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목 차

1. 미국의 힘에 관한 논쟁

197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미국쇠퇴론 논쟁이나 단극체계에 관한 논쟁은 헤게모니 자체에 관한 엄밀한 분석은 결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 헤게 모니 분석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주요 쟁점들을 확인하고, 미국 헤게모니의 변화를 추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련 논쟁을 간략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1) 미국 쇠퇴론 논쟁

미국 헤게모니와 관련된 그 동안의 논의는 주로 미국의 쇠퇴와 관련된 쟁점을 중심으로 제기되어 왔으며, 미국의 쇠퇴가 현실화되는 것처럼 보였던 1970-80년대 이후 확산되었다.1) 당시의 미국쇠퇴론을 대표하는 연구는 케네디(Kennedy, 1987), 칼레오(Calleo, 1987; 1992)의 연구가 있으며, 이에 대한 대표적인 반론으로는 스트 레인지(Strange, 1987), 헌팅턴(Huntington, 1988), 나이(Nye, 1990)의 연구가 있다.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역사적으로 묘사한 케네디는 미국이 ‘제국적 과잉팽 창’(imperial overstretch)으로 인해서 경제적 우위를 상실했고, 이는 곧 미국의 쇠퇴 와 새로운 강대국의 부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칼레오 역시 유사 한 맥락에서 탈산업화, 재정적자와 과도한 국방비 지출을 미국 쇠퇴의 원인으로 제시했다(Kennedy, 1987; Calleo, 1987, 1992).

미국의 쇠퇴에 대한 반론의 근거로는 미국의 경제규모, 기술수준, 군사력의 우 위, 정치체제와 정치문화의 개방성 등이 제시되었다. 스트레인지는 지식, 금융, 생 산, 군사 등 네 가지 핵심 축에서 미국이 ‘구조적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하 면서 쇠퇴론을 비판했다. 나이 역시 미국의 경제적 우위가 건재하며, 소프트파워의 측면에서도 보편적 호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 헤게모니가 쇠퇴하지 않았 다고 주장했다. 헌팅턴은 경제력의 부분적 쇠퇴를 인정하면서도 미국의 문화적 우 위, 미국 사회의 개방성과 활력으로 인해서 미국이 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고 전망했다(Strange, 1987; Nye, 1990; Huntington, 1988).

이중적자와 저성장 같은 경제적 문제는 1980년대에도 해결되지 않았고, 서독과 일본의 추격이 지속되면서 현실의 논쟁에서는 쇠퇴론이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이 러한 논쟁 구도는 탈냉전을 계기로 반전되었다. 소련의 붕괴로 지정학적 위협 요 인이 사라진 상황에서 금융세계화와 장기호황으로 미국의 경제적 우위가 회복되면 서 미국쇠퇴론의 현실적 근거는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01년의 신경제 붕괴, 부시(G. W. Bush) 행정부의 일방주의로 인한 정당 성의 약화 등으로 인해서 미국쇠퇴론이 다시 등장했다. 탈냉전 이후의 논쟁에서

1) 최근의 미국쇠퇴론이 중국으로의 헤게모니 이행에 관한 논의와 결합된 것처럼, 1970-80년대 의 미국쇠퇴론은 일본으로의 헤게모니 이행에 관한 논의와 결합되어 있었다. 대표적인 연구 로는 보겔(Vogel, 1979)의 저서가 있다.

제2장. 이론적 자원: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적 동학 41

미국의 경제적 우위를 강조하던 주장은 2000년대의 이중적자 급증으로 비판에 직 면했고, 2007-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다시 미국쇠퇴론이 급속히 확산되는 중이다.

문제는 이론적 혁신이 부재한 상태에서 1970-80년대의 논쟁구도가 동일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이후 제기된 미국쇠퇴론의 주된 근거는 1970-80년대와 마찬가지로 미

국 경제력의 쇠퇴였다. 특히 2000년대에 급속히 증가한 이중적자가 더 이상 유지 하기 힘든 규모라는 지적이 지속되었고, 금융위기는 미국의 쇠퇴를 확증하는 사건 으로 인식되었다(Layne, 2009, 2010, 2011; Altman, 2008; Quinlan, 2011). 또 제국적 과잉팽창에 관한 1980년대의 주장과 유사한 주장도 등장했다. 이라크전 이후의 군 비지출로 인해 재정적자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증가했고, 이로 인해 미국 헤 게모니가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Ferguson and Kotlikoff, 2003; Calleo, 2010;

Mandelbaum, 2010; Bacevich, 2002, 2008).

또 1970-80년대의 미국쇠퇴론이 서유럽과 일본, 특히 일본이라는 도전세력의 존 재를 강조한 것과 마찬가지로, 2000년대의 쇠퇴론은 아시아의 신흥국, 특히 중국의 도전을 강조했다(Prestowitz, 2006; Mahbubani, 2008).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 의 성장으로 인해서 미국의 국력은 최소한 상대적 수준에서는 쇠퇴한 것이 분명하 며, 금융위기로 인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명확해졌다. 따라서 미국의 우위가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Zakaria, 2008; Kupchan, 2012, 2002a, 2002b; NIC, 2008, 2012; Khanna, 2009).

미국쇠퇴론 비판의 논거 역시 1970-80년대와 유사했다. 이중적자나 금융위기로 인해서 미국 경제가 일시적으로 후퇴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경제의 ‘구조적 우 위’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로 규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경제규모와 제도적 효율성의 측면에서 미국경제의 토대가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 강하고(Becker, 2010; Wolf, 2008; Joffe, 2014: 73-92; Gelb, 2009), 첨단기술과 연구개발에서 그 격차는 더 크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Segal, 2011;

Joffe, 2014: 189-190; Cette and Bourkès, 2007; Koopman et als, 2008; Beckley, 2011).

또 미국의 우위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기반이나 정치체제의 개방성, 소프트파워 (Ikenberry, 2002, 2008; Joffe, 2014: 228-249; Nye, 2011), 인구구성의 우위(Kotkin,

2010) 등 다른 근거들도 제시되었지만 과거의 논의지반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처럼 미국 대외관계의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해 온 미국쇠퇴론 논쟁은

이론적인 혁신을 결여한 채 유사한 논쟁 구도 속에서 진행되어 왔다. 1970년대의 경제적 난국과 1980년대 이후의 금융 호황, 글로벌 불균형 구조의 심화와 이중적 자의 확대는 편의적으로 해석되어 미국의 쇠퇴와 미국의 우위를 지지하는 논거로 활용되었다. 미국쇠퇴론의 논거와 그것을 반박하는 논거가 거의 유사한 형태로 반 복되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러한 혼란은 미국 헤게모니의 경제적 토대의 변화를 분석할 수 있는 이론적 도구가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컨대, 이중적자의 증가를 단순한 약점으로 해석할 경우, 그로 인해서 나타났던 금융세계화나 호황을 분석하지 못하고, 단순히 금융이나 기술을 기반으로 한 구조 적 우위를 강조할 경우 그런 구조적 권력이 활용되는 방식이나, 그로부터 발생하 는 긴장과 갈등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우위와 취약성을 어떻 게 동시에 고려할 수 있을지, 또 그런 우위와 취약성이 어떻게 기능하고 작동하고 있는지, 미국 헤게모니의 변화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더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2) 단극체계의 안정성 논쟁

탈냉전으로 인해서 양극체계가 붕괴하고 금융세계화의 확대로 미국의 경제적 우 위가 회복된 1990년대에 미국의 힘과 관련된 논의는 미국의 쇠퇴가 아니라 단극체 계의 안정성과 미국의 우위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Kapstein and Mastanduno, eds., 1999; Cox, 2001a, 2001b; Kaufman et als, 2007; Paul, 2004; Brooks and Wohlforth, 2008; Ikenberry, ed., 2002). 이와 관련된 논의는 흔히 ‘단극체계’로 지칭되는 국제체계의 성격에 관한 논쟁이었지만, 미국의 힘과 전략, 그리고 이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대응과 관련된 쟁점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탈냉전 직후 주류 국제관계론을 대표하는 세력균형론은 미국의 힘의 우위와 미 국에 의존하는 단극체계의 지속 불가능성을 주장했다. 미국의 압도적인 우위는 다 른 국가들의 안보에 위협으로 작용하고, 이에 대항하는 균형이 발생해 단극체계는 필연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Mearsheimer, 1990; Waltz, 1993; 2000;

Layne, 1993). 이러한 과정은 국제체계의 속성(무정부상태), 체계를 구성하는 단위

(국가)의 목표(안보와 생존)이라는 논리에서 도출되는 것으로서 초역사적이고 보편 적인 것으로 전제된다. 따라서 헤게모니 국가의 대외전략이나 힘의 속성, 지역체계

제2장. 이론적 자원: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적 동학 43

의 특수성, 안보·군사 영역 이외의 경제·문화 영역에서의 상호작용은 이러한 과정 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Ikenberry, 2002; Kaufman et als, 2007; Paul, 2000).

그러나 이들의 전망과 달리 현실에서 미국에 대항하는 균형연합(balancing

coalition)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대다수 국가들이 균형의 책임을 다른 국가에

게 전가하고, 미국 주도의 질서에 편승해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지위경쟁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Wohlforth, 2008; Deudney and Ikenberry, 1999; Mastanduno, 1999; Brooks and Wohlforth, 2002; Jervis, 2009). 미국 역시 방어적인 균형을 추구하 는 것이 아니라 힘의 우위를 활용해서 공세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추구했다.

세력균형론의 이런 결함을 해결하고, 단극체계 하에서 미국의 전략과 다른 국가 들의 대응을 설명하기 위한 시도는 두 가지 측면에서 나타났다. 우선 미국의 압도 적인 힘의 우위로 인해서 균형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제시되었다(Wohlforth, 2002; Brooks and Wohlforth 2005, 2008; Wohlforth 1999; Mastanduno and Kapstein,

1999). 단극체계 하에서 미국 대외전략의 유일한 변수는 미국 자신의 힘이며, 미국

의 대외전략에 대한 제약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극체계 하에서 미국은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 기반한 강력한 개입정책을 통해 국제체계의 안정을 도모하는 전략을 추구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일 방주의적 정책을 선택할 수도 있다(Brooks and Wohlforth, 2008).

그러나 미국의 힘에 대한 이러한 낙관적인 평가 속에서는 현실에서 나타나는 쇠 퇴의 여러 가지 징후들, 즉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외부채, 국내 경기 침체, 동아시 아 자본에 대한 의존, 중국의 부상은 고려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현상들이 반드 시 미국의 쇠퇴와 연결될 필요는 없지만, 이러한 현상들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건 재함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설득력 있는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쇠퇴 론 논쟁에서 본 것처럼 관련 논쟁을 통해서 이에 대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다음으로, 세력균형론의 이론적 전제들을 완화해서 여전히 미국에 대한 일종의 균형이 존재함을 설명하려는 시도도 출현했다. 흔히 ‘연성균형’(soft balancing), ‘제 도적 균형’(institutional balancing), ‘위험분산’(hedging)이라고 불리는 전략이 바로 그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균형의 논리를 상대방의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에서 상대방의 위협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으로 대체한 이른바 ‘위협균형론’이나 균형의 비용과 편익에 대한 약소국의 분석에 기초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따른다면, 미국에 대한 균형이 발생하지 않았던 이유는 미국이 다른 국가들에게 심각한 위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