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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 현재 《대표작가전》으로 명명되는 당시의 《한국미술기획초대전》

을 통해 나름의 독창적 조형언어를 가진 1인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를 기 획하였다. 1998년부터는 《지역작가초대전》이 추진되어 지역미술의 정 체성 모색에 주력하는 지역의 우수작가를 초대, 지역미술의 특성화를 보 여주는 장 또한 마련하였다. 이를 토대로 1999년부터는 《지역작가초대 전》의 명칭을 《현대미술 중심의 이동전》으로 개칭해 초청작가 수를 확대하는 등 상설 기획전시를 강화하는 한편, 《한일현대미술전》을 비 롯한 3건의 국제교류전을 마련하였다.162) 이와 보조를 맞춰 유능한 기획 자를 발굴함으로써 우수기획전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기획공모전》을 신설, 《반․반 전》, 《예술가들이 만든 책 전》 등 4건의 기획공모전을 개최하였다. 이를 매개로 미술회관은 우수 기획자의 참신한 기획의도를 수용하고 공동주최함으로써 기획전의 다양성을 선보이려는 시도를 하였 다.163)

그간의 미술회관의 역할을 집약적으로 정리한다면 당시 기본사업 외에 도 소장미술작품 관리 및 한국미술소개자료 해외배포 등을 통해 창작역 량의 증진과 연구활동의 활성화에 보다 초점을 두고 있었고, 미술인 상 호교류의 기회를 제공하는 매개체 역할도 수행하였다.

신세대 작가들의 활약

<한국현대미술 신세대흐름전>은 신진작가 발굴과 지원을 목적으로 기획된 기획전시 시리즈로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신체’, ‘기술’, ‘엔트로피’, ‘믹서앤쥬서’ 등 매년 다른 주제로 현대사회가 직면하는 문제를 다양 한 미술의 각도에서 짚어보고자 했다. 본격적으로 커미셔너가 전시기획에 참여하여 동시대 미술관 큐레이 팅에 대한 다양한 논평이 전개되기도 했다. 이불(1995), 공성훈(1996), 임민욱, 함경아(1999), 양혜규(2002) 등이 <한국현대미술 신세대흐름전>에서 중요한 성장기를 거쳤다.

1 1992.

5.21-6.3

1992 한국현대미술 신세대 흐름전

《인간, 그 얼굴과 역사》

The New Generational Tendency in Korean Contemporary Art, Man, His Face and History

2 1993.

5.21-6.8

1993 한국현대미술 신세대 흐름전

《도시, 그 삶의 공간》

The New Generational Tendency in Korean Contemporary Art, City, The Space of Life

3 1994.

5.20-6.8

1994 한국현대미술 신세대 흐름전

《자연과 대화》

The New Generational Tendency in Korean Contemporary Art, Dialogue with Nature

4 1995.

5.1-6.7

1995 한국현대미술 신세대 흐름전

《신체와 인식》

The New Generational Tendency in Korean Contemporary Art, Korean Contemporary Art, Body & Recognition

5 1996.

12..9-12..20

1996 한국현대미술 신세대 흐름전

《기술과 반기술>

The New Generational Tendency in Korean Contemporary Art, Technology vs. Anti-Technology

6 1995.

5.1-6.7

1995 한국현대미술 신세대 흐름전

《신체와 인식》

The New Generational Tendency in Korean Contemporary Art, Korean Contemporary Art, Body & Recognition

들이 선발한 작가 25명이 참여하였다. 전시회 안팎으로 특정 연령대 작 가들의 감수성과 사유과정을 과도하게 스테레오타입화 하였다는 비판이 없지는 않았지만, “미래의 알지 못할 질서를 새롭게 ‘근대화’하는 여정에 동시대 예술작품을 끌어들이면서 ‘기획전시회’라는 비평적 상황에 미술인 들의 관심을 붙잡게 하는 데”에 기획의도를 두었다고 표명했다.164)

<표 Ⅲ-1> 한국현대미술 《신세대미술전》기획165)

164) 임산, 「‘신세대’ 미술의 발견과 그 성장기: 아르코미술관의 <한국현대미술 신세대흐름 전>(1993-2002)」, 『1974-2014 아르코미술관: 40년 전시의 기록』,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 르코미술관, 2015(주 155), p. 79.

165)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 2015(주 155), pp. 37-49 참조, 연구자 재구성.

7 1996.

12..9-12.20

1996 한국현대미술 신세대 흐름전

《기술과 반기술》

The New Generational Tendency in Korean Contemporary Art, Technology vs. Anti-Technology

8 1997.

9.25-10.15

1997 한국현대미술 신세대 흐름전

《대지와 생태》

The New Generational Tendency in Korean Contemporary Art, Earth & Ecology

9 1998.

6.1-6.15

1998 한국현대미술 신세대 흐름전

《프레임 혹은 시간 - 사진으로부터》

The New Generational Tendency in Korean Contemporary Art, Frame or Time - From Photography

10 1999.

8.13-8.24

1999 한국현대미술 신세대 흐름전

《믹서&쥬서》

The New Generational Tendency in Korean Contemporary Art, Mixer & Juicer

11 2002.

3..22-4.14

2002 한국현대미술 신세대흐럼전

《우리안의 천국》

The New Generational Tendency in Korean Contemporary Art, Paradise Among Us

당시 신세대라는 말이 부상하게 된 이유로는 1990년대 초 새로운 감각 과 감수성, 의식을 가지고 등장한 작가군을 일컫는 상징이었다. 《신세대 전》은 ‘대지’ ‘생태’, ‘기술’, '엔트로피‘ 등 당시 한국문화, 사회적 이슈를 둘러싼 다양한 주제들을 전시내용으로 반영하였는데, 임산은 1990년대를 관통하는 《신세대전》이 우리나라 미술담론에 일종의 기역반응을 일으 켰던 기획이라고 평했다. 이 전시들은 주로 평론가들이 커미셔너가 되어 전시기획에 참여하였는데, 1990년대는 평론가들의 전시기획이 주를 이루 었던 시기였다. 이와 관련해서 당시 관계자에 따르면 아르코미술관(당시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의 경우 90년대 후반 정식으로 큐레이터 제도가 도 입되었기 때문에 정식 제도 도입 전까지 외부의 평론가들을 초빙해서 내 용상 공동기획의 형태를 취하는 과도적 형태의 제도 도입을 시도했다.

이 시기부터 종래 대관중심의 미술관 운영을 탈피하고 기획전 중심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전시가 바로 《한국현대미술 신세대흐름 전》, 《지역작가초대전》, 《대표작가전》이었다. 《신세대전》이나

《대표작가전》의 공통점은 제도권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않거나 조명을 간과한 부분을 재해석하는 노력이었다.166)

166) 위의 책, p. 118.

이처럼 《신세대전》과 함께 이 시기를 대표했던 또 하나의 전시로는

《대표작가전》이 있다. 1997년에 미술회관은 《한국미술기획초대전》을 기획했다. 한국미술의 패러다임 형성에 기여하고, 한국의 조형의식을 세 계적인 조형언어로 승화시킨 중진 이상의 작가 1인을 초대해서 작품세계 를 집중 조명하기 위해서였다. 이 전시회는 미술평론가들의 추천의뢰를 거쳐 작가를 선정하고 단순한 작품전시 외에도 세미나를 통해 작가의 작 품세계를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같이 마련했다. 1997년의 초대작가 는 이승택을 선정하여 <녹의 수난> 등 8점의 실물작품과 120점의 사진 작품을 전시했고, 1998년에는 비디오아트 박현기를 초대하였으며, 1999년 부터는 《대표작가초대전》으로 명칭을 바꿔 《이건용전-논리, 삶, 일 상》과 2000년에는 《김구림, 현존과 흔적》을 각기 전시하였다.167) 2016 년 8월에 아르코미술관에서 기획했던 대표작가전인 《확장하는 선, 서용 선 드로잉》(2016. 8. 23-10. 2)의 작가 서용선은 30여 년 전 당시 미술 회관에서 전시했던 작품 가운데 하나를 이번에 또 다시 선보였다. 그는 1980년대 당시 미술회관을 둘러싸고 조직되기 시작한 동숭동 주변 대학 가의 미술공간을 회고하며 다음과 같이 증거했다.

서용선: 조그만 갤러리가 몇 개 있었지만 제대로 된 현대식 건물이잖아 요(미술회관. 그러니까 엄청나게 기대를 많이 받은 데죠. 그런데도 그 당 시에는 우리나라 미술계 전체가 한 게 아니고 (…) 국가기관인데 이걸 대관을 했어요. 그리고 제가 제 기억에 그때 30만원인가 저도 두 번째 심사를 해갖고 대관을 해주는 거였죠. 뭐 젊은 사람들 전망있는 사람들 심사위원들이 뽑아서 그런데 웬만하면 돼죠. 그때 요기에 지금 전시된 빨간 작품 하나가 그때 걸린, 30년만에 제가 다시 건거에요.

연구자: 그때 미술회관이 생기고 이 주변에 화랑들이 밀집했었나요?

서용선: 화랑들이 많이 생겼었죠. 미술회관이 생겨서 이쪽으로 많이 생 기게 된거죠. 여기는 국가기관이니까 여기에 미술인들이 자꾸 오게되잖 아요. 그래서 한때는 여기가 바탕골미술관, 두손미술관 해갖고 갤러리들 이 여기 쫙 생겼었어요. 인사동보다 이쪽이 더 중심이 된 거죠. 새로운 공간이 된거죠. 인사동은 조그맣고 그냥 고미술같은 게 많았고, 현대적 인, 현대 갤러리들이 자리잡았죠 (…) 이런 게 서울에서 하나의 문화공 167)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8(주 152), p. 565.

간이고 세련된 건축들이 있으면서 미술이라는게 시각문화잖아요. 시각문 화와 접목이 되면서 여기에 중심처럼 자꾸 현대미술 하는 사람들이 전 시장이 생겨났던거죠 (…) 여기가 현대미술 중심같이 형성이 됐었어 요.168)

이외에도 1980년대 미술회관은 전시 역사에서 하나의 일대 ‘사건’이 되 었던 헤프닝이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미술회관에서 전시 개막일 전시가 무산되었던 《현실과 발언 창립전》(1980. 10.17-10.23)이었다. 1980년 10 월에 암울한 군사독재정권 시절 민중미술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미술동 인 《현실과 발언》이 미술회관 지하 전시실에서 창립전을 개최하는 역 사적 전시를 시작하려던 때였다. 그러나 당시 작품의 사회비판적 수위에 놀란 관장은 개막 직전 급작스레 전시 취소를 지시했다. 갑작스런 전시 취소로 참여작가들의 항의가 빗발쳤지만 관장은 운영위원에서 결정된 사 안이라며 단호하게 취소를 진행했다. 당시 전시를 막기위해 전시장의 전 기가 차단되자, 캄캄한 지하에서 개막을 위해 모여있던 작가와 관객 20

∼30명은 급히 초를 사다 촛불로 작품을 비춰가며 관람했던 일화가 남아

있는 사건이었다.169) 《현실과 발언》 동인들이 당시의 미술계의 상황에 대해 가졌던 문제의식과 던졌던 질문은 “참 급박한 시대인데 왜 미술가 들은 사회나 역사나 현실을 외면하는가?”, “그리고 또 특히 대중을 외면 하는가?”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미술회관 전시의 역사는 당시의 정치‧사회, 예술계, 작가, 대중의 복합적인 이해관계와 이념이 한데 얽혀 있는 한 중심에 있었다.

당시 미술회관에서의 전시는 “이 공간을 거치지 않은 현대작가가 없을 만큼 중요한 전시였고, 그곳을 꼭 거쳐가야 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인식 을 했던 곳이었으며, 미술회관을 중심으로 많은 실험적 시도가 이루어졌 다”고 평가된다. “인사동 한번 돌고 사간동 한번 돌고 골인 지점이 미술 회관이었다. 그 미술회관에서 많은 미술인들을 만났다. 종착점이 그곳이 기 때문이었다”.170)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 사이 미술회관을 중

168) 서용선 작가 인터뷰 자료, 장소: 아르코미술관, 일시: 2016. 9.20/ 13:00.

169)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 2015(주 155), pp. 135-37.

170) 위의 책, pp. 15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