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도시공원의 환경 훼손
1) 시대별 도시공원 현안 및 사건
○ 「공원법」 기간
불도저라는 별명처럼 서울시 김형옥 서울시장의 도시공원 사업 방식은 공원이 처해 있는 환경성과 장소성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파고다공원은 우리나라에서 ‘공원’이란 명칭을 사용한 최초의 공원이자 3.1운동의 성지로 이 공원의 잠식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현안이었다. 1967년 김현옥 시장은 면적 360평, 길이 18m, 2층 규모의 아케이드 상가를 파고다공원 담장을 따라 건축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논란이 가중되자 건설부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던 1967년 7월 7일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서울시는 건설부의 방침을 무시하고 공사를 진행하자 언론은 서울시가 불법 행위를 자초한다고 비판하였다.116 상가 조합은 아케이드 건축 공사비 1억7천만원 전액 부담하였고 15년후 기부채납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계약하였다. 117 단, 서울시는 파고다공원 조성 비용 2천만원만 부담하였다. 이 사건을 두고 윤정섭은 공공투자에 따라 도시계획 사업에 대한 이론적 해명이 가능하지만 이와 같은 공공투자의 불모성은 도시계획 이론의 불모성과 상통한다고 비판하였다.118
1950년대 이후 서울시는 남산개발계획을 발표였고 민자개발사업자를 공모하였다.
1959년 8월 ‘한국색도 주식회사’가 사업비 8,000만환으로 시행한 케이블카 사업이
선정되어 1962년 5월부터 운영하였다.119 동년에는 한국 전쟁 참전 17개국을 기념하는
‘자유센터’가 착공하였고, 1966년 7월 관광공사는 적자를 이유로 민영화하였다. 1968년
11월 남산 회현동 일대의 레크레이션센터 건립은 「건축법」 위반과 특정업자 선정으로 문제가 되었다. 이 사업은 5,500평 임야에 호텔, 골프장, 오락시설, 터키탕 등 연건평
8,700평 전체 6층의 ‘맘모스 건축’이었다. 이 자리는 서울시 산업국이
‘남산종합개발계획’을 위해 공원시설지로 지정한 곳으로 무허가 주택 120동이 철거된 상태였다. 그러나 중구청은 서울시의 사전허가도 받지 않은 채 건축 기공식을 열었고 서울시 산업국은 “남산공원에 숙박시설을 절대 마련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또한
116 기자불명, “파고다 아케이드 불법,” 『경향신문』, 1966. 7. 7, 3면.
117 파고다공원 아케이드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178명의 점보임대인이 모은 민자공사비 1 억 7 천만원 중 1 억 4 천만원을 그들 대표 이유영이 횡령하여 회수하지 못하였다. 이일로 파행은 거듭되었고 비정상적인 상태에서개점을 허가한것에대하여시와대표간의의혹을키웠다.
이병서, “파고다아케이드 관리권 넘어가, 일심서 서울시에 승소판결,” 『동아일보』, 1980. 7. 9. 7면
118 윤정섭, “서울시도시계획과 녹지와 고적 불도저의 발상,” 『동아일보』, 1967. 9. 12, 5면.(칼럼/논단)
119 기자불명, “서울에 케블카 가설,” 『동아일보』, 1959. 8. 29. 3면.
“중구청이 기공을 했더라도 정지 작업만 하게 하고 호텔 등 건물은 짓지 못하도록 막겠다”고 밝혔다.120 당시 서울시는 중구청 주도의 레크레이션센터 기공 사실을 몰랐다고 하였지만, 건축 골조까지 이미 올라간 상태였다. 결국 그 자리에 시민아파트 (1970. 5.
준공)가 들어섰다.121
▲1968년 파고다공원 아케이드
▲1983년 파고다공원 복원
그림 Ⅳ- 5. 파고다공원 아케이드와 복원
120 기자불명, “특정인에 오락시설 허가,” 『동아일보』, 1968. 11. 9, 8면.
121 서울특별시, 『남산공원 레크레이션 건립 관계철』, 1969. (내부문서, 영구), 박인재, 『서울시 도시공원의 변천에 관한 연구』 (상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2), p.53. 각주 122. 재인용.
○ 「도시공원법」 기간
「도시공원법」 제정과 동시에 서울시는 과거 개발 중심의 시 정책으로 훼손된 공원들을 복구하고자 하였다. 파고다공원 아케이드와 사직공원 수영장의 사용 기한 마감은 각각 1982년과 1986년으로 서울시는 이 시설들을 철거하여 도시공원의 역사적 가치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1984년부터 남산 복원도 시작하였다. 서울시는 타워호텔, 신라호텔, 동국대 등은 1950~1970년대 편법으로 공원 용지를 할애 받아 건축한 점유 시설들을 이전시킨 후 용지를 남산공원으로 다시 편입시킬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실패로 끝났고 1990년 8월 서울시는 다시 ‘남산 제 모습 찾기 사업’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남산 내 공원 부적격 시설을 1996년까지 단계적으로 이전 또는 철거하기로 방침을 정하였다. 이 계획은 건축물의 증·개축이 허용되지 않은 「도시공원법」을 근거로 남산 내 건물의 연한이 다하면 건축 용지를 공원 용도로 전환시키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정책도 불발로 끝나 특혜 시비로 이어졌다. 서울시는 다시 국악고교, 외인아파트, 단독주택단지, 남산맨션아파트, 미군통신대, 미군종교휴양소 등을 이전 또는 철거 계획에 포함시켰다. 이 방침은 사업추진 과정에서 만만치 않은 난제들이 있었다. 외인아파트는 외국인들이 대한주택공사로부터 임대 받은 것으로 서울시는 목동에 그들의 주거지를 대체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외인아파트에 거주하는 45개국 외국인 427가구 대부분이 남산 주변 주한외국공관과 국방부에서 근무하였고 건축주인 대한주택공사가 2천억원이 넘는 보상비를 실물 보상이 아닌 현금 보상에 대하여 요구하면서 협상에 난항을 겪었다.
1980년대 도시공원 복원 사업은 시민들에게 도시의 환경적 가치와 기대를 고무시켰던
반면 1990년대 근린공원 내 민간공원시설 설치는 주민의 민원 대상이었다. 그중 주민의 반감을 산 대표적인 시설은 골프연습장이었다. 1983년 건설부는 심각하게 훼손되어가는 개발제한구역의 현실적 대책으로 휴식과 체육활동 목적의 공원 계획을 구상하였고 골프연습장 설치를 고려하였다. 그러나 민간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경제장관협의회는
‘건전여가생활의 활성화 대책’에서 골프연습장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었다.122 1985년 개발제한구역에 대한 규제완화 조치가 철회되면서 골프연습장을 공원시설에 포함하자는 안건이 결정하였고 정부는 1987년 「도시공원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며 골프연습장을 공원시설로 포함시켰다. 이후 1998년 건설교통부는 도시공원 일제 현황 조사를 시행한 결과 골프연습장의 계획 또는 설치된 도시공원은 전국 51개소였고 그 시설 수는
62개소까지 이르렀다.123 골프연습장은 눈에 거슬림, 타격 소음, 빛 공해 등으로 생활 환경
문제를 발생시켜 주민들의 민원을 제기가 높았다. 또한 「도시공원 시행규칙」은 골프연습장에 대한 설치기준을 명시하지 않아 서울 초안산근린공원, 마산 필용자연공원,
122 기자불명, “그린벨트내의휴식공원,” 『경향신문』, 1983. 6. 2. 3면. (사설)
기자불명, “그린벨트 골프장 휴양시설지는 보류, 대도시 레저시설 대폭확충,” 『동아일보』, 1984. 9. 18.
1면.
123 주택도시국 도시관리과, 『도시공원법 시행령 개정(안) 설명자료』, 1999. 3. 25.
창원 대상공원 등은 1개의 공원에 최대 5개의 골프연습장이 설치될 계획이었다.
표 Ⅳ- 20. 1971~1997년 도시공원 내 골프연습장 설치 현황
구분(년도) 공원명 공원 결정일 설치일 설치 계획
‘87년 7월 이전 1. 서울 장충동 남산자연 2. 서울 정능동 북한산자연
40. 3. 12 71. 7. 21
71. 8. 12 71. 7. 21
‘87년 7월.
~
‘93년 8월
1. 서울 망우동 용마자연 2. 서울 용산동 동빙고근린 3. 서울 번동 오동근린 4. 서울 상일동 명일근린 5. 서울 염창동 염창근린 6. 서울 홍은동 백련근린 7. 서울 답십리 답십리근린 8. 부산 초읍동 어린이대(근린) 9. 대구 대명동 앞산자연 10. 대구 성당동 두류근린 11. 대구 범어동 시민근린 12. 대구 본리동 본리근린 13. 대구 침산동 침산근린 14. 인천 학익·선학동 문학자연 15. 광주 우산동 우산근린 16. 광주 운암동 중외근린 17. 광주 송촌동 송정근린 18. 광주 신앙동 신용근린 19. 울산 선암동 선암자연 20. 성남 백현동 신촌근린 21. 성남 이매동 서현근린 22. 안산 성포동 노적본자연 23. 충주 호암 자연공원 24. 전주 동서학동 산성자연 25. 전주 인후우아동 인후근린 26. 익산 북일동 소라근린 27. 익산 마동 수도산근린 28. 울산 신정동 선암자연 29. 울산 신정동 남산근린 30. 울산 장생포 장생포근린 31. 마산 학성동 필용자연 32. (상동)
33. 서귀포 강정동 중앙근린
58. 2. 15 77. 7. 9 77. 7. 9 71. 8. 6 77. 7. 9 66. 2. 5 77. 7. 9 78. 9. 21 65. 2. 2 65. 2. 2 69. 10. 4 65. 2. 2 65. 2. 2 66. 8. 31 75. 2. 18 75. 2. 18 75. 2. 18 75. 2. 18 62. 5. 14 72. 11. 3 72. 11. 3 85. 9. 11 68. 8. 10 66. 2. 10 70. 4. 14 86. 7. 4 86. 7. 4 86. 8. 19 76. 3. 27 86. 8. 19 64. 8. 6 (상동) 86. 5. 15
91. 12. 13 88. 4. 4 89. 3. 18 90. 4. 12 90. 7. 18 92. 9. 15 92. 7. 15 88. 7. 1 91. 9. 3 91. 6. 5 87. 12. 9 91. 12. 11 91. 6. 5 89. 11. 1 92. 2. 18 92. 12. 28 89. 12. 4 89. 12. 30 91. 3.
90. 3. 27
92. 3. 9
91. 10. 29
92. 9. 7
(93. 4. 27) (92. 10. 7) (91. 5. 27)
(91. 5. 11) (90. 3. 27)
(89. 10. 11)
(90. 12. 13) (90. 6. 1)
(93. 5. 29) (89. 12. 23)
<다음 페이지>
<앞 페이지>
구분(년도) 공원명 공원 결정일 설치일 설치 계획
‘93년 8월 이후 1. 서울 창동 초안산근린 2. (상동)
3. (상동) 4. (상동) 5. (상동) 월계동
6. 울산 화정동 방어진자연 7. 안양 호계2동 호계근린 8. 원주 단계동 일산근린 9. 익산 모현동 배산근린 10. 구미 구평동 자연공원 11. 영주 조암동 근린공원 12. 경산 진량면 근린공원 13. 창원 상복동 남지자연 14. 울산 전하동 방어진자연 15. 창원 두대동 대상근린 16. (상동)
17. (상동) 18. (상동) 외동
19. 창원 사파정 가음정근린
71. 8. 6 (상동) (상동) (상동) (상동) 70. 3. 30 97. 1. 29 74. 11. 26 88. 8. 31 91. 8. 12 86. 10. 23 77. 4. 28 79. 7. 18 87. 4. 30 85. 11. 23 - - - 83. 7. 6
94. 2. 19
97. 4. 15 97. 4. 11 98. 2. 10
95. 11. 13
96. 3. 29
97. 1. 13
설치 중 설치 중 설치 중 설치 중 설치 중 설치 (94. 6. 15) (96. 4. 25) (94. 1. 19) (95. 5. 24) 설치중 (95. 11. 18) (95. 12. 28) 설치 (95. 10. 24) (95. 10. 24) 설치중 (95. 10. 24) 미설치 1. 대전 사정동 보문산자연
2. (상동) 3. (상동) 호동
4. 대전 상서동 신탄진자연 5. 대전 월평동 월평근린
65. 10. 13 (상동) (상동) (상동) (상동)
*자료: 건설교통부 도시관리과, 『도시공원법 시행령 개정(안) 설명자료』, 1999. 3. 25.
표 Ⅳ- 21. 도시공원 내 골프연습장 설치 관련 주요 사건 개요 1994년
서울 청담공원
1988 년 공원 부지 일부가 매각되어 정 O 순의 소유가 되었다. 1989 년 정씨는 토지 일부를 강남구에 이전하고 다른 사유지들을 매입하여 공원 전체 면적
59,347 ㎡ 중 11.8%에 해당하는 골프연습장 설치 토지분을 완전 소유하였다.
1990 년 청담공원은 도시계획시설로 결정되었고. 1992 년에는 골프연습장을 추 가로 변경고시를 하였다. 1993년 정씨는 강남구청장에게 실시설계인가신청을 하 였고, 이를 공람한 지역주민들은 설치를 반대하는 민원을 제기 하였다. 1993 년 12 월 설치 반대를 위한 ‘행정심판청구’를 하였으나, 서울행정법원은 주민은
‘이해관계인’이 아니라고 판결하였다. 정씨는 곧 서울시로부터 사업인가를 받 았고, 1994년 건축허가를 받았다.
주민은 헌법재판소까지 법률상 받을 수 있는 모든 심판을 청구하였다. 각 재판 내용은 전국민에게 알려졌고 공원이 훼손되는 장면이 언론을 통해 전파되었다.
첫 소송만 260 여명 이었고, 대법원 상고까지 178 명이 참여하여 공원 훼손에 대한 이웃의 집단성과 연대성을 보여주었다. 사건의 대중적 관심사가 놓아 대부 분의 판결이 판례와 결정문으로 남겨 훗날 환경권 관련 법심판의 근거가 되었다.
<다음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