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자들이 능동적인 해석의 주체로 해석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러한 활동에 대해 동기가 부여된 상태여야 하며 해석 활동 과정 에서 마주치는 어려움에 대해 극복하고자 하는 문제의식과 해결능력이 활성화된 상태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계속해서 주체 없는 해설의 전달과 학습만이 반복될 뿐이다. 따라서 해석 활동의 활성화 단계는 학 습자가 실제로 자신만의 해석 활동을 시작해나가는 출발점이자 대상 텍 스트와의 유효한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는 학습자들은 대개 자신 앞에 놓인 소설 텍스트를 의미 있는 해석적 과제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자신을 한 명의 주체적이고 독창적인 해석자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전자에 대해서는 대상 텍스트에 대해 나름의 해석적 과제를 탐
멘델의 과학적 사고과정 적용」, 『영재교육연구』 21-4, 한국영재학회, 2011.
구하도록 하는 방법이 요구되고, 후자에 대해서는 해설의 반복에서 벗어 나 독창적인 해석 가설을 수립하도록 하는 방법이 요구된다.
가) 기점 형성을 통한 해석적 과제 부여
고등학생 독자군의 해석텍스트에서 가장 빈번하게 확인할 수 있는 해 석의 유형은 연상의 프로토콜 형(70.5%)과 다이제스트 형(14.4%)이었다.
해석 행위를 텍스트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떠오르는 대로 나열하거나 텍 스트를 단순히 요약하는 행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텍스트에 대한 반응을 진솔하게 늘어놓거나 소설의 스토리를 나름대로 추려보는 행위는 텍스트와의 교류를 시도하려는 노력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연상이나 요약을 통해 해석적 과제를 찾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해석을 수행해야 할 당위성이나 해석 과정에서 마주치는 어려움 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발생하지 못한다. 그래서 문제 중심 학습법 (Problem-based learning)에서는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보다 과제를 발견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과제 발견의 과정이 생략된 채 단 순히 소설의 스토리 층위에 대한 요약만 수행하고 있는 아래 해석텍스트 의 예를 살펴보자.
‘나’는 어느 날 아내가 몸을 파는 현장을 목격하고 이튿날 감기에 걸린다.
아내가 준 약을 받아먹고 한 달쯤 지내던 ‘나’는 그 약이 최면약이라는걸 깨닫는다. 화가 나서 외출한 ‘나’는 홧김에 최면약을 모두 먹어버리고 온전 치 못한 정신으로 집에 돌아와서 아내가 손님을 받는 것을 또 목격한다. 아 내는 ‘나’에게 화를 냈고, 아내 몰래 밖으로 도망친 ‘나’는 정처 없이 떠돌다 미스꼬시 옥상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는 몸을 던진다.<날개-H2-S-F-8>
<날개-H2-S-F-8>이 예시하듯 고등학생 독자들은 대상 텍스트를 단 순히 요약하는 수준에서 해석을 종결하며 특정한 해석적 과제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이처럼 동기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교사가 해석적 과
제를 제시한다 해도 그것에 대한 해결의 의지를 금방 거두어버릴 가능성 이 농후하다. 따라서 능동적인 해석 활동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일단 텍 스트라는 대상을 탐구하고자 하는 학습자의 동기를 촉진시킬 수 있는 장 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해석적 과제의 해결에는 해석에 동원할 지식 뿐 만 아니라 과제에 대한 집착력과 해결 의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학습자들이 텍스트에서 자신만의 해석적 과제를 찾아 낼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대학생 독자군과 전문독자군이 대상텍스트에서 해석적 과제를 도출해내는 과정과 전략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다음의 해석텍스트를 살펴보자.
도대체 그가 왜 그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지 알 수가 없고 답답해 서 책장을 넘기고 싶지 않기도 하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약간 정신이 이상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읽을수록 그는 내가 생각한 정신병자가 아니라 이상이 말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었고, 그 당시 우리 민족의 모습이었 다. <날개> 속 ‘나’라는 인물에 대해서 해석해보자면, 일단 “나는 내 좀 축 축한 이불 속에서 참 여러 가지 발명도 하였고 논문도 많이 썼다. 시도 많 이 지었다.”라는 구절을 통해 그는 지식인이자 문학을 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내가 제법 한 사람의 사회인의 자격으로 일을 해 보는 것도 아내에 게 사설 듣는 것도” 성가시다고 하면서 “나는 가장 게으른 동물처럼 게으 른 것이 좋았다. 될 수만 있으면 이 무의미한 인간의 탈을 벗어 버리고도 싶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싶 지 않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왜 ‘박제’된 것일까. 그는 왜 아내가 주는 밥이나 먹고 아내가 주는 은화는 받으면 좋아하면서도 그 것을 무엇에 쓰는지도 모르는 등 돈에 대한 경제적 개념이 없고 기능을 못 하는 상태로 저렇게 살아가게 된 것일까. 이러한 ‘나’의 모습은 저 한 개인 의 성격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를 그렇게 만든 사회적 현실이 존재한다.<날 개-U-S-F-52>
위의 해석텍스트 <날개-U-S-F-52>의 경우 처음에는 ‘나’가 하는 행 동들에 대해 이상함을 느꼈으며, 때로는 해석을 진행하고 싶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이러한 이상함은 ‘나’의 과거나 심리 등이 구체적으로 서사화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증폭된다. 하지만 독자는 해석을 중지하는 대신 텍스트내적 근거를 통해 공백으로 남아 있던 ‘나’의 과거와 직업, 심리를 하나하나 추론해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추론은 마침내 ‘나’를 이 상하게 박제시켰던 당대 현실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간다.
고등학생 독자들이 작중 ‘나’의 이상함이 이해할 수 없는 ‘틈’이라는 점 을 호소하는데 그치는 반면 대학생 독자들은 이러한 ‘틈’ 메우기의 어려 움을 토로하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과제로 인식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텍 스트 내에서 찾으려 시도한다.
기실 소설 <날개>에서는 ‘나’의 행동이 나열될 뿐 왜 ‘나’가 그토록 유 아적이고 비사회적인 모습으로 행동하게 되었는지, 그러한 ‘나’와 아내가 어떻게 비정상적인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결말에서 ‘나’가 구체 적으로 어떤 행위를 결단하는지 등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 한 서사적 공백을 ‘틈’이라 명명할 수 있는데 틈은 크든 작든, 모든 서사 에 나타나는 필연적인 공백을 뜻한다. 이 틈은 답변되어야 하는 질문들 이 발생하는 장소이므로 독자들은 자신들의 경험이나 상상력으로 그 공 백을 채우도록 요구받는다.134)
모든 서사에는 이러한 틈이 존재하며 이 틈은 독자마다 상이할 수 있 다. 즉 어떠한 공백을 틈이 아닌 것으로 읽느냐, 틈으로 읽느냐에 따라 서사 해석의 방향과 결과가 달라진다. 따라서 어떠한 틈을 발견하여 해 석적 과제로 인식하고 그것을 얼마나 치열하게 채워가느냐에 따라 서사 의 역동성은 독자마다 다르게 구현된다.
한편 전문가 독자군은 이러한 틈 중에서도 비평적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요소, 즉 기점(基點, crux)을 찾아 그것을 해석적 과제로 명시하 는 경향을 보인다. 기점은 문제나 쟁점의 가장 중요하고도 곤란한 부분 을 의미하는 단어인 까닭에 등반의 과정 중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지점 을 비유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애벗은 이를 서사학 용어로 전용 하여 비평적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작품의 구성 요소이자, 이를 어 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작품 전체의 해석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134) H. P. Abbott, 『서사학강의』, 우찬제 외 역, 문학과지성사, 2010, p.462.
결정적 장소(topos)를 지시하고자 한다.135)
이처럼 소설텍스트의 애매모호함을 견디고 해석의 기점들을 능동적으 로 찾아 의미 주제로 통합해내는 활동은 의미론적 해석의 결정적인 출발 점이다. 해석능력 성장은 현대소설의 의미론적 미결정성을 생산적인 해 석의 동력으로 전환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처럼 독자를 숙련 된 해석자로 이끄는 결정적인 단계가 바로 틈과 기점의 발견이라는 점에 서 기점 형성을 통한 해석적 과제 부여는 해석 활동의 활성화를 위한 방 법으로 제안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과정을 안내하고 조정하는 조력자로서 교사는 전문독자들 이 <날개>의 서사적 틈을 어떻게 상이하게 기점화하고 해석적 과제로 삼는지를 분석하여 학습자들에게 일종의 비계(scaffolding)로 제공할 수 있다. 가령 소설 <날개>에서 아내의 직업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다. 서술자가 수행하는 ‘모르는 척’의 진술 기법 역시 이러한 모호성을 증폭시킨다. 그래서 많은 전문독자들은 아내의 직업과 정체를 주요한 서 사적 기점이자 해석적 과제로 삼고, ‘아내’라는 인물의 작품내적 기능을 해석하는데 주력한다. 물론 아내가 밤에 단장을 한다든지, 내객에게 안겨 방으로 들어간다든지, 남편에게 자정 전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명령한 다든지 하는 등의 텍스트내적 증거를 조합해서 아내의 직업에 대한 추론 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추론의 방향이 상당히 열려 있는 것 도 사실이다. 이러한 열림은 역으로 아내의 진짜 직업이 이 소설을 해석 해내는 결정적 기점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잘 예시하는 아래의 전문독자 해석텍스트를 살펴보자.
이 소설의 화자는 ‘나’라는 지식인이다. 그는 도시의 병리를 대표하는 매춘 부인 아내와 기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무런 희망도 비판적 자각도 없는 무기력한 주인공이 좁은 방으로 표상되는 비정상적인 삶으로부터 탈 출하고자 하는 욕망이 이 소설의 주제를 형성하고 있다.<날개-C-M-3>
<날개>의 중심 서사가 훈육적 신체의 질서에서 소외되어 오로지 소모의 135) 위의책, p.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