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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회관은 문예진흥원 소속의 전시공간으로, 1974년에 관훈동 구 덕 수병원 건물을 임차하여 처음 운영을 시작하였고, 1979년 5월에 동숭동 마로니에공원 내 대지 1,372㎡(415평), 연건평 2,926㎡(885평)의 건물을 준공해 현재의 미술회관을 재개관(1979. 5. 21)하였다. 미술회관은 당시 대형 전시공간이 부족하던 시기에 전시규모에 따라 2-5개로 공간을 조 정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가변형 대형 전시장(140평)을 갖추고, 크고 작 은 소그룹 단체들과 실험성을 갖춘 젊은작가에게 저렴한 대관료로 작품 발표의 문호를 열어주는 등 지원활동을 펼쳤다. 이와 함께 자체 특별기 획전을 개최하고 미술인들의 학술기회도 마련하였다.155) 한편, 문예진흥 원은 야외 조각전시 등 문화공간으로서의 상징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자

154) 위의 책, pp. 45-46.

155)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 『1974-2014 아르코미술관: 40년 전시의 기록』(아르코미 술관, 2015), p. 11.

마로니에 조각공원을 조성하였다.

1979년 이전부터 문예진흥원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전개된 미술사업을 살펴보면 1974년부터 시작된 미술 전시활동 지원(‘74-’01)을 비롯해서

『문예연감』, 『문예총감』, 『문예연표』 등 미술전문지 및 자료발간 지원사업, 대한민국미술대전 등 4대 미술행사 지원(‘82-’01)이 추진되어 1990년대 후반까지 약 20년 이상 지속되었다.156) 특히 1977년도에는 약 칭 ‘국전’이라 불린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49년 문교부 창설운영)가 1980년대 들어 운영상의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운영주관도 1982년 제29회부터 문화공보부에서 문예진흥원으로 이관되 면서 ‘국전’이 해체되고 이른바 ‘대한민국미술대전’이라는 새로운 명칭으 로 변경되었다. 이 같은 운영주체와 지원방식의 변화를 맞이한 가운데 대한민국미술대전은 1986년부터 운영주체가 한국미술협회로 재차 이관됨 으로써 현재까지도 문예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 아래 추 진되고 있다. 1986년의 경우 ‘86 서울 아시아 현대미술전’이 서울 아시안 게임 기념으로 개최되었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이 한국미협이 주관하는 민전형식으로 바뀌면서 첫 전시회가 열리게 되었다.157) 1980년대 미술회 관의 대관일수를 보면 총 2,721일로 연평균 272.1일이었고, 대관 건수는 단체 467건, 개인 240건으로 총 707건(연평균 70.7건)이었다. 10년간 미 술회관의 전시 관람객수는 163만 7,842명으로서 이 수치는 연평균 16만 3,784명에 해당하는 인원이다. 특히 1980년대 초에는 전시 관람객이 10만 명 내외에서 1980년대 20만 명대로 2배 이상 증가하였다. 1990년대의 10 년간 미술회관의 대관일수는 총 2,572일로 연평균 257.2일 동안 전시회가 열렸던 것으로 나타났다.158) 요컨대, 미술회관이 추진했던 사업은 자체기 획전을 비롯해서 대관, 미술분야에 대한 조사‧연구, 미술작품 소장·관리,

156) 미술전문지 및 자료발간은 이 밖에도 70-80년대에 『각국의 문화정책』(14책), 『문화예술총 서』(14권), 『공연예술총서』(8권), 『한국의 문화공간』(4권) 등 발간사업이 이어졌다. 예술 위원회가 직접 발행했던 연속발간물로는 월간 『문화예술』이 있다. 1974년 월보 『문예진 흥』이라는 제호로 창간한 『문화예술』은 문화예술분야 최장수 종합전문지였다. 한국문화예 술위원회, 2013(주 147), p. 83.

157) 안현주, 「대학로 100번지 - 미술관에 대한 단상」, 『미술관 이야기 - 대학로 100번지』 (한 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 2009), p. 40.

158) 위의 책, pp. 154-55.

마로니에 조각공원 조성, 한국미술 소개자료 해외 배포 등이었다. 이와 함께 미술인들의 창작역량의 증진과 연구활동의 활성화, 미술인들 간의 상호교류 기회를 제공하는 매개체 역할을 수행하였다. 아울러 그동안 미 술 애호인구의 저변 확대에도 지속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 다.159)

미술회관은 대관 중심으로 운영하되 특히 1990년대 이후에는 기획전도 활발히 개최했다. 1970-80년대의 미술회관은 대관제도를 통해 창작자와 관객을 위한 공적 역할에 좀 더 집중해온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미술회관은 상업화랑 전시대관료의 4분의 1 가격의 저렴한 비용으로 다 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전시를 지원하였다. 그러나 미술회관의 전시공간은 1970-80년대에 주로 일정한 이념적 색채와 목표로 연대했던 젊은 미술인의 활동을 지원해오던 것에서 1990년대 말부터는 기획전시 위주의 공간으로 변모하였다.160) 그 중 대표적인 전시는 1992년부터 매 년 테마를 정해 《현대미술신세대흐름전》을 기획해서 실험적 탐구에 몰 두하는 30대 작가들을 조명하고 중점적으로 지원한 것이었다. 1997년에 는 중견작가 1인을 집중 조명하는 《한국미술기획초대전》을 기획했고, 1998년에는 《지역작가초대전》 또한 신설했다. 미술회관은 1999년 이후

《기획공모전》과 《국제교류전》도 활발히 개최하면서 점차적으로 미술 관의 이미지를 다져나갔다.161)

미술회관은 미술인의 창작의욕을 고무시키고 그 향수층을 넓히자는 취 지 하에 매년 《자체기획전》을 개최하였는데, 1999년부터는 기존 미술 회관의 기획전을 강화해서 기획자와 미술회관의 공동추진사업으로 전환 했다. 이때 미술회관은 기존의 《한국현대미술 신세대 흐름전》과 함께 1998년부터 시작된 지역작가전이 개칭된 《현대미술 중심의 이동전》 등 으로 상설 기획전시를 강화했고, 《한일현대미술전》 등 국제교류전을 마련하였으며, 우수기획자 발굴을 위한 《기획공모전》을 신설하였다. 그

159)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3(주 147), p. 80.

160) 이영주, 「미완(未完)의 프로젝트, <미술을 위한 캐비닛>: 아르코미술관 40년 역사의 아카이 브」, 『1974-2014 아르코미술관: 40년 전시의 기록』,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 2015(주 155), pp. 99-101.

161) 위의 책, p. 226.

리고 현재 《대표작가전》으로 명명되는 당시의 《한국미술기획초대전》

을 통해 나름의 독창적 조형언어를 가진 1인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를 기 획하였다. 1998년부터는 《지역작가초대전》이 추진되어 지역미술의 정 체성 모색에 주력하는 지역의 우수작가를 초대, 지역미술의 특성화를 보 여주는 장 또한 마련하였다. 이를 토대로 1999년부터는 《지역작가초대 전》의 명칭을 《현대미술 중심의 이동전》으로 개칭해 초청작가 수를 확대하는 등 상설 기획전시를 강화하는 한편, 《한일현대미술전》을 비 롯한 3건의 국제교류전을 마련하였다.162) 이와 보조를 맞춰 유능한 기획 자를 발굴함으로써 우수기획전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기획공모전》을 신설, 《반․반 전》, 《예술가들이 만든 책 전》 등 4건의 기획공모전을 개최하였다. 이를 매개로 미술회관은 우수 기획자의 참신한 기획의도를 수용하고 공동주최함으로써 기획전의 다양성을 선보이려는 시도를 하였 다.163)

그간의 미술회관의 역할을 집약적으로 정리한다면 당시 기본사업 외에 도 소장미술작품 관리 및 한국미술소개자료 해외배포 등을 통해 창작역 량의 증진과 연구활동의 활성화에 보다 초점을 두고 있었고, 미술인 상 호교류의 기회를 제공하는 매개체 역할도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