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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종합개발계획과 국토개발의 목표

문서에서 한국지역정책보고서 (페이지 115-123)

한국전쟁 이후 국토개발은 먼저 도로, 교량, 주택 및 내수용 제품생산을 위 한 공장 건설에 초점을 두면서 기본적인 사회간접자본시설의 복구에 중점을 두었다. 전쟁기간동안 거의 모든 기존 사회간접자본시설은 파괴되었다. 일단 피해복구가 마무리된 후 박정희 정부는 전면적인 개발프로그램을 시작하였 다. 1962년에 도시계획법이, 그리고 1963년에 국토종합개발계획법이 통과되 었다. 1960년대에 공간개발과 관련된 정부의 노력은 경제기획원과 함께 건설 부에 의해 주도되었다. 1962년에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마련되었다.

개발정책은 내수용 물자를 생산하는 산업단지의 건설에 초점이 맞추어졌 다. 1962년에 정부주도로 울산석유화학단지가 건설되었고, 이후 조선과 자동 차를 포함하는 중공업단지로 확대되었다. 한편으로 기초 사회간접자본시설 을 확대하는데 개발의 초점이 맞추어졌는데,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고속도 로가 1968년에 건설되었고,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가 1970년에 완 성되었다. 사회간접자본시설 건설을 위한 법적 근거는 1966년에 다목적댐개 발법, 1970년에 수출가공산업단지개발법과 지방산업단지개발법, 그리고 1973 년에 산업단지개발법이 통과됨으로써 마련되었다.

표 19. 국토종합개발계획에 있어서 국가목표 및 정책의 변화

을 가속화하기 위한 대규모 산업단지를 개발하고, 교통운송시설을 확충하며, 수자원과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우선 서울의 제조업과 서비 스업에 초점을 두고서 공적자원과 외자도입을 활용하여 각종 사업자금을 조 달하였다. 그후 정부는 1969년에 시작된 울산과 같은 산업도시의 건설과 수 많은 산업단지의 건설을 통해 남동해안지역에 거대한 중공업기반을 구축하 였다. 이 곳의 입주기업에 대해서는 세제혜택과 재정지원이 이루어졌다. 제2 의 도시로서 일본과 태평양을 향한 관문인 부산은 경공업 중심지로서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대구는 섬유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서울에서 대전과 대구를 지나 부산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건설되어 주요한 교통축이 완성되었다.

남북을 연결하는 이러한 중심축은 점차 서울과 부산을 중심으로 양극화되는 공간패턴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급속히 유입되는 인구와 고속으로 성장하는 산업을 공간적으로 조직화하는 수단으로서 국지적인 성장거점의 역할을 하 는 서울의 위성도시들이 건설되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효율성을 제 고하기 위하여 서울, 인천, 울산을 중심으로 투자가 집중되어 인적자원, 보완 재, 제품판매망, 사회간접자본시설의 확충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들 지 역에 대한 투자의 집중은 제한된 자원으로 단기간 내에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는데 기여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지역불균형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 기간동안 건설된 주요 사회간접자본시설은 포항, 구미, 여천과 창원의 공업단지, 소양강과 안동의 다목적댐 그리고 호남고속도 로와 남해고속도로 등이다. 정부는 산업단지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포항 과 구미 주변에도 위성도시를 개발하였다. 1970년대 말까지 남동임해공업지 대는 울산, 부산, 마산, 창원, 여천, 포항을 잇는 산업의 중심지로 발달하였 다13). 이 지대의 제조업 생산량은 1971년 전국 생산량의 31%를 차지하였으 며, 1981년에는 41%로 증가하였다.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에서 지역균형이

나 생활여건의 개선과 같은 문제는 관심밖의 사안이었다. 이 기간 동안, 수도 권지역으로의 인구집중은 이미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였고, 결국 개발제한구 역의 지정, 지하철의 건설과 같은 도시정책이 추진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산업개발만 강조하였던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과는 달리, 제2차 계획기 간 동안의 국가목표는 지역균형성장, 인구분산화, 생활여건의 개선 등에 초점 을 두고 있다. 수도권관리계획의 수립과 병행하여, 신규공장 건설을 억제하 고, 대학의 신설이나 대형개발 프로젝트를 금지하고, 공공시설을 지방으로 이 전함으로써,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지역의 성장을 억제하였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는 성장촉진정책이 시행되었으며, 여기에는 사회간접자본시설의 확대와 세금, 재정지원책이 포함되었다. 또한 전국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되어 있던 서부해안지역의 산업개발도 시작되었다. 제2 차 계획은 1987년 제6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공표되었 때 그 목표가 수정되 었다. 수정된 계획의 기본 목표는 변화가 없지만, 성장거점도시라는 발전전략 은 지역균형발전전략으로 바뀌었다.

균형적 지역발전을 지향하는 1980년대 공간개발전략에도 불구하고, 수도 권지역으로의 집중은 199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제3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은 4 개의 목표를 수립하였다. 지역적으로 분산된 개발, 효율적인 토지이용, 삶의 질 개선, 그리고 남북한 화해증진과 통일이 그것이다. 계획이 주요하게 지향 하는 바는 서부해안지대와 지방도시의 산업을 강화하여 균형적인 지역발전 을 이루려는 것이었다. 산업화에 뒤떨어진 지역을 지원하기 위한 지역균형개 발과 지방중소기업촉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8개 지역 에 대한 광역개발계획이 수립되었다. 제3차 계획은 낙후지역의 개발과 지역 내 삶의 질 향상에 중점을 두고 있다. 상기의 법은 또한 개발촉진지구(DPD) 란 제도를 도입하였다14).

제3차 기간 동안에 여러개의 대규모 건설계획이 시작되었다. 인천국제공항 과 부산, 가덕, 광양의 항만개발, 서울-부산간 고속철도 등이 그것이며, 이러 한 계획들은 모두 2000년대 초에 완결될 예정이었다. 정부는 인천과 인근지 역에 인천국제공항의 개항과 더불어 국제업무 및 물류센터를 조성하려고 한 다. 1994년에는 이 계획에 대한 공적 자금의 부족을 충당하기 위하여, 민간부 문의 참여를 촉구하는 민간자본유치법이 통과되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에 물리적 사회간접자본시설의 확충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 구하고,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개발수요는 경제성장 속도만큼 증대하였 다. 제3차 계획기간 동안, 높은 지가와 주택부족으로 야기된 주택난과 열악한 생활여건은 매년 약 50˜60만호의 주택이 공급되면서 상당히 개선되었다. 제 도를 개혁하고 조직을 개편하여사회간접자본시설의 개발을 통합함으로써 효 율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산업시설개발과 도로관리 등을 책임졌던 건설부와, 철도 및 항만을 관장했던 교통부가 통합되면서 1994년에 건설교통부가 설립 되었다.

제3차 계획기간 동안, 공간개발정책은 민주화, 지방자치 부활, 탈규제와 그 에 따른 사회경제적 변화뿐만 아니라 급격히 변화하는 세계경제에 부응할 수 있는 방향에 역점을 두었다. 무엇보다도 한국은 1997년에 전례없는 경제위기 를 겪었지만, 이후 2년 이내에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빠르게 예전의 수준으로 경제를 회복하였다. 비록 경제위기로 인하여 생산량이 7% 감소하고, 실업률 이 3배로 증가하여 국가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받았지만, 한국은 비전통적 제 조업에 기반을 둔 지역을 중심으로 빠른 회복을 이룩하였다. 1998년 후반이 래, 최근 그 정도가 다소 둔화되긴 했지만 경제성장은 계속되었다. 경제위기 이후, 실업의 증가와 실질임금의 감소는 개별 가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 혔다. 1998년에 6,409 가구, 그리고 1999년에는 4,118 가구가 도시지역을 빠져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지역의 집중은 1990년대에 더욱 심화되었

15). 급격한 사회경제․제도적 개혁에 직면하면서, 정부는 기존 3차 국토종 합개발계획을 수정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국토종합개발계획을 수립 하기로 하였다.

제4차 국토종합계획은 2000년 1월에 내각의 승인을 얻었으며, 과거 시행된 계획들과 달리 다음의 세 가지 목표를 가지게 되었고, 이는 제4차 국토종합계 획의 가장 큰 특징이다.

- 국토환경의 보전에 최고의 우선순위가 부여되었다. 계획은 환경과의 조 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개발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 계획은 초기단계에서부터 지방정부 및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수립되 었다. 국토종합계획을 위한 연구위원회가 1998년에 설립되어 계획을 수 립하였다. 민간부문의 주도에 의한 “21세기를 위한 국토포럼”은 준비 전 과정에 걸쳐 제안과 의견을 개진하였다.

- 계획기간은 과거 세 번의 계획과 달리 10년이 아니라 20년으로 설정되었다.

제4차 계획은 국가목표를 지역통합, 개발과 환경보호의 통합, 남북한의 통 합, 그리고 동북아시아와의 통합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21세기 통합된 국토 의 실현”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 네 가지 목표들은 간단히 “균형을 이룬 국토, 녹색국토, 개방된 국토 및 통일된 국토”로 정리할 수 있다. 균형을 이룬 국토 는 지역통합과 각 지역별 지방 정체성을 증진하려는 노력을 통한 균형 잡힌

제4차 계획은 국가목표를 지역통합, 개발과 환경보호의 통합, 남북한의 통 합, 그리고 동북아시아와의 통합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21세기 통합된 국토 의 실현”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 네 가지 목표들은 간단히 “균형을 이룬 국토, 녹색국토, 개방된 국토 및 통일된 국토”로 정리할 수 있다. 균형을 이룬 국토 는 지역통합과 각 지역별 지방 정체성을 증진하려는 노력을 통한 균형 잡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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