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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차> 교육의 목적1 ‘외재적 목적과 내재적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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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차> 교육의 목적1 ‘외재적 목적과 내재적 목적’

1. 대학에서 학생들이 공부해야 할 방향에 관한 여러 의견 중에는 자기발견, 자아성 장에 관한 것들이 포함되어있다. 과연 교육에서 자기발견이란 어떤 것일까? 이와 관 련해서 교육의 목적에 관한 다음의 두 가지 입장 중에서 하나를 각자 선택해 보자.

1) 교육은 인간이라면 누구든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실현하도록 돕는 일이다.

2) 교육은 사람마다 각자가 원하는 특정한 가치를 실현하도록 돕는 일이다.

1)은 교육의 목적에 관한 절대주의적 입장을, 2)는 상대주의적 입장을 표방하고 있다.

대학의 전공교육이나 직업교육을 제외한 학교교육, 즉 국민공통 의무교육과정에서 추 구하는 목적은 1)과 2)중의 어떤 것일까? 이 질문을 염두에 두고 다음의 동영상을 감 상하기로 하자.

http://www.youtube.com/watch?v=1zmnoElezRg (2010 청춘페스티발 ‘나는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 중에서-이탈리아 일화 제외 총 20분 시청)

위의 강연은 교육의 목적 1)과 관련이 될까, 아니면 2)와 관련이 될까? 각자 의견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은 내가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를 발견하도록 도와줌으로써 각자가 원하는 다양한 행복을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일이다’라고 말한다면 1)와 2)를 종합하는 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우리가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1)의 의미와 방법일 것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교과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를 둘 러싼 세계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탐색하고 결정해가는 과정에 다름아니다. 내 가 언제 행복하고 설레는지 등등은 자신의 심리분석만 파고든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과지도와 생활지도는 모두 자아의 형성과 자아 의 발견에 이르는 중요한 경로가 된다. 장차 어떤 직업에 종사하며 산다고 하더라도 교육은 인간으로서. 교육받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자기 성찰과 세계에 대한 탐구의 능력을 길러주는 일이다. 이 점에서 교육은 직업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다.

2. 본격적으로 교육의 목적에 관한 이론적 논의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외재적 목적 과 내재적 목적의 대비이다. ‘왜 가르치는가’, 이 질문은 교육목적에 관한 질문으로서, 왜, 어째서, 무엇을 위해서 가르치며 가르쳐야 하는가를 문제삼는다. 이 질문은 내용 과 방법에 관한 질문에 비하면 일상의 교육 사태에서 소홀하게 취급된다. ‘과연 교육 은 왜 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은 나날의 업무에 바쁜 교사들에게 근본적 질문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매우 ‘한가한’ 질문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목적에 관한 질문은 결코 한가한 질문이 아니다. 교육목적이 분명하게 정해져야 그 목적을 달성하기에 가장 적합한 교육내용을 선정할 수 있으며, 가장 효과적인 교육방법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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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할 수가 있다. 즉, 교육목적은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을 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교육목적에 대한 질문은 근본적인 동시에 절실한 현실적 질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교 사는 전문가로서 반드시 이 교육목적에 대하여 성찰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2. 교육목적에 관한 가장 널리 퍼져있는 생각은 교육의 목적을 외재적으로, 즉 교육 바깥에서 찾는 입장이다. 교육을 맡은 국가 최고 관료에게 어째서 교육을 위해서 국 가적으로 그토록 많은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는지를 묻는다면, 그는 뭐라고 대답할 것 인가. 틀림없이 그는 교육은 국가발전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고 대답할 것이다. 경제발전, 정치발전, 사회발전 등의 과제를 위해서 교육이 필요하 다는 생각,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직업, 부, 명예를 위해서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교육의 목적으로 교육이 아닌 다른 무엇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외재적’ 교육목적관으 로 부를 수 있다. 이 입장은 표면상 교육의 필요성과 역할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최 종적 관심사는 결코 교육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 가져올 교육 외적 결과에 있다. 이 입장은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만드는 가장 손쉽고 강력한 이유를 제공해 주기는 하지만, 교육에 종사하는 당사자들마저 교육을 이와 같이 수단시해도 좋을지 다소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우선 외재적 교육목적관은 교육의 ‘부수적 결과(또는 기능)’과 교육의 ‘본질적 목적’

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논리적으로 모순을 범한다. 교육을 통해서 국가가 부강 해지고 정치, 경제, 환경, 문화 등등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은 경험적인 증거에 의해 입증될 수 있는 교육과 여타 사회부분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그 러나 이 상관관계는 교육의 여러 기능, 결과, 효과를 말해줄 뿐이며 그것은 곧 교육 의 목적이라는 것을 입증해주지는 못한다. 가령 학교에서 폐품 수집을 해서 환경보호 를 한다고 칠 때, 폐품 수집은 학교의 한 기능일 뿐 결코 학교 교육의 목적이라고 말 하기는 어렵다.

3. 위와는 달리, 교육의 내재적 목적을 주장하는 입장은 교육과 여타의 사회부분들은 서로 대등하며 결코 하나가 다른 하나를 위한 수단인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 입장에 의하면 정치의 영역과 경제의 영역은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서로 독자적인 논리와 과제를 가지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교육 또한 다른 사회 부문들과는 구분되는 그 자체의 독자적인 영역이 있다. 교육이 사회적으로, 개인 적으로 여러 가지 도움을 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교육이 본래 해야할 고유할 임무를 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에 불과하다. 만일 교육의 여러 사회적, 개인적 기능에만 매몰되어서 정작 교육만이 할 수 있는, 교육의 본질적 역할 을 잊어버린다면 그것은 교육을 위해서 엄청난 불행을 초래할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의 내재적 목적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교육 자체 안에 붙박혀 있는 교육의 고유한 목적에 관해서는 R. S. Peters의 주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윤리학과 교육』(교육과학사, 1971)에서 진정한 교육은 다음의 세 가지 기준을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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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첫째 규범적 기준-교육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모종의 가치로운 것을 전달한다. 둘째 인지적 기준-교육은 살아있는 지적 안목을 계발한다.

셋째 과정적 기준-교육은 학습자의 의식과 자발성을 전제로 한다. 이 세 가지 기준을 만족시킬 때라야 우리는 그 활동을 ‘교육’이라고 정당하게 부를 수 있다. 피터즈는 교 육의 내재적 가치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교육학자이며, 그가 말한 교육의 정의는 곧바 로 교육이 하는 고유한 역할로 바꾸어 읽을 수 있다. 즉 교육은 다른 무엇이기 이전 에 학습자의 지적 안목을 계발해주는 활동이며, 이 과정은 피터즈에 의하면, ‘인류의 문명유산으로의 입문식, 또는 성년식’의 과정이다.

4. 대구가톨릭대학교의 교육목적은 무엇일까. 학교 홈페이지의 <학교이념>의 내용은 위의 내재적 목적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흥미로운 교육목적관을 보여준다. <학교 이념>에 인용된 옛날이야기에 의하면(이홍우, 『교육의 목적과 난점』 2장, 교육과학사, 1984) 교육은 인간백사 중에서 고기잡이일, 대장장이일, 농사일 등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중요한 일이며,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의도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교육의 목적은 교육을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결코 이해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다. 그 목적 은 바로 ‘현상을 보도록 하는 것’으로서, 끊임없이 삶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지적 탐 구의 태도를 갖추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피터즈의 내재적 목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교육 고유의 가치가 존재할 뿐만 아니 라, 그것이 다른 모든 사회부분의 가치보다 더 상위에 존재한다는 이 대구가톨릭대학 교의 교육목적은 오늘날 우리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극단적인 주장으로 보일 지 모른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해 보면, 이러한 주장은 유학의 근본 정신과 일관된다.

유학의 근본정신은 널리 알려져 있는 『대학』 의 8조목에 잘 나타나있다. 격물(格物)- 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 의 8개 단계는 앞 단계가 끝난 후에 다음 단계의 일로 이어지는 시간상의 선후관계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격물부터 시작해서 수신에 이르는 인격함양, 공부, 교육의 과정은 성격상 도저히 끝이 있을 수 없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8조목의 관계는 논리적 선후관 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제가, 치국, 평천하의 모든 사회활동은 바로 그 기준을 수 신까지의 교육에 둔다는 것, 수신을 하면 모든 사회활동은 그 자연스러운 결과로서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결국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일차 적인 일,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다름 아닌 교육이다. 이상의 세 가지 교육관의 성격 에 대하여 보다 자세하게 생각해 보고, 이를 기초로 해서 우리 자신의 교육관을 비판 적으로 검토해보아야 한다.

참조

관련 문서

[r]

– 우리가 타인의 행동을 판단할 때, 우리는 외재적 요인들에 의한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내재적 요인들의 영향을 과대평가하는 경

-교육목적:

-그만큼 행동반경이 넓어지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호기심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영아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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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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