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1. 미국 세계전략의 형성과 변화
미국 세계전략의 형성과 변화에 관한 연구는 다양한 이론적 관점으로부터 다양 한 형태로 제시되어 왔다.1) 국제관계론의 이론적 패러다임들은 각자의 이론적 전 제에 기반해서 미국의 대외전략에 관한 설명을 제공했지만, 미국의 전략적 선택이
1) 미국의 대외전략을 분석하는 여러 가지 관점을 소개하고 평가하는 연구로는 호간 편(Hogan, ed., 2004), 마텔 편(Martel, ed., 1994), 아이켄베리 편(Ikenberry, ed., 2015), 하스테트(Hastedt, 2015), 위트코프 등(Wittkopf et als., 2008)등을 참고하시오.
나 대외전략의 실제적인 내용에 관한 설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를 비판하면서 더 직접적으로 미국에 초점을 맞추고 미국의 전략을 설명하려 는 연구들은 미국의 이념적 전통, 경제적 이익 등을 통해서 미국의 세계전략을 설 명하려고 시도했다. 미국의 이념적 전통을 강조하는 연구들은 미국의 ‘미국예외주 의’를 고정된 실체로 파악하고, 미국 대외전략의 자유주의적이고 관대한 속성을 과 장한다는 문제가 있다. 미국 세계전략의 기본적 동인으로 경제적 이익을 강조하는 흔히 ‘코퍼러티즘’으로 분류되며, 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적 축적체제가 확산 되는 과정을 분석했다. 이러한 연구들은 축적체제의 변화와 세계전략의 변화를 분 석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념과 이익에 기초해서 미국의 선택을 설명하려는 이러한 연구들의 문 제의식은 헤게모니의 사회적·이데올로기적 토대와 헤게모니적 예외성, 그리고 헤게 모니의 변화 속에서 나타나는 축적체제 변화에 관한 분석의 형태로 미국 헤게모니 의 역사적 동학으로 포섭될 수 있다. 또 미국의 세계전략은 미국 헤게모니에 관한 분석으로 환원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적 동학을 국가간 체계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지정학적 상호작용에 관한 분석과 결합할 필요가 있다.
(1) 주류 국제관계론의 한계: (신)현실주의와 (신)자유주의
2차 세계대전 이후 실천적·이론적인 차원에서 미국의 대외전략을 주도한 것은 국제관계론의 현실주의는 패러다임이었다. 냉전 시기 미국 국제정치학계를 지배한 현실주의자들 대부분은 세력균형 논리를 통해서 탈냉전 국제질서를 진단했고, 여 기에서 자동적으로 미국의 세계전략이 도출되었다. 탈냉전 이후 다수의 현실주의 자들은 세력균형의 필연성과 단극체계의 불가능성을 근거로 미국이 다른 강대국들 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다고 주장했다(Mearsheimer, 1990; Waltz, 1993; 2000; Layne, 1993).
이러한 전략은 국제체계의 속성(무정부상태), 체계를 구성하는 단위(국가)의 목표 (안보와 생존)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것으로서 라는 논리에서 도출되는 것으 로서 초역사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전제된다. 따라서 헤게모니 국가의 대외전략 이나 힘의 속성, 지역체계의 특수성 등은 이러한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Ikenberry, 2002; Kaufman et als, 2007; Paul, 2000). 헤게모니에 대한 균형은 필연적
제3장.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적 동학과 미국의 세계전략 101
인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전략 역시 헤게모니의 유지를 위한 전세계적 개입이 아 니라 다극적 질서에 대비하는 축소, 선별적 개입 등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전망과 달리 현실에서 미국에 대항하는 균형 연합(balancing
coalition)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대다수 국가들이 균형의 책임을 다른 국가에
게 전가하고, 미국 헤게모니가 부과한 질서에 편승해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지위경쟁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Wohlforth, 2008; Deudney and Ikenberry, 1999;
Mastanduno, 1999; Brooks and Wohlforth, 2002; Jervis, 2009). 이 때문에 단극체계 하 에서 세력균형론이 갖는 현실 설명력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나아가 세력균형론에 대한 이론적 비판도 제기되었는데, 그 핵심은 아래와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세력균형의 논리는 17세기 대륙유럽의 경험에 국한된 것으 로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역사적 규범이 아니며, 특히 동아시아의 역사적 경 험과는 배치되는 것이다(Kaufman et als., 2007). 둘째, 세력균형론은 안보·군사 영역 에 대한 분석에 치중함으로써 국가들 간의 경제적 관계가 제기하는 쟁점을 이해하 지 못한다. 이 때문에 세력균형론은 탈냉전 이후 국제체계와 미국-동아시아 관계의 핵심인 미국 헤게모니의 경제적 토대의 변화나 미국-동아시아 혹은 미중관계의 모 순적인 경제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헤게모니 국가가 갖는 힘의 크기와 성격, 헤게모니 국가의 전 략이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헤게모니 국가가 구축한 질서의 성격, 헤게모니 국가가 가진 힘의 크기와 성격 등에 따라 균형 이외의 다양한 선 택지가 제시될 수 있다(Jervis, 2009; Ikenberry et als., 2009). 예컨대, 미국이 합의된 규칙과 규범, 제도에 기초해 관대한(benign) 헤게모니로 기능하고 있다면 굳이 미국 에 대항하는 균형을 시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반대로 헤게모니 국가가 균형을 방지할 수 있는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거나, 헤게모니 국가의 힘이 너무나 압도적 이어서 그것에 대항하는 균형의 성공 가능성이 낮고, 비용이 지나치게 클 때도 균 형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Monteiro, 2011; Deudney and Ikenberry, 1999;
Paul, 2000; Tammen et als., 2000)
이러한 비판에 직면해서 세력균형론의 일부 개념들을 확대하거나 완화해서 여전 히 미국에 대한 일종의 균형이 존재함을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전개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연성균형’(soft balancing) 개념을 통해서 헤게모니 국가에 대한 균형이 존재함을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시도는 균형의 논리를 객관적
인 능력에서 위협에 대한 인식으로 대체한 이른바 위협균형론이나 균형의 비용과 편익에 대한 약소국의 분석에 기초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따른다면, 미국에 대한 균형이 발생하지 않았던 이유는 미국이 다른 국가들에게 심각한 위협으로 인 식되지 않았거나(Pape, 2006; Paul, 2006), 다른 국가들이 헤게모니 국가의 압도적 힘으로 인한 국력의 차이와 경제적 상호의존성 등을 고려해 전통적인 의미의 강성 균형(hard balancing) 대신 연성균형을 전략적으로 선택한 결과이다(He and Feng,
2008; He, 2008). 또한 헤게모니 국가가 공급하는 공공재가 쉽게 대체될 수 없을
때처럼 헤게모니 국가가 국제체계에서 순기능을 할 경우에도 강성균형 대신 연성 균형이 나타날 수 있다(Paul, 2006). 따라서 미국은 연성균형 전략이 강성균형 전략 으로 전환되는 것을 방지하려면 자국의 우위를 최소한의 수준에서라도 유지해야 하며, 동시에, 단기적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다른 국가들에게 위협으로 인식될 수 있는 공격적인 정책을 자제하고, 국제 공공재의 공급 비용을 어느 정도 감당할 필 요가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Walt, 2008; Pape, 2006).
그러나 연성균형은 약소국의 선택지가 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엄밀한 의미의 균형이 아니다. 즉 그것이 헤게모니 국가의 전략 에 야기하는 효과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 다. 또 헤게모니 국가의 위협에 대한 인식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힘들다. 어떤 국 가가 헤게모니 국가의 행동을 위협적으로 인식했는지는 사후적으로 이 국가가 연 성균형을 채택했는가 여부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순환논리가 발생하며, 따라서 헤 게모니 국가의 전략을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신현실주의의 강력한 경쟁자인 신자유주의 역시 이러한 한계로부터 자유롭지 못 하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상호의존과 다자제도의 역할이라는 두 가지 이론적 전 제로부터 미국의 전략을 설명하려고 한다. 우선 경제적 상호의존을 통한 설명의 핵심은 무역, 투자 등에 있어서 상호의존성으로 인해 안보정책에 제약이 발생하며, 헤게모니 국가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Keohane and Nye, 1989). 특 히 탈냉전과 세계화 이후 상호의존성이 급격히 심화되었고, 특히 미국은 신자유주 의와 세계화에 가장 깊숙이 연루되어 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미국의 대전략 역시 세계경제가 부과하는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미국의 대외정책 역 시 순화될 수밖에 없으며, 다른 국가들 또한 미국에 대항하는 균형을 형성하거나 미국에 도전할 유인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3장.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적 동학과 미국의 세계전략 103
경제적 상호의존성과 관련된 대다수의 논의는 상호의존성으로 인해 국가 간 갈 등의 강도가 약화되고 그 빈도도 감소할 것이라는 낙관적 편향을 보인다(He, 2008;
Paul, 2006). 그러나 안보와 경제는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경상수지 적자나 무역분
쟁, 환율, 금융시장 개방 등의 경제적 문제는 안보적 이슈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 는다. 또 경제적 상호의존성은 국가들 간의 경제적 관계나 경제 구조에 따라 상이 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경제적 상호의존성의 심화가 관련 국가간 갈등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 수도 있다. 과거 미국과 일본의 무역분쟁, 오늘 환율과 무역적자 등 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Posen, 2009; Kirshner, 1995, 2009, 2014; Calleo, 2009; Gilpin, 2003). 특히 미국과 중국, 미국과 동아시아의 관계, 즉 이중적자와 수출달러 환류, 달러(미국 국채)에 대한 동아시아의 의존과 동아시 아 수출달러에 대한 미국의 의존은 ‘금융공포의 균형’으로 불릴 정도로 경제적 상 호의존성으로 표현될 수 없는 모순과 복잡성, 그리고 비대칭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한편, 다자주의적 국제제도를 강조하는 설명에 따르면 헤게모니 국가로서 미국 역시 제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러한 제도에 순응하는 것이 장 기적으로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 따라서 미국의 대외전략은 다자주의적 국제 제도를 통한 개입을 유지하는 동시에, 힘에 대한 자기절제를 통해 다자주의적 국 제제도가 부과하는 제약을 수용해야 한다(Martin, 1992; Ikenberry, 2002; 2011).
그러나 다자주의적 국제제도에 대한 강조는 서구의 경험을 특권화할 위험이 있 다. 제3세계에서는 미국 헤게모니가 다자주의적 제도를 우회해서 지배력을 행사하 는 경우가 많았고, 약소국의 경우 각종 국제제도들에서 과소대표되는 경우가 많았 기 때문이다(Cumings, 2009). 실제로 NATO를 비롯한 다자주의적 제도에 기초해서 지역질서가 형성된 유럽과 달리, 아시아의 경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양자주의, 즉
‘허브 앤 스포크’‘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s)가 지역질서의 토대였다.
나아가 제도의 안정성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제도를 형성·변형하거나 제도 자 체를 우회할 수 있는 헤게모니 국가의 능력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 탈냉전 이후 나타난 일방주의적 군사개입, 무역정책에서 양자협정에 기초한 ‘경쟁적 자유화’의 추진 등은 미국이 다자주의적 제도를 효과적으로 우회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 사례들이다. 신자유주의의 확산 속에서 발전주의의 핵심이었던 브레튼우즈 제도들 이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확신시키는 핵심 제도로 기능한 것은 제도의 목적이 변형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자유주의자들이나 제도주의자들의 주장과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