유입(18가구 36명)이 절대적이다.

<봉화군 풍호1리> <상주시 정양리>

<그림 7-5> 봉화군 풍호1리, 상주시 정양리 인구 변화 추이

자료: 봉화군, 상주시 통계연보.

○전남 강진군의 인구는 지난 2004~2016년 기간 동안 연평균–1.2% 감소하 였다(2004년 43,550명 → 2016년 37,753명). 이러한 급격한 인구감소에 칠 양면 동백리 인구도 2004년 31가구(71명)에서 2016년 29가구(61명)로 줄어 들었다<그림 7-6>. 하지만 귀농·귀촌인구의 유입(4가구 16명)이 감소폭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 경남 남해군 역시 지난 13년간(2004년~2016년) 급격한 인구 감소를 경험하 였다. 2004년 53,129명이던 인구가 2016년에는 45,129명으로 8천명이 감소 하였다(연평균 1.4% 감소). 남면 홍현1리에는 지속적으로 귀농·귀촌인구가 유입(18가구 36명)되어 2004년 103가구 243명에서 2016년 107가구 209명 으로 다소 완만한 인구 감소가 일어났다<그림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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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 동백리> <남해군 홍현1리>

<그림 7-6> 강진군 동백리, 남해군 홍현1리 인구 변화 추이

자료: 각 연도별 강진군, 남해군 통계연보.

○ 2006년 서귀포시로 통폐합되기전 남제주군 지역(대정읍, 남원읍, 성산읍, 안덕

면, 표선면)을 기준으로 보면, 지난 13년간(2004~2016년) 지역 인구는 2004년

73,609명에서 2012년 68,877명까지 감소한 이후 4년 동안에는 급증하여 2016년

에는 75,798명으로 2004년 수준보다 더 많아졌다. 신례1리의 인구는 2004년

511가구(1,576명)에서 2010년 503가구(1,422명)로 감소추세였으나, 2011년 학교살리기 추진위원회 구성 이후 귀농·귀촌인들이 마을에 들어오기 시작해 증가세로 전환되어 2016년 581가구 1,420명으로 증가하였다25<그림 7-7>.

<그림 7-7>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1리 인구 변화 추이

자료: 서귀포시 통계연보.

25 최근 이주 수요가 너무 많고 집값이 상승하여 증가세가 둔화됨

3.2. 마을 변화

○귀농·귀촌이 활성화되면서 농촌 마을은 다음과 같은 변화 단계를 겪었다.

귀농·귀촌인들의 유입으로 기존 주민과 귀농·귀촌인의 구성 비율이 달라지 고, 원주민과 귀농·귀촌인간 갈등 양상이 달라지고, 귀농·귀촌인의 마을 행 사의 참여 정도가 달라지고, 마을의 외부 개방성이 달라졌다.

- 일부 집성촌의 경우 여전히 외부인에게 배타적인 성향을 보이나 대개 마 을의 과소화와 귀농‧귀촌인들의 유입으로 전통적 공동체는 무너지고 개방 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 귀농·귀촌인의 정착에는 마을에 흡수되려는 귀농·귀촌인의 노력과 함께 마 을의 귀농·귀촌인 수용 분위기와 준비가 중요했다.

- 일부 마을에서는 원주민과 귀농인의 비율이 절반 정도인 경우, 서로 기 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있고, 집성촌에서는 원주민들 눈치에 귀농인들의 행동에 제약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원주민의 동의로 만들어진 마을 규약이 잘 짜여져 있어 귀농인이 마을에 들어왔을 때나 마을사업, 마을행사 시에 귀농·귀촌인과 주민 간의 잡음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 귀농·귀촌인이 늘수록 마을 주민의 귀농·귀촌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줄 고, 귀농·귀촌인의 마을 행사 참여는 확대되었다<그림 7-8>.

- 귀농·귀촌인 정착실태조사에서 마을 주민들의 귀농·귀촌에 대한 인식, 마을 주민 중 귀농·귀촌인 비율, 귀농·귀촌인들의 마을 참여 등 조사 분 석 결과, 마을 주민 중에 귀농·귀촌인 비율이 10%미만인 경우 주민들의 귀농·귀촌에 대한 부정적 인식비율은 18.1%였는데, 50%이상인 경우 부 정인식 비율은 9.1%으로 절반수준으로 감소하였다. 반면에 귀농·귀촌인 들의 마을행사 적극 참여비율은 귀농·귀촌인 비율이 10%미만일 때 21.4%에서, 50%이상일때 39.4%로 증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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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8> 귀농·귀촌인 비중에 따른 주민 인식과 귀농·귀촌인의 마을 참여

○ 사례 마을조사 결과, 귀농·귀촌인 정착실태 조사 결과 등을 종합해보면 귀

농·귀촌 활성화 단계별 마을 변화(농촌 마을의 주민구성, 갈등, 참여, 개방 성 등)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표 7-2>.

- 기존 마을주민이 압도적으로 많은 시기 주민들과 귀농·귀촌인들간의 갈 등은 오히려 적고, 귀농·귀촌인들의 마을 모임 참여도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마을 모임의 운영도 귀농·귀촌인에게는 다소 폐쇄적이다.

- 귀농·귀촌인들이 점차 많아지고 세력을 형성하면서 마을 모임에 대한 참 여가 활발해지고, 기존 주민들과의 갈등이 발생한다. 하지만 아직 다수가 기존 주민이라 귀농·귀촌인의 마을 모임에 있어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 고 기존 주민 위주로 여전히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단계를 거친다.

- 이후 귀농·귀촌인들이 평창군 개수리나 서천군 등고리의 경우처럼 전체 마을 주민의 과반수에 육박하거나 넘어서는 단계가 되면, 새로운 형태의 마을 질서가 형성이 되면서 뒤이어 들어오는 귀농·귀촌인에 대한 개방성 이 높아지고 원주민과의 갈등도 줄어들게 되는 단계를 거친다.

귀농·귀촌 마을 변화

주요 특성

주민 구성 주민 갈등 귀농·귀촌인의

마을 참여

마을 운영 개방성

초기 단계 원주민 >> 귀농인 상호 우호적 관계 초보적 참여 폐쇄적

갈등 단계 원주민 > 귀농인 많아짐 참여 활성화 폐쇄적

완숙 단계 원주민 ≤ 귀농인 적어짐 귀농·귀촌인이

주요 간부로 활동 개방적

<표 7-2> 귀농·귀촌에 따른 농촌 마을 변화

○ 귀농·귀촌으로 인한 농촌사회의 다양한 긍·부정적 변화는 <그림 7-9>와 같 이 종합된다.

- 교육받은 다수 도시 중산층의 유입으로 비농업 종사자가 증가하고, 도시 문화가 유입이 되면서 이들의 높은 사회참여 의식으로 인해 인구 구성 뿐 아니라 마을의 의사결정 구조가 변화한다.

- 앞서 사례 마을에서 본 바와 같이 마을 인구가 증가하고, 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영농 후계 인력 또는 농촌 개발 인력이 확보되고, 이들 의 농촌 사회에서 사회적경제 활동 참여로 인해 일정 부분 삶의 질 서비 스가 개선되는 측면이 있고, 도시의 인적 네트워크가 농산물 판매 개척, 농촌 체험 관광객 유치로 이어져 마을 공동체가 옛날과는 다른 방식으로 활성화되는 측면이 있다.

- 반면에 기존과 다른 가치관과 문화를 가진 외부자들의 유입으로 생활 장 면 곳곳에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고, 기존에 없던 민원들이 발생하며, 주거, 소득, 교육, 문화적 측면에서 양극화가 심화되기고 하고, 지역 공동 체 의식의 약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부 지역의 경우 토지 및 집값 상승 으로 이어져 주택이 부족하고, 영농 규모화의 제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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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9> 귀농·귀촌 활성화에 따른 농촌 지역사회에 미치는 긍·부정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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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및 제언

1. 결론

○ 이 연구는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귀 농·귀촌 현상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진단·분석하였다.

○ 귀농·귀촌인 장기추적조사를 통해 누가, 왜, 어떻게 준비하여 귀농·귀촌하

고 있고, 농촌 현장에서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이들의 성공 정착에는 미 치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밝혔다. 그리고 귀농·귀촌 사례 마을 조사를 통해 귀농·귀촌으로 인하여 농촌 마을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도 구명하였다.

□ 귀농·귀촌이란 무엇이고, 언제부터 있었는가?

○역사적으로 ‘고향이나 향리로 돌아가 농사짓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귀농

(歸農)이란 용어가 사용되었다. 귀촌(歸村)이란 용어는 비교적 최근인 2000

년대 중후반부터 귀농이란 용어에서 차용되어 영농 목적이 아닌 농촌이주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2009년 정부(농림수산식품부)의 ‘귀농·귀촌 종

합대책’이 발표된 이후 ‘귀농·귀촌’이라는 용어가 폭넓게 사용된다.

○ 우리나라의 귀농·귀촌은 역사적으로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

시대부터 실업자 또는 도시 인구 분산 정책으로 국가 정책으로 추진되었다.

해방직후의 실업자와 귀환동포에 대한 귀농 알선(1947년), 1950년대 난민정 착사업, 1960년대 군사정권의 식량증산과 도시실업해결을 위한 귀농정착사 업, 1980년대 도시 영세민 농촌이주 사업(1982~1990), 1990년대 농업구조 개선사업의 인력정책으로서 귀농 사업 등이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귀농 이라 함은 난민, 빈민들 대상의 농촌 이주 정책에 의해 인위적으로 발생한 현상이었다.

○ 하지만 1990년대 이후부터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귀농·귀촌은 경제적, 대

안적 삶의 추구 등 개인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2000년대 후 반부터는 국민적 요구를 받아 이를 지원하기 위한 체계적인 국가정책이 추 진되고 있고, 지방자치단체 주도의 다양한 지원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 최근 도시 고용사정의 악화와 더불어 베이비부머의 은퇴, 농업·농촌 생활에 대한 높아진 사회적 선호, 농업고용관련 정책 효과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귀농·귀촌인구 증가와 더불어 농림어업 취업자수가 늘고 있는데, 당분간 이 러한 추세는 유지될 전망이다.

□ 누가, 왜, 어떻게 준비하여 귀농·귀촌하는가?

○ 최근에 귀농·귀촌하는 사람들은 기존 농업인들보다 상대적으로 고학력인 도시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던 중산층인 경우가 많다. 직업적으로는 자 영업자가 가장 많고, 사무직 종사자, 기능직, 판매서비직 순으로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