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제도는 시행된 지 1,000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면서 동아시아 국 가들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똑똑한 인재들이 평생 과거 시험 에만 매달린 결과, 수많은 실패자를 양산해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떨어 뜨렸다. 게다가 시험 내용은 현실의 문제를 푸는 데 큰 도움이 안 됐고, 학문 연구가 과거시험에 얽매이면서 실용적인 과학기술의 발달은 상대 적으로 정체됐다. 과거시험을 통과한 문관들은 대체로 창의성이 부족 하고 기술자를 천시했으며 문약에 빠지는 경향이 강했다.
역사학자 라이샤워E. O. Reischauer는 과거제를 시행하지 않은 일본은 평 민의 지위 상승이 불가능했기에 장인정신이 발달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에 과거제도를 채택한 중국과 한국은 모두 지위 상승을 지향하는 사회 여서 구체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지식과 기술의 축적이 어려웠다고 주장 했다. 이러한 해석이 학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제가 근대화에 미친 영향을 이해하는 데 일정 부분 유효하다. 자녀를 키우는 집마다 대학입시를 위한 준비교육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교육풍
토는 모두가 지위 상승에 매달리는 과거제 사회의 프레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과거제는 예술과 상공업의 천시, 시험과 관련 없는 다양한 사 상, 학문의 발달을 저해했다.
과거제를 통해서 확고해진 문관 위주의 통치 시스템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에 도입된 고시제도와 공직 문화에 적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 했다. 주로 법률 지식을 시험하는 고시제도는 인문학적 소양을 중시하 는 과거제의 폐해도 그대로 물려받았다. 고시제는 과학기술을 이해하 고 전문성을 갖춘 관리를 선발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사람의 여러 능 력을 한 가지 잣대로 평가해서 서열을 매기는 악습도 과거제가 남긴 부 작용이다. 문과의 최종 합격자는 33명으로, 과거제는 극소수의 합격자 를 제외한 나머지 시험 응시자 수만 명을 평생 별다른 실용적 기술이나 지식을 익히지 못한 낙오자로 만들었다. 필기시험 성적에 따라 극소수 의 승자독식을 강요하는 시스템은 오늘날 고시촌에서도 동일하게 반복 된다. 국가시험 합격자를 축하하는 현수막을 거는 것은 어사화를 꽂은 장원 급제자에게 사회적 존경을 강요하던 풍습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4 현대와 왕조시대의 인사제도 비교
오늘날 국가공무원 채용 방식과 왕조시대의 인사제도를 비교해 보면
면<표 2-2> 참조, 흥미로운 유사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 정부의 공무
원 채용은 5급, 7급, 9급 공채와 상위직급의 개방형·공모직위 선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