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2.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전략적 고려
2007-08년 금융위기는 미국 헤게모니의 쇄신을 가능하게 한 금융화가 갖는 모순 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미국은 통화·금융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위기에 대응했 지만, 2000년대 초반의 주식버블 붕괴에 이어 부동산 금융도 위기에 빠지며서 부 채의 누적에 기초한 금융세계화의 확대는 한계에 직면한 상황이다. 또 미국 장기 침체를 둘러싼 논의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미국 경제의 장기적 성장 전망 또한 밝 지 않다. 따라서 미국의 이익은 글로벌 불균형을 관리가능한 수준으로 조정하면서 금융세계화를 지속하는 데 있다. 손실의 세계화를 통한 대응 또한 미국이 글로벌 불균형에 기반한 금융세계화를 자발적으로 포기할 의사가 없거나, 대안을 모색할 능력을 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은 ‘세계적 저축과잉론’을 근거로 자국 경제의 조정을 회피하고 글로벌 불
균형의 조정 비용을 채권국들에게 전가하려 하고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은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의 관계이다. 특히 미국이 주장하는 있는 글로벌 불균형 조정 방식은 흑자국들의 협력과 희생을 요구하는 것으로, 그 과정에서 긴장과 갈 등이 유발될 수 있다. 따라서 글로벌 불균형의 조정을 위한 지정학적 환경을 조성 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이다.
금융위기 이후의 미국 헤게모니 분석이 보여주듯 미국은 군사력에서는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동원 가능한 자원이 제한되어 있고, 미국의 대외적 정당성 또한 크게 침식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미국은 글로벌 불균형의 조정이 국가안보와 직결된 사활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이 일방적인 전략적 목표의 추구로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1) 금융위기 이후 미국 헤게모니의 진로
앞서도 지적한 것과 같이 미국의 쇠퇴와 관련된 논쟁은 1970년대 이래 지속적으 로 반복되어 왔다. 2007-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미국의 경제력뿐만 아니라 정치 적·이데올로기적 능력에 관한 의문이 확산되면서 미국 헤게모니와 관련된 논쟁이 다시 제기되기 시작했다. 특히 금융위기가 미국 헤게모니에 관한 실질적인 도전과
위협으로 간주되면서 금융위기 이후의 논쟁은 세계체계의 근본적인 재편에 관한 전망들과 결합되기도 했다(Kirshner, 2014a; Duménil and Lévy, 2011; Overbeek and van Apeldoorn, eds., 2012; Wallerstein, 2011; Arrighi and Lu, 2009; Layne, 2009).
금융위기 직후 논쟁을 주도한 것은 미국 쇠퇴론이었다. 미국 쇠퇴론의 주된 논 거는 재정적자와 과소비, 그리고 과도한 군사적 팽창이었다(Bacevich, 2008; Kolko,
2008; Mandelbaum, 2010). 또 금융위기의 발생으로 인해서 이른바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이나 워싱턴 컨센서스의 정당성이 상실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축통화로서 달러 의 지위도 불안정해졌다는 진단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는 거시경제적 자율성과 국 제수지 균형의 유연성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구조적 권력의 소멸을 의미하는 동시 에, 군비감축, 그리고 적성국의 달러 투매로 인한 지정학적 위험을 야기할 수 있는 요인이기도 했다(Kirshner, 2014a; Kirshner, 2014b, 2009; Calleo, 2009; Cohen, 2009)
그러나 상대적인 쇠퇴의 징후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의 경착륙 징후나 미국에 대한 군사적인 도전이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또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미국은 여전히 통화·금융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금융위기 이 후 미국 헤게모니의 진로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달러위기와 연관된 핵심문제인 글 로벌 불균형의 전망, 이중적자·삼중적자의 누적에 기초한 금융세계화의 지속 가능 성, 미국 경제의 기술적 구조의 변화와 장기적 성장전망 등에 관한 분석이 필요하 다. 또 미국의 군사력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첨단장비나 기술에 대한 고려가 충 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미국쇠퇴론이 흔히 사용하는 GDP나 교역량, 국방비 지출의 증감만으로는 미국과 다른 국가들의 상대적 국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 이다(Beckley, 2011; Brown, 2013; Joffe, 2014).
우선 군사력에서는 미국의 압도적 우위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 다. 우선 미국의 군비지출 규모가 다른 모든 국가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 아래의
<표. 4-1>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의 군비지출은 세계 군비지출 총액의 40%
수준이며, 주요 국가들의 군비지출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크다. 또 미국 군비지출 액의 85-90%는 해외에서 지출되고 있다(Brown, 2013: 36-37).
제4장. 2007-08년 금융위기와 미국의 세계전략 179
<표 4-1. 세계 군비지출 순위>
순위
국가 지출액(10억 달러) GDP 대비 비중(%) (2010년)
세계군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2010년/ 2012년)
2010년 2012년 2010년 2012년
1 미국 미국 698 660 4.8 43 / 38
2 중국 중국 119* 102* 2.1* 7.3* / 5.8*
3 영국 영국 59.6 61 2.7 3.7 / 3.4
4 프랑스 러시아 59.3 60 2.3 3.6 / 3.4*
5 러시아 일본 58.7* 59 4.0* 3.6* / 3.3
6 일본 사우디 54.5 52.5 1.0 3.3 / 3.0
7 사우디 프랑스 45.2 48 10.4 2.8 / 2.7
8 독일 독일 45.2 40 1.3 2.8 / 2.3
9 인도 인도 41.3 38.5 2.7 2.5 / 2.2
10 이탈리아 브라질 37.0 35 1.8 2.3 / 2.0
출처: SIPRI(SIPRI Yearbook), *는 추정치
또 미국은 군비지출 규모나 군사력의 규모뿐만 아니라 힘의 투사능력에 있어서 도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다. 우선 미국은 장비와 무기의 수준에서 압도적인 육군력을 보유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해·공군력이다. 미국은 압도적인 해군 전 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해군력 규모 2-14위 국가의 전력을 합한 것보다 더 큰 수준이다. 핵잠수함, 핵항모, 해상공중전력 등에서 미국은 비교 불가능한 수준의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또 공중급유 능력, 폭격기, 수송기, 우주 기반 감시·정찰 능 력, 정밀타격 기술 등 공군 전력에서도 미국에 필적할 국가가 없는 상황이다(Work, 2008; IISS, 2012; Bumiller and Shanker, 2011; Bergen and Tiedemann, 2011).10) 이처 럼 해군력과 공군력에서 미국은 유일하게 전세계적인 투사력을 가진 국가이며, 이 때문에 다른 국가들은 지역적 분쟁의 해결을 위해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Barnett, 2009; Gelb, 2009).11)
10) 1900년 영국의 해군력은 2-8위 국가의 해군력 총합의 50% 수준이었다는 점에서 미국 군사
력의 우위는 경이로운 수준이다(Joffe, 2014: 95).
헤게모니 국가의 과도한 군사적 팽창을 비판하는 ‘제국적 과잉팽창’(Kennedy, 1987)의 논리는 미국의 쇠퇴를 주장하는 데 가장 흔히 동원되는 논리 중 하나이다.
그러나 헤게모니 국가의 능력을 벗어나는 ‘과잉’ 팽창의 임계점을 설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2011년 현재 해외주둔 미군 병력은 3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되며,
GDP에서 군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4-5% 수준으로 적지 않은 수준이다. 이 때
문에 미국이 군사적으로 과잉전개되어 있으며, 이것이 미국의 쇠퇴를 재촉할 것이 라는 비판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예외적인 상황이지만 2차 세계대 전 시기 미국의 군비지출은 GDP의 40%, 한국전쟁 시기에는 14%, 베트남전 시기에 는 10%에 달하기도 했으며, 전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1988년에는 5.7%를 기 록하기도 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군비지출은 GDP의 4.5% 수준에서 변화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으로도 예외적으로 높은 수치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군비지출 규모 그 자체가 아니라 군사력이 사용되는 방식이나 군비지출의 경 제적 영향이다(Joffe, 2014: 102; Brown, 2013: 5, 36-37).
미국 경제의 경착륙에 관한 우려나 중국의 급속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금융위기 이후 미국경제는 여전히 상대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우선 미국 쇠퇴론의 근거 로 흔히 인용되고 있는 GDP의 상대적 규모에서 미국은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2012년 현재 미국의 GDP 규모는 일본의 3배, 중국의 2배 규모이다. 또 EU의 경우
GDP 규모에서는 미국보다 더 크지만, ‘재정동맹 없는 화폐동맹’이라는 측면에서 EU를 단일한 경제적 행위자로 보기는 어렵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예외적인 시기 를 제외하면 미국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대체로 일정했고, 1인당 GDP 에서는 중국 같은 경쟁국에 비해서 미국의 우위가 더 두드러진다(Joffe, 2014:
73-88; Brown, 2013: 54; Beckley, 2011).
미국 경제의 진로에 관한 논쟁에서는 GDP나 무역규모 같은 양적지표들 보다는 미국의 기술적 우위나 금융적 우위의 지속 가능성이 더 첨예한 쟁점을 형성했다.
우선 미국의 경제적 우위를 낙관하는 입장은 저임금과 높은 노동 강도에 의존하고
11) 미국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에 대해서는 거의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 달리 중 국의 군사적 현대화가 제기하는 도전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중 국은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군사적 현대화를 추진해 왔는데, 여기에서 핵심은 내륙/육군 중 심의 군사력 편재를 해양/해·공군 중심으로 전환해 대외적 투사력을 증강하는 것이다. 중국 은 둥펑21(東風 21/DF-21D) 미사일을 통해서 장거리에서 미국 항공모함 공격능력 확보하고, 대양에서 작전할 수 있는 잠수함 개발하는 등 일정한 수준의 반접근 전력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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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중국 모델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미국의 기술적 우위를 강조했다. 이러한 주 장에 따르면 미국은 주요 산업에서 핵심 기술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IT에서 의 우위는 확고하다. 또 노동생산성 또한 중국은 물론,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서도 높기 때문에 미국의 장기적 성장전망은 밝다. 또 금융위기의 발생으로 인한 부분 적 교란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가장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금융시스템을 가 지고 있다(Cette and Bourkès, 2007; Becker, 2010; Lund et als., 2013; Stokes, 2014).
중국의 경우 섬유 등 단순 상품 수출의 경우 자국에서 생산된 부가가치가 상품 가 치의 50-75%를 차지하지만, 컴퓨터, 지식정보 산업 등의 수출품에서는 그 수치가 25% 수준, 하이테크 상품에서는 15% 내외로 낮아진다. 또 중국이 생산하는 하이테 크 제품의 경우에도 핵심기술과 핵심부품은 미국, 유럽, 일본에서 수입되는 경우가 많다는 한계가 있다(Koopman, Wang and Wei, 2008; Brown, 2013: 112).
금융과 기술에서의 우위에 기반한 새로운 축적구조가 미국 헤게모니의 안정적인 토대가 될 수 있다는 보는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금융혁명이나 정보·통신혁명은 미국 헤게모니의 형성기에 나타났던 혁신에 버금가는 생산성 향상을 가능하게 했 다. 또 1980년대는 1970년대의 헤게모니 위기를 해결하는 새로운 성장기의 시작이 며, 1990년대의 신경제는 헤게모니의 부활을 상징했다. 신경제 하에서는 노동생산 성이 향상되고 이윤율이 상승하며, 조직관리에 있어서도 혁신이 나타나는 등 안정 적인 성장을 위한 새로운 축적구조가 확립되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미국 헤게 모니 또한 새로운 상승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Duménil and Lévy, 2006; 2001a; Cumings, 2009; Panitch and Gindin, 2003, 2005, 2012).12)
그러나 정보·통신기술에 근거한 미국경제에 대한 이러한 낙관적인 평가는 문제 가 있다.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1990년대 이후 미국 경제의 생산성이 상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효과와 양상은 영국 헤게모니의 실물적 팽창기의 1차 산업혁명(증기기관, 면방적 산업), 그리고 미국 헤게모니의 실물적 팽창기의 2차 산
12) 1990년대까지 뒤메닐은 1980년대 이후의 이윤율 상승이 이윤율의 하락추세를 근본적으로 역전시킬 수 없으며, 결국 미국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로 귀결될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Duménil and Lévy, 1993, 1998). 그러나 2000년대 이후의 연구에서 뒤메닐은 금융화를 이윤 율 하락에 대한 일시적인 반작용이 아니라 이윤율의 새로운 상승국면의 시작으로 해석한다.
특히 그는 신경제에 주목해서 신경제와 정보혁명을 20세기 초반의 혁신에 준하는 새로운 성장국면의 주요 동력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의 신경제 붕괴나 2007-09년 금융위기는 구조적 위기가 아니라 이러한 성장세를 교란하는 부분적인 위기일 뿐이라는 것 이다(Duménil and Lévy, 2004,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