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의 소작관행조사보고서(1922, 이하 보고서의 명칭은 사회과 조사로 표기)는 1922년 내무국 사회과에서 각도로 하여금 조사하게 한 자료를 이후 농
무과(農務課)에서 취합해 펴낸 것이다. 사회과에서 이 조사를 수행하게 된 사정
에 대해, 한 기사자료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구주대전(歐洲大戰) 이후 각국 사상계의 일대 동란과 마찬가지로, 각 도시 노동자의 자각의 결과 노동쟁의가 빈발했다. 이에 자극을 받아 전원생활자인 농민 사이에서도 쟁의가 속출하였다.
경무국(警務局)에서는 그 대책으로 24일부로 아래의 사항을 조사, 보고할 것을
각 도지사에게 통첩하였다. (1) 소작쟁의의 발생원인 및 그에 대한 각 관계자의
의견, (2) 각 학교의 학생동맹휴업과 이에 대한 각인의 의견, (3) 노동자의 지식
정도 등. 이와 관련하여, 경무국의 야마구치(山口) 보안과장은 말하길, 최근에는 조선에서도 남선(南鮮)지방에 소작쟁의가 많아져서 그 대책에 관해 사회과(社會 課)에서 조사하고 「조선소작법」의 실시가 필요하다하여 목하 기초 중인 바이 다.”11) 이것은 사회과 조사가 갖는 특성, 즉 소작쟁의가 빈발하는 속에서 경무 국과의 긴밀한 업무연계 하에 이루어진 조사라는 점을 확인하게 하는 언급이다.
10) 1925년의 소작쟁의 자료부터 농림계열과 경무계열의 소작쟁의 수치가 ‘분기’되고 있다.
제3장 제3절을 참고할 것.
11) 「小作法起草中 社會問題調査」, 동아일보 1922-10-26.
제3장 제국-식민지 농정과 소작관행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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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의 소작제도에 관하여 ‘치안’의 관점에서 수행된 조사였다고 할 수 있다.
사회과 조사는, 그간 소작제도에 대한 조사가 광범위하게 무형, 추상의 소 작관계를 구명하려 한 것이라면, “이번에는 가능한 한 과학적⋅분석적⋅조직적 인 조사항목 및 그 조사방법을 사용하여 조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그 서두에 서 밝혔다. 하지만 이내, 이런 ‘과학적 조사’의 열의에도 불구하고, 각 도에서 올라온 개별 보고서들이 “道別로 精粗에 차이가 커서 관념의 정리가 곤란하다.
해당되는 의견이 아닌 것도 여럿 있지만 그대로 항목을 도별로 배열한 데에 그 쳤다. 도마다 사건의 경중, 厚薄에 차이가 있어서 조사가 자세하지 못하다”며 조사의 한계를 토로하고 있다(朝鮮總督府, 1932(下) 參考編: 187). 여기에는 식민 국가의 조사행정체계의 미숙과 불비, 조선의 지역사회에 대한 지배력의 침투에 서의 제한성과 한계가 그대로 암시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이 애초의 담대한 포부에도 불구하고 사회과 조사에 담긴 실질 적인 조사내용은 이전의 ‘관습으로서의 소작’에 관한 조사의 수준을 크게 넘어 서지는 못하고 있다. 다소 간의 차이를 살펴보면, (1) 도 단위에서 논밭별 ‘소작 의 종류’—賭只法, 打作法, 執穗法—의 비율표가 작성되어 있고(위의 책: 191),
(2) ‘소작계약서’의 실물이 다량 수집되어 사본으로 제시되었으며, (3) 도별 ‘소
작의 기간’에 관한 정보가 간략하게 언급되었다. (4) ‘소작료의 종류’—수확물현 물납, 금납, 代物—의 도별, 논밭별 비율표도 함께 작성되었고(위의 책: 245), (5) 소작료의 수량과, 생산고에 대한 비율, 지가에 대한 비율(위의 책: 246~251), 그 리고 재해시의 소작료 감액여부 사항이 도별로 간략히 보고되었다. 토지수선에 드는 비용의 부담, 지세와 공과금의 부담, 사음과 추수원에 관한 정보 등이 함 께 보고되고 있다. 한 가지 인상적인 점은 ‘소작관행에 변화를 가져온 주된 원 인’을 도별로 보고받은 자료인데,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위의 책: 304~305).
경기도: 공리(功利)적 지주의 출현으로 소작료가 앙등하였다.
충청북도: 농업회사의 출현, 수리사업의 보급에 따른 변화의 경향은 없 다. 단, 소작인의 궁핍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에 장래 큰 변화 를 일으켜야 한다.
충청남도: 약간 변화가 있다. 세금의 부담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執穗
제2절 식민지 조선에서의 소작관행조사
와 打租를 賭只로 변경하는 것이 있다. 모두 관청의 지도에 의 한 것이다. 소작증서가 보급되고 있는데, 관공유지, 회사농장, 내지인 지주를 모방한 것이다.
전라북도: 10년 전만 해도 소작권이 反當 4~15원 정도로 소작인 간에 매 매된 적이 있었는데, 지주의 禁制로 인해 폐지되었다. 지주의 사음감독이 엄격해져서 소작권 이동이 줄었다. 沃溝郡에서는 수리사업 온성으로 인해 지주의 수세가 反當 5원 증가하게 되 어 소작료가 인상된 곳이 있다. 소작계약에 소작증서를 사용하 고 보증인을 4~5명 세우는 것은 소작료 태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전라남도: 사상의 변화에 이끌려 여러 개선 또는 惡變도 생겨나고 있다.
법규 정비로 공과의 지주부담, 계량법, 소작계약 형식 기타에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언론기관의 발달에 의해 지주와 소작인 양자를 자극하여 관행의 개선, 변화를 이끌고 있다. 민중운동 의 발흥으로 단체력으로 개선을 추구하는 것이 많다. 관의 지 도개선을 통해 불량관행의 개선이 이루어졌다. 수리시설의 개 선으로 인해 수량이 안정되고 定租가 증가하고 있다.
경상북도: 농사회사의 출현에 의해 변화된 것으로는, 집수법을 도지법으 로 바꾸고 있는 점, 소작계약서를 만들어 소작기간을 정하는 점을 들 수 있다.
경상남도: 일반 조선인 지주에게는 변화가 없다. 다만 수리조합 지역 내 에서 定租로 바뀌고 있다.
황해도: 구관에 큰 변화는 없다. 황해도 재령군의 숙명농장은 소작권을 사음의 자유에 맡겼는데, 지방관습에 따라 지주의 專行사항으 로 했다.
평안남도: 수십년 전까지는 거의 打租였고 賭只는 매우 드물었는데, 지주 의 입회와 소작료 징수가 불편한 관계로 도지로 바꾸고 있다.
부재지주 전부가 이 방법에 의거하고 있다.
평안북도: 수리조합 지역의 소작은 원만하게 개선되고 있다.
강원도: 일반적으로 변화는 없다. 철원의 농업회사는 논의 등급을 실사하 여 도지 및 타작을 시행하고 있다. 소작료의 공평을 기하고 있 다. 수리조합 지역에도 별다른 변화는 없다. 일부 지주가 관행 을 악화시키고 있어서 공평히 개선하고 있는 중이다.
제3장 제국-식민지 농정과 소작관행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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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일본의 소작관행조사 1922년 조선의 소작관행조사
- (1) 소작의 종류
(1) 소작계약의 체결 (2) 소작계약의 기간
(11) 소작계약 당사자의 변경
(12) 소작계약의 해제 및 소멸
(2) 소작의 계약 (3) 소작의 기한
(12) 소작계약의 해제
(14) 소작지의 靑田 및 소작권 매매
함경남도: 별다른 변화는 없다.
함경북도: 종전에는 밭의 경우 3분소작료(지주2, 소작인1)이고 논의 경우 절반으로 했는데, 수리사업의 개선에 의해 밭이 논이 되는 경 우가 많아지고 논의 소작을 희망하는 이가 많아져 기존 밭에 적용되던 3분소작료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제국-식민지 소작관행조사사의 관점에서 이 조사가 갖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조사항목’ 및 ‘조사상 주의사항’의 채택과 활용에 있다. 이것은 1921년 일본에 서의 소작관행조사의 그것을 동시대적으로 직접 모방하여 식민지 조선의 사정 에 맞게 일부 변경한 것으로 판단된다. 1912년의 조사도 있지만, 정리항목을 비 교해본 결과 차이가 있다. 일본에서 1921년 조사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여러 우 여곡절 끝에 1926년에 비로소 지면으로 출판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사회 과 조사는 그 조사결과서를 확인하고서 진행된 것은 아니지만, <소작제도조사 위원회>에서의 협의 결과 작성된 조사항목을 추려, 이를 조선에서 적용해본 최 초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시도는 실질적인 결과물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선 일본과 조선 간에는 조사를 수행할 수 있는 행정력에서 절대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1921년 일본의 조사가 도부현(道府縣) 단위의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인데
반해, 1922년 조선의 조사는 도(道) 단위의 간략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이다. 게다가 각각의 항목에 관한 지수화, 계수화의 측면에서도 절대적인 차이 가 드러나고 있다. 이 점은 조사항목과 정리항목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조사 항목에서의 관련성은 부분적으로 인정할 수 있지만 결과보고서에서 정리양식에 큰 차이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이 두 조사는 실질적으로는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개략적으로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표 16] 소작관행조사 조사항목의 비교
제2절 식민지 조선에서의 소작관행조사
(3) 소작료 (4) 소작료의 납입 (5) 소작료의 체납
(4) 소작료의 종류
(5) 소작료의 수량 및 생산고에 대한 비율 (6) 재해시의 소작료
(7) 소작료의 납부 (8) 소작계약의 등기 및 소작지에 대한 제
한 (8) 경작상의 제한
(9) 지주 또는 소작인의 배상
(10) 소작지의 수선, 개량 및 그 부담
(9) 토지의 수선, 개량에 관한 부담
(10) 지세 및 공과금 등의 부담
(11) 소작인의 잡종 부담
(13) 토지관리인, 지배인, 世話人 등
(14) 이외에 소작에 관한 중요사항(부재지주
등)
(13) 사음 및 추수원
(6) 경지정리가 소작관행에 미친 영향 (7) 곡물검견(생산검견 및 移(輸)出檢査)와 소작관행의 관계
(17) 소작에 관한 관행의 개선을 요하는 점,
이유와 그 방책
(15) 소작관행에 변화를 가져온 주요 원인
(15) 영소작
(16) 刈分小作과 기타 특수소작 -
1921년 일본의 소작관행조사 1922년 조선의 소작관행조사 제1장 소작계약의 양태
제2장 소작계약의 기간 제3장 소작료
제4장 소작료의 납입 제5장 소작료 체납시의 처치
제6장 소작지 전대 및 소작권의 매매 제7장 소작계약의 등기 및 소작지에 대한
제한
제8장 지주 또는 소작인의 배상 제9장 소작지와 관련된 부담 제10장 소작계약 당사자의 변경 제11장 소작계약의 해제 및 소멸 제12장 소작지관리인
제13장 경지정리가 소작관행에 미친 영향 제14장 곡물검사(생산검사 및 이출검사)가
소작관행에 미친 영향
제15장 기타 소작에 관한 중요한 사항 제16장 영소작
제17장 예분소작 기타 특수소작
제1절 소작의 종류(* 도조, 타조, 집수) 제2절 소작의 계약(* 계약서 형태자료 수
집, 게재) 제3절 소작의 기한 제4절 소작료의 종류
제5절 소작료의 수량 및 생산고에 대한 비 율
제6절 재해시의 소작료 제8절 경작상의 제한
제9절 토지의 수선, 개량에 관한 부담 제10절 지세 및 공과의 부담
제11절 소작인의 잡종 부담 제12절 소작계약의 해제
제13절 사음 및 추수원(* 이익과 폐해) 제14절 소작지의 靑田 및 소작권 매매 제15절 소작관행에 변화를 가져온 주요 원
인 [부록]
소작관행조사사항: 조사항목과 주의사항 [표 17] 소작관행조사 정리항목의 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