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국제 질서를 구축하는 데 있어 미국만큼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나라 는 없다. 미국은 자신의 방향이 세계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확신 하에, 세계 질서에 있어서 모순적 역할을 수행해 왔는데, 어떠한 제국주의적 구상도 부 인하고, 국가이익의 동인도 부인하면서, 미국의 국내적 원칙들은 보편적이 며, 그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이다. 해외에 대한 미국 개입의 진정한 도전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외교정책이 아니며, 다른 나라들이 본뜨 기를 바란다고 믿는 가치들을 확산시키는 프로젝트다.
구세계(the old world)가 신세계를 부와 권력을 쌓기 위해 정복해야 하 는 대상으로 보았다면, 미국이라는 새로운 국가는 국가적 경험과 성격의 본 질로서, 믿음, 표현, 행동의 자유를 확인했다. 미국에서는 청교도로의 개종 의 정신이 기존 제도와 위계질서(hierarchy)에 대한 불신으로 접합되었다.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자유에 대한 사랑이 압도적 특징이 되었으며, 청교도 주의(puritanism)는 종교적 독트린일 뿐만 아니라 민주당과 공화당의 절대 적인 이론들이다.
미국 문화의 개방성과 민주적 원칙들로 인해 미국은 수백만 명의 모델과 피난처가 되었지만, 동시에 미국의 원칙들이 보편적이라는 확신은 국제 체 제에 도전적 요소로 작용했다. 왜냐하면, 민주적 원칙들을 이행하지 않는 정부는 덜 적법하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제3대 미국 대통령인 토머 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생각한 미국이라는 국가의 핵심은 ‘자유 의 확산’이었다. 미국의 유리한 지리적 위치와 막대한 자원으로 대외정책은
‘선택적 활동’이라는 인식이 있다. 미국에 있어 대외정책은 항구적인 큰일 이라기보다는 일련의 에피소드(episode)적 도전 정도였는데, 따라서 미국 의 ‘보편적 일소(一掃) 독트린(doctrine of universal sweep)’은 국가이익 과 세력균형에 기반을 두고 항구적 훈련으로 대외정책을 수행하는 국가들 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도록 했다. 미국의 이러한 태도는 미국이 대국 으로 부상한 19세기까지도 지속되었다. 두 번의 세계 대전과 냉전을 거치는 동안 미국은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미국은 베스 트팔렌 국가 체제와 세력균형 체제가 제1, 2차 세계대전의 적대적 행위를 시작하게 한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비난하고, 전적으로 새로운 세계 건설이 필요함을 주장하면서도 베스트팔렌 체제와 세력균형 체제를 옹호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의 미국 대통령들(12명)은 세계에 서의 미국의 예외적인 역할을 확인했다. 미국은 세계평화와 보편적 조화를 목표로, 분쟁 해결을 추구해왔다. 민주, 공화당 출신 12명의 미국 대통령들 은 전 세계에 미국의 원칙들을 적용한다는 주장을 해 왔는데, 일례로 민주당 출신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은 1961년 1월 20일 취임사에 서 “미국은 자유의 성공과 생존을 위해 어떤 대가도 치러야 하며, 어떤 부담 도 져야 하고, 어떤 난관도 직면해야 하며, 어떤 친구도 도와야 하고, 어떤 적 도 반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전통적인 세력균형의 변화 를 계산하는 대신 ‘새로운 법의 세계를 위한 새로운 노력’이 필요함을 주장하 면서, ‘인류 공동의 적에 대항하는 범세계적 동맹’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미국의 이상주의와 예외주의가 새로운 국제 질서 구축의 동력이었는데, 세계 질서에 대한 책임감과 미국의 국력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민 들의 큰 관심과 미국 지도자들의 도덕적 보편주의에 기반을 둔 컨센서스에 입각하여, 냉전 붕괴라는 성과를 도출해 냈다.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미국 대통 령들이 주장했던 보편적 원칙에 기반을 둔 평화롭고, 민주적이며, 규범에 근거한 세계는, 실제 국가 이익에 기반을 둔 세계 각국의 생각과 달랐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수행한 5차례의 전쟁 가운데 제1차 이라크 전쟁 만 국내적 여론분열 없이 전쟁을 마칠 수 있었다. 역사학자들은 힘과 외교 간,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간, 권력과 정당성 간 모호함(ambivalence)을 해 결할 역량을 보여 주지 못한 데서 발생한 문제로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조 지 슐츠(George Shultz) 전 미 국무장관이 “미국의 대외정책은 미국의 가 치를 반영하면서도 효율적이어야 한다”고 지적한 것은 적절해 보인다. 대외 정책에 대한 미국 내 논의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간 경합인데, 만약 미국 이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정책 하에서도 행동하지 않으면, 유의미한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Ⅶ. 결론
유럽, 중동, 아시아에서 지정학적 경쟁이 국제관계의 중심 현상이 되었다.
러시아의 크리미아(크림) 반도 합병, 센카쿠(尖閣)/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 를 둘러싼 일본과 중국 간 긴장 고조, 중동에서의 이란 세력의 부상 등이 ‘지 정학의 귀환(Return of Geopolitics)’의 예이다. 이로 인해 무역 자유화, 핵 비확산, 인권, 법치, 기후변화 등 세계질서와 글로벌 거버넌스 등에 집중하 려는 미국과 서방의 구상에 차질이 발생했다. 국제정치에 심각한 변화가 야 기되고 있는데, 세계 질서를 유지하려는 현상유지 세력에게 심각한 도전 요 소가 발생한 것이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자유민주주 승리의
의미를 과도하게 해석한 측면이 있는데, 중국, 이란과 러시아는 냉전의 지정 학적 해결 방식을 수용하지 않았으며, 이를 뒤집으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 다. 이들 국가는 기존의 세력균형을 흔들고 있으며, 국제정치의 역학관계 (dynamics)를 변화시키고 있다.
냉전 이후 국제관계는 유럽에서 독일 통일, 소련 붕괴, 바르샤바조약기구 (WTO: Warsaw Treaty Organization) 해체, 발트 3국의 북대서양조약기 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및 유럽연합(EU) 편입으 로 귀결되었으며, 중동에서는 미국과 연계된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터키, 걸프협력회의(GCC: Gulf Cooperation Council) 국가 등 수니(Sunni) 세 력의 지배와 이란에 대한 봉쇄,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한국, 일본, 호주 등 미 국과의 양자 동맹 체제 구축을 통한 미국의 아시아 지역 패권 질서가 수립되 었다.
22년 전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스탠포드대 교수가 냉 전의 종식은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으 나, 소련 붕괴와 함께 국제관계에서 지정학도 함께 항구적으로 소멸되었다 고 주장하는 것은 희망 사항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2009년 집권한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대테러전으로 규정된 2003년의 이 라크전은 과장된 것이며, “역사는 종언되었다(history was really over)”고 보았고, 따라서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는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증진시키는 것이라는 확신 하에 이스라 엘-팔레스타인 사태 해결 모색, 기후변화 협상, 아시아와 유럽에서의 다자 무역협정 협상, 러시아와 핵무기 감축협정 서명, 이슬람 세계와의 관계개선, 유럽 우방과의 신뢰회복, 이라크·아프가니스탄·리비아에서 철수, 국방예산 감축 조치들을 취했다.
이 같은 미국의 확신이 시험에 들게 되는데,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25년 이 지나 러시아의 크리미아(크림) 반도 합병이 발생했고, 동아시아에서는 중 국과 일본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으며, 중동에서는 종파 간 분쟁과 이슬람국 가(IS: Islamic State) 출현으로 국경선이 붕괴되고 내전이 확대되고 있다.
중국, 러시아는 냉전의 정치적 해결에 반대하면서, 미국과 서방이 구축한 자
유주의적 세계질서에 도전하고 있다.
현상변경 세력들 간의 관계도 복잡한데, 러시아는 중국의 부상을 두려워 하고, 이란의 세계관은 중국이나 러시아와 공통적인 것이 별로 없다. 이란과 러시아는 원유 수출 국가로서 고유가에 관심이 있는 반면, 중국은 원유 소비 국가로서 저유가에 이익이 있다. 따라서 중동에서의 정치 불안이 이란과 러 시아에는 이익이 되지만 중국에는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 이란, 러시아 간 전략적 동맹을 말하기는 어렵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저해하는 데 성공한 이후에는 이들 3국 간 긴장이 발생할 수 있다.
이들 3국의 공통된 주장은 현재의 국제질서는 변경되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미국과의 직접 대립이나 충돌은 피하려 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국가 간 경쟁구도, 영토적 주장, 해군력 강화, 수정주의적 역사관 등을 두고 중국과 일본이 경쟁하고 있는데, 중국과 일본에서 민족주의 세력이 귀환하고 있다.
중·일 양국은 군비를 증강하면서 제로섬 경쟁을 심화하고 있다. 중동에서 러 시아는 이란과 시리아를 우군으로 인식하면서 시리아 사태에 개입하고 있 다. 현상변경 세력이 득세하면 현상유지 세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는데, 중 국, 이란, 러시아 3국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냉전 이후 수립된 자유주의적 국 제 질서를 완전히 뒤집지는 못했지만, 현상유지 국제질서가 적어도 논란이 되도록 하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전 미 국무장관은 현대 국가에는 경제력 과 군사력뿐 아니라 아이디어 역량이 중요하며, 주권과 국내문제 불간섭 원 칙은 여전히 유효하다면서, 아래 요지로 언급하였다.
- 오늘의 국제체제는 유동적인데, 현재의 중동 상황은 유럽 스타일의 민족국 가 개념이 초국가적 이슬람 테러세력[무슬림형제단(Muslim Brotherhood),
- 오늘의 국제체제는 유동적인데, 현재의 중동 상황은 유럽 스타일의 민족국 가 개념이 초국가적 이슬람 테러세력[무슬림형제단(Muslim Brotherh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