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지식국가의 성립이라는 문제에서 식민지 지식인이 차지하는 지위는 매우 독특하다. 식민지의 정치조건 속에서 공공지식을 활용하면서 논쟁을 벌이 는 주체는 소극적(negative) 의미에서 사회의 대표자이다. 동시에, 공공지식에 대 한 그의 논쟁적 재해석은 식민권력이 주목하는 감시의 대상이 된다. 그의 존재 그 자체, 그리고 그가 논쟁을 벌이면서 사회를 표상하는 그 지식장은 권력과 사 회 사이에서 초점화되어 시현(示現)된다. 그는 사회적 소통 속에서 권력과 사회 양자로부터 사회재현의 정당성과 대표성을 승인받은 장소에 자리한다. 그는 사 회를 대표하여 권력을 비판하는 이가 될 수 있는 동시에, 상황에 따라서는 통치
7) 아렌트는 근대 사회의 발생을 그리스적 의미에서의 ‘정치적인 것’의 쇠퇴로 본다. 그는 인간은 ‘노동’하는 존재가 되어버려 더 이상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행위’하지 않는다는 원리가 이 근대 사회의 기초를 이룬다고 보았다. 사회의 발생과 함께 출현한 근대의 경 제학과 통계학 등 ‘우수한 사회과학’은 행위와 사건을 단순한 일탈과 동요로 처리한다.
아렌트에 따르면, 다수의 문제를 취급할 경우 통계의 법칙은 거의 타당하다. 바꿔 말해, 행위와 언어를 강조하는 그리스적 의미의 ‘정치적인 것’은 폴리스가 구성원의 수를 엄격 히 제한할 때에만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현실의 수학적 조작인 통계학은 근대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면서, 그리스인들은 통계학의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회적 현상들, 바꿔 말해 다수, 순응주의, 행동주의, 자동주의 등은 페르시아 문명 의 것으로 구분하고 있었다고 말한다(Arendt, 1958/1996: 93-96). 최정운은 통계의 효과에 대해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중요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최정운은 노동통계가 갖는 공 공지식으로서의 효과를 분석하면서, 그 생산과 활용을 통해 사회주의혁명의 주체들이 사 회민주주의의 개혁적 노선으로 기울어져갔던 역사적 사례를 심도 있게 분석한 바 있다 (최정운, 1991).
제1장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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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성공을 과시하는 권력의 수단이 되어 권력이 요구하는 바를 사회에 확산시 키는 이도 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권력과 사회 양자 사이의 매체(media)라는 점이다.
물론, 식민지 지식인을 이와 같이 재현=대표의 주체로 불러오는 것에 대해 위 화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정치공간 내에 제도화된 사회재현 장치가 없는 식민지의 조건은, 이런 위화감을 누르고 식민지 지식인의 사회재현기능을 제한 적 수준에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적 주장에 최소한의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볼 때, 이 문제는 그렇게 쉽게 넘겨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 은 분명 아니다.
스피박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Can the subaltern speak?, 1988)에서 재 현(representation)에 담긴 표현(re-presentation, 다시 제시하기)과 대표(speaking for;
standing for)의 차이를 의식하지 않는 제1세계 지식인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
다.8) 그는 푸코와 들뢰즈를 사례로 들면서, 이들이 욕망(desire)=권력(power)=이
해관계(interest)의 도식을 가지고 식민지 서발턴 주체를 분석한다고 말한다. 스피
박은 그들이 “서발턴은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안다”는 명제를 전제함으로 써 그들 자신의 위치를 투명화한다고 비판한다. 스피박은 비서구세계에서 벌어 지는 일련의 현상을 포스트구조주의의 급진적 시각에서 해석하는 제1세계 지식 인의 논의에 내포된 일종의 ‘인식소적 폭력’을 고발한다. 스피박에 따르면, 서구 역사 속에서도 대표는 결코 욕망=이해관계의 실현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스피박은 그 사례로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분석한 것, 즉 소작농민들이 자신들의 대표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배반하는) 루이 보나파르트를 선택했던 역사적 사실을 예시했다. 서발턴의 행위를 서구세 계에서 익숙한 ‘이해관계의 인간’이라는 전제에 꿰맞춰 해석하려는 태도는 탈역 사적이고 탈정치적인 해석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그리고 스피박은 이 런 관점에서 구하로 대표되는 인도 서발턴 연구집단의 취지에 공감한다. 주지하 는 바와 같이, 인도민족주의의 역사서술에 대항하는 구하 등의 노력은 식민지배 를 ‘헤게모니 없는 지배’(dominion without hegemony)로 이론화하는 데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Guha, 1982; 1999/2008). 그러나 곧이어 스피박은 구하가 서발턴
8) 정치학에서도 재현(representation)은 중요한 이론적 문제로 취급되고 있다. 이에 관한 본 격적 논의로서는 Pitkin(1967), Shapiro/Stokes/Woode/Kirshner(2010)를 참고.
제3절 이론적 자원
을 본질화시키고 고착화한다고 비판한다. 서발턴은 하나의 주체가 아니라 다중 적 주체라는 것이다. 여기서 스피박은 침묵을 강요받은 ‘말할 수 없는 서발턴’ 으로서 식민지 여성의 문제를 제기한다(Spivak, 1988).
스피박과 구하의 논의 속에서 식민지 지식인은 서발턴의 세계를 대신 말해줄
(speaking for)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구하의 관심은 식민지를 권력과 서발턴의
두 세계가 이질적으로 병존하는 장소로 그려내는 데에 있고, 스피박의 관심은 서발턴이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 존재하는 심각한 장벽들을 의식하면서 그 가능 성을 타진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본 연구가 분석하고자 하는 문제는 이와는 상 당히 다른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둘 필요가 있겠다. 본 연구는 실체적으로 존재하고 따라서 ‘진정성’의 측면에서 규정해야 할 식민지 사회의 대표성을 확 인, 판단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 본 연구 속에서 식민지 지식인의 ‘대표 성’은 식민지 사회로부터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식민권력 측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식민권력의 위기의식과 관 련되며 문제해결의 초점이 되는 영역에서 가시화된다. 식민지 지식인의 발화와 그들이 구성한 의제는, 물론 식민지 사회를 직접 재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 지만, 식민권력이 식민지 사회를 파악하는 데에 가장 요긴한 지표인 것이다. 식 민권력의 입장에서 볼 때 ‘식민지 지식인’이라는 존재는, ‘암흑’ 속에 자리한 식 민지 사회를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재현해주는, 식민지 사회 이해 를 위한 매우 중요한 ‘방법적 매개’인 것이다.
식민지 지식인은 사회를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특정한 이념이나 지식수 단을 가진다. 이런 점에서, 식민지 지식인은 식민지 사회에 대한 대표성이 부재 하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대표성이 제한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 듯 하다. 그들은 권력의 특정 담론장 안에서 통용되는 ‘발화문법’을 알고 있고, 이 를 활용하여 식민지 사회를 재현한다. 이 점은 그들이 재현의 대상인 식민지 사 회에 대해 지적 권위를 확보한 이들임을 암시한다. 부르디외의 말을 조금 응용 해 본다면, 그는 “정당하고 공인된 언어, 권위 있는 언어를 말할 수 있는 권리,”
식민지 사회로 하여금 “수용을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Bourdieu;
Thompson, 1984: 46-47에서 재인용) 그는 이른바 ‘언어자본’(linguistic capital)을 소유한 자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식민지 지식권력이 제공하는 제도적 권위 위에 있으며, 이 권위를 통해 자신이 재현하고 옹호하는 식민지 사회로부
제1장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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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존중을 받는 기이하고도 모순적인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식민지 지식인은 식민권력으로부터 승인된 ‘권위 있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식민지 사회를 재현하 고 식민권력의 재현방식을 비판한다. 다른 한편, 그는 이 언어를 사용하면서 식 민지 사회에 군림하고 식민권력과 지분을 공유한다. 이 점이 식민지 지식인의 지위가 갖는 고유성이자 독특성이다.
제4절 연구방법, 분석틀, 논문의 순서
본고가 새롭게 제안하는 연구방법은 ‘지식생산양식’(mode of knowledge
production)의 분석이다. 이것은 지식생산의 전제, 즉 아프리오리(a priori)를 계보
학적으로 추적하고 해체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구체적으로, 지식생산과정 에서 활용된 이론, 자료, 방법론 각각의 참조체계(references)를 찾아내고, 그 ‘이 식과 변용’ 또는 ‘연쇄와 전유’의 흔적을 발굴한다. 나아가, 이러한 일련의 지식 실천이 낳은 정치적 결과를 확인한다. ‘지식생산양식’의 분석은, 그동안 1930년 대 식민지 농정사와 지식사⋅사상사에 대한 질문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바 꿔 던지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통상의 질문방식 가운데 ‘어떻게’라는 질문을 강조하는 것이다. 본고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일제하 조선에서 농정의 인식체계는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그것은 식민지의 농정과 지식장(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이 질문은 다음의 네 개의 하위질문으로 나뉜다.
○ 제1질문: 일제하 조선에서 농정의 인식체계는 어떤 법-개념에 기초하여 구 성되었는가?
인식을 위해서는 ‘개념’(concepts)이 요청된다. 그런데 이 개념은 태초부터 당
제4절 연구방법, 분석틀, 논문의 순서
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공간적 제약 속에서 생산된 무엇이다. 개 념은 시간/역사라는 씨줄과 공간/장소라는 날줄이 교차하는 정치적인 장(場) 위 에서 생산된다. 개념은 그 자신의 기원(origin)이 망각되어버릴 때, 그리하여 그 성립과정에서의 투쟁의 역사가 지워지고 ‘자연화’될 때 비로소 권력으로서 작동 한다(‘naturalized concept’).
일제하 조선에서 농정의 인식체계는 ‘소작’이라는 자연화된 개념에 기초하고 있었다. 본고는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 조선에 강제한 ‘소작’이라는 개념의 ‘출 생의 비밀’을 추적하고자 한다. 추적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메이지민법
(1898)의 제정과정, 그 가운데에서도 영소작권 및 임대차와 관련된 부분을 둘러
싼 여러 논쟁과 입법경위를 분석한다. 다음으로, 이 메이지민법의 ‘소작’ 관련 규정이 구한말의 한국과 식민지 조선에 어떻게 강제, 이식, ‘번역’되었는지를 확 인한다. 너무도 자명하여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묻지 않게 된 이 ‘소작’이라 는 개념이, 실은 매우 유동적이고 논쟁적인 공간 속에서 생산된 것임을 밝혀내 고, 이후 일본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침략과 함께 각 사회로 던져짐으로써 해당 사회의 전통적 토지권리들을 해체, 재범주화, 균질화해간 것임을 증명해보고자 한다.
※ 자료: 토지임차권과 관련하여, 메이지민법의 입법경위와 관련된 제반 문 서, 조선통감부 이래 조선민사령의 제정과 이후의 시행에 이르기까지 그 법적 근거로 설정되었던 여러 관습조사보고서, 그리고 각종 회의자료를 분석대상으로 삼는다.
○ 제2질문: 일제하 조선에서 농정의 인식체계는 어떤 조사-범주에 기초하여 구성되었는가?
인식을 위해서는 개념 이외에도 ‘범주’가 필요하다. 이 범주 역시, 개념과 마 찬가지로, 시간적⋅공간적 제약 속에서 생산된다. 조사를 수행하는 권력은, 범주 를 생산하고 이를 ‘강제’한다는 사실을 은폐함으로써 대상을 장악하고, 그 결과 물에 의존하는 이들의 정치적 진폭(振幅)을 결정한다.
본고는 제반 보고서들에 실린 농정통계들의 생산과정을 분석하고자 한다. 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