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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적 헤게모니: 금융세계화와 무장한 세계화

목 차

4. 약탈적 헤게모니: 금융세계화와 무장한 세계화

1979년 달러 위기 이후 미국은 볼커 전환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정책 변화 속에 서 잉여자본을 집중시키고, 통화·금융권력에 기초해서 헤게모니를 재건하려고 시도 했다. 미국은 거대국제금융과의 동맹을 통해서 전세계의 잉여자본을 미국 금융시 장으로 집중시킴으로써, 통화·금융권력을 더 강화시킬 수 있었다. 미국은 이른바

“달러-월스트리트체제”로 불리는 통화·금융권력에 기반해서 유동자본을 향한 국가 간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했고, 금융세계화를 통해서 달러의 역할을 유지·강화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외채위기나 외환위기에 대한 개입, 미국의 국 제수지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환율조정 등의 형태로 달러의 지배력 통한 조정과 개입을 지속하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미국으로 자본이 유입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달러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미국 헤게모니를 재생산했다. 미국 헤게모니를 강화시 킨 1980년대의 금융세계화는 미국 주도 하에 철저히 자국중심주의적 원칙에 입각 해서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미국은 적자의 누적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금융시장으 로 세계의 유동자본을 집중시키면서 금융권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1) 유동자본의 집중과 냉전에서의 승리

브레튼우즈 체제가 해체된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된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에 관 한 우려는 1979년 달러위기가 발생하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미국은 이에 대응해 서 거대국제금융과의 동맹을 통해서 미국으로 잉여자본을 집중시키고, 헤게모니를 재건하려고 시도했다. 이른바 ‘볼커전환’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정책전환은 미국이 전략이 통화·금융 권력을 이용한 금융세계화를 통해 헤게모니의 쇠퇴를 반전시키 려는 전략으로 이행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시장에서 달러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면서 미국은 세계금융에서 자신들이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구조적 권력을 이용해서 금융개방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었고, 전세계의 잉여자본을 미국 금융시장으로 집중시킴으로써, 통화·금융권력을 더 강화시킬 수 있었다 (Helleiner, 1994; Arrighi, Hui, Ray, and Reifer, 1999).

미국의 통화·금융권력 강화는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우위를 제공했다. 레이건 행정부는 미국으로 집중된 유동자본을 토대로 군사력을 강화했 고, 닉슨, 포드, 카터로 이어지는 대외전략의 축소를 비판하면서 미국의 위상을 회 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특히 1983년 소련을 ‘악(惡)의 제국’(evil empire)으로 규정한 레이건 행정부는 ‘2차 냉전’을 개시해 군비를 대폭적으로 증강 하고 군사기술 혁신을 도모해 ‘공포의 균형’을 파괴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시켰다.29)

1970년대에 연 3-5% 수준으로 증가하던 국방예산은 1980년대에 연간 10% 내외

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소련과의 전략무기감축회담(Strategic Arms Reduction

Talks: START) 중에도 군비를 증강시켰고, 일방적으로 회담을 중단했다. 1983년 3

월에는 ‘스타워즈’(Star Wars)라 불린 전략방위구상(Strategic Defence Initiative: SDI) 을 제안했고, 1조 달러 규모의 예산을 배정했다. 반면 소련은 파산 상태로 내몰렸 고 세계 군사력은 미국으로 더 집중되었다. 또 미국은 미국 금융시장으로 집중된 자본에 힘입어 하위제국주의 국가들에 의존하던 1970년대의 방식에서 벗어나서 자

29) 1980년대의 2차 냉전과 제3세계에 대한 공세적 개입은 미국 경제력의 강화를 반영하는 변 화였다. 또 그 과정에서 미국의 제도와 가치를 세계에 전파함으로써 ’(=공산주의)을 응징 하고 세계를 구원한다는 메시아주의가 공공연히 언급되기도 했다. 레이건 행정부 시기의 미 국 대외전략은 선과 악의 이분법에 기초한 미국 전통의 세계관에 충실했으며, 케네디 행정 부 시절에 버금가는 자신감과 낙관주의에 기반하고 있었다(Daugherty and Pfaltzgraff, 1986).

제3장.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적 동학과 미국의 세계전략 137

체 군비지출을 늘리고 전쟁 대비태세를 강화했다. 이를 통해서 미국은 제3세계주 의의 도전을 분쇄했고, 제3세계에 반미·친소 정권에 대한 공세적 개입을 강화했다 (Daugherty and Pfaltzgraff, 1986: 506; 533-535).30)

1985-86년부터 시작된 고르바초프의 이른바 ‘페레스트로이카’와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미국의 승리를 확증하는 사건이었으며, 소련과 그 영향권인 동유럽의 내파 를 의미했다. 미국이 소련의 상호군축 제안을 거부한 상황에서 소련은 아프가니스 탄과 동유럽에서의 철수를 포함한 일방적인 군축 조치를 취했다. 1968년에 선언된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철회와 냉전 종식을 위한 1989년 몰타 미소 정상회담은 1991 년의 소련 붕괴로 귀결되었다(Ambrose, 1996: 344).

이처럼 미국은 군사력만으로는 결코 달성할 수 없었던 냉전에서의 승리와 헤게 모니의 회복을 통화·금융권력을 통해서 얻어냈다.31) 해외(주로 일본과 서독)로부터 미국 금융시장으로의 대규모 자본유입으로 인해서 미국은 이중적자의 증가에도 불 구하고, 군비를 대폭 증강시키고, 2차 냉전을 위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표 3-1. 1980년대 미국으로의 자본유입> 단위

: 10억달러

1980 1981 1982 1983 1984 1985 1986 1987

미국으로의

자본유입 58 83 94 85 102 130 213 203 미국으로부터의

자본유출 86 111 121 50 22 31 96 64 순자본유입 -28 -28 -27 35 80 99 117 139

경상수지 2 7 -9 -46 -107 -116 -141 -161 출처: FRB(Flow of Funds)

30) 미국의 이러한 전략전환은 1970년대 후반부터 구상되고 있던 변화였다. 카터 행정부가 볼 커를 연준 의장으로 임명한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경제전략의 전환도 카터 행정부 시 기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Reifer and Sadler, 1996: 49). 이는 1980년대 초반의 신보수주의 적 경제정책이나 공세적인 대외개입, 냉전전략에 대한 설명에서 레이건 행정부의 특성이나 공화당으로의 정권교체를 특권화하는 설명이 갖는 한계를 보여준다.

31) 소련을 비롯한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는 미국의 통화·금융권력 만으로 설명될 수 없 으며, 소련사회의 성격에 관한 별도의 연구들을 참고해야 한다.

1980년대의 금융세계화를 배경으로 미국이 대대적으로 군비경쟁을 개시하면서 소련이 붕괴했고, 이로 인해 미국에 대한 유의미한 도전세력도 사라졌다. 탈냉전으 로 인해서 1970년대에 상실된 미국의 우위는 완전히 회복된 것으로 보였다. 부시

(G. H. W. Bush) 행정부는 탈냉전 이후의 세계질서를 ‘신세계질서’로 명명하고, 모

든 잠재적 경쟁국의 부상을 봉쇄한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 우위는 걸프전을 통해서 재확인되었고, 부시 대통령은 걸프전 승전 선언과 함께 신세계질서가 실현되었다고 선언했다(Hoff, 1994: 222-223).

클린튼 행정부로의 정권 이양 직전에 발표된 1992년 국방계획지침은 소련을 대체할 강대국의 출현 봉쇄, 국방비의 대폭 증액,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입지 강화, 필요에 따라 군사력의 일방주의적 사용 가능성을 규정했다. 또 냉전의 종료에도 불구하고 미국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서 중동과 동아시아에서의 두 개의 전쟁에서 동시에 승리할 수 있는 양대전쟁 전략이 군사전략의 토대로 제시되 었다(U.S. Department of Defense, 1992).

(2) 금융세계화를 위한 정책조정과 워싱턴 컨센서스

① 금융세계화를 위한 정책조정과 공세적 자유무역

미국의 이중적자와 자본수입에 기초하는 금융세계화의 확대는 미국의 개입이나 주요국 사이의 정책적 조정을 통해서 유지·확대되었다. IMF나 세계은행 같은 브 레튼우즈 제도들의 기능적 변화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IMF와 세계은행은 미국 재무부와의 연계 속에서 지역적인 경제적 불안이 중심부의 금융안정성이나 금융세 계화를 위협하지 않게 만드는 동시에 주요국 간의 정책조정 의제를 주도적으로 제 시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 했다(Duménil and Lévy, 2004c: 262; Arrighi, 1994: 331; Harvey, 2005: 73).

금융세계화와 위기관리를 위한 정책조정에서 핵심은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 를 유지하고, 미국 헤게모니를 유지·강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 이 달러의 평가절하를 위한 1985년의 플라자합의(Plaza Accord)32)였다. 표면적으로

32) 플라자합의의 결과 엔화는 34.1%, 마르크화는 28.1% 평가절상 되었다. 이로 인해 서독과 일본의 제조업이 위기에 빠졌으며, 특히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가 시작되었다. 일본정부는

제3장.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적 동학과 미국의 세계전략 139

무역불균형의 조정을 목표로 내세웠던 플라자합의는 무역 불균형의 조정으로 국한 되지 않는 함의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미국은 환율 조정의 과정에서 미국 재무부 증권 매입과 전면적인 금융개방 등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다른 국가에 전가하고, 금융세계화를 심화하기 위한 조치들을 요구했다.

플라자합의 이전인 1984년에 이미 미국은 일본 금융시장에 대한 미국 금융기관 들의 접근성 확대, 일본 자본시장 개방을 주 내용으로 하는 엔-달러 협정

(Yen-Dollar Agreement)을 요구했다. 엔화의 환율 문제의 해법으로 환율 조정뿐만

아니라 금융세계화에 조응하는 자본시장 자유화를 요구했던 것이다. 1984년 엔-달 러 협정 이후 일본은 금융시장을 부분적으로 개방했고, 단기금융시장 개방, 역외시 장 설치, 주요 미국 증권회사들의 도쿄증권거래소 활동 허용 등의 조치가 취해졌 다. 일본의 미국 재무부증권 구매는 미국의 이중적자를 상쇄하는 자본유입을 위한 수단이었다. 엔-달러 협정의 결과 1983년 당시 약 177억 달러였던 일본의 장기자본 순유출이 1984년 496억 달러, 1987년 1,371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일본의 미국 재 무부증권 보유가 1984년 이후 급증했다(Frankel, 1990: 3, 7-8; Seabrooke, 2001: 126;

; Bryan, 1995: 110; Greider, 1987: 686-687; James, 1996: 421, 425-430).

달러 환율조정을 목표로 했던 다른 국제적 합의들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기축통화 발권국으로서 미국은 자국의 필요에 따라 달러의 가치를 상승 또는 하락시킴으로써 달러의 지위를 유지했다. 달러가 금화는 아니지만, 실질적으 로는 금화처럼 기축통화로 유통되기 때문에 달러의 환율 변화는 달러 가치의 변화 가 아니라 다른 통화들의 상대적 가치변화를 의미한다. 즉 기축통화로서 지위를 유지하는 한 금화처럼 달러의 환율은 실질적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달러의 환 율이 그 자체로 큰 중요성을 갖는 것은 아니며, 달러가 약세로 전환된다고 해서 달러 발권이익이 소멸하는 것도 아니다. 달러의 평가절상은 미국으로의 달러유입 을 강화시키는 이점이 있고, 평가절하는 과거의 부채를 더 낮은 가치로 지불할 수 있게 해 미국의 대외부채를 실질적으로 감소시키는 이점이 있다. 따라서 미국은 정책적 필요에 따라서 달러의 환율을 조정했으며, 달러의 가치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든 그로부터 일정한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Duménil and Lévy, 2004c;

급속한 엔고로 인한 수출산업 침체 및 경제 불황을 우려해 저금리 정책을 실시했다. 이에 따라 대규모 자금이 금융자산 및 부동산 투기로 이어져 버블경제를 형성했는데, 1990년 그 버블이 붕괴하면서 일본 경제는 장기침체 국면으로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