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시가지계획령」과 「(구)도시계획법」: 도시계획적 원칙의 적용
최초로 공원을 제도권에 포함시킨 「조선시가지계획령」과 「(구)도시계획법」은 시가지계획시설로서 공원을 규정하였다. 「조선시가지계획령」 이전 일제에 의해 제도화된 공원은 지역∙지구제로서 토지의 지정과 행위의 제한 만으로 시민의 보건과 재난의 피난처로 공원의 목적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시가지 내 자유 공지의 보전이 도시 문제로 등장하면서 총독부는 계획적이고 체계화된 방식으로 공원 용지를 확보하고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공원을 설치하고자 하였다. 1934년에 제정된
「조선시가지계획령」에 따라 공원은 공공용으로 토지를 수용하고 재정으로 조성하는 시가지계획시설로 전환되었다. 해방 이후 정부는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고 일제의 법령을 정비하기 위해 1962년 「(구)도시계획법」을 제정하였고 전재민들로 잠식된 공지를 회복하고자 공원을 도시계획시설로 유지하였다.
근대의 법규는 공원에 대한 특별한 규정을 마련하지 않았지만 공원을 규제할 수 있는 도시계획 제도의 원칙을 적용하였다. 첫째, 공원은 “계획 없이 개발이 없다”는
‘건축부자유의 원칙’을 적용 받게 되었다. 즉, 공원은 반드시 도시계획으로 수립되고 공공이 주체가 되어 해당 토지를 수용할 수 있었다. 이 원칙에 근거하여 공원은 공공의 복리에 적합한 공동 소유와 공동 경제의 형태로 해당 토지의 소유권은 사회적 의무를 내재하게 되었다. 둘째, 공원 내 토지소유자는 ‘현상 유지의 의무’를 가지게 되었다.
이 의무는 지역∙지구제의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공원 용지로 토지가 수용된 순간 공공은 해당 토지를 보전하여 효율적인 공원사업을 집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공원 예정지는 민간의 사용과 행위가 제한되어 시장 지배력이 상실하게 되었고 개발이 억제되어 환경 훼손을 방지할 수 있는 예방적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2) 「공원법」: 기존 법의 틀로 만들어진 법규
전쟁으로 훼손된 유적∙유물을 보호하고 잠식된 공원을 회복시키기 위해 정부는
「공원법」 제정이 필요하였다. 본래 「공원법」은 우리나라에 자연공원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1959년 「국립공원법(안)」에서 출발하였고 8년의 연구 기간 점진적으로 발전하였다. 당시 「국립공원법(안)」은 공원 결정권과 의결권을 분리시켜 조선총독 일원화였던 일제의 법과 차이를 두었다. 동년에는 「공원법(안)」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공원은 국립공원과 지방공원(현 도립공원)으로 구분하여 사무와 책임을 나누었다. 1962년 「도시계획법」 제정에 따라 도시공원이 「공원법(안)」에 수용되었고 이 법(안)은 도시공원과 자연공원에 대한 규정을 분리하였다. 이때부터
도시공원의 확보는 「도시계획법」에 따르고 도시공원의 설치∙관리는 「공원법」을 따르는 분리된 제도 체계를 갖추었다. 이후 「공원법(안)」은 정부 부처 간 이해의 충돌로 잠시 철회되었지만 1964년 정부가 심사를 재개하면서 자연공원과 도시공원의 세목 규정이 통합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1967년도에 제정된 「공원법」은 향후 도시공원 법규가 규정하여야 할 제도적 범위를 정립시켰다. [부록 6]의 도시공원 법규의 목차 비교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공원법」이 제시한 공원의 설치 및 관리, 비용, 감독, 보칙, 벌칙 규정이 향후 도시공원 법규의 골격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도시공원의 제도적 기초를 마련한 「공원법」은 공원에 대한 독자성이 부족하였다. 1967년 이전 공원은 해방과 전쟁이라는 혼란기를 겪으면서 사실상 공원정책이라는 것이 부재하였다. 공원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공원법」은 일본의 「국립공원법」에 따라 사무와 절차적 체계를 응용하였고
「공원법」의 다수 조문들은 각종 토지개발 관련 법률의 조문을 짜깁기하여 만들어졌다. 즉, 「공원법」은 공원에 대한 특성과 개념을 정립하여 만들어진 선도적인 법규가 아니라 미리 정해 둔 법의 틀에서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공원법」은 도시공원의 발전적 방향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존 법률들의 논리와 틀을 따르게 되었다.
특히 「공원법」의 다수 조문∙조항은 「도로법」에서 차용되어 토지 등의 보전, 공원의 점용 및 사용, 원상회복, 금지행위, 원인자부담, 사권의 제한 등 관리에 관한 사항으로 채워졌다. 그 중 사권의 제한은 사인에 대한 규제를 높이고 공권력의 사용 범위를 넓게 설계할 수 있어 제도적 불공정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았다.
3) 「도시공원법」: 기준 정립과 제도 개선의 시작
1980년 「도시공원법」 제정은 상이한 성격의 공원들이 제도적으로 공존된
상태에서는 도시공원의 개발과 정비를 촉진시키는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 아래 출발하였다. 법(안)은 「도시계획법」과 별도로 2년 내 공원조성계획 수립, 도시공원 사유지를 매수, 공원 용지의 자제적 확보를 골자로 독립법으로서 체계를 갖추고자 하였다. 그러나 국회 심사 과정에서 공원조성계획(2년내 기한 삭제)을 제외한 관련 규정이 삭제되면서 「도시공원법」은 「공원법」과 차별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도시공원위원회 설치 조항이 사라지면서 도시공원에 대한 전문성이 후퇴하였다. 그러나
「공원법」과 비교하여 「도시공원법」의 큰 차이는 법률보다는 명령에 있었다.
「공원법」 명령에서는 도시공원에 대한 관련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거나 상세하지 못하였던 반면 「도시공원법」 명령은 도시공원에 관한 점용 대상, 점용허가 기준, 공원시설의 종류, 공원시설의 설치기준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행정의 자의적 해석을 배제하여 법적 구속력을 높였다.
1993년 이후 「도시공원법」의 태도가 바뀌어 제도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에 따라 「도시공원법」은 규제 중심에서 민원 중심으로, 보전 중심에서 개발과 보전이 조화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도시공원법」의 태도 전환으로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내 토지 소유자들의 재산권 제한 상태를 고려하여 점용기준이 완화되었고, 민간의 도시공원 사업을 촉진하기 위해 공원시설이 확대되었고 설치기준이 완화되었다.
4)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제도의 개편과 독립법으로 성장 약칭「공원녹지법」은 근린 생활권 내 도시녹지 공간 확대와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해소에 기본 방향을 두었다. 이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본 법률은 풍부한 공원정책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공원정책에 대한 경험은 지방자치제의 부활이 일정 부분 기여하였다. 다소 권위적이었던 중앙정부의 일부 권한이 지방정부로 위임되면서 도시계획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재량이 높아졌고 1995년에 첫 출범한 민선 지방자치장들은 쾌적한 환경을 요구하는 시민의 의사를 반영하였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1996년 ‘공원녹지 확충 5개년 계획’ 수립 이후 시민 참여에 의한 도시 내 녹지공간
확대, 쌈지공원을 통해 도시공원의 공평 분배 추진, 각종 개발사업 조건으로 공원녹지 기부채납 등 공원과 녹지가 통합된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성과를 기초로 정부는 정책 수준에 머물렀던 공원녹지를 제도화하기 위해 ‘도시녹지’라는 법정 개념을 수립하였고 전문가 그룹과 협력하여 「도시공원법」 정비(안)을 마련하였다. 그 결과로 전부개정된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은 도시계획으로 도시공원과 녹지를 확보하였던 전통적인 방법 외에도 본 법률에 의거한 공원녹지기본계획으로 공원녹지를 확충할 수 있게 되었고 각종 개발사업의 도시공원∙녹지 의무제를 시행할 수 있었다.
공원녹지 외에도 본 법률은 다양한 자구책을 제도화하였다. 정부는 일몰제로 도시공원의 대량 실효를 방지하기 위해 도시자연공원을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전환하였다. 도시계획 결정에 수동적이었던 공원조성계획은 도시공원의 실효를 판단하는 잣대가 되었다. 향후 법률 개정으로 도입된 민간공원과 국가도시공원에 관한 특례는 일반 법령에 대하여 예외적인 제도로 추진되었다.
표 Ⅱ- 13. 도시공원 법규의 특성 변화
법명과 입법 취지 시대 사항 입법 과정 법규의 특징
‘34 「조선시가지계획령」
도시의 창설 및 계량 공원의 확보
비 재정 방식의 신도시 건설 실험적 공원계획 수립 개발제한 기능의 공원정책
(‘19) 일본 「도시계획법」 제정 → (‘22)
조선총독부 「조선시가지계획령」 초안 작성
→ (‘23) 관동대지진, 피난처로서 공원 필요
→ (‘26) 지역제로서 공원
도시계획으로 공원 확보 공원 예정지 내 행위 제한
▼
도시계획적 제도 원칙 적용
‘62 「도시계획법」
공원의 재건
한국전쟁 이후 전재 복구 공원 용지 내 무허가시설 난립
(‘51, ‘61)일제 법령의 정비 → (‘55)재
건 복구와 백년대계의 도시계획 수립 →
(‘59 안)위생불량지역 적극 계량
‘67 「공원법」
도시공원의 설치 및 관리
문화제와 자연보호 제도 필요 도시 확장과 도시 억제 정책 수립 시역 통제를 위한 공원정책 수립 새마을 운동으로 도시 공원화
(‘59 안) 공원 결정권과 심의권 분리 →
(‘59 안) 국가와 지방으로 공원 사무∙책임
분리→ (‘62 안) 도시공원 신설, 도시계획으 로 도시공원 확보 「공원법」으로 도시공원 설치∙관리 → (‘63) 법(안) 철회 → (‘64 안) 법(안) 재심사, 도시공원과 자연공원 법 규 통합
혼란기 공원정책의 부재 토지개발법률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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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법의 틀로 만들어진 법규
‘80 「도시공원법」
도시공원의 개발과 정비
국가 행사에 따른 도시정비 추진 통합 법규로서 공원개발의 한계 도심지 중심으로 공원조성
(‘77) 법(안) 건의, 자연공원과 도시공원 법
제도 분리 → (‘78) 법(안): 사유지 연차별 징수계획, 이전적지 녹지의무제, 사적지 보전
「도시공원법」 자구 조치 규정 삭제 도시계획시설로서 도시공원 유지
명령으로 도시공원 상세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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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공원 기준 정립과 제도의 개선
‘93 「도시공원법」
도시공원의 규제완화
지방자치제도 시행과 도시계획 결정 의 위임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에 대한 불복
(‘93) 규제완화 정책: 규제 중심에서 민원
중심, 보전 중심에서 보전 및 개발의 조화
‘05 「공원녹지법」
도시공원∙녹지 체계 개편
생활도시로서 도시정책 추진 도시계획시설의 보상조치 촉구 민선 지방자치단체의 공원녹지 정책 추진 및 성과
(‘00) 도시연담화에 따른 광역녹지체계 구
축 → (‘01)도시녹지 법률개념 정립 →
(‘03) 법(안) 근린생활권 내 도시녹지공간
확대,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해소
공원녹지 정책의 제도화 도시계획 외 도시공원∙녹지 확충 장기미집행 해소를 위한 자구 조치
▼
도시공원 제도의 개편과 독립법으로 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