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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숭동 주변 대학가가 현재와 같은 문화·예술 공간으로 본격적으로 구 축되기 시작한 시점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이 공간으로 이주한 1976년 이후부터이다. 지금도 남아있는 문예진흥원 청사(경성제국대학 본관-서 울대 본부)가 현재까지 보존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서울대 이주 후 본관이 헐리던 것을 문예진흥원이 중간에 중지시키고 이전을 해왔기 때 문이다. 문예진흥원의 이주로 인해 마로니에공원 주변으로 구축된 문화·

예술 공간은 다양한 문화활동이 응집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러 한 공간 재현은 대학로를 놓고 보면 정부 차원의 공공재원을 조성함으로 써 예술인들이 공공무대라는 공간에서 작품을 공연하고, 전시할 수 있는 주요한 계기를 조성하였다. 또한 지금의 마로니에공원에 문예진흥 지원 의 주요한 공적 주체가 자리하게 됨으로써 동숭동 주변 대학가는 국가 차원의 문화예술 지원의 주요 거점이라는 상징성 또한 획득하였다. 새롭 게 구축된 문화 건축물은 개체로서의 의미를 지닐 뿐만 아니라 문화 콤 플렉스의 조성을 통해 도시공간을 장소의 집합체로 만드는 역할을 부여 받았다. 이제 새롭게 구축된 마로니에 공간은 특정 대학의 구성원들이

점유하던 제한된 공간으로부터 개방된 도시의 공공공간으로 확장되며, 도시맥락 안에서 의미를 획득함과 동시에 주변의 도시공간에도 영향을 미 치게 된다.

(1)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이주 배경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은 우리나라 문화예술 지 원의 역사에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왔 다. 문예진흥원은 「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1972. 8.14)되면서 본격적 인 문화예술지원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중추기관으로 설립되었다. 이 법은 문화예술진흥을 위한 근거법으로서 문화예술진흥 사업과 활동을 지 원하는 실질적인 정책적 지원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법에서는 한국문 화예술진흥원의 설립을 명시하고 있는데, 제6조 제2항을 보면 “진흥원은 법인으로 하되 이 법에 규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민법 중 재단법인에 관 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그 성격을 명확히 했고, 제6조 제3항에서는 “진 흥원의 설립에 필요한 자금과 진흥원의 사업이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을 조성하기 위하여 진흥원에 문화예술진흥기금을 설치 운용한다”고 밝히고 있다.145) 문예진흥원은 1973년 6월 22일에 문화공보부장관으로부 터 문예진흥기금 조성을 위한 모금을 승인받아 7월 11일부터 당시 전국 극장 627개에서 기금 모금을 시작하였다. 이후 1973년 10월 11에 공식개 원 현판식을 거행하였으며, 10월 18일에 「문예중흥선언문」을 채택하고 1차 문예중흥5개년계획 사업안을 통과시킴으로써 1974년부터 활동을 시 작했다.146) 문예진흥원은 설립 당시 전국에서 거의 유일한 문화예술 지

145) 제4공화국(1972.10-1981.3) 기간 동안에는 문화공보부 내에서 문화부 예산비율이 3공화국의 2 배에 이르는 수준으로 증가하였다. 3공화국 말기인 1972년 8월에는 문예진흥의 모법인 문화 예술진흥법(법률 제2337호)이 제정, 4공화국에 이르러 각종 제도가 전격 실시되었다. 4공화국 의 문화정책은 ‘문예중흥5개년계획’(1974-78)으로 대표되는데, 이 시기 각종 사업은 문예진흥 기반 조성사업과 문화유산 전승‧계발사업, 예술창작 지원사업, 문화예술국제교류사업의 네 가 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146)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원 32년사』(2008), pp. 3-4. 박정희 정부는 1972년 8월 14일 에 문화예술진흥법을 제정하고 1974년부터 1978년까지 제1차 문예중흥5개년계획을 수립하였 으며, 1974-1978년간의 제1차 문예중흥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착수하게 된다. 특히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의 제정과 문화예술진흥원 설립은 실질적인 문화정책의 출발이 되었다. 박광 무, 『한국 문화정책의 변동에 관한 연구: 정책기조와 핵심정책을 중심으로』(박사학위논문,

원기관으로 출범했으며,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한국공연예술센터, 국립예 술자료원 등이 이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 점에서 문예진흥원은 우리 나라 문화예술조직의 뿌리기관이자 문화예술 공적 지원의 역사를 대변하 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147)

문예진흥원은 처음에는 신문로 교육회관에서 임시사무소를 사용하다가 1973년 9월 22일에 중앙 장충동 2가 국악고등학교 안에 청사를 마련하였 고, 이어 종로구 한국일보 사옥, 출판문화회관을 거쳐 1976년 10월에 종 로구 동숭동 소재의 서울대 부지와 본관건물을 확보하고 근거지를 옮겨 왔다. 그러나 이렇게 근거지를 옮긴 것이 단순히 서울대의 이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사상계』 출신 원로 문화예술경 영인 이종인의 회고에 따르면 1976년 당시 문예진흥원 사무총장이었던 최창봉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전한다. 이 두 사람은 당시 앞으로 문예진 흥원을 잘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해서 청사부터 설립하기로 했다. 이 시 기는 마침 동숭동 서울대 본관이 막 헐리고 있을 때인데 중간에 이를 중 지시키고 그 건물로 문예진흥원을 이전했다. 이미 건물의 한쪽 벽은 헐 려버린 상태에서 개보수를 했기 때문에 현재 ‘예술가의 집’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 건물의 한쪽 벽은 건물의 다른 몸체와 다르다.148)

이처럼 동숭동 주변 대학가를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구축하는 데에는 동숭동 일대를 예술촌, 문화마을로 만들고자 했던 문예진흥원의 선구적 움직임이 있었다. 문예진흥원은 문화‧예술의 대중화를 위해 주요 문화시 설을 직접 설립하고 운영하면서 다양한 지원활동을 펼쳤는데, 특히 1979 년에 미술회관(현 아르코미술관) 개관, 1981년에 문예회관(현 아르코예술 극장) 개관 등의 전시시설 및 공연시설을 건립하면서 본격적인 대학로 도약기를 열게 되었다.149)

제5공화국 시기인 1980년대 이후 전국적인 문화시설 건립 붐이 일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공연장‧전시장 등의 문화기반시설이 크게 부족한 상

성균관대학교, 2009), p. 111.

147)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40년지원정책연구(40년사)』(2013), p. 15.

148) 양효석, 「한국현대예술경영의흐름⑥ 이종인, 예술경영, 예술행정을 넘나들며 새로운 문화지 식체계를 개척하다」, 『예술경영@위클리웹진』 제112호(2011. 1.20).

149)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3(주 147), p. 32.

황이었다. 사실 1970년대 정부수립 이후 처음으로 정부는 장기문화정책 (제1차 문예중흥5개년계획)을 추진하고 1973년에 문예진흥사업을 재정적 으로 뒷받침할 재단법인 문예진흥원을 설립함으로써 제도적인 기반을 구 축하였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문화정책이 탄력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1983년에 제5차 사회발전 5개년 수정계획에 이르고서야 경제계획에 문화 부문 계획이 처음으로 반영되었다. 특히 5공화국에 와서는 국민의 문화 향수권이 새로운 중요 정책목표로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 에서 문예진흥원에 부속된 문화시설은 저렴한 대관료를 통해 예술계에 대한 간접 지원의 역할을 수행했고, 관련사업을 직접 추진함으로써 미술 분야 및 음악, 무용, 연극 등 각 공연예술분야를 진흥시키는 대표적인 공 공기관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150)

(2)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주요사업

문예진흥원은 문예진흥기금을 운용하면서 본격적으로 공공문화예술 정 책 및 사업을 개시하게 되고, 이에 따라 동숭동 주변 대학가는 공공문화 정책의 중심 거점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당시 문예진흥원은 전국 단위뿐 아니라 시‧도나 지역 문화재단에서 지원하고 있는 지역 내 문화예술행사 까지 지원대상 범위에 포함하고 있었다. 1970년대 시작된 공적 지원에 의한 문화예술진흥사업은 1980년대 들어 기금 조성액이 증가하고 지원분 야가 체계화되면서 점차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였다. 특히 1980년대 후 반 아시안게임, 서울올림픽 개최 등 국내 체육행사의 개최와 민주화의 열기가 어우러지면서 문화분야의 전반적인 활성화가 이루어졌다. 이 시 기 문예진흥원은 장르별 예술창작지원제도 구축, 주요 국가 예술행사의 민간자율화, 영화산업 육성을 위한 집중지원, 문화의 접근성 확대를 위한 전국적인 문화시설 확충, 지역문화 활성화, 국제문화교류의 발판 마련 등 나름의 중요한 성과를 이어갔다.151)

대학로 문화공간이 조성되는 초기에 지금의 마로니에공원에 들어선 문 예진흥원은 상업성을 배제한 ‘순수예술’을 지원하는 공간이자 공공문화예

150) 위의 책, p. 18.

151) 위의 책, p. 91.

술정책의 중심기관으로서 그 지위와 상징성을 확립해나갔다. 기본적인 틀에서 문예진흥기금이 집행되었던 사업구조를 보면 1970년대부터 예술 창작활동지원, 국제문화교류활동지원, 문화향수지원, 조사연구 및 교육, 문화예술진흥기금 조성 및 운영, 문화예술공간 운영 등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주요 역점사업으로 <예술창작활동지원>은 문 예진흥원의 설립목적이기도 하며, 초창기부터 일관되게 강조되어 온 분 야이다. 이 사업은 문화, 미술, 사진, 건축, 공연예술, 전통예술, 음반, 영 화, 출판 등 문화‧예술 각 분야에 걸쳐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창작 지원 및 각종 시상제도 시행, 각종 발간사업 지원 등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문화향수지원사업>은 문화촉매활동, 청소년 문화활동, 문화복지 지원을 비롯해 넓게는 지역문화 지원까지도 포함하는 국민문화권 신장을 위한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문화향수지원사업은 ‘마로니에전국여성 백일장개최’, ‘공연예술순회활동및순회전시지원’, ‘문화예술사회교육활동지 원’, ‘청소년문화지원’ 등 4개 부문이 진행되었다.152) 이외에도 대표적인 사업으로서 1979년에 처음 시작된 <문화예술강좌>는 사회교육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1980년대 이후 더욱 활성화되었다. 각 대학교에 비슷한 강좌가 개설되고 다른 교육기관이 관련 커리큘럼을 개설해도 이에 대한 수요는 계속적으로 증가해 문화예술인력의 재교육 및 전문화에 기여했 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적으로 활성화된 사업으로는 문화예술 사회교 육활동 지원, 공연예술순회활동 및 미술전시 지원, 문화의 달 행사 지원, 이 달의 문화인물행사 지원, 장애인 문화향수권 신장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주요기능에 맞추어 다양한 사업이 추진되면서 지난 시대적 상황 에 따라 관련사업은 부분적으로 강조분야가 변화되었다.153)

이처럼 문예진흥원은 국가 문예정책의 기본방향과 정합성을 유지하면 서 예술진흥, 문화복지, 국제문화교류, 예술기반조성, 영상문화산업 등 다 양한 형태로 문예진흥기금사업을 수행해왔다. 특히 1970년대 말과 1980 년대 초 당시 공연장·전시장이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문예진흥원은 산하 에 3개의 문화시설을 건립하여 상당기간 예술인과 예술단체에 대한 간접

15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원 32년사』(2008), p. 6.

153) 위의 책, p.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