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이해는 항상 타자에 대한 이해를 경유하며 이루어진다는 리쾨르 해석학의 테제는 본고를 비롯한 많은 해석교육 담론에서 공준되어 왔다.
리쾨르 철학은 상징 해석학부터 텍스트 해석학, 말년의 윤리학 논의까지 매우 유장한 흐름을 갖고 변모하여 왔지만, 그러한 흐름 속에서 그가 줄 곧 견지해온 입장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바로 인간은 자기 이해 를 위해 더 이상 직접적인 명증성에 의존할 수 없으며, 진정한 자기 이 해는 “그 자신을 대상화해주는 표현물, 행위들, 작품들, 제도들, 기념물들 을 통해 매개”41)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텍스트 해석이 자기 이해로 나아가고 새롭게 이해된 자기를 통 해 다시 텍스트 해석의 지평을 넓혀가는 선순환의 과정을 실천적으로 전 개해나가기란 지난한 일이다. 일회적인 해석의 경험을 통해 이러한 선순 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자기 이해라는 추상적 목표의 도달 여부 역시 쉽게 측정가능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문학교육은 ‘자기 이해’라는 키워드에 큰 관심을 가져왔다. 문학 교육은 학습자의 인간적 성장이라는 교육적 기획 안에서 그 공적 지위를 확보해왔기 때문에 문학 해석 경험이 제공할 수 있는 자기 이해의 가능 성은 그 자체로 문학교육의 교육적 의의를 담보해주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리쾨르 해석학에 대한 문학교육 연구공동체의 지속적 관심 역시 여기에 기인한 바 크다.
40) 우정호, 『수학 학습-지도 원리와 방법』,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41) P. Ricœur, 『해석에 대하여: 프로이트에 관한 시론』, 김동규, 박준영 역, 인간사랑, 2013.
그렇다면 텍스트를 타당하게 해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경험과 자기를 심도 있게 이해하는 철학적 경험이 어떻게 병행될 수 있는가? 그것은 문 학 해석, 특히 현대소설 해석이 가진 자기교육적 속성 때문이다. 현대소 설이 지닌 복잡한 담론적 특성과 가치갈등의 플롯, 언어적으로 형상화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삶을 자세히 읽어나가며(close reading) 텍스트의 의미를 구성적으로 해석해가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자기 성찰의 경험 역 시 동반한다. 가치판단 없는 해석은 없으며, 따라서 해석은 곧 판단하는 주체로서 자기 자신을 재인하고 성찰하는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도구화된 성찰이 아니라, 타자성의 경험을 경유한 성찰이라는 점 이 중요하다. 도구화된 근대적 성찰성의 주체는 현실과의 생생한 접촉을 상실하고 ‘관념적 허공’을 부유하는 데서 멈출 소지가 높다.42) 이러한 한 계를 돌파하기 위해 텍스트라는 타자에 대한 경청과 체험을 통해 성찰의 진정성을 도모할 필요성이 도출된다.
그래서 리쾨르는 자기 이해의 길을 무한히 열어주는 텍스트 중에서도 서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서사가 열어주는 텍스트세계는 상상의 변 주를 통한 의미론적 혁신을 가능케 한다.43) 그리고 이러한 의미론적 혁 신의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텍스트 앞에 선 해석자는 무(無)의 지점에 서 온 존재가 아니다. 그에게는 기존의 자아와 그 자아를 둘러싼 맥락이 있다. 텍스트와의 접촉은 일상적 경험 속에서는 쉽게 인지되거나 벗어나 기 어려운 이 맥락으로부터의 거리두기를 허락한다. 여기서 자아의 편협 한 현실인식이나 이데올로기를 성찰할 수 있는 거리 역시 발생한다. 텍 스트세계에 대한 경청을 통해 해석자는 기존의 편견으로 텍스트를 주무 르기보다는, 텍스트가 열어주는 세계 앞에서 자기를 갱신한다.44)
따라서 소설 해석이 감상이나 수용과 같은 종합적 체험과 대별되는, 다분히 인지적인 텍스트 분석 작업이라는 오해를 불식할 필요가 있다.
42) 김홍중, 「근대적 성찰성의 풍경과 성찰적 주체의 알레고리」, 『한국사회학』 41-3, 한국사 회학회, 2007, p.195.
43) 이재호, 「해석학에서의 자기 이해의 문제」, 『윤리철학교육』 9, 윤리철학교육학회, 2008, p.178.
44) 양명수, 「폴 리쾨르의 해석학과 여성신학」, 『신학 사상』 149, 한국신학연구소, 2010, p,176.
해석은 기계적 작업이 아니며 해석자의 자기갱신을 동반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해석의 본질을 구현할 수 있는 해석교육의 방 법을 마련하는 것이 현대소설 해석교육의 주요한 과제로 대두된다.
전술했듯 소설 해석은 해석자 자신이 특정한 텍스트와 어떤 방식으로 조우하고 있으며, 텍스트세계45) ‘앞’에 선 자신의 자세를 어떻게 가다듬 을지에 대한 자기모니터링 능력을 요구한다. 청소년기는 이러한 자기모 니터링 능력과 제3자적 자기의식의 능력이 싹트는 시기이자 자기 이해의 요구를 절실하게 느끼는 시기이기도 하다. 박아청(1998)에 따르면 청소 년기에는 자기 대상화의 방식 중 3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① 자기의식이 전적으로 결여된 상태 : 영유아기, 수면 등
② 자기몰두식 자아의식을 가진 상태 : 유아기, 아동기 그리고 성인의 경우 에는 무엇인가 몰두하고 있는 경우 등
③ 제3자적 자기의식을 가진 상태 : 청소년기 이후 특히 자성(自省), 번민, 자기통찰 등46)
이처럼 청소년기는 자기 자신을 마치 타자처럼 볼 수 있는 능력을 갖 게 되는 시기이자 이러한 능력을 통해 진정한 자기 이해에 도달할 것을 요청받는 시기이다. 그런 까닭에 텍스트라는 타자를 통한, 현재적 ‘나’의 성찰과 대자적 ‘나’의 형성이 강하게 요청된다. 이처럼 텍스트의 해석을 통해 해석자가 현재적 ‘나’를 반성하고 대자적 ‘나’를 기획하는 양방향의 움직임을 경험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텍스트를 통한 자기 교육의 과정이 다. 이 과정이 갖는 교육적 힘에 주목하고 그러한 힘을 더욱 극대화시킬 수 있는 해석교육의 설계가 요청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그동안 해석교 육에서 도외시되어 왔던 해석 주체의 성찰을 유도하여 텍스트 이해와 자 기 이해가 순환될 수 있는 방향으로 해석교육을 설계하고자 한다.
45) 텍스트의 의미론적 자율성으로 인해 텍스트의 의미는 특정한 사실이나 저자의 의도로 귀결되 지 않고 독자에게 어떤 가능한 세계의 영역들을 열어 젖혀주는데, 이를 리쾨르는 ‘텍스트세계’
라 명명한다. P. Ricoeur, 『시간과 이야기』 1, 김한식, 이경래 역, 문학과지성사, 1999, p.174.
46) 박아청, 『자기의 탐색』, 교육과학사,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