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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질서의 변화와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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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원 경제통상연구부장

요약

Ⅰ. 서론

Ⅱ. 유럽, 아시아, 중동, 북미 지역의 질서 개념

1. 유럽 지역 2. 중국 3. 중동 지역 4. 북미 지역

Ⅲ. 베스트팔렌 체제 원칙과 도전 요소들

1. 베스트팔렌 체제 원칙 2. 도전 요소들

3. 질서의 핵심 요소는 자유 4. 질서의 두 가지 요소 - 정당성과 힘

Ⅳ. 아시아의 다양성과 일본 및 중국 1. 아시아의 다양성

2. 일본 3. 중국

Ⅴ. 중국의 세계 질서관

Ⅵ. 세계 질서에 대한 미국의 인식과 역할

Ⅶ. 결론

세계 질서의 변화와 동아시아

목 차

2015-01 정책연구과제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공공외교의 구현과 외교정책 수립을 위한 참고자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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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약

오늘날 규범에 근거한 체제(rule-based system)가 도전에 직면하고 있 다. 규범에 근거한 체제 구축에 참여하지 않았던 유럽과 미국 이외의 지역 국가들은 서방 세계가 구축한 국제 규범에 근거한 체제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대량파괴무기(WMD)를 쉽게 확보할 수 있고, 전통 개 념의 국가가 붕괴하고 있으며, 지구 환경이 악화되고 있고, 대량 살상이 지 속되고 있고, 새로운 기술의 확산으로 전쟁의 파괴력이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까지 확대된 상황에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지역 간 거리가 없 어지고 한 지역에서 발생한 일을 전 세계가 공유하는 시기이다.

모든 국제 질서는 응집에 도전하는 두 경향, 즉 정당성이 재규정되거나 세력균형이 상당히 변화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데, 힘과 정당성이라는 두 측면의 질서 간 균형의 본질은 정치력이다. 도덕적 차원에 대한 고려 없 이 힘을 측정하게 되면, 결과는 매번 의견이 불일치될 때마다 힘을 테스트 하게 될 것이다. 국가들은 변화하는 힘에 대해 제대로 된 측정을 하지 못하 면서 혼란스러워 할 것이다.

세력 간 불균형이 커지면서, 21세기의 국제 질서 구조에 몇 가지 문제가 노출되었다. 첫째, 국제 행위자의 형식 단위인 국가 자체가 다양한 압력에 직면하게 되었다. 둘째, 세계의 정치, 경제 조직들이 다양한데 세계의 정치 구조가 민족 국가에 근거하고 있는 반면, 국제 경제 시스템은 글로벌화되었 다. 셋째, 강대국들이 중요 문제들을 협의하기 위한 효율적인 메커니즘이 부족하다.

국가의 독립, 주권, 국가이익, 국내문제 불간섭 등 베스트팔렌(Westphalia) 체제의 핵심 원칙들은 일반적으로 인정된 국제 질서의 원칙들인데, 베스트 팔렌 체제에 기반을 둔 근대 민족국가가 심각한 내적 변화를 겪고 있다.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질서의 틀이 없이는 자유는 확보되거나 유지되지 않는다. 어떠한 국제질서 체제도 질서가 붕괴될 때 억지력을 강요할 수 있 는 세력균형과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행동의 한계를 규정하는 원칙들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력의 균형이 평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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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 깊게 잘 조합시켜 적용할 경우, 도전의 빈도와 범위를 제한할 수 있으 며, 도전이 발생하더라도 성공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다.

공통의 규범을 준수하는 국가들이 협력적 질서를 확대하고, 자유주의적 경제 시스템을 채택하며, 영토적 점령을 부인하고, 국가 주권을 존중하며, 참여적이고 민주적인 거버넌스 시스템을 채택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그런 형태의 국제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국제 질서의 핵심이며 현실적 목표일 수 있다.

한동안 미국은 유럽이 디자인한 질서의 불가결한 방어자였는데, 유럽이 구축한 질서의 방어자였다 하더라도, 미국의 모호한 태도(ambivalence)는 지속되었다. 미국의 비전이 유럽의 세력균형 시스템을 포용했다고 판단하 기보다는, 민주적 원칙들의 확산을 통해서 평화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세계 공동체라고도 부르는 현대의 범세계적 베스트팔렌 시스템은 광범위 한 국제법 네트워크와 유엔 등 국제기구를 통해, 자유 무역과 안정된 국제 금융 시스템을 증진시키고, 국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원칙을 만들 며, 전쟁 시 국가들의 행동에 제약을 가함으로써, 국제 사회의 무정부적 성 격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체제는 모든 문화와 지역을 포괄한다.

오늘날 베스트팔렌 체제는 모든 측면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유럽은 자신 들이 디자인한 민족국가 시스템을 떠나 주권의 상당 부분을 위임하는 시스 템으로 변화하고 있다. 군사적 능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유럽은 보편적 규범 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대응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어 있다. 중동에서는 수니(Sunni)-시아(Shia) 분리의 양측 모두에서 성전(聖戰)을 주장하는 지하 디스트(Jihadist)들이 무슬림 종교의 근본주의에 기초해 세계적 혁명을 목 표로 사회를 부수고 국가를 붕괴시키고 있다. 국가 자체와 국가에 근거를 둔 지역 시스템이, 이들의 제약과 한계 요소를 불법으로 치부하며 거부하는 이데올로기의 공격과, 국가의 군대보다 강한 힘을 보유하는 테러리스트 집 단으로 인해 위기에 처해 있다.

주권 국가 개념에 가장 성공적으로 적응한 아시아가 백 년 전 유럽이 수 립한 질서에 대해 경쟁을 조장하면서 대안적 질서 개념을 주장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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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거의 모든 국가들은 자신들이 부상(rising)한다고 생각하면서, 의 견의 차이를 대립의 차원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미국은 베스트팔렌 체제를 방어하면서도 이 체제의 전제인 세력균형과 국내문제 불간섭의 원칙을 부 도덕적이고 구식으로 치부하고 있다. 미국은 평화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 는 데 있어 보편적 가치의 타당성을 계속 주장하면서도, 세계적으로 이를 지지할 수 있는 미국의 권리를 유보하고 있다.

자유가 없는 질서는 지속될 수 없는데, 자유는 평화를 지키기 위한 질서 의 틀 없이는 확보될 수 없다. 질서와 자유는 상호 의존 개념으로 이해되어 야 한다.

세계 질서는 전 세계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힘의 배분과 공정한 체제의 본질에 관해 지역과 문명에 의해 지지되는 개념이다. 국제 질서는 이러한 개념들을 지구상의 실제에 적용하는 것이다.

국제 질서는 모순에 직면해 있다. 각국의 번영은 세계화의 성공에 달려있 는데, 세계화 과정은 국가들이 생각하는 열망과는 거스르는 정치적 반작용 을 양산해내고 있다. 세계화 경제를 관리하는 매니저들은 정치적 과정을 관 여시키는 데 있어 경험이 부족하며, 국내 정치 과정을 관리하는 매니저들은 국제 경제·금융 문제들이 국내적 지지를 위기에 처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모호하게 사용되더라도 미국의 지도력은 불가피한데, 안정과 보편적 가 치의 옹호 간의 균형이 추구되어야 하며, 그러한 균형 추구에 있어서, 미국 경험의 독특함과 보편성에 있어서의 이상적 확신 간의 균형도 지속 추구되 어야 한다.

우리 시대 정치력의 궁극적 도전은 국제 체제의 재구축인데, 미국은 다른 지역과 국가들의 역사와 문화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기반 하에서, 그리고 미 국의 예외적인 특성을 확인하면서, 그리고 인간이 본질적으로 자유를 추구 한다는 것이 현대 세계의 결정적인 표현이며, 그리고 미국이 인간 가치의 입증을 위한 불가피한 지정학적 힘이라는 점을 유의하면서, 방향의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새로운 질서 체제는 불확실한데, 복잡한 국제 시스템에서 문제를 해결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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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 전략과 외교가 필요하다. 새로운 세계질서 달성을 위해서는 구성원 들과 국가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지구적이고 구조적이며 법 률적인 제2의 문화, 즉 한 지역과 한 국가의 아이디어와 사고를 넘어서는 질서 개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것은 역사적 관점에서 베스트팔렌 국제 체제의 현대화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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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세계 질서 문제와 관련하여 첫째, 세계의 힘이 다수 국가들에 분산되고 있고, 둘째, 미국 경제와 정치 모델에 대한 존경심이 감소하고 있으며, 셋 째, 미국의 정책적 선택들, 특히 중동에서의 미국의 판단에 의문이 제기되 고 있고, 우방국들은 미국의 약속 신뢰성에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미국의 절대적인 힘은 아직 상당한 수준이지만, 미국의 영향력은 감소하고 있다. 결과는 단순히 힘의 다극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세계가 점차 모 순적인 현실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국제 질서는 응집에 도전하는 두 경향, 즉 정당성이 재규정되거나 세력균형이 상당히 변화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데, 힘과 정당성이라는 두 측면의 질서 간 균형의 본질은 정치력이다. 도덕적 차원 없이 힘을 측정 하게 되면, 결과는 매번 의견이 불일치될 때마다 힘을 테스트하게 될 것이 다. 국가들은 변화하는 힘에 대해 제대로 된 측정을 하지 못하면서 혼란스 러워 할 것이다.

균형을 위한 도덕적 처방은 국제 질서 자체의 일관성을 위협하는 극단적 위기나 도전을 야기하는 무능한 정책이 될 수 있다. 국가들의 힘이 전례 없 이 유동적이며, 정당성에 대한 주장들이 이전에 비해 이해할 수 없는 수준 으로 확장되었다.

세력 간 불균형이 커지면서, 21세기의 국제 질서 구조에 몇 가지 문제가 노출되었다. 첫째, 국제 행위자의 형식 단위인 국가 자체가 다양한 압력에 직면하게 되었다. 둘째, 세계의 정치, 경제 조직들이 다양한데 세계의 정치 구조가 민족 국가에 근거하고 있는 반면, 국제 경제 시스템은 글로벌화되었 다. 셋째, 강대국들이 중요 문제들을 협의하기 위한 효율적인 메커니즘이 부족하다.

국가의 독립, 주권, 국가이익, 국내문제 불간섭 등 베스트팔렌(Westphalia) 체제의 핵심 원칙들은 일반적으로 인정된 국제 질서의 원칙들인데, 베스트 팔렌 체제에 기반을 둔 근대 민족국가가 심각한 내적 변화를 겪고 있다.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질서의 틀이 없이는 자유는 확보되거나 유지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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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는다. 어떠한 국제질서 체제도 질서가 붕괴될 때 억지력을 강요할 수 있 는 세력균형과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행동의 한계를 규정하는 원칙들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력의 균형이 평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려 깊게 잘 조합시켜 적용할 경우, 근본적인 도전의 빈도와 범위를 제한 할 수 있으며, 도전이 발생하더라도 성공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다.

공통의 규범을 준수하는 국가들이 협력적 질서를 확대하고, 자유주의적 경제 시스템을 채택하며, 영토적 점령을 부인하고, 국가 주권을 존중하며, 참여적이고 민주적인 거버넌스 시스템을 채택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그런 형태의 국제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국제 질서의 핵심이며 현실적 목표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유럽, 중동, 아시아, 북미 등 지역에서의 질서 개념을 살펴보고, 아시아 질서의 구체 내용과 국제 질서의 장래에 대해 전망해보려고 한다.

Ⅱ. 유럽, 아시아, 중동, 북미 지역의 질서 개념

1. 유럽 지역

오늘날 규범에 근거한 체제(rule-based system)가 도전에 직면하고 있 다. 규범에 근거한 체제 구축에 참여하지 않았던 유럽과 미국 이외의 지역 국가들은 서방 세계가 구축한 국제 규범에 근거한 체제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대량파괴무기(WMD)를 쉽게 확보할 수 있고, 전통 개 념의 국가가 붕괴하고 있으며, 지구 환경이 악화되고 있고, 대량 살상이 지 속되고 있고, 새로운 기술의 확산으로 전쟁의 파괴력이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까지 확대된 상황에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지역 간 거리가 없 어지고 한 지역에서 발생한 일을 전 세계가 공유하는 시기이다.

베스트팔렌 평화(The Peace of Westphalia)를 기초한 17세기 유럽의 협상가들은 거의 틀림없이 범세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었다 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이웃 러시아를 포함시키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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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았는데, 당시 러시아는 베스트팔렌 평화의 핵심인 국가 간 세력 균형에 의한 평화 유지보다는 단일 절대 통치자와 러시아 정교, 영토 확장에 기반 을 둔 러시아 자신의 질서 구축에 몰두하고 있었다. 다른 지역의 주요 국가 들도 베스트팔렌 조약을 유럽의 지역 질서로만 간주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 상은 당시의 기술이 범세계적 단일 시스템의 가동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 이었다. 지속적인 기반에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수단이 없고, 한 지역 국가 의 힘과 다른 지역 국가의 힘을 측정할 수 있는 틀이 없는 상황에서 각 지역 은 자신의 지역 질서를 고유한 것으로 평가하고, 다른 지역을 야만족으로 폄하했다.

2. 중국

유라시아 대륙에서 유럽의 반대 지역에 위치한 중국은 위계 질서와 이론 적 세계 질서 개념의 중심이 중국이라 생각했다. 중국은 자신의 세계 질서 가 로마제국이 유럽을 통치할 시기에도 있었다면서, 지난 천 년간 작동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자신의 질서가 국가들의 주권 평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황제의 권위는 무한대까지 미친다는 데 근거한다고 주장했다. 이러 한 개념에서 유럽식의 주권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황제는 지상의 모든 것(all under heaven)을 통치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중국은 문화적 우월성과 경제적 풍요로움을 통해 지상에 서의 조화(harmony under heaven) 목표를 도출해 낼 수 있도록 주변 국 가들을 중국적 질서 하에서 관리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3. 중동 지역

유럽과 중국 사이에는 중동이 있는데, 7세기에 중동은 전례 없는 이슬람 의 융성과 제국의 팽창을 경험하면서 3개 대륙을 호령했다. 아랍 세계를 통 합한 이후 로마 제국의 잔재를 인수하고, 페르시아 제국을 포함시킨 이슬람 은 중동, 북아프리카, 아시아의 대부분과 유럽의 일부를 통치했다. 중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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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질서 비전은 선지자 모하메드(Prophet Muhammad)의 메시지를 통해 전 세계가 조화로운 단일 체제가 될 때까지 이슬람을 믿지 않는 사람 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이슬람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이 민족국가 시스템을 기초로 한 질서를 구축한 반면, 터키에 기반을 둔 오스만 제국은 자신의 패권(supremacy)을 아랍, 지중해, 발칸, 동유럽 지역으로 확대했는데, 그것은 하나의 체제라기보다는 오스만 제국의 유럽 으로의 팽창에 이용된 분열의 근원이었다. 정복자 술탄 메메드(Sultan Mehmed Conqueror)는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에 15세기에 초기 형태의 다극 체제를 설파했는데, “여러분은 20개 국가이며, 여러분들 간에 다른 입 장을 갖고 있고, 세상에는 하나의 제국, 하나의 종교, 하나의 주권만이 존재 한다”고 하였다.

4. 북미 지역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세계 질서의 명백한 비전은 ‘신세계’에 기초했는데, 17세기 유럽에서는 정치, 종파적 갈등이 극심했다. 청교도들은 부패한 권위 구조 하에서 신음하는 신민들을 해방하는 하느님의 계획을 심부름하는 역 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1630년에 윈트롭(John Winthrop) 주지 사는 매사추세츠 식민을 위해 출발하기에 앞서 선상에서 설교한 것처럼, 정 당한 원칙과 모범의 힘을 통해 세계에 영감을 주어 언덕 위의 도시(city upon a hill)를 건설하겠다고 주장했다. 미국 시각에서 세계 질서는 평화와 균형이 자연적으로 일어나며, 과거의 적대는 제쳐 놓게 되고, 다른 국가들 에게도 그들 자신의 거버넌스 하에서 원칙에 입각해서 의견을 개진할 권리 가 부여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교 정책의 과제는 미국의 이익 추구라기보 다는 공통 원칙의 함양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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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베스트팔렌 체제 원칙과 도전 요소들

1. 베스트팔렌 체제 원칙

한동안 미국은 유럽이 디자인한 질서의 불가결한 방어자였는데, 유럽이 구축한 질서의 방어자였다 하더라도, 미국의 모호한 태도(ambivalence)는 지속되었다. 미국의 비전이 유럽의 세력균형 시스템을 포용했다고 판단하 기보다는, 민주적 원칙들의 확산을 통해서 평화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모든 질서 개념들 가운데 베스트팔렌 원칙들이 일반적으 로 인정되는 현존하는 세계 질서의 유일한 기초라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이 식민 국가들에 주권 개념 적용을 게을리 하여, 식민 국가들이 독립을 요구 했을 때에도, 유럽 국가들은 베스트팔렌 개념들에 근거하여 식민 국가들에 독립을 부여했다. 국가 독립의 원칙들과 국가 주권, 국가 이익, 국내문제 불 간섭 등은 독립 투쟁과 이후의 신생국 보호 기간 동안에도 식민 국가들의 효율적인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세계 공동체라고도 부르는 현대의 범세계적 베스트팔렌 시스템은 광범위 한 국제법 네트워크와 유엔 등 국제기구를 통해, 자유 무역과 안정된 국제 금융 시스템을 증진시키고, 국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원칙을 만들 며, 전쟁 시 국가들의 행동에 제약을 가함으로써, 국제 사회의 무정부적 성 격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체제는 모든 문화와 지역을 포괄한다.

2. 도전 요소들

오늘날 베스트팔렌 체제는 모든 측면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유럽은 자신 들이 디자인한 민족국가 시스템을 떠나 주권의 상당 부분을 위임하는 시스 템으로 변화하고 있다. 군사적 능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유럽은 보편적 규범 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대응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어 있다. 중동에서는 수니(Sunni)-시아(Shia) 분리의 양측 모두에서 성전(聖戰)을 주장하는 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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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Jihadist)들이 무슬림 종교의 근본주의에 기초해 세계적 혁명을 목 표로 사회를 부수고 국가를 붕괴시키고 있다. 국가 자체와 국가에 근거를 둔 지역 시스템이, 이들의 제약과 한계 요소를 불법으로 치부하며 거부하는 이데올로기의 공격과, 국가의 군대보다 강한 힘을 보유하는 테러리스트 집 단으로 인해 위기에 처해 있다.

주권 국가 개념에 가장 성공적으로 적응한 아시아가 백 년 전 유럽이 수 립한 질서에 대해 경쟁을 조장하면서 대안적 질서 개념을 주장하고 있는데, 아시아의 거의 모든 국가들은 자신들이 부상(rising)한다고 생각하면서, 의 견의 차이를 대립의 차원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미국은 베스트팔렌 체제를 방어하면서도 이 체제의 전제인 세력균형과 국내문제 불간섭의 원칙을 부 도덕적이고 구식으로 치부하고 있다. 미국은 평화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 는 데 있어 보편적 가치의 타당성을 계속 주장하면서도, 세계적으로 이를 지지할 수 있는 미국의 권리를 유보하고 있다.

3. 질서의 핵심 요소는 자유

서로 다른 문화, 역사, 질서에 대한 전통적 이론을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지역들이 어떤 공통 시스템의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을까. 그런 노력이 성 공하기 위해서는 인간 조건의 다양성과 자유를 향한 인간의 뿌리 깊은 추구 를 존중하는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질서는 강요되어서는 안 되며, 함양되어야 하는데, 현재가 커뮤니케이션과 혁명적인 정치적 소통의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자유가 없는 질서는 지속될 수 없는데, 자유 는 평화를 지키기 위한 질서의 틀 없이는 확보될 수 없다. 질서와 자유는 상 호 의존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세계 질서는 전 세계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힘의 배분과 공정한 체제의 본질에 관해 지역과 문명에 의해 지지되는 개념이다. 국제 질서는 이러한 개념들을 지구상의 실제에 적용하는 것이다. 지역 질서는 특정 지역 에 적용되는 동일한 원칙들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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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질서의 두 가지 요소 - 정당성과 힘

어떠한 질서 체제도 두 가지 요소에 근거를 두는 데, 허용하는 행동의 한 계를 규율하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규칙(rule)들과,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 곳에서 인내를 강제할 수 있는 세력균형이 그것이다. 현존하는 체제의 정당성에 대한 컨센서스는 경쟁과 대립에 대해 담보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 니며, 오히려 현존하는 질서의 범위 내에서 조정을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 이다. 세력균형이 평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나, 신중하게 조합하고 원용되 면 근본적인 도전들의 범위와 빈도를 제한하고, 도전들이 발생할 때 성공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정당성과 힘 간의 균형은 극도로 복잡한데, 그것이 적용되는 지리적 범위 가 작을수록, 그 가운데에서 종교적 확신에 일관성이 있을수록, 작동하는 컨센서스의 정수(精髓)를 추출해 내기 쉬워진다. 현대 세계에서는 질서가 필요한데, 역사와 가치에 의해서 서로 연결되지 않고, 능력의 한계에 의해 서 본질적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일련의 객체들은 질서가 아닌 갈등을 조장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시대에 세계 질서의 추구는, 스스로 봉쇄되어 있는 사회적 실체들 간에 인식적인 차원에서 상호 연결을 필요로 한다.

Ⅳ. 아시아의 다양성과 일본 및 중국

1. 아시아의 다양성

아시아에는 50여개 국가들이 있는데, 한국, 일본, 싱가포르 3개국은 산업 기술력에서 앞선 서방 수준의 국가들이며, 중국, 인도, 러시아 등 대륙 수준 의 거대 국가들이 있고,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도서 국가, 그리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규모의 인구를 가진 태국, 베트남, 미얀마가 있으며, 거대한 영토 를 보유한 호주와 유럽 인구가 주류인 뉴질랜드, 그리고 북한이 있다. 중앙 아시아 지역에는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인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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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와 인구 상당수가 무슬림인 인도, 중국, 미얀마, 태국, 필리핀 등이 위 치해 있다.

일본을 제외하고 아시아는 식민주의에 의해 부과된 국제질서의 희생자였 다. 태국은 독립을 유지했지만, 일본과 달리 아시아 지역 질서 시스템으로 서 세력균형에 참여하기에는 너무 허약했다. 중국은 영토 규모가 너무 커서 완전히 식민국가화될 수는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아시아 대 다수 국가들은 유럽 국가들의 부속물로, 필리핀은 미국의 부속물로 여겨졌다.

지역 질서로부터의 해방은 폭력적 과정이었는데, 중국 내전(1927~1949), 한국전쟁(1950~1953), 중·소 대립(1955~1980), 동남아시아에서의 혁명적 게릴라 내전과 베트남 전쟁(1961~1975), 4차례의 인도·파키스탄 전쟁(1947, 1965, 1971, 1999), 크메르 루주(Khmer Rouge) 통치(1975~1979) 등이 그러한 예이다.

2. 일본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통해 완전한 고립에서 서방의 가장 앞선 체제(군대 조직은 독일로부터, 의회 조직과 해군은 영국에서)를 모방하는 과감한 선택을 하면서, 새로운 강대국 반열에 오르기까지 거듭된 성공적 적 응을 통해 목표를 달성해 왔다. 일본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중국 의 조공(朝貢) 체제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위계적인 중국적 세계질서의 끝 자락에서 맴돌면서 주기적으로 중국과 동등함을 주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의 우월함을 주장하기도 했다. 100년 이상 지속되던 일본 내전을 1590년 통일한 토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군비증강, 한반도를 통과하 여 중국을 정복하고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웅대한 비전을 구상했다. 그는 조 선왕에게 편지를 보내 명(明) 제국을 제압하기 위해 길을 터줄 것을 요구했 고, 조선 왕은 명과의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설명하고, 타국을 침범하 는 것은 유교 원칙에도 어긋난다며 거부하자, 히데요시는 16만 명의 군대와 700척의 전함을 동원해 조선을 침공했다. 이순신 장군의 강력한 저항과 보 급선의 난조 등으로 일본군이 평양에 도달했을 때, 4만~10만의 명군(明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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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입하여 일본군을 한양(현재의 서울)까지 밀어냈다. 도요도미 히데요시 가 사망하고, 침략 일본군이 철수함으로써 동북아 지역의 현상유지가 회복 되었다.

임진왜란 패배 이후 일본은 쇄국정책을 지속하면서 200년 이상 고립정 책을 지속하였다. 일본은 한국과만 외교적으로 엄격히 동등한 입장에서 포 괄적인 국가관계를 가졌다. 중·일 관계는 없었으며, 중국 상인들은 특정 지 역에서만 활동이 허용되었다. 유럽 국가들과의 대외무역도 몇몇 특정 해안 도시에서만 허용되었으며, 1673년까지 화란(和蘭: 네덜란드)인을 제외한 모든 외국인들을 추방시키고, 나가사키(長崎)항 인근에 인위적으로 조성한 1개 섬에만 거주토록 했다. 1825년까지 서구 강국들에 대한 의구심이 커 서 집권 일본 군부 세력은 일본 해안으로 접근하는 모든 외국 선박들은 무 조건 격퇴시키라는 칙령을 발포했다.

1853년 도쿄만(東京湾)으로 진입하여 일본의 은둔 칙령을 무력화시키라 는 명령을 받고 버지니아 주(州) 노퍽(Norfolk)를 출발한 미 해군 군함 4척 에 의해 일본이 개방되었는데, 매튜 페리(Matthew Perry) 제독은 밀러드 필모어(Millard Fillmore) 미 대통령 명의 일본 천황 앞 서한을 휴대했다.

미 해군 함대(흑선)가 장전한 포대의 성능이 월등함을 알아차린 일본은 저 항이 무의미함을 깨닫고 미국 선박을 받아들일 새로운 항구 건설을 포함하 여 미국의 거의 모든 요청을 수용하겠다는 호의적인 답변을 했다.

일본은 서구의 도전에 대해 중국과는 다른 결정을 했는데, 중국은 1793년 영국 대표의 중국 개항 요구를 거부한 바 있다. 일본은 중국과 달리 물질적 균형과 심리학적 힘을 면밀히 분석하고 주권과 자유 무역, 국제법, 기술, 군사력이라는 서구적 개념에 기반을 두고 국제 질서에 뛰어들게 되었다.

1868년 권력을 장악한 메이지유신 세력은 베스트팔렌 체제의 국제 질서에 합류했다. 집권 메이지유신 세력은 대대적인 개혁 정책을 단행했는데, 모든 사회 계층이 참여하도록 격려하고 모든 지역에 의회를 두어 적절한 과정의 확인을 거치도록 했으며, 일본 국민의 열망을 충족시켜야 함은 물론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이후 일본은 철도 건설, 근대 산업, 수출 경제, 근대 군대 건설에 착수하게 되는데, 이 모든 변화의 와중에도 일본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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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와 사회의 고유함으로 인해 일본은 자신의 독자성(identity)을 유지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통해 일본은 수십 년 만에 세계적 강대국 반열에 들 게 되었다. 1886년 중국 선원들과 나가사키 경찰 간에 다툼이 있었는데, 문 제 해결을 위해 독일에서 건조된 중국 전함이 일본으로 접근해 왔다. 이후 10년간 일본은 군함 건조와 훈련을 통해 중국을 압도하게 되었고, 1894년 한국에 대한 주도권을 두고 일본과 중국 간 전쟁이 발생했는데, 일본이 압 도적으로 승리하였다. 평화의 조건은 중국의 한국에 대한 관여 중단과 대만 의 일본 할양이었다.

이후 한반도는 일본과 러시아가 경쟁하는 구도가 되었다. 1902년에는 영 국과 일본 간 전략 군사동맹이 체결되었는데, 아시아 국가와 유럽 국가 간 의 최초의 군사동맹이었다. 영국으로서는 인도에 대한 러시아의 압력에 대 항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3년 후 일본이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제압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는데, 아시아 국가 최초로 서구 강대국을 군사적으로 제압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연합군 세력에 참여하 여 중국과 남태평양에 소재한 독일 기지들을 접수하였다. 일본은 서구 강대 국들과 군사, 경제, 외교적으로 동등한 자격으로 국제질서 구축에 참여한 최초의 비서구 강대국이었다. 영국 등 서방 세력과 연합한 일본의 목표는 유럽 강대국들의 전략 목표와 일치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유럽 세력을 아시 아에서 축출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제국주의 일본은 1931년에 만주를 중국으로부터 분리시켜 지배하기 위 해 만주국(満州国)을 만들었고, 1937년에는 중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아시 아의 신질서, 동아시아 공동번영권이라는 미명하에 일본은 반(反)베스트팔 렌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신질서에서 다른 아시아 국가들 의 주권은 일본의 보호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1941년 일본이 미국의 진주 만을 공격했는데, 결국 미국의 일본에 대한 핵무기 사용으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이끌어냈다. 일본은 페리 제독(Commodore Perry)의 개항 요구에 대한 대응과 유사한 방식으로 제2차 세계대전 패배의 국가적 위기에 대응 하여, 독특한 국가적 문화에 기반을 둔 정신력을 통해 뒷받침된 회복력으로 대처했다. 일본국을 회복하기 위해 일본의 전후 지도자들은 무조건 항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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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우선순위에 두는 적응으로 일본 국민들에게 설명했다. 일본은 국가 정책 수단으로서의 전쟁을 포기했으며 헌법의 민주주의 원칙을 재확인했 고,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국제 시스템에 합류했다. 일본의 전후 입장은 신 (新)평화주의로 설명될 수 있는데, 이는 아·태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에 대한 묵인이며, 전략적 관점에 대한 평가이고, 일본의 생존을 위한 명령이며, 장 기적 성공에 대한 보장을 위한 것이었다. 일본의 전후 지배 계층은 미군 점 령 당국이 작성한, 군사행동을 엄격히 금지한 평화헌법을 수용했는데, 일본 의 지도 계층은 자신들의 정치 성향을 자유 민주주의로 규정했다. 사회적 결속과 국가적 약속으로 메이지유신 이후 추진한 개혁이 가능하게 했던 일 본은 2011년 대지진과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의 재앙을 극복하고 있다.

변화하는 아시아의 안보 상황에 대응하여 일본은 정상국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른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에 일본은 국제질서에서 자신의 역할을 재규정해 왔는데, 일본의 역할 재규정은 향후 아시아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역할을 찾기 위해 일본은 중국의 부상과 한국의 발전,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일본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물질 적 균형과 심리적 힘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평가할 것이다. 일본은 미·일 동맹의 효용성과 기록에 대해 검토할 것이다.

일본은 미·일 동맹에 대한 지속적 강조, 중국의 부상에 대한 적응, 일본의 대외정책에 대한 의존 강화라는 3가지 관점에서 분석할 것이다. 어느 것이 우선할 것인지, 3가지 방향의 혼합이 될 것인지는 미국의 형식적인 안보 보 장이 아니라 세계적 세력균형에 대한 계산과 저류에 흐르는 기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려있다. 만약 일본이 아시아와 세계에서 펼쳐지는 상황을 권력의 새로운 재배치로 인식한다면, 일본은 자신의 안보를 전통적인 동맹 이 아닌 현실에 대한 판단에 둘 것이다. 그러므로 결과는 일본의 지도부가 아시아에서 향후 미국의 정책에 대해 어느 정도의 신뢰를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과 일본 지도부가 아시아와 세계에서의 전체적인 힘의 균형을 어떻 게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다. 미국 대외정책의 장기적 방향이 일본의 분석에 서 중요한 검토 요소인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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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중국

중국은 다른 나라들을 친구로 대하며 중국과 오랜 친구도 될 수 있는데, 결코 이 국가들을 동등하게 대하지는 않는다. 중국 한족(漢族)과 동등한 지 위에 도달한 것은 중국을 정복한 이민족들이 유일하다는 것이 아이러니인 데, 13세기의 몽골족과 17세기의 만주족이 그들이다. 그 후 이들은 모두 한 족 문화에 동화되었다. 중국은 정치 체제를 수출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이 민족들이 스스로 중국 체제를 선택하도록 만들었는데, 이러한 점에서 정복 에 의해서보다는 삼투(osmosis)에 의해 정치 체제를 확대해왔다.

최초의 영국인 대(對)중국 사절인 조지 매카트니(George Macartney)는 18세기 말 산업혁명의 초기 물품들과 조지 3세(George III)의 서한을 휴대 하고 자유무역과 상주대사관 상호 개설을 위해 18세기 말 중국에 도착했는 데, 매카트니를 태우고 광저우(廣州)에서 북경(北京)으로 간 배에는 “영국 대사가 중국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왔다”고 장식되어 있었다. 매카 트니를 통해 영국 왕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중국 측은 북경에 거주하는 대사 는 필요하지 않다면서, “유럽에는 영국 외에도 많은 나라가 있는데 유럽의 모든 나라가 북경에 사절을 보내겠다고 요구한다면 이를 우리가 어떻게 허 용할 수 있겠는가”라면서 극도로 비현실적인 제의라고 주장했다. 중국 황제 는 제한되고 엄격히 허용된 규모 외에는 무역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그 이유로서 중국이 필요로 하는 상품이 없다고 주장했다. 나폴레옹을 패퇴 시킨 후 상업의 확대를 가속화하면서 영국은 또 다른 제안을 시도하는데, 두 번째 사절을 보내 비슷한 제안을 했다. 나폴레옹 전쟁 동안 영국은 해군 력의 전개를 통해 외교관계 개설에 관한 중국의 생각을 바꿔보려고 노력했 는데 별 효과가 없었다. 두 번째 영국 사절인 윌리엄 앰허스트(William Amherst)는 중국 황제가 관복 도착이 늦어졌다면서 의식 행사 참석을 거부 하면서 앰허스트의 외교관계 개설 임무는 실패로 돌아갔다. 중국 황제는 영 국 레전트(Regent) 왕자에게 서한을 보내 하늘 아래 모두에 대한 권력자인 중국으로서는 매번 이방인 사절을 접수하기 위해 나가는 수고를 할 수 없다 고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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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모를 당한 당시 유럽 최강국이었던 영국은 아편을 중국에 판매하는 극 단적 방식을 선택했다. 1893년 서양 강대국들의 공세에 직면해서도 청(靑) 제국은 제국의 여름 궁전을 수리하기 위해 군자금을 전용했다. 1842년 군 사 압력에 직면한 중국은 서방국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조약에 서명했다. 광 저우에서 영국 국적 선박을 불법 구금한데 대해 영국은 1856~1858년 전투 에서 결정적으로 승리한 후 공사를 북경에 상주시키는 데 성공했다. 1859년 부임을 위해 상주 공사가 북경에 도착했을 때 황하강 간선도로가 봉쇄되어 있어 영국 해병대가 장애물을 치우는 과정에서 중국군이 발포하여 519명의 영국군이 사망하였고, 계속된 전투에서 영국군 456명이 부상당했다. 영국 은 엘긴(Elgin) 경 지휘 하에 군대를 파병했고, 북경을 공격하여 여름 궁전 을 불태웠는데, 청 제국 황제는 도주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청 제국은 외교 사절들이 주재할 지역(legation quarter)을 허용해야 했다.

주권 국가들이 베스트팔렌 체제 내에서 상호적 외교활동의 개념을 중국 이 인정하지 않은 것은 분개할 일이었다. 이 분쟁의 핵심에는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 중국이 국제 질서에 완전히 편입된 것인지 또는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국가로서 더욱 광범위한 국제 시스템의 일부분이 된 것 인지 이다. 1863년 이방인 국가들에 의해 두 번의 군사적 패배와 외국 군대 의 개입으로 대규모 국내 반란(태평천국의 난)이 진압된 후 청 황제는 에이 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서 미국이 중국의 우 방이 되어 줄 것을 요청했다. 1872년 저명한 스코틀랜드인 중국 전문가 제 임스 레그(James Legge)는 당시의 세계 질서가 서구적 세계 질서 개념의 명백한 우위라고 언급했다. 오늘날 기술과 무역 하에서 상호 대립적인 체제 들이 충돌하고 있는데, 어느 세계 질서 규범이 주도할 것인가. 유럽에서의 베스트팔렌 국제질서 체제는 30년 전쟁 말기에 독립국가들이 과잉 양산된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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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중국의 세계 질서관

1911년 청 제국은 붕괴했고, 1928년에는 서구적 개념의 장제스(蔣介石) 정부가 들어섰으며, 50년 먼저 근대화를 시작한 일본이 아시아 헤게모니 장 악을 개시했다. 일본은 1931년에 만주사변을 일으켰고, 1937년에는 중국 에 선전포고를 했다. 1949년 10월 1일 중국공산당 지도자인 마오쩌둥(毛澤 東) 주석이 중화인민공화국 창설을 선언했다. 마오쩌둥의 질서 개념은 ‘대 조화(大調和)’인데, 새로운 중국은 조화를 강조하는 전통적 유교문화의 파괴 로부터 나온 것이다. 마오쩌둥은 불균형이 일반적이고 객관적 법칙이라면 서, 불균형이 정상적이며 균형은 잠정적이고 상대적이라고 주장했다.

마오쩌둥은 중국이 물리적 힘은 약하나 심리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우위 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1957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공산당 지도자 국제회 의에서 핵전쟁의 상황에서도 중국의 인구와 문화를 고려하면 중국이 최종 승자일 것이며, 중국의 혁명 노선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971년 7월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미 대통령 안보보좌관의 비밀 방중 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의 면담에서 저우언라이는 모택동의 세계질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천하가 혼돈 상태이나 상황은 최선이다. 이런 혼란 상황에서는 다년간의 투쟁으로 단련된 중국이 최종 승자가 될 것이다.”

공산주의 세계 질서는 과거 중국 제국의 전통적 견해와도 융합될 것이다.

마오쩌둥은 과거 중국 제국의 유약함과 굴욕의 문화를 비난하면서도, 중국 진시황(秦始皇) 시기(221~207 B.C.)와 같은 영광된 과거 중국 역사와의 동 일시를 추구했다. 마오쩌둥은 1958년에 ‘대약진(大躍進) 운동’을 통해 산업 화를 강요하고, 1966년에 공산당 지도계층의 관료화를 막을 목적으로 ‘문 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라는 이데올로기 운동을 통해 지도 계층 숙청을 지 시했다. 1960년대 후반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이 중국 인민들의 인내 역량 을 시험하고 중국이 고립됨으로 인해 외국의 간섭을 야기할 수 있음을 인정 했다.

1969년 소련의 중국 공격이 임박한 상황이 조성되었는데, 이러한 상황에 서 마오쩌둥은 정책 방향을 전환했다. 마오쩌둥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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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의 고립을 끝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아무리 압도적 혁명이라 할지라도 혁명은 공고화가 필요하며, 궁극적으로는 환호의 순간으로부터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것으로 적응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덩샤오핑(鄧小 平)의 역사적 역할이 있었다.

비록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에 의해 두 차례 숙청됐지만 1976년 마오쩌둥 사망 후 2년이 지나면서 유능한 지도자가 되었는데, 덩샤오핑은 경제 개혁 과 사회 개방이 중요한 과제임을 인식했다. 덩샤오핑은 중국의 특성을 보유 한 사회주의를 추구하면서, 중국 인민들의 숨어있는 에너지를 자유롭게 해 방시켰다. 36년 만에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는데, 이러한 극적인 변화를 가속화하기 위해 중국은 국제기구에 합류했고 세계 질서의 기존 규범과 원칙을 수용했다.

그러나 베스트팔렌 국제질서 체제의 여러 측면에 대한 중국의 참여는 국 제 국가 시스템 내로 중국을 포함시켰던 역사적 상황으로 인해 모호함이 존 재한다. 중국은 당초 베스트팔렌 국제질서 체제에 타의로 참여했으며, 중국 의 역사적 이미지와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중국이 현 국제 시스템의 ‘게임 규칙(rule)’과 책임을 준수해야 한다고 추궁 받을 때 중국인 과 중국 지도부가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중국이 현 국제 시스템의 규칙을 만드는데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올림픽을 개최하고, 중국 지도자가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는 등 베 스트팔렌 국제 질서 체제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데,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중국은 지난 수 세기 동안 국제무대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문제는 특히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중국을 세계 질서의 현재적 모색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미국과 중국이 근대 주권국가 국제 체제에 참여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중국이 고유하며 중국이 광범위하게 봉쇄되 어 있다고 믿는다. 반면에 미국인들은 스스로를 예외적이라고 간주하는데, 자신의 ‘존재 이유’를 넘어 다양한 이유로 전 세계에 미국의 가치를 지원해 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에 충만해 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서로 전제가 다 른 두 사회는 근본적인 국내적 조정을 겪고 있는데, 경쟁 관계가 될지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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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형태의 동반자 관계가 될지는 21세기 세계 질서 전망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은 세계 질서의 불가결한 두 축(軸)인데, 역사적으로 양국은 국제 시스템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해왔다. 중국은 21세기 국제 질서와 같은 국제 시스템의 책임자로서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을 이전에 받은 바 없 으며, 미국은 비슷한 규모와 경제력을 가진 명백히 다른 모델의 국가(중국) 와 지속적이고 동등한 근거에서 상호작용한 경험이 없다.

정치적, 문화적 배경이 다른 미국과 중국은 많은 점에서 서로 상이하다.

정책에 대한 미국의 접근이 현실적이라면, 중국의 접근은 개념적이다. 미국 인들은 모든 문제에 해법이 있다고 믿는 반면, 중국은 각각의 해법은 새로 운 문제들을 야기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인들이 즉각적인 상황에 대응하는 결과를 추구하는 반면, 중국인들은 점진적인 변화에 집중한다. 미국인들이 실용적이고 이행 가능한 의제들에 집중하는 데 비해, 중국인들은 일반원칙 을 정하고 그들이 주도하는 지점을 분석한다. 중국의 사고는 부분적으로 공 산주의에 의해 형성되었으나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중국식 사고를 포용하고 있는데, 두 가지 모두 미국인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중국은 현재 5세대 지도부가 통치하고 있는데, 각각의 이전 지도부는 자 신 세대의 특별한 비전을 중국이 필요로 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마오쩌둥은 기존의 제도를 뿌리 뽑았고, 덩샤오핑은 중국이 국제적으로 관여해야 한다 는 것을 인식하여 경제 개혁을 시작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와중에 임명 된 장쩌민(江澤民) 주석은 국제적으로는 외교 강화와 국내적으로는 공산당 기반을 확충했다. 장쩌민 집권 시기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함 으로써 국제 무역국가 반열에 등극했다. 덩샤오핑에 의해 선임된 후진타오 (胡錦濤) 주석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완화시키기 위해 노 력을 기울였으며 시진핑(習近平) 주석에 의해 제시된 ‘신형대국관계’의 기반 을 놓았다. 시진핑 지도부는 앞선 지도부들의 유산을 계승하면서 덩샤오핑 이 추진한 수준의 대규모 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성장의 둔화, 부패 문제, 고령화, 환경 악화 문제, 이웃 국가들이 중국의 군사력 증 강을 경계의 눈으로 보고 있는 문제들을 안고 있으며, 범세계적 문제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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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 테러리즘, 핵확산, 무역, 세계적 규모의 전염병 창궐 등이다.

하버드대 연구팀에 의하면, 역사상 부상하는 국가와 현상유지 국가가 상 호작용했을 때 15번 중 11번이 전쟁으로 결말 되었다고 한다. 미·중 양국이 한반도 비핵화와 통일 문제에 대해 공동의 대응 전략을 도출해 낼 수 있다 면, 이는 중국이 요구하는 미·중간 대국관계 형성에 있어 큰 진전이 될 것이 다. 냉전 시기에는 군사력의 배치선이 분리선이었는데, 지금은 군사적 배치 선이 분리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아시아에서 동반자 개념들이 세력균 형의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 하는데, 세력균형 전략과 동반자 외교의 조합은 모든 적대적 측면을 일소할 수는 없지만, 그 영향을 상당히 완화할 수 있다.

질서는 항상 자제와 힘과 정당성 간의 민감한 균형을 요구한다. 아시아에 서는 세력균형과 동반자 개념의 조합이 반드시 필요하다. 균형의 순수한 군 사적 정의는 대결로 바뀔 것이며, 동반자에 대한 순수한 심리적 접근은 헤 게모니 위험을 강화시킬 것이다. 현명한 정치력이 그러한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균형이 깨지면 재난이 손짓한다.

Ⅵ. 세계 질서에 대한 미국의 인식과 역할

현재의 국제 질서를 구축하는 데 있어 미국만큼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나라 는 없다. 미국은 자신의 방향이 세계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확신 하에, 세계 질서에 있어서 모순적 역할을 수행해 왔는데, 어떠한 제국주의적 구상도 부 인하고, 국가이익의 동인도 부인하면서, 미국의 국내적 원칙들은 보편적이 며, 그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이다. 해외에 대한 미국 개입의 진정한 도전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외교정책이 아니며, 다른 나라들이 본뜨 기를 바란다고 믿는 가치들을 확산시키는 프로젝트다.

구세계(the old world)가 신세계를 부와 권력을 쌓기 위해 정복해야 하 는 대상으로 보았다면, 미국이라는 새로운 국가는 국가적 경험과 성격의 본 질로서, 믿음, 표현, 행동의 자유를 확인했다. 미국에서는 청교도로의 개종 의 정신이 기존 제도와 위계질서(hierarchy)에 대한 불신으로 접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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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자유에 대한 사랑이 압도적 특징이 되었으며, 청교도 주의(puritanism)는 종교적 독트린일 뿐만 아니라 민주당과 공화당의 절대 적인 이론들이다.

미국 문화의 개방성과 민주적 원칙들로 인해 미국은 수백만 명의 모델과 피난처가 되었지만, 동시에 미국의 원칙들이 보편적이라는 확신은 국제 체 제에 도전적 요소로 작용했다. 왜냐하면, 민주적 원칙들을 이행하지 않는 정부는 덜 적법하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제3대 미국 대통령인 토머 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생각한 미국이라는 국가의 핵심은 ‘자유 의 확산’이었다. 미국의 유리한 지리적 위치와 막대한 자원으로 대외정책은

‘선택적 활동’이라는 인식이 있다. 미국에 있어 대외정책은 항구적인 큰일 이라기보다는 일련의 에피소드(episode)적 도전 정도였는데, 따라서 미국 의 ‘보편적 일소(一掃) 독트린(doctrine of universal sweep)’은 국가이익 과 세력균형에 기반을 두고 항구적 훈련으로 대외정책을 수행하는 국가들 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도록 했다. 미국의 이러한 태도는 미국이 대국 으로 부상한 19세기까지도 지속되었다. 두 번의 세계 대전과 냉전을 거치는 동안 미국은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미국은 베스 트팔렌 국가 체제와 세력균형 체제가 제1, 2차 세계대전의 적대적 행위를 시작하게 한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비난하고, 전적으로 새로운 세계 건설이 필요함을 주장하면서도 베스트팔렌 체제와 세력균형 체제를 옹호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의 미국 대통령들(12명)은 세계에 서의 미국의 예외적인 역할을 확인했다. 미국은 세계평화와 보편적 조화를 목표로, 분쟁 해결을 추구해왔다. 민주, 공화당 출신 12명의 미국 대통령들 은 전 세계에 미국의 원칙들을 적용한다는 주장을 해 왔는데, 일례로 민주당 출신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은 1961년 1월 20일 취임사에 서 “미국은 자유의 성공과 생존을 위해 어떤 대가도 치러야 하며, 어떤 부담 도 져야 하고, 어떤 난관도 직면해야 하며, 어떤 친구도 도와야 하고, 어떤 적 도 반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전통적인 세력균형의 변화 를 계산하는 대신 ‘새로운 법의 세계를 위한 새로운 노력’이 필요함을 주장하 면서, ‘인류 공동의 적에 대항하는 범세계적 동맹’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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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상주의와 예외주의가 새로운 국제 질서 구축의 동력이었는데, 세계 질서에 대한 책임감과 미국의 국력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민 들의 큰 관심과 미국 지도자들의 도덕적 보편주의에 기반을 둔 컨센서스에 입각하여, 냉전 붕괴라는 성과를 도출해 냈다.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미국 대통 령들이 주장했던 보편적 원칙에 기반을 둔 평화롭고, 민주적이며, 규범에 근거한 세계는, 실제 국가 이익에 기반을 둔 세계 각국의 생각과 달랐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수행한 5차례의 전쟁 가운데 제1차 이라크 전쟁 만 국내적 여론분열 없이 전쟁을 마칠 수 있었다. 역사학자들은 힘과 외교 간,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간, 권력과 정당성 간 모호함(ambivalence)을 해 결할 역량을 보여 주지 못한 데서 발생한 문제로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조 지 슐츠(George Shultz) 전 미 국무장관이 “미국의 대외정책은 미국의 가 치를 반영하면서도 효율적이어야 한다”고 지적한 것은 적절해 보인다. 대외 정책에 대한 미국 내 논의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간 경합인데, 만약 미국 이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정책 하에서도 행동하지 않으면, 유의미한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Ⅶ. 결론

유럽, 중동, 아시아에서 지정학적 경쟁이 국제관계의 중심 현상이 되었다.

러시아의 크리미아(크림) 반도 합병, 센카쿠(尖閣)/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 를 둘러싼 일본과 중국 간 긴장 고조, 중동에서의 이란 세력의 부상 등이 ‘지 정학의 귀환(Return of Geopolitics)’의 예이다. 이로 인해 무역 자유화, 핵 비확산, 인권, 법치, 기후변화 등 세계질서와 글로벌 거버넌스 등에 집중하 려는 미국과 서방의 구상에 차질이 발생했다. 국제정치에 심각한 변화가 야 기되고 있는데, 세계 질서를 유지하려는 현상유지 세력에게 심각한 도전 요 소가 발생한 것이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자유민주주 승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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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과도하게 해석한 측면이 있는데, 중국, 이란과 러시아는 냉전의 지정 학적 해결 방식을 수용하지 않았으며, 이를 뒤집으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 다. 이들 국가는 기존의 세력균형을 흔들고 있으며, 국제정치의 역학관계 (dynamics)를 변화시키고 있다.

냉전 이후 국제관계는 유럽에서 독일 통일, 소련 붕괴, 바르샤바조약기구 (WTO: Warsaw Treaty Organization) 해체, 발트 3국의 북대서양조약기 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및 유럽연합(EU) 편입으 로 귀결되었으며, 중동에서는 미국과 연계된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터키, 걸프협력회의(GCC: Gulf Cooperation Council) 국가 등 수니(Sunni) 세 력의 지배와 이란에 대한 봉쇄,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한국, 일본, 호주 등 미 국과의 양자 동맹 체제 구축을 통한 미국의 아시아 지역 패권 질서가 수립되 었다.

22년 전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스탠포드대 교수가 냉 전의 종식은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으 나, 소련 붕괴와 함께 국제관계에서 지정학도 함께 항구적으로 소멸되었다 고 주장하는 것은 희망 사항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2009년 집권한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대테러전으로 규정된 2003년의 이 라크전은 과장된 것이며, “역사는 종언되었다(history was really over)”고 보았고, 따라서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는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증진시키는 것이라는 확신 하에 이스라 엘-팔레스타인 사태 해결 모색, 기후변화 협상, 아시아와 유럽에서의 다자 무역협정 협상, 러시아와 핵무기 감축협정 서명, 이슬람 세계와의 관계개선, 유럽 우방과의 신뢰회복, 이라크·아프가니스탄·리비아에서 철수, 국방예산 감축 조치들을 취했다.

이 같은 미국의 확신이 시험에 들게 되는데,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25년 이 지나 러시아의 크리미아(크림) 반도 합병이 발생했고, 동아시아에서는 중 국과 일본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으며, 중동에서는 종파 간 분쟁과 이슬람국 가(IS: Islamic State) 출현으로 국경선이 붕괴되고 내전이 확대되고 있다.

중국, 러시아는 냉전의 정치적 해결에 반대하면서, 미국과 서방이 구축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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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의적 세계질서에 도전하고 있다.

현상변경 세력들 간의 관계도 복잡한데, 러시아는 중국의 부상을 두려워 하고, 이란의 세계관은 중국이나 러시아와 공통적인 것이 별로 없다. 이란과 러시아는 원유 수출 국가로서 고유가에 관심이 있는 반면, 중국은 원유 소비 국가로서 저유가에 이익이 있다. 따라서 중동에서의 정치 불안이 이란과 러 시아에는 이익이 되지만 중국에는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 이란, 러시아 간 전략적 동맹을 말하기는 어렵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저해하는 데 성공한 이후에는 이들 3국 간 긴장이 발생할 수 있다.

이들 3국의 공통된 주장은 현재의 국제질서는 변경되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미국과의 직접 대립이나 충돌은 피하려 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국가 간 경쟁구도, 영토적 주장, 해군력 강화, 수정주의적 역사관 등을 두고 중국과 일본이 경쟁하고 있는데, 중국과 일본에서 민족주의 세력이 귀환하고 있다.

중·일 양국은 군비를 증강하면서 제로섬 경쟁을 심화하고 있다. 중동에서 러 시아는 이란과 시리아를 우군으로 인식하면서 시리아 사태에 개입하고 있 다. 현상변경 세력이 득세하면 현상유지 세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는데, 중 국, 이란, 러시아 3국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냉전 이후 수립된 자유주의적 국 제 질서를 완전히 뒤집지는 못했지만, 현상유지 국제질서가 적어도 논란이 되도록 하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전 미 국무장관은 현대 국가에는 경제력 과 군사력뿐 아니라 아이디어 역량이 중요하며, 주권과 국내문제 불간섭 원 칙은 여전히 유효하다면서, 아래 요지로 언급하였다.

- 오늘의 국제체제는 유동적인데, 현재의 중동 상황은 유럽 스타일의 민족국 가 개념이 초국가적 이슬람 테러세력[무슬림형제단(Muslim Brotherhood), 알카에다(al Qaeda),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L: Islamic State of Iraq and the Levant)]에 의해 위협받고 있으며, 17세기 유럽의 ‘30년 종교전 쟁’(1618~1648)과도 유사해 보인다.

- 서구 개념의 세계 질서는 아시아의 비전과 오랫동안 경합해 왔는데, 특히 중국의 경우가 그러하다. 21세기 중국의 부상을 중국 고대로부터 내려온

‘중국 황제가 세계를 통치한다(Chinese emperor ruled over all u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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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ven’는 전통적 견해와 유럽의 베스트팔렌 모델(Westphalian model) 간 새로운 역할의 종합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 미국과 중국 간에는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에서 타협하기 어려운 견해를 갖 고 있지만, 충돌을 피하는 것에 공통의 이익이 있다. 미국과 중국 간의 관계 가 중국과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보다 덜 위험한데,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 든 국가들이 굴기(屈起)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의견의 불일치가 충돌 로 야기될 수도 있는 구조다.

- 미국 외교정책의 근간을 이루어 온 두 가지 경합하는 사고의 흐름은 자유주 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윌슨(Woodrow Wilson) 전 대통령과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전 대통령에 대한 심도 있는 분 석에서 출발하는데, 미국 외교정책의 두 가지 큰 흐름에서 중요한 것은 자 제(restraint)이다.

- 세계 질서는 미국 등 어느 한 국가가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보호 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R2P)과 같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liberal internationalism) 형식에 대해 회의적인데, 이러한 접근은 국제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할 수 있다. 현재의 국제질서에서는 강대국 관계를 관리하는 것 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리처드 하스(Richard Haass) 외교협회장(CFR)은 미국의 정치, 경제 모델 에 대한 유용성이 감소되었으며, 중동에서 대응 미숙으로 미국의 판단과 약 속에 대한 신뢰성에 우려가 제기되었다면서, 상당 기간 미국의 절대적인 군 사력 우위가 지속되더라도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 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새로운 세계 질서 구축에 대비하여 전략과 외교가 필요하다. 중국 은 성장 속도의 둔화, 부패 문제, 고령화, 환경오염, 우호적이지 않은 주변국 문제들을 안고 있다. 국제경제 시스템은 글로벌한 데, 세계정치의 구조는 민 족국가(nation-state)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함께 해결해야 할 범세계적 문제들에 직면해 있는데, 기후변화, 국제테러, 핵 비확산, 무역, 공 공보건(에볼라) 문제들이다.

지정학의 귀환을 환상(illusion)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중국과 러시아를 완벽 한 현상변경 세력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일시적 훼방꾼들(spoilers) 이며, 상호불신하고, 미국과 유럽의 지도력에 저항할 기회를 보면서 상황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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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을 노리는 수준으로 보았다. 중국과 러시아는 매력이 있는 브랜드가 없고, 중국은 세계 경제체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미국은 전 세계 66개국과 군 사적 파트너십 관계를 갖고 있는 반면, 러시아는 8개국과, 중국은 1개국과 군사적 파트너십 관계를 갖고 있다. 핵무기의 보유로 인해 강대국 간 전쟁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작아졌다.

한국, 호주, 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 멕시코, 터키 등 민주주의 중견 국 가들이 대거 출현했는데, 이들 국가는 국제 시스템의 주요 주주로서 다자간 협력, 더 많은 권리와 책임, 그리고 평화적 수단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자유세계 질서에 새로운 지정학적 중요성을 부여하 고 있다. 만약 아르헨티나, 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 남아공, 터키가 경제 적 역량을 회복하고 민주적 통치를 강화할 수 있다면, G-20은 강력한 민주 주의 클럽이 될 것이며, 중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정도만이 민주주의가 아닌 나라들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들의 대거 출현은 중국과 러시아에 심각한 문제로 작용할 것이다.

완벽한 세계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역사에 있어서 각 문명은 자신의 질서 개념을 규정한다. 각각의 문명들은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질서 원칙을 보편적이고 타당한 것으로 생각한다. 중국은 세계 문화 위계질서의 최상위에 중국 황제가 있다고 생각했으며, 로마가 분 열됐을 때, 야만족들에 의해 로마가 포위되어 있다고 인식했다. 유럽인들은 주권 국가들 간의 균형을 질서 개념으로 규정했고, 이를 전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슬람은 자신을 세계의 유일한 합법 정치 단위로 고려했고, 전 세계가 종교적 원칙에서 조화를 이룰 때까지 무한정 확장해야 할 운명으 로 보았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보편적 적용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오늘날 국제 문제는 범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이러한 와중에 세계 질서에 대한 상기 역사적 개념들이 서로 만나고 있다. 세계의 모든 지역이 정책 문제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러한 과정을 이끄는 규칙과 한계, 그리고 궁극적 종착지에 대해 주요 참여자들 간에 합의가 없다. 이 결과 세계의 긴 장이 높아지고 있다.

국제 질서는 모순에 직면해 있다. 각국의 번영은 세계화의 성공에 달려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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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데, 세계화 과정은 국가들이 생각하는 열망과는 거스르는 정치적 반작용 을 양산해내고 있다. 세계화 경제를 관리하는 매니저들은 정치적 과정을 관 여시키는 데 있어 경험이 부족하며, 국내 정치 과정을 관리하는 매니저들은 국제 경제·금융 문제들이 국내적 지지를 위기에 처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모호하게 사용되더라도 미국의 지도력은 불가피한데, 안정과 보편적 가 치의 옹호 간의 균형이 추구되어야 하며, 그러한 균형 추구에 있어서, 미국 경험의 독특함과 보편성에 있어서의 이상적 확신 간의 균형도 지속 추구되 어야 한다.

우리 시대 정치력의 궁극적 도전은 국제 체제의 재구축인데, 미국은 다른 지역과 국가들의 역사와 문화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기반 하에서, 그리고 인 간이 본질적으로 자유를 추구한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미국이 인간 가치의 존엄성을 지키는 세력이라는 점을 유의하면서, 새로운 질서 구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질서 체제는 불확실한데, 복잡한 국제 시스템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략과 외교가 필요하다. 새로운 세계질서 달성을 위해서는 구성원 들과 국가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지구적이고 구조적이며 법 률적인 제2의 문화, 즉 한 지역과 한 국가의 아이디어와 사고를 넘어서는 질서 개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것은 역사적 관점에서 베스트팔렌 국제 체제의 현대화를 의미한다. 다양한 문화들을 하나의 공통 체제 속으로 녹여 넣는 것이 가능한가. 세계 질서는 불(fire)과 같아 항상 변하는데, 우리 시대 의 목표는 세계 질서의 균형을 달성하면서, 전쟁의 참화를 방지하는 것이 다. 역사를 강에 비유하면, 강 물줄기의 흐름은 항상 변한다는 것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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