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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의 구조 변경과 이주

1976년에 지금의 대학로로 이전하여 자리 잡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은 2005년 8월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ts Council Korea, 약칭 ARKO)’로

307) 이정훈, 「‘비싸진 대학로’ 소극장 떠나간다」, 『한겨레』, 2007. 9.14.

전환되었다. 위원회 전환의 궁극적인 목적은 현장예술인의 참여를 활성 화시키고 민간이 주도하는 예술지원정책의 수립 및 집행의 자율성과 독 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독임제)의 한국문화예 술위원회(합의제)로의 전환은 1998년 1월 21일에 민예총 문화정책 세미 나에서 처음 제기된 후 논의가 계속된 사항이었다. 그러다 2002년 대선 당시, 예술계 현안사항 중 하나로 대통령 선거 공약사항(‘순수문화예술진 흥기구인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현장 문화예술인 중심의 지원기구로 전 환’)이 되었다.308)

참여정부 출범 후 2003년 4월 8일에 문화관광부 대통령 첫 업무보고에 서 문예진흥원을 현장 문화예술인 중심의 지원기구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보고함으로써 위원회 전환작업이 본격화되었다. 문화관광부는 2003년 4 월 14일에 문화행정혁신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내부에 민간자율추진 TF 를 설치하였다. 민간자율추진 TF팀은 문예진흥위원회의 설립 및 문화예 술지원제도 개선을 위한 부문을 담당하였다. 당시 TF팀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민간위원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는, 기존에 비판을 받아온 문예진흥원의 한계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었다. 일방향적 정책 집행, 예술인과의 협력 부족, 예술지원관련 독자적 인 정책 입안 마련 미흡 등이 그 이유였다. 실제로 1972년에 「문화예술 진흥법」이 제정되면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은 그간의 많은 성과에도 불 구하고 운영의 자율성 한계, 소액다건식 배분으로 인한 기금의 효율적 집행관리 한계, 예술현장의 새로운 요구 대처 미흡 등의 문제점을 지적 받았다. 둘째는, 단기간 동안은 예술위원회 체제의 문제점이 발생하겠지 만 장기적으로는 문화예술정책에 대한 정책 입안을 독자적으로 할 수 있 다는 점에서 현장예술계의 욕구에 능동적으로 대처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셋째는, 현장예술계의 의견 반영이 원활히 이루어질 것이라 는 기대였다. 당시 TF팀은 영화진흥위원회 등 국내사례뿐 아니라 국외 사례로 미국과 영국을 보았고, 이 중에서도 영국 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 이하 ACE)를 중요한 벤치마킹 대상으로 하였다. 특히

308) 위의 책, pp. 292-95.

영국의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에 주목하여 문화관광부가 예술에 관한 기본정책 및 방향을 수립하면 예술위원회가 세부정책을 실 행하는 안을 가지고 있었다.309) 그리고 이 정책안은 참여정부 <새예술정 책>의 중점과제가 되었다. 정부가 2004년 6월에 발표한 예술분야 중장기 비전 및 추진계획인 <새예술정책>을 보면, 민간의 역할 강화뿐 아니라 중앙정부의 감독자 역할에서 조정, 평가, 기획자로 전환되어야 함을 강조 하고 있다.

민예총을 중심으로 한 예술계의 노력으로 「문화예술진흥법개정안」이 2004년 12월 29일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은 2005년 8월 26일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원회)라는 민간위 원회로 전환되었다.310) 개정된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르면 문화예술을 지 원하기 위해 문화예술진흥기금을 설치하고(법 17조), 이를 운용 관리하기 위한 기구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원회)를 규정한다. 기금이 우선하고 기금관리운영 주체로서 위원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예술위원회 는 11인의 문화예술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의 정의에 따르면 문화관광부 산하기관의 지위를 갖으며, 공공기관의 운영 에 관한 법률의 정의에 따라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에 해당된다. 예술위 원회는 「국가재정법」에 의거하여 국고와 동일하게 기금운영계획안의 수립, 기금운용계획의 변경, 결산, 성과관리 등에 문화관광부, 기획예산 처, 재정경제부, 국회, 감사원의 통제를 받으며, 복권기금사용과 관련하여 복권위원회의 심의, 평가를 받는다.

309)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설립: 현장예술인, 예술정책의 중심에 서 다」, 『참여정부 정책보고서』, 2008.

310) 예술위원회 설립과 관련된 근거법은 문화예술진흥법으로 참여정부는 위원회 전환을 위해 본 법의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주된 개정목적은 문예진흥원을 폐지하고 문화예술 등에 관 하여 전문성과 경험이 풍부한 자들로 구성된 예술위를 설치하는 것으로 이는 민간이 주도적 으로 문화예술지원에 대한 실질적인 정책결정원 및 집행권을 행사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문화예술진흥법 개정 정부제출안, 2003.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12년 2012년 예술 창조역량 강화 예술가의 창조역량 강화

새로운 예술세계의 개척

예술가의 창작역 량 강화

예술가의 창조역 량 강화

문화예술교류 활성화 예술의 국제협력 증진 문화예술 매개활동 확대

(지원시설 운영) 예술현장의 자생력 확보 문화예술 공간

운영 문화예술 향수기회 확대

예술의 생활화 예술의 사회적 역 할 확대

생활 속의 예술 활성화 생활 속의 예술 활성화

<표 Ⅳ-14>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의 체제개편311)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체제(1973-2005)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체제(2005-2016현재) 조직기구

미술회관 개관(1979) 아르코자료관 개관(1979) 문예회관 개관(1981) 무대예술연수회관 개관(1992) 예술자료관 이전개관(199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설립(2005) 구로구 구로동으로 본관 이전(2010) ‘예술가의 집’(대학로 본관리모델링)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나주이전(2014) 아르코미술관, 아르코인력개발원이전 제외 기관 설립 및 분리 독립

문화발전연구소의 독립(1984)

▶ 한국문화정책개발원(현 한국문화관광연구 원) 신설독립

예술정보관 분리(2010) 국립예술자료원 신설독립

아르코예술극장 + 대학로예술극장 분리(2010)

▶ 한국공연예술센터 신설독립

예술위원회가 출범하고 8개월 후인 2006년 4월에 예술위원회는 <아르 코비전 2010>을 공표했다. 예술위원회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8대 전략 목표를 제시함에 따라 사업 및 예산 체계도 개편하였다. 예술위원회 출 범 이전과 다른 특징이라면 우리 사회의 시대적 추세에 맞춰 예술의 사 회적 책임을 강조했다는 점이다.312)

<표 Ⅳ-15> 문예진흥기금 사업체계 및 예산편제의 변화(2006-2013)313)

311)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3(주 147), p. 33.

31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8(주 152), p. 317.

313) 위의 책, p. 318.

지역문화 활성화 지역문화예술의 진흥 지역문화예술 진 흥

지역문화예술 진 흥

문화예술 매개활동 확대 (매개활동 지원 및 기반 조성)

예술의 가치 확산

과 보존 예술의 사회적 가치 제고 예술의 사회적

가치 제고

예술위원회는 수십 년 간 미술관(아르코미술관), 공연장(아르코예술극 장), 자료관(예술정보관), 연수원(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을 운영해왔다.

그러나 선택과 집중을 중요시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구조조정 차 원에서 일부 산하시설들을 독립 법인화하게 되었다. 먼저 예술정보관이 2010년 3월에 국립예술자료원으로 독립 재단화하고, 7월에는 아르코예술 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대학로복합공연장)이 독립재단화하여 한국공연예 술센터로 통합되었다. 그 결과 예술위원회는 현재 아르코미술관(종로구 동숭동)과 인사미술공간(종로구 창덕공간), 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고양시 성현로)만 산하시설로 두고, 직접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2000년대 이후 문예진흥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가장 큰 변화라면 합의제 기관으로의 전환과 2014년에 지방(전남 나주)으로의 이전이다. 여기에 모금제도의 폐지, 기금사업 규모의 급격한 확대 또한 진행되었다. 특히 합의제 전환 과 모금제도 폐지는 기존의 재원확보 대책과 의사결정 구조의 전면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예술위원회는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에 따라 2014년에 나주 혁신도시 로의 이전을 앞두고 2010년 5월에 구로동(새말로)의 임시청사로 이전하 면서 대학로 시대를 마감하게 되었다. 그 후 대학로 구 청사는 예술가와 예술인단체, 예술후원 기업인들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예술가의 집’

으로 개방되었다.314)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이전은 그동안 공공문화정책 의 중심지로서 문화·예술 공간의 상징성을 응축하고 있던 대학로가 그 구심력이 약화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314)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3(주 147), pp. 2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